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나 혼자 10만 대군 035화
10장 ‘그림자’ 던전(3)
주작홍 길드 건물의 지하 10층.
깔끔하게 꾸며져 있는 사무실 안에는 보고서를 바라보고 있는 ‘규륜’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규륜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음성이라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이질적인, 기분 나쁜 목소리가.
하지만 그 음성에도 규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마 충분히 처리했을 겁니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들려오는 이질적인 목소리에 규륜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이 어째서 한국의 헌터를 그렇게 신경 쓰는지 모르겠군요. 지금 그 헌터를 죽이기 위해 출동한 S급 헌터만 3명이란 건 알고 있을 텐데요?”
[더 보냈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순 없습니다. 이미 처리하고 있는 일이 산더미인데, 고작 ‘그런 일’에 인력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규륜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고, 곧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너는 네가 한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규륜은 의자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4개월 전, 자신에게 불현듯 찾아온 의문의 목소리.
한참 주작홍 내부의 권력 다툼이 절정에 올라 신변에 위협이 생겼을 때쯤 들려온 그 목소리에 처음 규륜은 스스로가 정신계 능력에 당한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불현듯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권력 다툼에서 거의 밀려나 목숨이 위험했던 규륜을 구해주었다.
그것도 본인이 말하는 ‘미래의 기억’으로.
처음에는 그 목소리를 의심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내뱉은 미래의 정보를 토대로 규륜은 무척이나 쉽게 힘을 키워나갔고, 한순간 반대 세력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지금은 반대 세력들과 대등할 정도로 힘을 키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낭비야.”
규륜은 최근 ‘괴수 남하 사건’ 때부터 ‘목소리’가 집중하기 시작한 그 인물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의 헌터 그림자 왕 ‘김우현.’
목소리는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규륜은 목소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헌터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해결해야지.’
규륜은 눈앞의 보고서를 바라봤다.
아직 남아 있는 반대 세력의 숙청목록.
꽤 긴 명단에는 간혹 S급 헌터들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지만 규륜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그 강함에 맞는 자들을 보내서 처리하면 되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확실히 주작홍 길드의 절반은 내 손 안에 들어온다. 게다가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고 내 목숨을 노릴 놈들이야. 최대한 빠르게 쳐낸다.’
솔직히 규륜은 그 헌터에게 S급 헌터 3명을 붙인 것도 탐탁지 않았다.
아마 목소리의 강요가 없었다면 나머지 3명의 헌터도 전부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일에 투입했을 것이다.
‘아까워…….’
이런 중요한 때에 S급 헌터의 전력 유출은 뼈아팠다.
‘만약 주작홍 길드를 이 손에 쥐게 된다면 그 소국의 헌터를 죽이는 것쯤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규륜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쥐고 있던 명단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 * *
정적이 내려앉은 ‘그림자’ 던전.
복면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을 생각인지 당당하게 내 앞에 서 있었고, 그 주변을 그림자들이 에워싸듯 포위했다.
하나 복면인들은 눈앞의 그림자를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로울 뿐이었고, 이내 복면인 중 맞은편에 나와 있는 남자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랍군. 이 능력, 확실히 규륜이 말한 그 ‘김우현’이 맞는 것 같군.”
“……한국어?”
복면인에게서 나온 말은 어눌해서 제대로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한국어였다.
내가 그 말에 반응하자 복면인은 고개를 슬쩍 주억거리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선택지를 주지.”
“뭐?”
어눌한 어투로 말하는 복면인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든 말든 복면인은 자신의 팔을 들어 검지를 펼치고는 입을 열었다.
“저항하지 않고 별 고통 없이 깔끔하게 죽는다.”
복면인은 계속해서 중지를 올렸다.
“아니면 끝까지 발악하다가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이 돼서 고통받다가 죽는다.”
그림자에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친절하게 선택지까지 제시해 주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꼈다.
“너희 병신이냐?”
나도 모르게 나온 욕설에 반응한 건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던 그 복면인이었다.
“……네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우리는 전부 S급 헌터다. 네가 아무리 날뛴…….”
“어쩌라고?”
“뭐?”
“그래서 어쩌라고, 이 짱깨 새끼야.”
어떻게 짱깨라는 말은 알아들었는지, 줄곧 한국말을 구사하던 복면인의 뒤에서 키득거리고 있던 한 복면인과 그 옆의 왠지 몸이 굳어 있는 다른 복면인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너희들도 ‘주작홍’에서 보냈냐?”
순간 복면인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이 대충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그들이 입고 있는 복의는 괴수 남하 사건 때 나를 암살하러 왔던 복면인이 입고 있던 옷과 꽤 비슷했다. 애초에 복의라는 게 다 저렇게 생겼을 테지만.
순간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어차피 그건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요점은 이미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게 들켰다는 것이고, 아마‘주작홍’에서 보낸 암살자들이 손수 나를 죽이러 이 던전 안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뭐 그래도 암살자들이 이곳으로 온 것을 보면 내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아직 주작홍은 적어도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는 않았다는 거니까.
“야, 나도 마찬가지로 선택지를 두 개 줄게.”
나는 복면인과 마찬가지로 왼팔을 들어 중지를 올린 다음 입을 열었다.
“칼로 온몸이 벌집이 돼서 죽어볼래? 아니면~”
얼마 전 ‘도깨비의 밤’에서 얻었던 ‘도깨비방망이’를 꺼내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방망이로 뒤질 때까지 처맞다가 뒤질래?”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오른쪽에 있던 복면인이 그림자들을 뚫고 순식간에 내 눈앞까지 튀어나왔지만, 이미 복면인이 쥐고 있는 ‘클로’를 휘둘렀을 때,
“동화!”
나는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했다.
몸 안에 활력이 차오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복면인의 클로가 정확히 내 눈앞을 훑고 지나가는 게 보인다.
왼쪽 이마에는 뿔이 올라오고, 그림자들의 밋밋한 눈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때 보았던 안광이 다시 그림자의 눈 위에 덧씌어진다.
순간 눈앞의 복면인이 휘두른 클로를 회수하며 발을 차올렸지만, 나는 곧바로 반응해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복면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역 안에 복면인의 발이 닿는 순간.
“%[email protected]#^%!?”
수많은 그림자가 복면인의 몸을 구속한다.
순식간에 몸을 구속당한 복면인이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그림자를 떼지 못하고, 그림자가 쥐고 있는 방망이가 복면인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순간!
콰직!
복면인의 눈앞에 거대한 가시가 솟아오르며 그림자의 행동을 방해했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가 모여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가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쾅! 콰강! 꽝! 쾅!
갑작스러운 폭발!
순식간에 주변에 모여 있던 그림자들이 그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고, 그림자가 날아간 틈을 타고 검을 쥔 복면인이 재빠르게 도약해 내 정면에서 칼을 내질렀다.
파각!
그 순간 내 영역 밑쪽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의 방망이에 맞은 복면인은 칼과 함께 던전 한구석에 처박혔다.
하지만 던전 한구석에 처박혔던 남자는 순식간에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나 전투에 합류했다.
분명 그림자에게 몸통을 가격당해 움푹 짓이겨졌던 복부가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어눌한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녀석이 아마 폭발과 관련된 능력을 가진 듯했고, 조금 전 내 앞에 클로를 들이댔던 복면인은 내 발아래서 수시로 올라오는 가시와 관련된 능력을, 그리고 방금 나한테 처맞고 날아갔던 녀석은 아마 자기 재생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어서 곧바로 격돌이 이어진다. 영역 안에서 나온 그림자가 복면인들에게 달려나가고, 복면인들은 그림자들을 처리하며 내게 달려든다.
어깨 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몸을 비틀어 피하고 곧바로 땅 아래서 올라오는 가시를 보고 그림자를 이용해 내 몸을 옆으로 빼는 것으로 복면인의 연계 공격을 완전히 회피한다.
자세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찔러오는 클로를 영역 안에 있던 그림자들의 방망이가 올라와 막아낸다.
막고 피한다.
한순간의 격돌이 끝나자 묘한 소강상태가 이어진다.
누가, 어떻게, 먼저, 공격할까 타이밍을 재며 몸을 슬쩍슬쩍 움직인다.
확실히 S급이라고 말한 게 거짓은 아닌지 나와 대치하고 있는 3명의 복면인은 ‘S’급에 걸맞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규륜이 말한 것 이상으로 강하군. 생각보다 놀랍다만, 고작 그것뿐이다.”
어눌하게 중얼거리는 복면인의 말투가 퍽 우습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복면인들은 강했다.
내가 만약 검은 돌을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계속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가는 복면인들에게 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 ‘검은 돌’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말이야.
영역 안에서 그림자가 기어 나온다.
복면인들의 낯빛은 이전보다는 확실히 여유로워 보였다. 아마도 그림자들이 자신의 신체 능력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겠지.
확실히, 이때가 적기였다. 방심하고 있는 녀석들을 잡기에는 가장 좋은 적기.
영역 안에서 흘러나온 그림자들이, 이미 나왔던 그림자에게 겹쳐진다.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그림자들이 영역에서 빠져나와 서 있는 그림자에게 겹쳐진다.
계속해서 겹쳐지고, 또 겹쳐진다.
방금, ‘그림자’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었던 스킬 중 하나인 ‘집약’을 나는 사용했다.
군집체처럼 부피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똑같은 형상을 가진 그림자가 겹쳐질 뿐이다.
복면인들의 낯빛이 이상을 감지한 듯 찌푸려지고, 한국말을 구사하던 복면인이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만,
“이미 늦었어.”
그 순간 겹쳐진 그림자가 급작스럽게 앞으로 튀어 나간다.
조금 전 그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
흡사 그림자들을 뚫고 온 클로를 든 복면인의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그림자는, 내 의지에 따라 나무처럼 커진 도깨비방망이를 그대로 내리쳤다.
꽈아아앙!
커진 도깨비방망이가 중력의 힘을 받아 그대로 복면인이 있던 곳을 내려찍음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이 던전 안에 울린다.
도깨비방망이가 줄어들고,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복면인이 어느새 달려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그림자를 막기 위해 두 클로를 들어 올리고, 이내 방망이가 클로에 막힐 때였다.
꽝!
콰직! 빡! 꽈직! 콱!
그림자의 몸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도깨비방망이가, 복면인의 빈틈을 내려찍는다.
그 한순간, 복면인이 마치 압축기에 압축되듯 도깨비방망이에 온몸을 구타당한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절명한 복면인.
하지만 나머지 복면인들은 다른 복면인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내게로 돌진했다.
그 사이를 수많은 그림자들이 막아내지만, 폭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복면인이 무엇인가를 던짐과 동시에 검을 들고 있는 복면인 주변에 폭발이 일어나며 그 돌격을 막으려 했던 그림자들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소환된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한 번의 도약으로 내 앞까지 들어온 복면인은 망설임 없이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컥?”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복면인이 검을 휘두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검은 정확히 내 오른쪽 머리카락 끝에서 멈춘 채, 그 힘을 잃고 멈췄다.
복면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온몸이 벌집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복면인의 뒤에는 그림자가 마치 아수라처럼 하나의 몸에 수십 개의 손이 튀어나와 쥐고 있는 검으로 복면인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미안한데, 저건 한 개체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폭발을 다루는 복면인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림자를 턱짓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이 상황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이제 보니까…… 너 그때 그놈 아니냐?”
괴수 남하 사건 때 나를 암살하려 했던 그 복면인.
방금까지만 해도 전투에 집중하느라 몰랐지만, 방망이에 직통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한 복면인의 능력은 보면 볼수록 남하 사건 때 봤던 그 복면인의 능력과 비슷했다.
그 복면인의 주변으로, 방망이를 손에 쥔 채 올라오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그때는 놓쳤지만, 이번에는 아니야.”
위로 쳐들었던 내 방망이가 복면인의 머리를 가격하자마자, 그림자들이 쥐고 있던 방망이가 일제히 복면인의 전신을 강타한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비명. 그런데도 그림자들은 무자비하게 복면인을 때려죽이기 위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들고 있던 칼과 방망이를 슬쩍 움직이며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복면인에게 몸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영역에서 다시 그림자들이 올라오고, 다른 그림자들보다도 그 형태와 색이 진한 그림자가 마치 심연에서 올라오듯 붉은 안광을 흩뿌린다.
나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복면인을 보았다.
그의 몸은 이미 정상적인 싸움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리는 무엇인가에 짓이겨진 듯 망가져 있었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해 금방이라도 과다출혈로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런 복면인을 보며 팔을 들었다.
“자, 이제부터 선택지를 주지.”
그리곤 검지를 펼쳤다.
“저항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한 뒤에 별 고통 없이 깔끔하게 죽는다.”
중지를 펼쳤다.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다가 사지가 잘리고 고통이란 고통은 전부 느낀 다음에 죽는다.”
나는 씩 웃었다.
그림자들의 붉은 안광이 왠지 광기로 점철되는 것 같았다.
“선택해.”
복면인의 눈동자가, 떨림에서 공포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