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나 혼자 10만 대군 051화
15장 사기안(3)
S급 일반 던전 ‘냉각의 아귀’에 들어 온 직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누운 채로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이로하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몸은 무엇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후카이 이로하는 순간 눈을 떠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각을 집중했다.
“오. 깨어났나, 후카이.”
“……아만 길드장님?”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이내 그녀의 앞에서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이로하의 목소리에서 묘한 불안감과 다급함이 슬쩍 묻어나왔지만, 반대로 아만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침착하기만 했다.
“뭐, 아직 준비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이참에 네가 궁금해하는 것 정도 몇 가지는 풀어주도록 하지.”
아만의 평온한 목소리와 동시에 그 뒤에서 마치 무엇인가를 준비하듯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로하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끝까지 감고 있던 눈을 떴지만.
“어……?”
그녀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뭘 그렇게 놀라나? 설마 내가 멍청하게 너를 기절시키면서 시력을 빼앗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나?”
아마테라스의 길드장 ‘아만 아야토’가 가진 능력은 바로 상대의 오감을 빼앗는 ‘강탈’.
그는 그 능력으로 이미 이로하의 능력을 억제할 때처럼 그녀의 시각을 빼앗아 간 상태였다.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이로하의 공허한 눈동자가 아만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딱 한 가지 사실은 제대로 깨닫고 있었다.
지금 아만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별건 아니야. 아니, 오히려 어떻게 보면 죄책감에 짓눌리며 살았던 너를 구원해 주는 일을 하려는 중이지.”
키득키득.
아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로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아만의 웃음소리를 들었지만 곧 뒤이어 들려온 아만의 목소리에, 이로하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나는 네 눈을 빼앗을 생각이야. 정확히 말하면 네 눈에 있는 그 능력을.”
“뭐라구요……?”
“처음 네가 능력을 개화했을 때가 생각나는군. 1년 동안 같이 활동했던 헌터를 완전히 통구이로 만들어 버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을 감고 질질 짜고 있던 네 모습 말이야.”
“……!”
이로하의 질문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체 아만은 계속 입을 놀렸다.
“시스템의 축복을 받은 능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이 무섭다는 이유로 찔찔거리는 네 모습은 그야말로 역겹고 짜증 났어. 정말로 말이야.”
아만 아야토는 마치 그때를 생각하듯 눈을 감고 이야기하더니 이내 묶여 있는 이로하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 뒤로 계약 조건까지 바꾼 채 자신의 능력이 무섭다는 이유로 능력을 성장시키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자신의 능력에서 도피하는 것을 봤을 때는 네가 정말 병신같았지.”
알고 있나? 라고 중얼거리며 아만은 이로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능력을 얻었는지도 모른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너를 보며 내가 항상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나? 나는 항상 가지고 싶었어. 네가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내게 올 때마다, 나는 항상 네 ‘눈’을 가지고 싶었지.”
아만은 연속해서 말을 뱉어내며 유쾌한 듯 웃었다.
이로하는 생전 처음 보는 아만의 추악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니, 확실히 그녀는 아만의 추악한 모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쟁취해내고, 자신이 혹시라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을 부숴버리는 그 성격은 이미 아마테라스 길드에 있으면서 충분히 보았으니까.
그녀는 아만의 그런 추악한 면모를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추악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일 줄은 몰랐다.
“지금 당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려는 건지는 알고 있어요? 다른 헌터의 능력을 빼앗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적어도 5개월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뭐……?”
이로하의 물음과 동시에 순간 그녀의 귓가에 소름 끼치는 아만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해.”
“……!”
“너를 죽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축복과도 같은 능력을 내가 가지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야.”
이로하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 * *
‘미래가 어렴풋이 바뀌고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의정부에서 일어난 대형 던전부터 시작해, 마지막에 있었던 하이브 사태까지, 회귀 전의 사건은 똑같이 일어났지만 그 일어나는 과정이 달랐다.
물론 처음에는 가벼운 위화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그 위화감은 내 안에서 점점 의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괴수 남하 사건 때부터 갑작스레 적대관계가 된 주작홍, 그리고 회귀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규륜’이라는 이름.
이 때까지만 해도 내 행동이 나비효과처럼 커져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행동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는 일본에서도 내가 알던 것과는 묘하게 바뀌어 버린 상황을 보며, 나는 가지고 있던 이 의심이 묘한 확신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뭔가가 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무엇인가를 기점으로 내가 알던 미래가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
그다음 날 오후 1시 30분.
나는 ‘냉각의 아귀’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테라스’ 길드가 던전에 들어감에 따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촬영을 끝내고 몸을 빼는 언론 매체들을 확인한 뒤 성공적으로 던전 안에 들어온 나는, 마치 어느 게임에서 나온 것처럼 사방이 파란 얼음으로 가득 차 있는 배경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S급 던전 ‘냉각의 아귀’를 공략하는 아마테라스 길드.
어찌 보면 그저 공략하는 길드가 달라졌을 뿐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다.
왜냐하면 오로치 길드는 이 S급 던전인 ‘냉각의 아귀’를 클리어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일본의 3대 길드 중에서 제일 강한 힘을 가지게 되니까.
만약 오로치 길드가 이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아마테라스 길드가 이 던전을 클리어한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일본의 헌터업계는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었다.
오로치 길드는 일본 쪽에서는 그나마 ‘정도’에 가까운 길을 걷고 있었던 반면, 아마테라스 길드는 그냥 한국의 ‘신천’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정도로 그 속이 검은 길드였으니까.
그 사소하지만 엄청난 차이.
그 사소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나를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고, 나는 던전에 잠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런 내 의심은 마침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눈앞에는 후카이 이로하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간이침대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었고, 그 옆에서는 아마테라스 길드장인 ‘아만 아야토’가 이로하의 능력을 빼앗을 거라며 광기 젖은 목소리로 연설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만 아야토의 뒤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나는 혹시 몰라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영상이 촬영되기 시작하자마자 들리는 이로하의 목소리.
“이 일이 알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알려지겠지? 아마테라스 길드의 ‘후카이 이로하’는 ‘냉각의 아귀’를 공략하는 도중 불시의 공격을 받고 사망…….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당신은 미쳤어……!”
이로하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이야?
솔직히 나는 지금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아만 아야토가 말하고 있는, 이로하의 능력을 빼앗는다는 소리는 또 무슨 말이지?
회귀 전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남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나 아티팩트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니면 회귀 전에도 내가 듣지 못했던 뭔가가 있었을까? 만일 헌터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설령 허무맹랑한 괴담이라도 퍼졌어야 하는데, 회귀 전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회귀 전의 이로하는 ‘아마테라스’길드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항상 내게 말을 했었지만, 아마테라스 길드에게 이런 인체실험에 가까운 일을 당했다는 소리는 한 적이 없었다.
술만 먹으면 아마테라스를 욕하기 바쁜 이로하가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건, 곧 이 같은 상황은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는 게 된다.
오로치 길드가 클리어해야 할 ‘냉각의 아귀’에서 아마테레스 길드장인 아만 아야토가 후카이 이로하의 능력을 뺏기 위해 수작질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절대로 회귀 전에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한 마디로, 미래가 바뀌어 있었다.
“…….”
그리고 그 바뀐 미래에 대한 정보를 말해줄 수 있는 녀석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 의지에 따라, 무저갱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파란색의 지반을 갉아 먹는 것처럼 늘어난 영역 안에서 검은 현상이 일어나며 그 실체를 갖추었고, 내 의지에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일어난다.
“어? 뭐…… 뭐야!”
“……!?”
늘어나는 그림자들을 발견한 아마테라스 측 헌터들이 무엇인가를 준비하다 말고 급하게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동화!”
붉은 안광이 그림자들의 눈가에 자리를 잡으며, 내 의지에 따라 무기를 집어 든 헌터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시작된 전투.
S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뽑힌 인원이라 그런지 급작스러운 기습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아마테라스 길드원들을 보며 순간 감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끄악!”
맨 앞에서 카이트 쉴드를 들고 그림자의 공격을 막고 있던 헌터가 결국 내리치는 도깨비방망이들을 막지 못한 채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악! 악! 아파! 으악!”
“끄아아아악!”
그 뒤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헌터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헌터들은 분명히 있었다.
“이건 대체 뭐야!”
그림자들의 방망이를 피해 다니며 오히려 그림자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헌터들.
그 숫자는 총 6명.
아마도 아마테라스 소속의 S급 헌터들이겠지.
그들은 모두 제각각 특이한 능력을 구사하며 그림자들을 떼어놓았다.
어떤 이는 손에서 산성을 뿜어내 그림자를 녹였고, 또 어떤 이는 몸에서 실을 뽑아내 그림자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으며, 조금 전 소리를 지르던 헌터는 온몸이 철로 변해 그림자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다들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헌터들.
그 와중에 소리를 지르던 헌터가 이내 그림자들 사이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크게 소리쳤다.
“저 녀석! 저 녀석이다!”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소리를 치는 강철 헌터의 목소리에, 그림자를 상대하던 S급 헌터의 시선이 일순 내게 꽂혔다. 그리고 한순간, 그림자를 상대하던 S급 헌터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온몸에 강철을 두른 헌터는 그림자들을 그저 몸으로 되받아치며 내게 달려왔고, 한 헌터는 멀리서부터 내게 산성액을 쏘아 보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까 전 그림자를 묶었던 실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번쩍거리는 구체와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듯 꽂혀 내리는 창을 보며 나는 그림자를 끌어올리며 내 앞에 집약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모이며 만들어지는 집약체들.
내게 쏘아졌던 공격들은 끌어올린 그림자들에게 모조리 막혀 그 힘을 잃었고, 자신의 몸을 무기 삼아 달려오던 강철 헌터만이 그림자를 뚫고 내게 도달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다가와 주먹을 들어 올리는 강철 헌터의 앞에 집약된 그림자가 달려들지만, 그 헌터는 집약체를 무시한 채 내게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달려왔다.
“커……억!?”
쿵! 쿠궁!!
그는 곧 5명이 휘두른 도깨비 방망이질 한방에 그저 숨넘어가는 소리만을 지른 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참.”
저 멀리 날아가 축 처지는 S급 헌터를 보며 나도 탄식을 흘렸다.
혹시라도 얻을 정보가 있지 않을까 싶어 될 수 있으면 헌터들이 죽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며 싸우려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나는 일순 공격을 멈춘 채 쓰러진 헌터를 보고 있는 S급 헌터와 그 뒤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만을 보며 씩 웃었다.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