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나 혼자 10만 대군 043화
12장 하이브(4)
괴수와 몬스터들이 한데 모여 달려든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
산 너머 언덕처럼 보이는 괴수의 행진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고, 또 거대했다.
마치 해일을 눈앞에 둔 사람의 느낌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많은 괴수와 몬스터들.
그 위압적인 ‘숫자의 폭력.’
하나 이쪽도 숫자라면 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심연이라고 표현하기에 알맞은, 빛마저 흡수해 버릴 것 같은 어두운 ‘영역’에서 그림자들이 수없이 빠져나온다.
그저 어두운 형상이 형체가 되고, 그것이 다듬어져 사람의 형상을 갖춘다.
그리고 그런 형상들 사이로 진득할 정도로 농염해 보이는 그림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득한 어둠이 모여 형상을 이룬다. 형상을 이룬 그 그림자가 이윽고 변형하기 시작하며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나간다.
기존의 그림자가 아닌, 전혀 다른 ‘것’을.
새벽녘에 비치는 빛마저도 흡수할 것 같은 진한 그림자에서 곧 완성된 형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앙상한 다리가 만들어진다.
그림자로 되어 있는 어두운 갈비뼈가 몸통에 자리한다.
뼈마디만 가득한 손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심연에 존재할 것 같은 어두운 해골이 만들어진다.
마치 심연과도 같이, 안쪽이 어둠으로 가득 찬 공허한 눈.
그와 동시에 대기에 떠돌아다니던 검은 오오라가 남김없이 해골의 형상을 갖춘 그림자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흡수하는 모습.
어두운 오오라가 해골의 온몸에 흡수되어, 앙상한 해골을 치장하기 시작한다.
앙상한 뼈마디 위에는 칠흑과도 같은 로브를, 뼈마디밖에 없는 앙상한 손뼈에는 그림자로 창조된 검은 스태프를 쥔다.
그 스태프 끝에 있는 검은 구슬이, 마치 불행을 암시하듯 사방으로 일렁거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둠으로 가득히 채워진 두 눈에, 보라빛 마력이 일렁인다.
그렇게, ‘사령 술사의 밤’의 보스였던 ‘리치’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끄에에에엑! 그어어! 그어어억!]
그리고 리치가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그의 충복인 망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언데드’들이 삽시간에 늘어난다.
그림자의 숫자도, 언데드의 숫자와 비례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었던 공간에 그림자들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좀비와 스켈레톤이 땅을 뚫고 올라와 다가오고 있는 적을 마주한다. 구울과 본 스켈레톤이 리치의 손아귀에서 소환되어 몰려오는 괴수들을 바라본다.
리치가 스태프를 휘두름에 따라 소환된 마법진 안에서 걸어 나오는 목 없는 기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빼 들고 어느새 두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괴수에게 겨눈다.
늘어난다.
계속해서 늘어난다. 내 형상을 갖춘 그림자가.
땅에서 빠져나온 스켈레톤이, 구울이, 듀라한이, 본 스켈레톤이, 좀비가 삽시간에 새벽녘으로 빛나는 이 지역을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히 채운다.
“동화!”
그리고 이어진 내 목소리에, 언데드 사이사이에 껴 있던 내 그림자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난다.
붉은 안광이 자리하고, 왼쪽 이마에는 뿔이 생겨난다.
그리고 괴수들이 바로 눈앞에 다다랐을 때.
“시작해 볼까.”
내 의지에 따라 언데드와 그림자가 망설임 없이 돌격해오는 괴수들에게 뛰어들며, 괴수와 그림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말…… 이 돼?”
고구려 길드의 B급 헌터 이연화. 그녀는 방어선의 뒤에서 중얼거리는 협회 헌터의 말을 들으며 눈앞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림자와 괴수의 전투.
끊임없이 몰려오는 괴수와 몬스터들로 인해 방어선의 밖은 이미 전쟁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몬스터들의 사이사이로 그림자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이 활보하며 몬스터들에게 죽음을 전하고, 덩치가 큰 괴수들이 사람의 형상을 한 그림자에게 무참히 학살당한다.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을 앞세우고 전진하던 괴수들이 그보다 더한 숫자의 폭력에 밀려나고 있었다.
괴수들과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간다.
괴수의 날카로운 발톱에 맞아 튕겨 나가는 언데드들과 그림자들이 보인다.
반대로 목이 없는 기사의 칼에 무참히 학살당하는 몬스터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렇게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처음 전투에 돌입할 때는 괴수와 몬스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림자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일대를 시커멓게 변하게 할 정도로 많은 그림자.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는 그림자는 쉼 없이 스태프를 휘두르며 새로운 그림자 언데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순간,
-크에에에에엑!
“A급 괴수……. 저게 대체 몇 마리야?!”
헌터 한 명이 소름 끼치는 괴성을 들으며 경악했다.
눈앞에 몰려오던 괴수들의 덩치와는 전혀 다른 크기를 가진 A급 괴수 8체가, 아군이나 마찬가지인 다른 몬스터와 괴수들까지 짓밟으며 통로 안으로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괴수들이 밀고 들어오자 검은 그림자들이 응축하듯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A급 괴수가 그림자들의 앞에 들어설 때쯤 A급 괴수보다도 거대한 거인이 발톱을 쳐든 A급 괴수의 머리를 그대로 찍어 내렸다.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고성!
헌터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 시선은 계속해서 거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거인에게 제압당한 괴수가 발버둥 치고, 그 뒤에 나머지 A급 괴수들이 거인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 순간!
“어……?”
푸른 달이 떠올랐다.
분명 점점 해가 떠오르며 주변이 밝아오고 있는 아침임에도,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선명한 푸른빛을 띤 푸른 달이 떠오른다.
“이 능력, 그…… 그거다!”
헌터들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연화는 자신의 귀를 막으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푸른 달을 바라보았다.
그때 신비한 빛을 뿌리는 푸른 달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진다.
유성, 아니, 단순히 하나의 유성이 아니라 한순간 태양 빛을 가릴 정도로 수많은 유성우가 거인에게 다가가고 있는 A급 괴수들에게 꽂힌다.
쾅! 콰강! 쾅 꽝!!
마치 미사일이 수십 발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울림과 동시에 흙먼지가 일순간 통로를 뒤덮었다.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가 사라졌을 때, 통로를 향해 몰려오고 있던 괴수들도 마치 이 세상에서 지워진 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남은 괴수들은 통로를 향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며 그림자와의 전쟁을 지속한다.
그 와중에 이연화는 수많은 그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김우현을 바라보았다.
왼쪽 이마에 있는 거대한 뿔. 그 주변을 호위하듯 돌고 있는 검과 방망이.
이연화는 그림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김우현의 모습이 마치 아주 오래전 읽었던 동화에서 나오는 ‘영웅’처럼 보였다.
방어선 안에서 김우현을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
그곳에서 김서윤은 힘없이 쓰러진 이은별을 방어선 안쪽에 옮기고서 입을 열었다.
“은별 언니, 괜찮아요?”
김서윤이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입을 열자 이은별의 파리한 입술을 움직였다.
마력 부족으로 인한 탈진 현상.
“걱정…… 마. 마력 부족 현상이니까…….”
“그러니까, 뭐 그렇게 있는 대로 다 때려 박아요?! 전에 이야기했을 때는 이제 어느 정도 컨트롤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야 되기는 하지만…… 통로에 있는 괴수를 전부 쓸어버리려면 그 정도는 해야 했어.”
김서윤은 그런 이은별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고, 거의 반 기절 상태인 이은별을 안고 김우현의 말대로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방어선을 따라 중앙으로 움직이자 김서윤은 생각보다 빠르게 헌터들을 찾을 수 있었다.
협회 측의 헌터와 길드 측의 헌터들. 그들은 김서윤과 이은별이 도착한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자와 괴수가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는 전쟁,
김서윤은 이내 뒤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협회 측 인원에게 부탁해 이은별을 긴급 병실로 인도하고 난 뒤 몸을 돌렸다.
“……저게 뭐야!?”
“무슨…….”
“저게 진짜…… 뭐야?”
그때 그녀의 뒤에서 들리는 충격적인 경악성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김서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아저씨.”
김서윤은 허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방어선 너머에 있는 김우현의 앞에 밀집된 형상이 새롭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형상이 밀집되며 형체를 만들어가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바로 조금 전 김우현이 만들어 낸 거인에게 죽임을 당했던 A급 괴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림자로 다시 태어난 형상은 이내 곧바로 몸을 움직여 눈앞에 있는 괴수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고, 온몸을 무기로 사용해 괴수를 죽이는 그 ‘그림자 괴수’를 보며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뭔가 허탈하고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저거, 솔직히 너무 사기 아니야?”
김서윤의 말과 동시에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허탈한 웃음이, 괴수들의 고성과 함께 헌터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 * *
바로 그 시각, 중국 주작홍 길드의 본건물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본사 건물 중간층에 있는 회의실에는 수많은 인원이 앉아 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규륜. 얼마 전 권력 암투에서 반대 세력을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주작홍’ 길드의 2인자로 올라선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장영’이 불참함에 따라 주작홍 길드의 상석에 앉아 입을 열었다.
“저희는 지원을 보내는 ‘척’만 합니다. 어차피 그 근처 국경에 있는 길드는 ‘청룡단’이니, 그들이 알아서 막을 테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청룡단이 이 일을 빌미로 입을 열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에게는 명분이 있으니까요. 베이징에서 단둥시까지의 거리는 헌터로서도 어쩔 수 없는 거리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반발하지 않고 눈치 빠르게 수긍하는 남자의 말에 규륜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사실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지.’
베이징에서 단둥시까지 헌터를 보내는 것은 조금만 빠르게 준비하기만 해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굳이 같은 급인 초대형 길드 ‘청룡단’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청룡단’의 전력 손실을 바라기 때문이다.
‘최대한 청룡단에 전력 공백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덤으로 한국도 좀 흔들리면 더 좋고.’
주작홍의 이인자 자리를 차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규륜은 결코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초기목표는 중국을 주작홍의 영향권 안에 들여놓는 것. 더 나아가 중국 옆에 붙어 있는 한국은 덤으로.
그 뒤에는 서서히 근접해 있는 국가들에까지 길드의 영향력을 내뻗는 것이었다.
“그럼, 이 사안 말고 다음 사안으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곧바로 다음 사안을 준비하는 이들을 보며 규륜은 자신의 거대한 야망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
* * *
북한의 평양.
그곳은 이미 인간의 문명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맥동하는 살덩어리에 먹힌 인간의 문명은 더는 그 형체를 온전히 가지고 있지 못했고,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어두운 평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했다.
사방으로 퍼져 있는 살덩어리. 그 사이로 보이는 괴수들과 몬스터는 이미 평양이 도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벙커에서 터졌던 ‘알’이 있던 곳에서는 아직도 쉴 새 없이 몬스터와 괴수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지하 벙커의 안쪽에는 굉장히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는 붉은빛의 보석이 살덩어리들 한가운데에 부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