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나 혼자 10만 대군 061화
18장 좀 맞자, 규륜(2)
중국의 이름 없는 수많은 야산 그사이.
위치가 정확히 표기되어 있지 않은 야산의 지하에는 아무리 좁게 잡아도 200평은 넘을 듯한 거대한 지하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놓여 있는 책상 위에는 문서들이 어지럽게 더럽혀져 있었고, 설령 문서가 올라가 있지 않은 책상일지라도 실험용 플라스크들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그런 책상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주변에는 거대한 원통형의 유리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리관 안에서, 신천 길드의 길드장이자 SS급 헌터인 ‘독문석’은 서서히 돌아오는 의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제기랄…… 이게 대체 뭐야!’
처음에는 몽롱한 정신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지 못했던 독문석.
하나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노란 용액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문석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거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분명, 주작홍 길드에서 받은 붉은 보석을 사용한 뒤, 오전 회의에 참석한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 뒤에는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환한 빛이 터지면서…….’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는 것을 독문석은 깨달았다.
‘이런 시발…….’
독문석은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기보다도 그나마 움직이는 눈알을 굴려 이곳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독문석의 눈앞에 보이는 건 엉망진창으로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문서들과 책상 위에 복잡하게 올라가 있는 플라스크들.
그리고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혹시라도 의식을 되찾은 것을 들키면 안 될 듯하여 독문석은 사람들이 눈앞을 지나갈 때마다 눈을 감으며 계속 주변 상황을 관찰했다.
독문석의 주변에 있는 플라스크는 사용처를 짐작하기 어려운 용액들이 들어 있었고, 그것들은 연결된 시험용 관을 타고 쉴 새 없이 어딘가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독문석은 자신 이외에도 이 거대한 시험관 안에 갇힌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상윤, 강천후…… 저기에 있는 건 하명춘?’
독문석은 곧 시험관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 전부 신천 길드 소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눈알을 굴리던 독문석의 시선에 과학자들이 어느 한 유리관에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이천명?’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유리관 안에 이천명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과학자들이 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독문석은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저 눈으로만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고 있던 중, 유리관 옆에 있던 과학자가 아래에 있는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과학자가 패널을 조작하자 노란색 용액으로 가득 차 유리관이 한순간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끄아아아아악!!!
곧 독문석은 노란 용액을 뚫고 들려오는 거대한 괴성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과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귀를 막고 있었지만, 유리관을 주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독문석은 그 보랏빛 용액 속에 갇힌 이천명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유리관 속에서 온몸을 뒤틀며 유리관을 긁던 이천명의 피부가 검게 변하며,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몸은 풍선이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고, 피가 터져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광경.
-살려줘……! 살려줘!! 끄아악, 제발! 제발!!
그런 중에도 이천명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과학자들은 비명에는 반응하지 않고, 유리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계속해서 팽창했던 이천명의 몸이 서서히 그 부피를 줄여가며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팽창했던 이천명의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는 더 이상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검게 변색됐던 피부는 완전히 검붉은색으로 변해 버렸고, 팔과 다리는 마치 괴수의 그것처럼 거대하게 변했다.
얼굴이 있던 곳에는 눈코입 대신 거대한 눈알 하나가 안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계속해서 변이하고 있는 ‘이천명’이었던 것을 보며 독문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 * *
초대형 길드 주작홍의 길드장이자, 전 세계에서 단 20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인 ‘장영’.
그는 끝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를 죽이고 있었다.
A급부터 시작해 D급까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던전의 몬스터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숫자를 무기로 사용하는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우르르 꽝!
푸른 뇌전.
분명 하늘이 가려져 있을 터인 동굴 안에, 시리도록 푸른 빛을 가진 낙뢰가 쏟아진다.
몬스터들의 괴성이 낙뢰의 소리에 먹혀들어 가고, 푸른 빛의 낙뢰가 주변 일대의 몬스터들을 없애 버린다.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의 뇌우를 출현시켰던 장본인인 장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얼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규륜…….”
장영은 얼마 전 규륜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SSS급, 그 이상의 등급이 있다면 길드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뜬금없는 발언.
장영도 SSS급에 오른 직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스템에서 최고로 인정해 주는 SSS등급 다음은 있을까?’라는, 무척이나 단순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항상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것이 원동력이었던 장영에게 있어서 그 해답은 무척이나 중요했지만, 장영은 곧 답을 보았다.
시스템에서 SSS급 이상은 없다는 답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위로 올라갈 곳이 없다’는 답을.
그때부터 장영은 모든 것이 권태로워졌다.
항상 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자 했던 그 탐욕과 욕망은 전부 권태에 침식되어 버렸다.
물론 그 권태를 해소하려 노력했던 적은 있었다.
최근 자신의 아래까지 올라온 규륜의 힘을 사용해 한국에 사업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모략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소일거리로는 장영의 ‘권태로움’을 해소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규륜이 의중을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장영에게 제공한 정보는, 삶이 권태로웠던 그에게 조금이지만 열기를 불어넣었다.
장영은 그다음 날 규륜이 말해준 정보를 토대로 던전에 찾아갔다.
SSS급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아티팩트’가 나오는 던전에.
혹시라도 규륜의 말이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장영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영이 SSS급이 된 이후로 장영에게 함부로 거짓을 보고해 명을 재촉하는 멍청이들은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하늘을 찌를 정도의 오만이었지만, 장영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는 전 세계에 단 20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였으니까.
“앞으로 80일.”
장영은 눈앞의 거대한 돌이 숫자 80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며 끝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를 사냥했다.
80일 뒤에 눈앞에 나타날 아티팩트를 생각하며, 장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헬기를 향해 도약한다.
옥상에서 터지는 강력한 충격파와 동시에, 내 몸이 마치 포탄처럼 날아간다.
순식간에 바뀌는 시선들과 내 얼굴을 때리는 강력한 공기저항, 그럼에도 내 몸은 헬기가 있는 쪽으로 끝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곧 헬기와의 거리를 얼마 남기지 않고 힘을 잃은 내 몸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서서히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등 뒤에 접었던 날개를 크게 펼쳤다.
후욱-
내 몸보다 2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날개가, 베이징 상공에서 날갯짓했다.
아직 ‘검은 돌’을 전부 흡수하지 않아 각성의 페널티가 있는 터라 그림자의 소모도 심하고 날개의 형상도 불안정했다.
그런데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점은 지금의 단점들을 전부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곧바로 규륜이 타고 있는 헬기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나는 헬기를 공격하지 않고 고도를 올려 헬기의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물론 지금 당장에라도 저 헬기를 박살 낸 다음에 규륜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유감스럽게도 헬기는 아직 베이징 시내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헬기를 파괴했다가 매스컴이라도 모여들면 상황이 귀찮아졌다.
그렇기에 나는 날고 있는 헬기가 시내 밖으로 향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쯤이면…….”
석양이 완전히 지기 시작할 때쯤, 헬기는 베이징의 시내를 지나 한적한 시골 마을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결심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날개를 움직여 정확히 헬기의 위쪽으로 이동해 그대로 그림자로 만들어진 날개를 없애고 헬기의 위로 뛰어들었다.
쾅! 프르르르르륵! 창! 챠킹!
온몸에 그림자를 감싼 체 헬기에 떨어지자마자 헬기의 프로펠러가 내 몸을 두른 그림자에 닿아 깨져나가고 그와 동시에 헬기가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헬기가 추락함과 동시에 한순간 몸이 붕 떠올랐지만 내 의지에 따라 내 발치에서 솟아 나온 그림자들이 내 몸을 헬리콥터에 고정했고, 나는 곧바로 헬기의 천장에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너무나도 쉽게 뚫리는 천장의 철판을 손으로 잡아 뜯자 그 안에는 내가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옛날 사람들이나 입을 것 같은 붉은 장포를 입고 있고 양쪽으로 찢어진 두 눈과 입이 보인다.
곧, 양쪽으로 찢어진 눈이 슬쩍 커지며 남자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 슨!?”
“찾았다.”
콰지지지직!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곧바로 헬기의 천장을 찢어냈다.
놀람을 넘어 경악으로 물드는 규륜의 얼굴.
그런 와중에도 엄청난 속도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헬기는 아마 몇 초 뒤면 땅에 처박힐 것 같았다.
그에 따라 나는 그림자 손을 만들어 규륜을 잡아채려 했지만…….
“……!?”
그림자 손이 헬기 안쪽으로 들어가자, 규륜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헬기의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규륜이 허공으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나는 규륜과 마찬가지로 헬기에서 떨어졌고, 헬기는 땅에 처박히며 거친 마찰음과 함께 상당히 큰 폭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불타는 헬기 앞에서 나는 땅에 서 있는 규륜을 바라봤다.
추락하고 있는 헬리콥터에서 탈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처도 없이 땅을 밟고 있는 규륜.
하나 그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엿보였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알아서 뭐 하게?”
내가 대답하자 규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규륜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뭐, 알려줘도 상관이 없기는 하지.”
어차피 규륜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근데 그전에…….”
나는 곧바로 다리에 힘을 줘 규륜에게 튀어 나갔다.
한순간 반응을 못 한 듯했지만 결국에는 눈앞에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규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좀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