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나 혼자 10만 대군 040화
12장 하이브(1)
“……이로써 반대 세력의 숙청대상은 대부분 제거했습니다. 남은 이들도 아마 얼마 안 가 전부 제거될 겁니다.”
베이징에 위치한 초대형 길드 ‘주작홍’ 길드의 본사.
평범한 길드원들은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지하 10층의 집무실에 앉아 있던 규륜.
그는 눈앞의 남자가 하는 말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문제가 좀…….”
“문제……?”
기분 좋게 웃고 있던 규륜의 입이 살짝 굳어졌다. 그에 남자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물론 지금 진행하고 있는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일에서 나온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저번에 따로 지시하셨던 ‘그림자’ 던전에 간 헌터들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모두 사망이라고?”
“네, 우선 실제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아서…….”
규륜의 여우 같던 눈이 한순간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S급 헌터 3명이 당했다고?’
‘목소리’의 강요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전력 유출을 감수하고서 보낸 헌터들. 고작 한 명의 헌터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S급 헌터들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규륜은 순간 ‘목소리’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한 선택을 후회할 거라는 말.
왠지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아 규륜은 저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흔들고는 이내 침묵을 유지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 뒤, 규륜의 입이 열렸다.
“신천 길드에 연락해서 내게 통신을 보내라고 하세요.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규륜의 말에 남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린 뒤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규륜은 왠지 께름칙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집무실 의자에 기대앉았다.
목소리가 경고한 한국의 헌터를 제외하면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목소리’의 정보를 토대로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북한에서 진행하는 그 실험까지도, 모든 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목소리’가 말해준 ‘하이브 사태’ 덕분에 실험실 자체가 날아가 버리긴 하지만, 이미 실험으로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챙겨 두었다.
‘반대 세력 숙청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이 주작홍은 거의 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그때는…….”
규륜의 째진 눈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무엇인가를 노리듯 사이하게 빛났다.
* * *
“아저씨! 제 생일 준비해 주신 거예요?”
“뭐? 무슨 소리야?”
내 어리둥절한 대답에 김서윤이 히죽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이~ 저 다 봤는데? 그렇게 숨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키득키득 웃는 김서윤을 보며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그런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진짜 무슨 소리야?”
물약의 부작용이 끝난 지도 1주일째.
나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2일을 기준으로 잡아 하루는 길드 사무소 지하에 있는 훈련실에서 온종일 육체 단련을 한다.
그리고 다른 하루는 ‘그림자 영체’의 소재를 준비하기 위해 배정받은 던전을 클리어할 겸 몬스터를 토벌해 마정석을 모은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뭔가가 걸렸다.
“아, 설마…….”
나는 눈앞에서 아직도 키득거리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서윤을 바라봤다.
“너, 설마…… 휴게실 사물함에 모아둔 마정석 보고…….”
“후후후, 드디어 실토하네요. 아저씨! 물론 저도 보기는 봤지만 사실 누군가한테 말을 들었거든요!”
누구한테 말을 들었다고?
슬쩍 시선을 돌려 이 훈련장에 같이 있는 하리남과 이은별을 쳐다봤다.
하리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방패를 늘어뜨리며 김서윤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은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눈을 돌리는 이은별을 보니 아마 이 사건의 범인은 이은별인 듯했다.
눈앞에는 초롱초롱하다 못해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서윤이 보였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기뻐하는 모습.
뭐, 사실 내가 사물함에 모아 놓은 것을 보면 김서윤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 2주간 틈틈이 던전에서 몬스터를 토벌하며 사물함에 모아둔 마정석은 진짜 그 거대한 사물함을 꽉꽉 채울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그중에는 A급 괴수의 마정석 정도는 아니지만, A급 몬스터의 마정석은 있었다.
뭐, 아마 추론해 봤을 때 김서윤은 딱히 내가 마정석을 모을 이유가 없으니 자신의 생일과 멋대로 관련지어서 생각한 것 같은데…….
유감스럽지만, 나는 김서윤에게 진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그거 네 선물 아닌데?”
“에이, 장난치지 말고요!”
“진짠데?”
“……장난 아니구요?”
“응, 진짜.”
“진짜?”
내 말이 계속될수록 김서윤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럼 왜 모아놨는데요?”
“왜긴 왜야, 내 능력 보충용이지.”
물론 그림자 보충은 덤에 가깝고, 사실은 하이브 사태에 대비해 그림자 영체를 준비하기 위해 모아놓은 거지만,
내 말이 끝나자 30초 전만 해도 싱글벙글 웃고 있던 김서윤이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으…… 에이 씨! 이게 뭐야! 나는 선물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내 마음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굉장히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서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결국 그때부터 절권도를 배우러 가기 직전까지 내게 알듯 모를 듯한 생떼를 부린 김서윤은 결국 생일날 선물을 사준다는 내 말을 듣고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퇴장했다.
그렇게 김서윤이 훈련실을 떠나며 더는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김서윤을 제외한 3명은 이후에도 2시간 정도 단련을 한 뒤 밖으로 나왔고, 나는 김윤원이 퇴근한 1층 사무실에 앉아 괜히 노곤해지는 몸을 편한 의자에 기댔다.
“어우~ 피곤해.”
고작 움직이는 시간은 2주 정도였지만 그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몬스터 토벌과 신체 단련을 한계까지 하다 보니 최근에는 하루하루가 꽤 피곤했다.
그런데도 내가 신체 단련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하루가 몰라보게 강해지는 내 신체 때문이었다.
‘무골’이라는 재능이 새로 생겨서일까.
분명 회귀 이전에는 아무리 신체 단련을 해도 쉽게 향상되지 않았던 신체 능력이 지금에 와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만약 어제 3 정도를 할 수 있었다면, 그다음 날에는 5 정도를 할 수 있었고, 그다음 날에는 7 정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신체 능력.
물론 후반에 들어와서는 당연히 정체기가 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눈에 바로바로 보이는 신체 능력의 향상 덕분에 하루하루 보람이 있었다.
“다른 애들도 다 잘하고 있고.”
이은별 같은 경우는 아티팩트를 단 이후부터 마력을 늘리는 것에 꽤 진전이 있는지 최근 표정이 좋아졌다.
하리남 같은 경우는, 애초에 헌터로서의 경험이 부족해 이은별 때와 마찬가지로 협회 측에서 헌터 경험을 쌓게 하고, 시간을 나누어 훈련실에서 꾸준히 훈련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인 건 하리남의 경우엔 애초에 회귀 이전에도 만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과거에 대한 정보도 들어보지 못한 터라 어떤 식으로 각성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게 단점이었다.
……뭐 아마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하리남의 특성상 노력을 하지 않는 타입은 아니니 언젠가는 능력을 개화하겠지만.
그렇게 하리남을 넘어 마지막으로 요즘 절권도를 배운답시고 학원에 다니는 김서윤을 떠올렸다.
그녀는 최근 정말 절권도를 배우며 그 기술들을 연마해서 적절하게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써먹고 있는 듯했다.
가끔 유튜×를 볼 때면 떠도는 추천 영상 중에 김서윤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무술을 연습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돌고 있었다.
정작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댓글 대부분은 김서윤이 쓰는 기술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떨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일체의 자비심도 없이 기술 사용을 위한 샌드백으로 사용해 몬스터가 불쌍하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는 것 같지만.
“후.”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내가 모은 길드원들은 나름대로 길을 잡고 그대로 순항하며 각자의 힘을 점점 늘려나가고 있었다.
하리남이 언제 각성할지는 좀 고민이지만 그건 아마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왠지 슬슬 노곤해지는 듯한 몸을 일으켜 집으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북한의 수도 평양.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전등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은 평양의 외곽 쪽에 건설되어 있는 지하 벙커에서 지금 은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공 괴수’ 프로젝트.
이변이 아닌 인공적으로 괴수를 만들어 괴수를 전쟁에 사용할 수 있을까? 에서 착안한 이 실험은 처음에는 무척이나 지지부진했다.
하나 중국에 있는 초대형 길드 ‘주작홍’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이후 ‘인공 괴수’ 프로젝트를 거의 성공시킬 수 있었다.
조선 인민군 과학소장 ‘안창혁’은 지하 벙커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남자와 대면하고 있었다.
“인공 괴수 양산에는 성공했나?”
남자의 말에 안창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양산은 실패일세. 애초에 인공 괴수를 배양하고 상태가 온전한 A급 괴수의 마정석을 넣는다면 괴수를 만들 수는 있지만, ‘마정석’ 없이 A급 괴수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더군. 하지만.”
안창혁은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창문을 향해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저거 보이나?”
“……저거?”
안창혁의 말에 순간 고개를 돌렸던 남자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저건 뭐지?”
그곳에는 알이 있었다.
이 지하 벙커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알이, 거대한 유리관에 갇혀 있었다.
“알일세,”
“저 괴이한 것도 ‘주작홍’에서 넘겨받은 정보로 만들어 낸 건가?”
남자의 물음에 안창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저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세. 저건 이변으로 만들어진 생물체지.”
안창혁 박사의 말에 순간 남자의 눈이 찌푸려졌다.
“……이변이라고? 최근 북협 측에서는 이변을 잡았던 적이 없는데?”
“그래, 하지만 확실해. 저건 이변으로 만들어진 걸세. 그리고 놀랍게도 저 거대한 알 안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괴수가 잠들어 있지.”
“뭐……?”
이해를 못 했다는 듯 입을 여는 남자의 말에 안창혁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저것만 있으면 더는 그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주작홍 길드의 도움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된다네. 그들이 요청에 따라 아까운 인공 괴수를 날릴 필요도 없지.”
안창혁은 시험관 안에 있는 알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냐면 저 안에 있는 것들을 잘만 활용하면…… 인공 괴수를 포함해 ‘괴수’의 근간이 되는 마정석까지도 어쩌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
“……!!”
안창혁의 말에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뜬 남자. 하지만 남자는 곧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건 알이라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안에 들어 있는 게 전부 괴수라면…….”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지금 저 알 안에 있는 괴수들은 전부 ‘유체’일세 한마디로 말해서 전부 성장 중이지. 우리가 잘 조절만 한다면…….”
안창혁은 드러내지 않았던 광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괴수들은 우리 조선인민공화국이 가진 가장 강한 ‘무기’가 될걸세.”
그런 안창혁의 광기 어린 웃음에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 * *
그로부터 다시 1주일 후.
평소 자주 들락거리던 네이×의 메인 뉴스. 거기에서 제대로 된 작은 배너조차 차지하지 못해 다른 헌터업계의 뉴스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뉴스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 오후부터 시작해 북한 측과 갑작스러운 연락 두절? 상황 파악해야……]
“벌써……?”
눈앞에 뜬 기사를 보며 나는 그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