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나 혼자 10만 대군 052화
15장 사기안(4)
아마테라스의 길드장이자 SS급 헌터 ‘아만 아야토’의 능력은 바로 상대방의 오감을 강탈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오감. 시각부터 시작해서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아야토의 능력은 그를 SS급 헌터로, 그리고 아마테라스의 길드장으로 만들어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었다.
그의 능력은 괴수나 몬스터, 심지어는 같은 헌터를 상대할 때도 굉장한 효용성을 발휘했으니까.
비록 상대방의 몸에 자신의 몸 일부가 닿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상대방의 오감을 빼앗는 것으로 고작 그 정도의 조건은 그리 큰 패널티가 아니었다.
단지 딱 한 번.
아만 아야토가 손가락 끝이라도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닿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전투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 아만 아야토가 딱 한 번이라도 내게 닿을 수 있다면 말이다.
아마테라스의 S급 헌터가 달려드는 집약체를 막기 위해 몸을 뒤로 빼며 집약체에게 산성액을 뿌린다.
“뭣!?”
하지만 집약체는 S급 헌터의 산성액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헌터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도깨비 망방이로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서 보기만 해도 강한 위력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전격의 구를 뿜어내는 헌터가 그림자들에 온몸이 구속된 채 마구잡이로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새 정신을 회복하고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강철 헌터가 마치 최후의 일격이라도 하려는 듯 몸을 웅크리는 것을 집약체의 공격으로 다시 저 멀리 날려버린 뒤, 곧 내 몸에 한 번이라도 닿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아만 아야토를 그림자를 이용해 쳐낸다.
“크악!?”
“꺄아악!”
그와 동시에 실을 흩뿌리던 헌터가 집약체의 방망이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끝으로, 내게 달려들었던 S급 헌터들은 모두 차가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마테라스의 헌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몇몇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간이침대에 누워 어느새 기절해 있는 이로하와 나를 째려보고 있는 아만 아야토의 모습이 보였다.
“……네 녀석, 분명 그 하이브 사태에서 활약했던…… 그 한국의 헌터가 아닌가?”
“잘 알고 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S급 헌터들과 함께 나를 공격했던 아만 아야토. 분명 S급 헌터들과 함께 협공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손을 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신체 능력은 SS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약했으니까.
아만 아야토가 실제로 SS급 헌터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아만이 SS급 헌터로 인정받은 이유는 순전히 ‘능력’으로 인한 것 때문인지, 아만의 신체 능력은 어찌 보면 S급 헌터와 비슷했다.
한 마디로 지금의 아만은 SS급이지만 절대로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아만은 한동안 나를 노려보다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네가 하는 짓이 국제헌터법 위반행위라는 건 알고 있나?”
“뭐? 국제헌터법 위반?”
“그래, 이미 던전을 찾아내 공략이 결정된 던전을 무단으로 침입한 것도 문제지만, 게다가 너는 던전을 공략 중이던 아마테라스 길드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아만 아야토가 당당하다는 듯 지껄이는 것을 보며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 또라이 새끼가!”
“뭐…… 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에 눈을 휘둥그레 뜬 아만에게 나는 물었다.
“던전 공략? 지랄하고 있네. 네가 말하는 던전 공략은 길드원들이 여자 한 명 묶어놓고 미친놈처럼 실실 쪼개는 걸 말하는 거냐?”
“그건…….”
“왜? 조금 전처럼 나불거려 보지? 응? 뭐라고 했더라? 국제헌터법 위반행위? 거기에다가 죄 없는 길드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뭐, 어떻게 보면 맞지.”
확실히 아만 아야토가 말했던 대로 이미 던전 공략이 결정된 던전을 몰래 따라오는 건 불법이 맞았다.
거기다 외국인이 자국 내의 던전을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도 불법이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위반행위를 저지른 것보다…….”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켜 아까 전 촬영했던 영상을 틀었다.
-너를 죽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축복과도 같은 능력을 내가 가지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야.
-당연히 알려지겠지? 아마테라스 길드의 ‘후카이 이로하’는 ‘냉각의 아귀’를 공략하는 도중 불시의 공격을 맞아 사망……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그…… 그건!”
최대로 높인 스마트폰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아만의 얼굴이 순간 당황스럽게 바뀌었다.
그 이외에도 이 영상 속에는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서 있던 헌터들이 아만의 뜻에 따라 던전을 공략하지 않고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깔끔하게 찍혀 있었다.
“지금 네가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언론에 퍼지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이죽거리며 입을 열자 망연했던 아만의 얼굴이 이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하지만 잠시의 침묵이 지나가자, 이내 아만은 억지로 짓는다는 느낌이 강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겠지만 너도 무사하지는 못할 텐데?”
“뭐?”
내 물음에 아만 아야토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지만 너는 국제헌터법을 위반했다. 이 일이 알려졌다가는 나뿐만 아니라 너도 타격이 클 텐데?”
아만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말…….”
“그런데 말이야.”
나는 아만 아야토가 하는 말을 끊으며 그를 쳐다봤다.
“지금 네가 뭔가를 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국제헌터법을 어겼다는 증거는 너를 포함해 여기에 있는 헌터들이잖아?”
그때 퍼져 있던 그림자들이 던전 입구를 빼곡하게 막았고, 쓰러져 있는 헌터들의 머리 위에 도깨비방망이를 들이민다.
“네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너는 지금 나랑 협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거든?”
그림자의 붉은 안광이 전부 아만 아야토를 바라보았고, 아만 아야토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리며 주변을 바라본다.
만약 아만 아야토의 신체 능력이 고구려 길드의 이광천 급만 됐어도 아만을 찍어 누르지는 못했겠지만, 지금의 아만 아야토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아마 아만 아야토 본인도 그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림자가 움직이자 슬쩍 몸을 움츠렸다.
이윽고 아만 아야토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하는 게 뭐지?”
아주 심플한 물음.
그것이 내가 원했던 대답이었다.
“내가 묻는 말에 몇 개 정도 대답만 하면 돼. 만약 네가 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준다면!”
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스마트폰을 슬쩍 흔들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그리고 덤으로 내 스마트폰에 있는 영상을 지워 줄 수도 있고 말이야.”
뭐, 유감스럽게도 내가 한 말을 지킬 생각은 없지만.
아만은 내 스마트폰과 나를 번갈아 보며 고민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한참 동안의 고민 끝에, 곧 아만은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은 채 나를 바라봤다.
“……묻고 싶은 게 뭐야?”
빙고.
원하던 대답을 들은 나는 그때부터 입을 열었다.
그 뒤로, 나는 아만 아야토에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점들을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능력을 빼앗는 것’에 관해 묻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이 던전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런 정보를 누구에게서 얻었는지까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갔던 행동들에 대한 질문을 모두 마친 나는 결과적으로는 그럭저럭 이 바뀐 미래에 관해 조금이나마 연관점을 찾을 수 있었다.
* * *
신천 길드의 길드장 독문석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비록 아직 등급은 A급이었지만 그런데도 그는 신천 길드의 뒤에서 길드를 위해 꽤 많은 헌신을 한 남자였다.
“이천명.”
“네, 형님.”
이천명, 그는 독문석의 부름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독문석은 이내 이천명에게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돌 하나를 넘겨주었다.
“형님, 이건……?”
“잘 들어라. 지금부터 너는 그 보옥을 가지고 있다가 내가 명령을 하면, 너는 그 보옥을 고구려 길드의 지하에 가져다 놔라.”
“……고구려 길드의 지하…… 말입니까?”
독문석의 말에 붉은 보석을 받아든 이천명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분명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천명의 모습에, 독문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독문석은 이천명의 그런 점이 좋았다.
“그래. 만약 그 일에 성공하면!”
독문석은 붉은 보석을 받아 든 이천명을 보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우리 이천명이, 지금까지 흙밭에서 굴렀으니 슬슬 햇빛 좀 받아야 하지 않겠나?”
독문석의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진 이천명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길드장 실에서 이천명이 빠져나가고 난 뒤, 독문석은 주머니를 뒤져 이천명에게 주었던 것과는 다르게 생긴 보석을 꺼냈다.
이천명에게 주었던 붉은 보석이 둥그런 형태였다면, 지금 독문석이 쥐고 있는 보석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티가 나는 정육면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7일 뒤에, 이걸 부수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독문석은 붉은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주작홍 길드의 전령을 떠올렸다.
처음 한국에 자리를 잡고 나서부터 알게 모르게 동맹 관계가 되었던 주작홍 길드에서 이 일을 제안한 것은 불과 몇 달 전 이야기였다.
“하이브 사태라…….”
독문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주작홍에서 온 전령의 설명으로는 그저 이 붉은 보석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독문석은 북한에서 일어났던 그 하이브 사태를 작게나마 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주작홍에서 이런 물건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야 좋지.’
독문석은 피식 웃었다.
주작홍이 이 물건을 주며 독문석에게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주작홍 길드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그 정도야, 고구려 길드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 일이지.’
고구려 길드가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작홍 길드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게 신천에게는 훨씬 더 좋았으니까.
‘게다가…….’
게다가 만약 당장 고구려 길드가 무너진다고 하면 주작홍 길드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주작홍이 자리를 잡기 전에 신천 길드에서 선수를 쳐 미리 지분을 확보해 두면…….’
한국에서의 권력은 오롯이 신천 길드에 집중될 수 있었다.
무천 길드는 길드장이 현재 골골거리는 중이라 신천 길드에는 대항할 수 없었고, 고구려 길드만이 사사건건 신천 길드가 하는 일에 견제를 하며 일을 방해하는 중이었다.
“고구려 길드만 사라지면!”
‘그것으로 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어찌 보면 주작홍 길드가 북한에서 일어난 ‘하이브’사태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문석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의 크기, 그것이 중요했다.
당장 강남 한복판에 하이브 사태가 터지면 일어날 수 있는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괴수들과 몬스터들이 불러올 재앙은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고려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듯 독문석은 당장 미래에 자신이 얻게 될 권력을 상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다.”
아만은 그렇게 말하며 불안한 듯 나를 바라봤다.
아만 아야토에게 들었던 정보는 생각보다 꽤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규륜, 규륜이라…….”
중국의 초대형 길드인 주작홍, 그리고 그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규륜.
내게는 낯설지 않은 그 이름이, 아마테라스의 길드장 아만 아야토의 입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