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나 혼자 10만 대군 049화
15장 사기안(1)
“일본따리 일본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흐흥 그런 게 있어요~ 은별이 언니는 알지?”
“응? ……어,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이은별을 보며 김서윤은 순간 묘한 표정으로 이은별을 바라봤다.
“어…… 뭐 모를 수도 있죠!”
뒤늦게 김서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이은별한테 말을 걸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하리남을 바라본다.
“……넌 뭐 하냐?”
“네! 형님!?”
내 물음에 무척이나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는 하리남. 순식간에 떠들썩하던 소리가 멈추고 일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아니, 왜 그렇게 크게 대답을……. 그보다 뭐하냐니까?”
“마음의 준비를…….”
자신의 안전띠를 꽉 잡고 있는 하리남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안 그래도 되거든?”
“제가…… 비행기는 또 처음이라서……!”
건장한 체격, 게다가 딱 봐도 별로 무서워하는 게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하리남은, 언밸런스 하게도 비행기를 타는 것에 무척이나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면 그냥 한국에서 쉬라니까…….”
“그래도 또 길드 전체가 가는 여행인데 또 제가 빠지기에는……!”
뭐, 네가 빠져봤자 그리 아쉬워할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아무튼 어떻게든 하리남은 이 휴가 아닌 휴가를 같이 가고 싶은 듯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하리남을 본 나는 이내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곧 비행기 이륙 시간이 다가온 것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3주.
이제 슬슬 10월 중순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며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
내가 S급 괴수 토벌에 성공한 뒤, 북한은 어느 정도 협회와 길드 그리고 각 국가 정부의 도움으로 서서히 정상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정부는 슬쩍슬쩍 북한에 비즈니스를 끼워 넣고 있고, 길드는 길드대로 사익을 위해 처음으로 공개된 북한의 노다지 던전을 이 잡듯이 털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북한이 어느 정도 회복하는 추세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뭐, 그 과정에서 나도 결국 S급 괴수의 마정석을 혼자 독식하기는 했지만.
이 S급 괴수의 마정석은 거의 3주간 꾸준히 그림자를 넣어주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소환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림자를 꽤 많이, 아니 그냥 많이 정도가 아니라 그냥 쏟아부어야 할 정도인지라, 좀 늦어지고 있긴 하지만 당장 S급 괴수를 소환하려는 건 아니었으니 상관은 없겠지.
그 때문에 나는 S급 마정석을 채우는 일을 잠시 뒤로 밀어두고 이다음 목표인 인재영입과 그 시기에 맞춰 일본에 나타나는 던전 ‘냉각의 아귀’에 볼일이 있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김서윤과 이은별, 하리남은 덤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사실 일 때문에 가는 거라 혼자 가는 게 편하긴 한데…….
슬쩍 김서윤을 바라봤다.
아주 신이 나는지 이은별에게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뭘 먹을지에 대해 열심히 입을 놀리고 있는 김서윤.
김서윤이 내가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혼자 조용히 갔다가 왔겠지만, 그녀는 내가 표를 예약하는 것을 봤고, 그 시점에서 내 인재영입 겸 던전 잠입을 위한 일본행은 갑작스레 길드 단체 여행으로 바뀌었다.
뭐, 길드원들의 멘탈을 케어해 준다는 명목하에 같이 가는 거로 생각하면 그리 불편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어차피 특정 시간대만 비어 있으면 상관없으니까.
슬슬 비행기에 엔진이 걸리기 시작하고, 옆에 있던 하리남이 끅! 하는 소리와 함께 팔걸이를 잡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비행기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김서윤은 처음 비행기를 타본다며 무척이나 신이 난 표정으로 비행기가 뜸과 동시에 느껴지는 부유감을 느끼며 재잘재잘 입을 열고 있었고, 또 느껴지는 부유감이 신기한 듯 김서윤과 같이 떠들고 있는 이은별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3시간 뒤, 우리는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 내려서 간단한 절차를 받은 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해 두었던 5성급 호텔로 이동했다.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호텔에 간 우리는 메인 카운터에 서 있는 일본인과 간단한 대화를 통해 방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니, 아저씨 일본어 왜 이렇게 잘해요?”
방으로 이동하던 도중 놀랐다는 듯 김서윤이 말했다.
“다 방법이 있지.”
내 말에 김서윤이 마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앞을 바라봤다.
물론 내가 현지인과 일본어로 대화할 정도로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언어가 전혀 다른 일본인이랑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건 내 오른팔에 채워져 있는 팔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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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에서 제작한 통역 팔찌]
-고대의 왕가에서 제작한 이 통역 팔찌는 너무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야만인들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이 팔찌를 착용 시 사용자는 모르는 언어에 대해서도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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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무덤에서 얻은 아티팩트.
물론 전투에서는 별 쓸모가 없고, 미래에는 언어를 통역하는 아티팩트를 한 과학자가 만들어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있는 게 아니니 내게는 상당히 필요한 아티팩트였다.
애초에 나는 한국어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학교 다닐 때 외국어 영역만 7~8등급을 왔다 갔다 했으면 말 다한 거지.
“와! 진짜 오졌다!”
엄청나게 넓은 방을 보며 김서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예약해 놓은 방은 총 두 개로 김서윤과 이은별이 쓸 방과 나와 하리남이 쓸 방을 따로 잡았는데, 김서윤은 내가 잡아 놓은 방에 따라 들어와 이미 침대에 다이빙하고 있었다.
“와! 언니 이리 와봐! 빨리 누워봐! 이게 침대야!? 거의 구름 수준인데!”
그렇게 되지도 않는 비유를 시작하는 김서윤.
“진짜 5성급은 다르구나…….”
잘 꾸며진 호텔을 보며 감탄하는 이은별.
그리고 그 옆에는 아직도 비행기의 후유증으로 안색이 질려 있는 하리남이 보였다.
“우선 도착했으니까 빨리빨리 짐만 두고 내려가서 밥 먹자!”
“나는 빠진다.”
“아.”
내 말에 갑자기 정색하며 입을 여는 김서윤.
“내가 말했지? 할 일 있다고.”
“아니, 아저씨! 우리 아직 첫날이거든요? 지금 시간도 12시밖에 안 됐는데, 점심 먹고 일을 할 수도 있는 건데, 꼭 그렇게 바쁜 척을 해야 해요?”
김서윤이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밥 먹으러 가요! 함께 밥 한번 먹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왠지 그냥 가버리면 일본에 있는 기간 동안 내내 찡찡거릴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돌았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가자 그럼.”
뭐, 아직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호텔 방에 짐만을 둔 채로 나와 김서윤이 가보고 싶다던 장어 덮밥집에 갔다.
……뭐 돈이야 넘쳐나지만 그래도 왠지 그 장어 덮밥은 비쌌다.
* * *
일본의 수도 도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형 길드 ‘아마테라스’
“아만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현대적인 도쿄 한가운데에 언밸런스하게 서 있는 일본식 고성. 그곳의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는 방.
길드장의 방이라기보다는 마치 옛 시대의 군주들이 쓰는 방처럼 되어 있는 그곳에서, 한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남자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마치 진짜 일본의 성주처럼 고풍스러운 일본식 기모노.
두 눈은 묘하게 위로 올라가 있어 언뜻 보기에는 야비하게 생긴 남자.
그는 바로 아마테라스의 길드장이자 SS급 헌터 ‘아만 아야토’였다.
아만은 눈앞에 무릎 꿇은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지?”
“별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런가?'
느긋해 보이는 표정으로 잠시 턱을 두드리던 아만. 그는 곧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준비는 확실하게 된 거겠지?“
“예, 이다음 들어갈 던전인 ‘냉각의 아귀’에서 그녀의 눈을 빼앗을 수 있을 겁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던 아마은 곧 5달 전,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왔던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규륜이라 했던가?’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주작홍 길드의 실세가 된 그 남자는 아만 아야토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정보와 하나의 아티팩트를 주었다.
S급 무기가 묻혀 있는 ‘S급 던전’의 출현 장소와 시간, 거기에 덤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능력이 아까워 데리고 있었던 헌터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는 아티팩트까지.
처음에는 그 정보를 의심했지만, 규륜이란 남자가 준 정보와 그 뒤 주작홍의 전령에게 전달받은 그 아티팩트의 시스템 설명은 아만 아야토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심스럽다.’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아만 아야토는 이 세상이 그렇게 쉽고, 또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는 법,
하지만 그 남자는 무척이나 익살스러운 얼굴로, 훗날 자신을 한 번만 도와달라는 말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정작 아만 본인의 약속을 받기도 전에.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 뒤에 무슨 꿍꿍이가 숨어 있는지 몰라도, 당장 규륜이라는 남자가 준 던전의 정보와 아티팩트의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게다가 그 아티팩트로 그녀의 눈만 빼앗을 수 있다면.
‘나는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아만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야, 그만 사…….”
“아니! 여기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게 많다니까요? 설마 돈이 후달리는 건가요, 아저씨?”
“그게 아니라 지금 이걸 다 먹겠다고 사는 게 말이 되냐?”
내 말에 김서윤은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봉지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저 이 정도는 충분히 먹거든요?”
“그럼 그 뒤에 있는 건?”
내가 슬쩍 턱짓하자 김서윤이 그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은별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봉투와 마찬가지로 하리남의 양손에 쥐어진 거대한 봉투가 있었다.
이은별과 하리남도 묘하게 질린 표정으로 김서윤을 보고 있었다.
“아니, 다 먹을 수…… 있나?”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파악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서윤은 일본에 오자마자 정말 날아다녔다.
애초에 한국에서도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활발한 성격을 여지없이 보여준 그녀였다.
분명 외부에 있을 때는 활동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새침하다는 느낌을 그동안 더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는 마치 눈을 만난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며 자신의 돈을 먹을 것에 투자하고 있었다.
장어 덮밥을 시작으로, 여기 가서 길거리 음식을 먹고 저기 가서 뭘 사고, 또 편의점에 들러 먹고 싶었던 빵을 사고, 또 저기 가서 타코야끼를 사고…….
그렇게 마치 걸신들린 것처럼 먹을 것만을 구매하는 김서윤.
“그렇지? 그러니까 그만 가자.”
“아! 저거 한 번만!”
“……저건 또 뭔데?”
“도쿄에서 유명한 랍스터 햄버거래요!”
“…….”
지금 세 명이 아니, 나까지 포함해서 4명이 들고 있는 봉지에는 1봉지를 빼고는 거의 다 먹을 것들로 채워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서윤은 눈앞의 랍스터 햄버거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너 진짜 장난 안 치고 그러다 돼지 된다.”
“맞아 서윤아. 너 그러다 진짜로…….”
나와 하리남의 말에 슬쩍 기분 상한 표정을 지은 김서윤은 그래도 자기가 조금 과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지 윽 하며 신음을 흘렸고,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오늘은?
설마 이 많은 걸 진짜 오늘 안에 야식이라는 이름으로 전부 먹어치울 생각일까.
무척이나 아쉽다는 표정으로 랍스터 햄버거를 보는 김서윤의 모습.
확실히 ‘탐식’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김서윤이 엄청나게 먹성이 좋아진 것 같기는 했다.
아니, 솔직히 저건 좋아진 정도를 넘어서서 배 안에 탐식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회귀 전의 김서윤은 아주 세상의 모든 일을 삐딱하게 보는 싹수없는 녀석이었는데, 과연 그때도 그녀의 뒤에 이런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까.
아무튼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서윤을 데리고 호텔로 되돌아온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한국에서 지금 시간대는 저녁이지만 일본은 슬슬 밤 문화가 시작되는 시각.
하지만 내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만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