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나 혼자 10만 대군 042화
12장 하이브(3)
“지금부터 간단하게 상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지금 북한의 평양에서 일어난 이 사태를 국제 협회에서는 ‘하이브 사태’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모종의 이유로 거대한 이변이 발생했고, 평양은 괴수에게 함락당한 상태고, 평양의 모습은 아까 사진에서 보셨듯 기괴하게 변했습니다.”
김우석 부장의 말에 장내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선 국제 협회에서는 평양에서 끊임없이 몬스터가 빠져나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양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파악, 조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김우석 부장의 말과 함께 조용해진 회의실 안.
그때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북한 측 헌터들은?”
“우선 정황상으로 봤을 때 아직 남아 있는 헌터들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평양에서 일이 터졌을 때 사망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뭔데?”
신천 길드의 길드장 독문석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자, 김우석은 곧바로 대답했다.
“저희는 국제 협회가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남하하는 괴수들과 몬스터들을 막아야 합니다.”
“……저 엄청난 수를 무슨 수로 막는다는 겁니까?”
반대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묻자 김우석 부장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국제 협회 측에서 A급 이상의 상위 헌터를 지원할 겁니다. 정부에서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군대를 투입 할 예정입니다.”
“군대?”
독문석,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입을 열었다.
“군대가 뭘 할 수 있는데? 어차피 B급 괴수 이상에서는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총이나 쏘다가 도망가겠지. 애초에 미사일이나 탱크를 써서 화기 지원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알잖아?”
독문석의 말에 조금 전까지 입을 열던 정보과 부장 김우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침음을 흘렸다.
아마 알고 있는 거겠지. 어차피 군대의 화력지원으로 괴수들을 막는 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물론 군대가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력과 화기를 무더기로 투입해도 그 정도의 효율이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
“게다가 국제 협회에서 친히 도와준다고? 그럼 SSS급 헌터라도 보내주나?”
독문석의 이어진 말에 김우석이 슬쩍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절래절레 흔들었다.
“아마 국제 협회 소속의 SSS급 헌터는 한국에 오지 않을 겁니다. 국제 협회에 소속된 3명의 SSS급 헌터 중 1명은 지금 유럽 측에서 제때 막지 못한 대형 던전을 막기 위해 투입됐습니다.”
“그럼 남은 2명은?”
“다른 한 명의 헌터는 사적인 일로, 그리고 나머지 남은 한 명의 헌터는 이 사태를 지원하기 위해 오지만 아마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로 갈 겁니다.”
“지랄 났군.”
고구려 길드의 이광천이 짧게 입을 열었다.
김우석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다른 이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아마 다들 이광천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중국에는 그 넓은 땅덩어리만큼 현재 보유하고 있는 SSS급 헌터가 2명이나 되었다.
러시아 같은 경우도, 비록 길드 소속이 아닌 정부 소속의 헌터지만 SSS급 헌터가 존재했다.
그런데 국제 협회에서 SSS급이 한 명도 없는 한국에 지원을 오는 게 아니라, 러시아로 지원하러 간다?
“이런 ×발.”
최문석이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뒤지라는 거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조금 전 강당에서 보았던, 상공에서 촬영한 괴수의 모습은 그 누가 보더라도 말도 안 될 정도의 숫자였으니까.
이건 A급 괴수 남하 사건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그때는 막을 수 있는 숫자를 막았던 것이라면, 지금 몰려오고 있는 괴수들은 지금 이 상태로 막으러 가는 순간 이익이고 뭐고 목숨이 먼저 달아날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
헌터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최악인 일도 없었다.
만약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참가하지 않고 외국으로 튀어버린다면 당장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국제 협회에 낙인이 찍혀 그 뒤에는 헌터로서 정식으로 활동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
뭐, 애초에 대형 길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땅에서 일궈놓은 것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겠지만, 중형 길드와 소형 길드는 또 모를 일이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장내에 먹먹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때가 돼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만약 저기 내려오고 있는 괴수를 막는다고 하면, 어느 지점에서 막을 생각입니까?”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우석이 회의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화면을 조작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우선, 설명하기 전 저희에게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괴수들이 이전 남하 사건처럼 사방으로 퍼져서 오는 게 아니라 한곳으로 몰려온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저희가 괴수를 막을 곳은 바로 이곳, 바로 양측이 산으로 막힌 곳입니다. 어차피 이곳도 거의 평원과 다를 바 없는 넓이긴 하지만…….”
김우석은 그 뒤로 계속 설명을 해나갔다.
넓은 평원에서 괴수들을 막는 것이 아닌, 산을 끼고 내려오는 괴수를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좁은 지형에서 최대한 적은 수의 괴수를 상대할 수 있도록 방어선을 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조금이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남하하고 있는 괴수들이 찍힌 사진을 분석해 봤을 때, 그 비율 의 70% 정도는 괴수가 아닌 몬스터이고, A급 괴수는 그 비율로 따졌을 때 대충 60개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김우석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말꼬리를 흐렸다.
A급 괴수만 60개체.
그 숫자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김우석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작전이 하나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작전…… 이요?”
내 말에 순간 회의장 안에 있는 시선들이 일제히 모였다.
* * *
그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는 새벽 5시.
아무것도 없는 평원을 바라보고 있던 고구려의 길드장 ‘이광천’이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새끼로군.”
하루 전, 이광천은 김우현이 말했던 작전을 듣고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작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작전.
그것은 바로 지형적 특성으로 괴수를 두 갈래로 나누는 곳 중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길드가 맡겠다고 김우현이 말했기 때문이다.
‘개소리.’
개소리였다.
딱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많은 괴수를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SS급에 이른 자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무척이나 당당하게 하겠다고 한 김우현의 얼굴이 생각나자 이광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우현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독문석의 경우는 노골적인 조롱을 했고, 그와 친해 보이는 협회의 나부랭이도 그를 말렸다.
하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 그는 혼자서 그 길목으로 향했다.
자신의 길드원 두 명과 협회 측의 길드원, 그리고 혹시 몰라 각 길드에서 전령으로 취급할 정도의 전투력을 지닌 길드원들 몇을 데리고서.
‘그 능력이 특이하긴 하지.’
자신과 똑같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 그림자로 하여금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으로 몬스터와 괴수를 때려눕히는, 기존의 헌터들과는 전혀 다른 사냥 스타일.
일 대 일보다는 다 대 일에 특화된 능력.,
‘……도대체 뭘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비웃던 이광천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과연 허황된 자만심에서 비롯된 오만일까.
아니면 정말 자신의 능력을 믿기에 자신감에서 나왔던 행동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광천에게는 상관없었다.
아무튼 그 어리석은 작전 덕분에 고구려 길드의 피해가 단 1%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이광천은 그것으로 좋았다.
* * *
“길드장님…….”
“아저씨……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김서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는 김서윤과 이은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은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다시 한번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지금부터 괴수가 몰려와 전투가 시작되면, 너희들은 뒤쪽에 있어. 그리고 내가 대형거인을 만들면, 은별이는 능력을 사용해 마구잡이로 폭격을 때려. 그리고 서윤이 너는 은별이가 마력을 다 쓴 것 같으면 곧바로 방어선 뒤쪽으로 이탈해. 그리고 협회 측 길드원이랑 합류하고 난 후에는……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 돼.”
그렇게 김서윤을 보며 말을 끝내자, 그 둘은 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돌렸다.
김서윤은 그 와중에도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몇 번 정도 달싹였지만, 이내 이은별을 데리고 방어선 뒤로 넘어갔다.
“저쪽만 잘 막아주면, 어떻게 될 것 같긴 한데.”
슬쩍 시선을 돌려 막혀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에도 하이브 사태를 처음 막는 곳은 이곳이었다. 그때는 실제로 이 하이브 사태에 참여한 게 아니어서 전선이 어떻게 밀렸는지까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짐작은 가능했다.
전력의 부재.
협회와 정부 측에서는 어차피 이 지형을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괴수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을 골랐다.
확실히 좋은 선택이다. 이 지형은 양쪽이 산에 가로막힌 좁은 지역이라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괴수를 막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으니까.
다만 회귀 전에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 괴수들을 상대했음에도, 누적되는 헌터들의 피로와 생각 이상으로 밀고 들어오는 괴수들 덕분에 너무나도 쉽게 방어선이 뚫리고 말았다.
아마 이번에는 3대 길드가 모두 오른편을 막고 있으니 단기간에 뚫릴 일은 없겠지만.
궁……. 궁…….
나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땅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이제 슬슬 괴수들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 괴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도 느껴지는 이 울림이, 정말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괴수와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체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능력을 끌어올린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 심연이 내 주변을 물들여 나가고, 그 심연 속에서 그림자들이 형상을 갖추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그림자들.
점점 많아지는 그림자들을 보며 나는 옆에 두었던 가방을 뒤져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얼마 전 의정부에서 열린 대형 던전 ‘사령술사의 밤’에서 그 보스를 죽이고 얻었던 리치의 마정석.
나는 그 마정석을 손에 쥐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림자 영체.”
내가 스킬명을 말함과 동시에, 심연 속에서 올라오고 있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내가 들고 있는 마정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켜둔 시스템창에서는 8,500이었던 그림자의 숫자가 엄청난 숫자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때마다 영역의 범위 안에 들여놓았던 미리 가져온 마정석 팩이 하나하나 내 영역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흡수하는 마정석 팩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그림자를 흡수하는 마정석을 보며,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림자’ 던전에서 집약 스킬과 함께 얻은 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 영체.’
이 스킬은 바로 ‘마정석’의 매개체를 그림자로 불러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특정한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매개체가 되는 마정석의 등급에 따라 그에 맞는 그림자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쿵…… 쿵…….
점점 울리는 진동이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마정석은 계속해서 그림자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시스템에서는 그림자의 숫자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땅이 울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가까워졌음을 느꼈을 때.
“……됐다!”
그림자를 흡수하던 마정석이 멈췄다.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 빛마저 흡수할 정도로 거무튀튀한 색을 내는 마정석이 내 손 안에 있었다.
시스템창에서 그림자들의 숫자가 다시금 올라가기 시작하고, 마정석이 흡수를 멈추자 그림자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연의 안쪽에서 빠져나오는 그림자들.
그런 그림자들 사이로, 저 멀리서부터 괴수와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몬스터와 괴수가 몰려오고 있었다.
“소환!”
내 말과 동시에 거무튀튀한 마정석이 어두운 오오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오오라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그 숫자를 늘려가고 있는 그림자들 사이사이로 뻗어 나가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태양 빛마저 흡수하고, 마정석에서 터진 오오라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주변을 잠식해 나간다.
어두운 오오라가 이 주변의 하늘을 덮어 나가는 것처럼 그 범위를 늘려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에에엑~~~!!
어둠 속에서, 망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