# 62
나 혼자 10만 대군 062화
18장 좀 맞자 규륜(3)
묵빛의 오라가 담긴 주먹으로 규륜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가는 규륜의 몸, 하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텁-
“큭?!”
얼굴을 맞고 허공을 날아가던 규륜의 다리를 잡아챈 그림자가 그를 다시 내 앞으로 끌어 온다.
퍽!
그와 동시에 다시 날아가는 규륜,
퍼퍼퍼퍽!
마치 테니스를 치듯, 규륜의 몸이 튕겨 나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허공을 나는 규륜의 몸은 그림자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한테 두들겨 맞았다.
물론 혹시라도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힘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
규륜의 몸을 테니스 치듯 후려친 지 얼마나 됐을까, 이제 슬슬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본 규륜은 그림자에 끌려 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비틀어 내게 주먹을 날렸다.
꿍!
“……?”
분명 규륜의 공격은 그림자에게 막혔지만, 그럼에도 규륜의 주먹을 막아낸 그림자는 한가운데가 뻥 뚫린 채 소멸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그림자의 속박에서 벗어난 규륜은 곧바로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나는 그런 규륜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조금 전 그림자를 파괴한, 풍압이 느껴질 정도의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헌터가 낼 수 없는 힘인데?
만약 그림자를 이렇게 소멸시킬 정도의 힘이라면 최소 S급 헌터, 그 이상이어야 했다.
“헌터 등급은 꽤 높은 것 같은데?”
내 이죽거림에 일순간 얼굴을 찌푸린 규륜,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녀석, 그림자 왕이로군.”
나는 규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얼굴을 덮은 그림자를 이용해 미소를 보여주었다.
내 미소를 본 규륜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규륜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은 한 이곳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가볍게 발을 차는 것으로 규륜의 앞으로 다가간 나는 입을 열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큭!”
내 모습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자 주먹을 휘두르는 규륜, 분명 꽤 강력한 힘이 실린 주먹이었지만, 그저 그뿐인 주먹이었다.
“컥!?”
간단히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규륜의 주먹을 피한 나는 곧바로 규륜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내리는 규륜.
내 발아래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규륜을 보며 나는 조금 전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분명 헌터 등급은 높은 것 같은데…….”
규륜이 휘두른 단 두 번의 주먹,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규륜은 분명 높은 헌터 등급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전투 경험은 거의 생초보에 가까울 정도였다.
굳이 말하면 신입 헌터와 비슷한 수준일까.
등급은 분명 S급 이상인데 전투 경험은 생초보와 비슷한 이 언밸런스한 상황,
게임으로 비교하자면 쩔을 통해 고레벨로 올라온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다.
……뭐, 그거야 이제부터 차근차근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내 등에서 빠져나온 그림자 손이 규륜의 몸을 들어 올렸지만, 규륜은 아직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질문을 몇 가지 하지.”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규륜은 공포감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어두운 공간, 마치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진 공간에는 그런 환경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머리는 어디 갔는지 몸만 남은 시체부터 시작해, 온몸이 기괴하게 꺾인 시체도 있었고, 오히려 팔다리가 사라진 채 TV 뒤에 걸려 있는 시체도 있었다.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방 안은 평범한 사람이 보았다면 그대로 졸도를 할 정도의 풍경이었지만, 그 방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남자는 시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곧 어둠 속에서 남자의 눈이 떠졌다.
“……씨발”
남자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눈을 뜨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새끼…….’
남자는 얼마 전,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그저 처맞기만 하다, 나중에는 던전 깊숙한 곳에 매몰되어 규륜의 부하에게 구출을 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김우현……!”
주작홍 길드의 SS급 헌터이자, 외부에서는 SSS급에 가장 가까운 남자라고 불리는 진룡은, 자신을 무력하게 패배시킨 한 남자의 이름을 짓씹듯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진룡의 손에 잡힌 시체의 머리가 마치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며 진룡의 몸을 더럽혔다.
하지만 진룡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이내 시체를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씨발, 씨발, 씨발……!”
죽여 버리고 싶다.
복수하고 싶다.
여유가 넘치던 그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진룡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진룡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문을 노려봤다.
진룡은 핏발 선 눈으로 거대한 문을 보다가도 이내 고개를 절레 흔들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못했다.
“으으으……! 형님의 명령만 없었어도……!”
주작홍 길드장인 ‘장영’의 명령 때문에, 그는 주작홍 길드로 돌아온 후 이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진룡은 근신 처분을 받은 것이었다.
장영의 배려로 평소 즐기던 ‘취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마인드로 생활하는 진룡이라도 자신의 위에 있는 장영의 말은 거역하지 못했다
“그 새끼 때문에…….”
문득 진룡은 규륜에 대한 살의를 끌어 올랐다.
그 이유는 바로 장영이 진룡에게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근신해 있다가 규륜의 명령에 따르라니……!”
그 명령의 뒤에는 틀림없이 규륜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진룡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진룡은 식탁 위에 있는 스마트폰을 하나 바라보았다.
이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와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신세라는 것을 자각하니 진룡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의 분노가 더더욱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쾅! 쾅! 쾅!
결국, 옆에 있던 냉장고를 몇 번이고 후려친 뒤에야 진룡은 씩씩거리며 억지로 화를 가라앉혔다.
“김우현이고 규륜이고, 기회가 된다면 전부 죽여 버리겠어……!”
진룡이 그렇게 김우현과 규륜에게 복수의 감정을 예리하게 갈아내고 있을 때,
삐──!
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내 눈앞에 속박된 상태로 있는 규륜, 그의 눈에서 있는 공포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을 하지. ‘이 검’은 어디에서 난 거냐?”
그림자에 묶여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규륜에게 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붉은 검날 가운데에 검은 보석이 박혀 있는 검, 아마테라스의 길드장인 아만 아야토를 죽이고 얻은 ‘마법사의 검’을 규륜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검을 보여주자 규륜의 눈에 순간적으로 공포 대신 당황이라는 감정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역시 규륜은 ‘마법사의 검’을 알고 있는 듯했다.
“대답해, 만약 내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지 않으면,”
“크윽……!”
내 의지에 따라 규륜을 속박한 그림자가 그를 강하게 죄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고통을 참기 힘들다는 듯 목을 이리저리로 비트는 규륜을 보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규륜은 힘겹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그건…… 너도 알잖아?”
그 순간, 규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분명 그림자는 규륜을 계속해서 속박하고 있는데도,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응? 안 그래? ‘그림자 왕’”
그가 입을 염과 동시에 규륜을 속박하고 있던 그림자들이 찢겨 나갔다.
순간 규륜의 몸이 자유로워졌고, 규륜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곧바로 내게 무엇인가를 던져왔다.
꿍! 꿍! 꿍!
그림자를 이용해 날아온 물체를 막아냈지만 조금 전과는 뭔가 달랐다.
“대체 무슨……?”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앞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규륜이 눈에 보였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몸이 잘 움직이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불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참, 이 녀석은……일부러 영약까지 먹여서 쓸 만한 몸을 만들어놔도 별 의미가 없잖아?”
“네 녀석, 누구지?”
내 말에 반응하는 규륜, 그는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규륜’이지.”
“그런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내 등 뒤에서 아지랑이들이 흘러나와 자리를 잡는다.
아지랑이 하나하나가 내 의지에 따라 당장에라도 규륜의 몸을 꿰뚫을 수 있게 변했지만, 규륜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여유롭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그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묘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사실 이쯤이면 알아챌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모르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힌트를 줄게.”
“……힌트?”
내 중얼거림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규륜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졌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멍청하고 우매한 녀석.”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너는 결국 막지 못했다. 멸망을 막지 못했어!”
즐겁다는 듯 말을 이어나가는 규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달라진 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조금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넌 졌어. 나에게 패배한 거야. 이 ‘나’한테……. 어때,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잘 알아들었으려나?”
씩 웃으면 말하는 규륜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아지랑이들을 쏟아냈다.
내 의지에 따라 등 뒤에 일렁거리던 그림자들이 형체를 갖추고 규륜에게 쏘아져 나갔지만 규륜은 그저 가볍게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 날아가던 그림자들을 피해냈고, 뒤따라오던 그림자들을 가볍게 쳐 냈다.
조금 전의 규륜이라면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 행동을 가볍게 해낸 그는 이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자극이 셌나? 응?”
키득키득
규륜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어쩌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회귀하면서 그 녀석도 같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하기는 했었다.
검은 돌이 있는 던전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암살자들, 회귀 전보다 오히려 더 멸망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상황.
어쩌면 그 중심에 이 녀석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크세즈베트’”
나는 규륜의 몸을 빌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악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규륜이 입가를 이상하게 비틀며, 비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