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나 혼자 10만 대군 048화
14장 S급 괴수의 이변(2)
“안 가. 내가 왜?”
“……정말 안 가시겠다는 겁니까?”
규륜의 입꼬리가 순간 꿈틀거렸다.
“진룡, 저는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겁니다. 아직 감이 잘 안 잡히시는 것 같은데…….”
규륜이 그렇게 말하자, 진룡이라 불린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규륜을 바라봤다.
2m는 되어 보일 듯한 장신에 누가 보더라도 떡 벌어진 체구, 온몸에는 단련된 근육이 자리 잡고 있고, 굵고 진한 눈썹 밑에 있는 큰 눈은 마치 맹수의 눈처럼 날카롭고 사나워 보였다.
주작홍 길드에 있는 2명의 SS급 헌터 중 한 명인 ‘광인’ 진룡. 그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한테 명령을?”
비아냥거리듯 입을 연 진룡은 이내 규륜의 앞으로 다가와 그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아가리만 나불거릴 줄 아는 새끼가 자기 위의 서열놀이 하는 새끼들 몇 명 조졌다고, 요즘 아주 제 세상이라고 날뛰는데…….”
진룡이 책상의 끄트머리를 붙잡자 책상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두부처럼 바스러졌다.
진룡은 앞에 앉아 있는 규륜의 눈앞에 바스러진 나뭇조각들을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 알량한 서열 놀이로 위에 올라선 것으로 나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키득키득.
진룡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규륜은 아무런 말도 없이 진룡을 바라보았다.
그런 규륜을 보며, 진룡은 씩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난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은 안 들어. 알았어? 오늘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 말을 하는 건 말이야.”
진룡은 그렇게 말하곤 책상에서 떨어진 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깝치면서 내게 명령질을 했다간 네 녀석의 머리가 먼저 땅에 굴러떨어져 있을 거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 말과 동시에 진룡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나를 움직이고 싶으면, 그것에 맞는 대가를 가져와.”
진룡이 밖으로 빠져나감과 동시에 방안을 채우는 침묵.
“진룡 이 새끼…….”
째진 눈과 입이 한순간 무섭게 찡그려지며 규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규륜은 조금 전 자신에게 비아냥거린 진룡의 얼굴이 생각났다.
SS급 헌터 ‘광인’ 진룡. 주작홍 길드가 만들어질 때부터 장영의 밑에 있었던 그 남자는 옛부터 말이 많았던 헌터였다.
가벼운 폭행부터 시작해서 납치, 살인, 강간……. 그 남자의 이름 뒤에는 항상 그런 범죄기록이 따라다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공안에게 끌려간 적이 없었다.
그의 뒤에는 주작홍이 버티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힘이 있었으니까.
규륜도 그의 인성이 개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얼마 전 숙청되었던 주작홍의 2인자 ‘차통’의 명령은 어느 정도 군말 없이 따랐으니까.
‘지금 이 따위로 행동하는 걸 보면…….’
아마 차통에게도 어느 정도 그 ‘대가’라는 것을 받은 듯했다.
[아무래도 네 작전은 실패인 것 같군.]
“알고 있으니 좀 닥치시겠습니까?”
규륜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게 처음으로 욕설을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내 내뱉어 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알고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좀 흥분했군요.”
[괜찮다. 하지만 이제 어쩔 거지? 내가 알려준 ‘미래’의 지식도 그 녀석이 있으면 쓸모가 없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최근 왠지 더 선명해진 목소리를 느끼며 규륜은 고민했다.
곧 무섭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을 손으로 지압하며 규륜은 입을 열었다.
“우선 진룡을 움직일 수 있는 ‘대가’를 찾아봐야죠.”
[그다음엔?]
“그다음이라…….”
규륜은 눈가를 문지르던 손으로 진룡이 으스러뜨리고 간 나뭇조각을 바닥으로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진룡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대가 이외에도 보상을 하나 줄 생각입니다.”
도포 안쪽에 있는 주머니에서 슬쩍 무엇인가를 꺼낸 규륜은 이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룡으로 청룡단을 무너뜨리려는 건가?]
“이 보상을 주고 난 다음에는, 그 정도의 대가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게 목소리에 대답한 규륜의 손에는 영롱한 빛이 나는 붉은 보석이 들려 있었다.
[그 녀석을 버릴 패로 사용했다가는 네 위에 있는 ‘장영’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몰래 해야죠.”
규륜은 보석을 자신의 품에 넣고 말했다.
어느새 무섭게 찡그려져 있던 규륜의 표정은 다시 이전처럼 평온해졌다.
“몰래 말입니다.”
규륜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 * *
S급 괴수는 재앙과도 같았다.
A급과 B급 괴수의 차이도 엄청난 편이지만, A급과 S급의 차이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차이가 심했다.
우선 A급 괴수보다 기본적으로 2배 이상으로 큰 체구, 거기에 공격에만 특화된 A급 괴수와 달리 S급 괴수는 그 방어력이 무척이나 높았다.
시스템이 책정한 S급 헌터가 아니라면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방어력도 무섭지만, 그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공격력은 어째서 헌터들이 S급 괴수를 재앙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런 괴수가 북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한 위치와는 다른 곳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S급 괴수를 막기 위해 은수랑을 타고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S급 괴수가 이변을 뚫고 나오는 시간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이미 몸이 대부분 빠져나온 S급 괴수 ‘갈리티안’을 보며 나는 침음을 흘렸다.
분명 내가 충분히 혼자 토벌할 수 있는 S급 괴수가 맞다.
문제는 그 S급 괴수가 내가 있는 곳이 아닌 하리남과 그 헌터들이 있는 곳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우어어어어어!”
묵직하고 굵은 음성이 산 일대를 울리며 갈리티안이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길고 굵은 손이 무엇인가를 내려치기 위해 올라가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공격을 막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망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갈리티안의 거대한 손이 헌터들이 있는 곳을 내리친다.
엄청난 체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파괴력이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지상을 강타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지반이 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지반이 무너지는 것을 버티지 못해 이리저리 쓰러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
나는 하얀빛을 봤다.
어두운 밤 중, 퍼지는 하얀빛.
내가 달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빛은 계속해서 밝게 빛나고 있었고,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그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미친……. 이렇게 빨리?”
그 하얀빛의 중앙에는 무척이나 힘든 표정으로 하얀빛을 지탱하듯 받치고 서 있는 하리남의 모습이 보였다.
능력 개화.
마침내 하리남의 ‘절대 방어’가 개화했다.
“허!”
정말 위기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능력을 개화해 S급 괴수의 공격을 막는 하리남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헛웃음을 지으며 능력을 사용했다.
이윽고 그림자들이 뭉치기 시작하며 거대한 거인이 만들어진다.
거인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S급 괴수의 손을 밀쳐내고, 내 영역에서 올라온 그림자들이 다시 새로운 거인을 만들어 낸다.
괴수의 손이 치워지자마자 빛의 장막이 사라지며 곧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하리남.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난 뒤, 나는 망설임 없이 스킬명을 외쳤다.
“동화!”
어두운 그림자 거인에게 붉은 안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 * *
-집가고싶다: 왘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대체 머임? 무엇인 일어난 것임?
-야만전사인거시에요: 갓우현 S급 괴수를 혼자 잡아버리네? 이거 실화임?
-잉겡강걍영: 야 솔직히, 이건 좀 너무 주작티 나지 않냐? 솔직히 김우현이 물량빨 스텐스라서 다 대 일 싸움에 강하다는 건 인정하는데, 이건 솔직히 주작티 오져 버렸다.
└불타는선비: 이 새끼는 개빡대가리네. 어떻게 여기서 주작을 하냐 빠가새끼야 ㅋㅋㅋㅋ
└스피드웨충: 설명하지! 저건 4년 전, 유럽 이페리아에서 처음 나타난 S급 괴수 ‘갈리티안’이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에서 8번 출현했고, S급 괴수가 가지고 있는 마력을 육체 강화로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S급 괴수 중에서는 하위권이지만 실제로는 S급 헌터가 최소 5명은 있어야 비벼볼 만하지! 그리고…….[더보기]
-신의눈: 야, 그보다 김우현이 뽑아간 헌터 또 능력 개화한 거 도대체 능력이 뭐냐? 왜 이렇게 별 간지가 없어 보이냐, 이은별 때 간지 그냥 ㅗㅜㅑ 수준이었는데,
└정신해정신: 이분 최소…… 헌터업계 1년도 안 되신 분이죠? D급 헌터가 능력 개화로 S급 괴수 ‘갈리티안’ 공격 막아버린 게 얼마나 쩌는 건지를 몰라버리죠? 거의 빠가죠?
└방구석김씨: 진짜 그건 그렇고 김우현 진짜 뭐 있는 거 아니냐? 쟤 미래 갔다 옴? 무슨 애들 뽑으면 뽑을 때마다 복권이냐? 이쯤 되면 ㄹㅇ 김우현이 픽한 헌터들은 거의 믿뽑이네.
└하악하악: 어차피 김우현이 픽하면 100이면 100 전부 김우현이 가져가버리자너~ 아무런 의도 없는 것이자너~
S급 괴수를 토벌하는 데 성공하고 남한으로 돌아온 지 4일째.
‘S급 괴수 토벌’과 하리남의 ‘능력 개화’는 식어버린 언론 매체를 타오르게 하는 데 다시 사용되고 있었다.
내 노트북에 켜져 있는 영상에는 S급 괴수인 ‘갈리티안’이 그림자 거인과 옛날 특촬물의 괴수 대전을 하듯 싸우고 있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특촬물에서는 빠지지 않는 다구리를 실행 중인 거인들.
5구의 그림자 거인이 길라티안을 한곳에 몰아넣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괴수가 다른 한 거인을 공격하려 하면 뒤에 있는 거인이 뒤통수를 때리고, 몸을 돌려 자신을 때린 거인을 공격하려 하면, 또 다른 쪽에 있는 그림자 거인들이 연속해서 괴수에게 공격을 가한다.
거의 40분가량의 S급 괴수 구타 영상.
하지만 그런 구타 영상이라도 거인과 괴수의 체구가 체구인 만큼 찍힌 영상에서는 그림자 거인이 괴수를 구타할 때마다 엄청난 박력이 있었다.
아마도 협회 헌터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 구타 영상을 보고 있을 때, 2층의 문이 열리며 하리남이 들어왔다.
“아, 형님 계셨어요?“
“좀 늦었네?“
지금 시간은 오후 7시.
김서윤은 오늘 중요한 볼일이 있다며 일찍 가버렸고, 이은별도 마찬가지로 퇴근했다.
“아, 혼자서 능력 연습 겸해서 던전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좀 늦었네요.”
최근 하리남은 능력을 개화한 뒤로 더는 헌터 협회에 가지 않고 김서윤과 마찬가지로 혼자 던전을 돌아다니게 됐다.
뭐, 어찌 보면 솔로로 던전을 도는 것은 김서윤보다도 안정성이 높다 보니 전혀 걱정은 안 되지만.
“그래도 조심해. 네 능력도 이은별과 비슷하게 마력이 중요하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리남.
하리남의 능력인 ‘절대 방어’는 하리남의 마력을 소모해 발동되는지라, 최근에는 하리남도 이은별과 마찬가지로 던전에 가지 않을 때는 마력을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이후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먼저 퇴근하겠다는 하리남을 배웅하고 나는 북한에 오자마자 휴게실 캐비넷에 고이 모셔둔 S급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한 손으로 들기에는 제법 큰 S급 마정석.
아직 그림자를 채워 넣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크기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