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나 혼자 10만 대군 054화
16장 각성 던전 ‘죽음의 거리’(1)
일본에서 돌아온 지 5일째.
-그럼 이번에 출연한 A급 개방형 던전 ‘죽음의 거리’의 첫 공략은 씨커 길드에게 맡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형찬 부장의 확답을 듣고 난 뒤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다.
나는 곧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뉘었다.
개방형 A급 던전 ‘죽음의 거리’는 그 분위기가 꽤 특이한 던전이었다.
일반적인 동굴형 던전과는 다르게 A급 던전 ‘죽음의 거리’는 던전의 장소가 ‘거대한 영주성’이었다.
중세시대의 영주성.
게다가 꽤 언밸런스하게도 영주성에 나오는 몬스터는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였다.
A급이라는 등급에 따라 하위 언데드보다는 상위 언데드인 듀라한부터 시작해, 몬스터 중에서는 A+등급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데스나이트가 나오기도 한다.
하나 그 무엇보다 이 던전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그곳은 내 각성을 도와줄 ‘검은 돌’이 있는 던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슬쩍 노트북을 보며 인터넷 창에 뜬 협회 기사에 눈길을 주었다.
[서울 북한산에 출현한 A급 던전, ‘죽음의 거리’]
솔직히, ‘죽음의 거리’가 이렇게 빨리 출연할 줄은 몰랐었다.
뭐, 애초에 어느 던전이 언제 출현하는지 모르는 만큼, 이 던전이 먼저 출연할 줄 몰랐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나는 내가 회귀 전 ‘검은 돌’을 얻었던 루트대로 각성 던전이 출현할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어두운 실험실’을 시작으로, 그다음에는 중국에 있는 ‘그림자’까지는 내가 회귀 전 ‘검은 돌’을 얻었던 루트와 같았으니까.
뭐, 어찌 됐든 이런 상황에 한국에 존재하는 각성 던전이 먼저 열리는 건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죽음의 거리’에서 검은 돌을 얻음으로써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은 오히려 다른 각성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보다도 지금 내게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 줄 수 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헌터 협회에서 이 던전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강형찬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죽음의 거리’의 공략권을 요구했고, 협회는 내 말을 듣고 한동안 회의를 거친 뒤 내 요구를 수용했다.
내 요구라서 그런지 개방형 던전을 선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라고 할 만한 건,
“그 던전 안에서 또 그걸 찾으려면 고생 좀 하겠네.”
A급 던전 ‘죽음의 거리’가 이미 한국에 출현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른 각성 던전들을 먼저 클리어했던 이유는, 내가 죽음의 거리의 진짜 클리어 방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처음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서도 ‘검은 돌’은 얻지 못했었다.
회귀 전 고구려 길드장이 된 ‘홍염’ 이연화가 이 던전의 진짜 클리어 방법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아마 나 역시 지금까지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슬쩍 몸을 눕혔던 의자에서 일어나 켜져 있는 노트북을 닫고 목을 풀었다.
‘죽음의 거리’에 들어가는 날은 당장 내일이다.
죽음의 거리에 들어가 ‘검은 돌’을 얻어 각성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만한 힘이 생긴다.
닫힌 노트북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당장 일본에서 얻은 ‘규륜’에 대한 정보. 아마 각성 던전이 출현한 것만 아니라면 이 녀석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을 터였다.
“주작홍 길드의 떠오르는 이인자라…….”
지난 3일간 규륜을 조사하며 얻은 자료는 극히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나마 규륜의 최근 근황으로 볼 수 있었던 정보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주작홍의 이인자 자리를 단번에 꿰찼다는 뉴스 정도.
그나마 다행인 건 저번처럼 규륜의 정보를 찾아보려 해도 아예 뜨지 않았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는 것 정도.
물론 내가 원하는 정보는 이런 게 아니지만.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냥 주작홍 길드에 쳐들어가서 규륜이란 놈의 멱살을 붙잡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정도로 깡패짓을 하기에는 내 힘이 그만큼 강하진 않았다.
게다가 주작홍에는 SSS급 헌터인 장영도 버티고 있으니,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냥 속 편하게 회귀 전의 능력 그대로를 가지고 회귀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지금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몇 배는 더 많아질 테니까.
“뭐, 지금도 점차 힘을 찾아가는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회귀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결재한 서류철을 노트북 위에다가 올려놓은 나는 이내 1층 사무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인 2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휴게실 TV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후카이 이로하와 김서윤, 그리고 그 뒤쪽 책상에서 무엇인가를 빼곡하게 적고 있는 이은별이 보였다.
“아, 아저씨!”
“우현 씨?”
휴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반응하는 김서윤, 그리고 김서윤의 말을 듣고 뒤늦게 반응하는 이로하를 보며 나는 슬쩍 TV를 바라봤다.
“웬 애니메이션?”
“아, 이로하 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보는 도중이었는데, 이거 꽤 재미있는 것 같은데요?”
애니메이션을?
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 후카이 이로하를 바라보자 그녀는 살짝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 제가 듣던 라디오에 항상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좀…… 궁금해서.”
쑥스럽다는 듯 입을 여는 이로하를 보며 나는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예전에는 애니 많이 봤거든요.”
고등학교 때 하던 야자 덕분에.
야자에 빠지는 건 각 학교에 분명 한 명씩은 있었던 ‘미친개’라고 불리는 주임 선생님 덕분에 거의 해보지 못했던 터라, 결국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과 PMP에 넣어 둔 애니를 보는 것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대여점에서 빌려온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주임 몰래 돌려보는 것 정도?
뭐 그런데도 매일 6시간씩 주어지는 야자시간 덕분에 자랑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 나왔던 애니와 만화 그리고 소설은 취향에 맞는 것이라면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본 기억이 있었다.
“와, 아저씨가 그런 것도 봤다고요?”
“나도 봤지. 고등학교 때.”
내가 말하자 그녀는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약간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뭐……? 그럼 무슨 이미지인데?”
“음…… 뭔가 굉장히 혼자 열심히 공부할 것 같은 타입?”
김서윤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타입은 절대 아니긴 했지.”
내가 하루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12시간이었다면, 실제로 샤프를 꺼내 공부를 하는 시간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보면 3시간이 될까?
나는 슬쩍 김서윤과 이야기하며 후카이 이로하를 바라봤다. 이로하는 어느새 다시 액션 장면이 나오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그 붉은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처음 이로하와 헤어질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어느 정도 일본의 상황을 정리하는 데 1달 정도가 걸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로하는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귀국한 지 2일 만에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 뒤 한국어를 하지 못했던 이로하에게 내가 끼고 있던 통역 팔찌를 넘겨줘 어찌어찌 다른 길드원과의 의사소통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다음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후카이 이로하에겐 당장 머물 곳이 없었다는 것.
그 이외에도 후카이 이로하가 일본 국적이라 해외 헌터 영입서류 덕분에 협회를 몇 번이고 들락날락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후카이 이로하는 결국 집이 구해질 때까지는 길드 건물의 3층에서 잠깐 머물게 되었다.
시선을 돌려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는 김서윤과 이로하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그 둘은 최근 3일간 꽤 친해졌는지 사이좋게 붙어서 애니를 보고 있었다.
뭐, 후카이 이로하의 성격은 회귀 전에도 꽤 활달한 느낌이었으니 딱히 문제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 * *
그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내가 들어가기로 예정된 A급 던전 ‘죽음의 거리’에 들어갔다.
던전의 안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던전과는 다르게 어둑어둑한 하늘이 보였고, 그 어두운 하늘 아래 중세시대의 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걸음을 옮겨 성으로 다가가자 성문을 지키고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가 보였다.
스켈레톤류 언데드 중에서는 꽤 상위급 몬스터로, 본 스켈레톤들과는 다르게 검을 휘두르고 재생능력이 빨라 C+급을 받은 몬스터.
“최대한 빠르게 끝내볼까?”
동화를 사용하고, 그림자들을 불러낸다.
불러낸 그림자들의 눈가에 이제는 익숙해진 붉은 안광이 자리하기 시작하고, 그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리를 이루어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지키고 있는 성문을 향해 달려나간다.
딱히 별다른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그림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적을 말살하기 위해 달려들어 간다.
별 저항도 없이 순식간에 뚫린 성문.
나는 마치 무혈입성을 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성문 안으로 들어갔고, 성안에서는 학살극이 일어나고 있었다.
언데드 학살극.
그림자가 쥐고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스켈레톤의 골통을 깨부순다.
여기저기에서 튀어 오르는 뼛조각들.
그 뒤를 이어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듀라한의 갑옷이 사정없이 찌그러지고,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물량 채우기용 구울과 본 스켈레톤들은 그저 불 앞의 나방처럼 사라져간다.
이 던전은 무척이나 넓었고, 언데드의 수 또한 기가 질릴 정도로 많았지만, 그건 내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숫자가 위협이 된다면, 더 압도적인 숫자로 밟으면 될 뿐이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언데드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나는 어느새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정확히 4갈래로 나뉘는 성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 중심부에 박혀 있는 해골의 조각상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지금 상태의 ‘죽음의 거리’를 클리어하려면 이대로 북진해 내성에 있는 보스인 ‘언데드 킹’을 죽이면 되지만, 만약 그럴 경우 내 각성 아이템인 ‘검은 돌’은 얻지 못한다.
“검은 돌을 얻으려면…….”
이 성에 있는 어둠의 구슬이 필요했다.
다만 문제는 이 어둠의 구슬이라는 게 찾기가 더럽게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영지 내에서 특정한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성 전체에 단 하나만 있는 구슬.
어떻게 보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이 미션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검은 돌을 얻으려면 어둠의 구슬이 꼭 필요했다.
한 마디로, 얼마나 오래 걸리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내 의지에 따라 영역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
그나마 다행히도 그림자를 활용하면 그 어둠의 구슬을 찾는 것이 마냥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무척이나 빠르게 어둠의 구슬을 얻을 수 있었다.
최소 10시간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건만, 1시간도 되지 않아 어둠의 구슬을 찾아온 그림자를 보며 나는 괜히 기특한 생각이 들어 그림자의 어깨를 툭툭 친 뒤, 그림자의 손안에 있는 어둠의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야말로 칙칙한 색깔의 구슬이었지만, 언밸런스하게도 검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그 구슬을 나는 성의 중심부에 있는 해골 석상의 손에 올려놓았다.
순간, 평범한 인공물이었던 해골 석상의 눈가가 푸르게 빛나며 그 빛을 폭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의 일대가 푸른빛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