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나 혼자 10만 대군 041화
12장 하이브(2)
조선 인민군 과학소장 안창혁.
그에게는 한 가지 야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그의 야망을 진심으로 듣는 이들은 그 누구도 없었다.
처음 인민군 과학부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고, 세월이 흘러 공화국의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도, 그의 야망에 진심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심지어 이 공화국을 이끄는 수령 동무조차, 그저 말로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을 연호할 뿐, 그 눈빛과 기세는 이미 체념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창혁은 의무감을 느꼈다. 이 썩어버린 공화국을 내 손으로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그런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안창혁은 공화국을 강하게 할 ‘무기’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급에 맞는 마정석이 있어야 하지만, ‘인공 괴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 뒤를 이어서 중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북한에 출현한 그 ‘알’로 인해서.
하지만.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알이! 알의 부피가 점점 커집니다!”
“생체 반응 확인해!”
그렇게 ‘인공 괴수’를 만들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얻고 난 뒤에야 안창혁은 지금의 상황이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직, 까지지직!…… 쨍그랑!
“크…… 큰일 났다!”
“유, 유리관이 깨졌습니다! 알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조용하던 생체 반응률이 미친 듯이 상승합니다!! 100% 10,008%!? 기계가 오작동을…… 끄악!”
상황을 전파하던 과학자가 그만 순간적인 쇼크를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 기계 파편에 맞아 바닥을 구른다.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정보로 인해 들떠 있던 연구소는 어느새 이 지하 벙커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몸을 키우고 있는 알을 보며 혼비백산해 있었다.
그중 몇몇 연구원들은 도망치던 도중 지하 벙커의 파편에 맞아 그대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지하 벙커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안창혁은 이내 지하 벙커를 뚫고 지상으로 나아간 ‘알’의 한가운데가 마치 구멍처럼 쩍 벌려지는 장면을 보았다.
“하…… 하하하…….”
그 벌어진 틈에서 들끓고 있는, 분명 알 안에 있었을 때는 ‘유체’였던 괴수들이 전부 성체가 되어 그 알 속에서 제각각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안창혁은 깨달았다.
이제 거대한 야망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는 사소한 야망에서 나온 의무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 발견했을 때 없애 버렸어야 했는데.”
안창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그의 눈에는 1주일 전에 보이던 광기는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자리하는 건 오로지 망연한 좌절감과 눈앞에 있는 것들에 대한 공포뿐.
서서히, 알 안에 있던 괴수와 몬스터들의 눈이 뜨여지는 것을 보며 안창혁은 허탈하면서도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구나.”
그 말을 끝으로 안창혁은 더는 말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렇게 열린 ‘알’을 보고 서 있던 그의 몸은 이미 그가 다음 생각을 시작하기 전, 막 밖으로 나온 괴물들에게 뜯어 먹혔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알에서 괴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북한 측의 갑작스러운 연락 두절.
어제 점심부터 헌터 관련 뉴스로 떠들썩한 시점에 자그마한 배너도 차지하지 못한 그 몇 줄짜리 뉴스 기사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이브 사태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혹시 다른 일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늘 점심을 기점으로 올라온 북한의 연락 두절 뉴스와 국제 협회의 북한 관련 뉴스를 보았을 때, 내 의심은 확신이 되어갔다.
회귀 전의 기억과는 다르게 내 생각보다 1달 빨리 시작된 하이브 사태.
슬쩍 사물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미 사물함을 가득 채워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마정석이 모여 있었고, 꾸준히 하던 신체 단련도 무골의 특성을 받아 적정수준까지는 올라왔다.
한 마디로 하이브 사태를 대비한 준비는 이미 끝나 있는 상태.
“후…….”
회귀 전의 기억으로는 정확히 하이브 사태가 발생한 지 24시간, 국제 협회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북한의 인접 국가들에 그 사실을 전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듣고 있던 인접국들도 국제 협회에서 ‘능력자’를 이용해 투시한 북한의 모습을 보고 급하게 준비를 시작하는 게 2일째.
그리고 군대와 헌터들을 있는 대로 동원해서 북한과 마주하는 접경 지역에서 북에서 내려온 괴수 떼를 본격적으로 막아내기 시작하는 때가 3일째였다.
결국 러시아의 SSS급 능력자가 협회 측 텔레포트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평양에 있는 하이브의 핵을 부숨으로써 괴수들의 진격을 멈추게 한 것이 5일째.
뭐…… 회귀 전의 한국에서는 그 2일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몇 번이고 전선을 밀리고 밀리다가 겨우겨우 밀려오는 괴수를 막아냈다.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진짜로 개판이었다.
당장 하이브 사태가 시작되고 전선이 밀리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다들 암암리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심지어 헌터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숫자의 이탈자가 나왔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전력 차이 때문에.
물론 하이브 사태에 참가했던 헌터들 중에는 SS급 헌터가 두 명이나 되는 데다가 그 아래에 있는 S급 헌터, 그리고 국제 협회에서 지원을 나오는 SS급 헌터도 있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해 몰려오는 괴수들은 가끔가다 A급 괴수나 몬스터가 섞여 있을 뿐 대부분이 B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몇 차례나 전선을 밀렸던 이유는, 바로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한 명이 강하다고 한들, 그 한 명이 전체를 틀어막을 수는 없는 법.
아무리 SS급 헌터가 있어 봤자 싸움이 일어나는 전선 전체를 커버할 수가 없기에 반드시 어느 곳에서는 구멍이 생겨버리는 것이었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하이브 사태까지 도달하면서 보아왔던 거대한 사건들의 발생시간이 슬쩍슬쩍 뒤틀리는 걸 보며, 하이브 사태도 어쩌면 내가 알던 시간대와는 다르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동안 일어났던 다른 사건들은 딱히 시간대가 달라진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들은 아니라 그리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이 하이브 사태는 다르다.
평양에 존재하고 있는 하이브의 핵, 바로 그것을 파괴해야만 이 사태가 끝난다.
그리고 원래라면, 평양에 있는 ‘핵’을 파괴하는 것은 협회 측의 ‘텔레포터’능력을 갖추고 있는 헌터 한 명과 러시아에 있는 SSS급 헌터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하이브 사태가 일어나는 시간대가 바뀌었다는 것.
고작 1달 정도로? 라고 생각하면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고작 한 달의 차이로도 많은 것이 바뀐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처럼 이 하이브 사태가 5일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직접 끝내야 하나.”
가능할까?
원래라면 이번 하이브 사태에서 나는 그저 하이브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전선이 밀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웨이브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왜냐면 굳이 핵을 파괴하러 평양까지 들어가기에는 얻을 이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봐서는…….
“길드장님.”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고, 그때 김윤원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협회에서 국제협회원으로 길드장님한테 호출을 보냈습니다. 엄청 급해 보이던데.”
드디어 협회에서 헌터들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 *
여의도에 있는 한국 헌터 지부.
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오지 않아 간만에 보게 된 지부의 강당에서 나는 이곳저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호출을 받자마자 바로 왔는데도 불구하고 꽤 많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강형찬 부장이 멀리에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김우현 헌터.”
“네, 최근 바빠서 협회에는 들른 적이 없네요. 그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빠르게 끝내고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말에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강형찬 부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아마 이제 곧 알 수 있을 겁니다. 저희 쪽에서도 이 정보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에는 아마 김우현 헌터의 예상보다도 심각한 일일 겁니다.”
강형찬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지만, 잠시 후 협회 직원 중 한 명이 한쪽에 모여 있는 이들을 협회 지하에 있는 강당으로 안내했다.
강당에 있는 것은 단상 하나와 그저 하얀빛을 내는 프로젝터.
그 강당에 앉고 나서야 나는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구려 길드장 이광천에…… 신천 길드의 독문석, 저쪽에는 무천 길드의 부길드장이고.
그들 이외에도 한두 번 정도 TV나 회귀 전에 본 적이 있던 정부의 인물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무래도 이번 호출은 남하 사건 때와 달리 어느 정도 힘이 있는 헌터나 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 같았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강당의 단상 쪽에 한 사람이 나왔다.
남하 사건 때에서 본 적이 있는 남자. 그는 헌터협회 한국 지부의 정보부장 직책을 맡고 있는 ‘김우석’이었다.
그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 올려져 있는 마이크를 조절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는 점 다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김우석은 그 말을 끝으로 현재의 상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2일 전부터 갑작스레 끊기게 된 북한과의 연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국제 협회 측에서 능력자를 통해 입수한 북한의 상황까지.
-……우선 국제 협회 측에서 받은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우석은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무언가를 조작했고, 그와 동시에 빈 공백을 보이고 있던 프로젝터가 바뀌며 한 장의 사진을 출력했다.
“……저게 뭐야?”
“……?!”
처음 사진이 나왔을 때 묘한 반응이 강당을 휩쓸었지만, 김우석은 굳은 얼굴을 펴지 않은 채 곧바로 노트북을 조작해 상공에서 찍힌 사진을 점점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이 점점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그들은 처음에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고, 그다음에는 경악했다.
“저, 저게 무슨…….”
“미…… 친……?”
분명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개미 떼를 찍은 것과 비슷하게 보였던 사진은, 점점 확대해 갈수록 수많은 괴수들과 몬스터로 바뀌어갔다.
-지금 저 사진은 바로 8시간 전 평양 아래에 있는 송림시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웅성거리던 강당이 조용해졌다.
무거운 침묵, 그 속에서 김우석은 계속해서 프로젝터를 조작했다.
그때마다 바뀌는 사진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같았다.
그 사진 속에 찍혀 있는 것은 대부분이 ‘괴수’와 ‘몬스터’가 한데 어우러져 움직이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윽고 괴수가 각각 중국, 러시아, 한국 쪽으로 움직이는 분석 사진을 끝으로 김우석은 입을 열었다.
-북한에서 출현한 괴수와 몬스터들이 한국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