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나 혼자 10만 대군 034화
10장 ‘그림자’ 던전(2)
A급 던전으로 취급되는 ‘그림자.’
다른 헌터들에게 그 던전은 그저 조금 특이하고 난이도가 높은 던전일 뿐이지만, 내게 그 던전은 굉장히 중요한 던전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 던전은 바로 ‘어두운 실험실’과 같이 내 능력의 각성 단계를 올려줄 수 있는 아이템을 드랍하는 던전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던전이 얼마 전 세상에 출현했다.
그것도 중국에.
“중국이라…….”
원래 회귀 전에도 ‘그림자 던전’은 중국에 출현한 개방형 던전이었다.
“좀 애매한데.”
다만 문제는 지금의 상황과 회귀 전의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이었다.
주작홍.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국의 초대형 길드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회귀 전에는 애초에 능력을 개화한 것도 굉장히 늦었고, 주작홍과의 연결점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냥 협회를 통해 중국 쪽 협회 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던전을 양도받아 그림자 던전을 클리어했었다.
아마 ‘그림자’ 던전이 새롭게 생긴 던전인 만큼 던전 자체의 기대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타국의 헌터한테 클리어권을 양도하지는 않겠지.
그것 말고도 이미 중국 협회는 ‘주작홍’을 비롯한 중국의 초대형 길드들이 이미 먹어치웠으니, 그 상태에서 던전 양도를 해달라고 해봤자 괜히 ‘주작홍’에게 경계를 당할 것이 뻔했다.
“……차라리 일본에 있는 ‘그림자 계곡’이나 프랑스에 있는 ‘어둠 요새’가 먼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이외에도 몇 개의 던전이 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알고 있던 던전은 아직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
당장 출현한 던전은 중국 ‘웨이하이’에 위치한 그림자뿐.
협회 뉴스를 찾아보자 앞으로 4일 뒤, 중국의 초대형 길드중 하나인 ‘청룡단’이 그림자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소식이 보였다.
“4일 뒤라…….”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
집안의 불은 전부 꺼져 있고, 홀로 빛을 내는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북한’의 하이브 사태가 터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3달.
‘그림자’가 개방형 던전임을 생각해 보면 내가 ‘하이브’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그림자의 보스를 잡을 기회는 하이브가 터지기 전까지 총 두 번뿐이었다.
사실 하이브 사태가 끝나고 나서 클리어를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림자’ 던전에 있는 스킬은 그 하이브 사태 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냥 지금 당장 중국으로 날아가서 던전을 몰래 털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왠지 남하 사건 때 봤던 ‘주작홍’길드가 굉장히 껄끄럽게 느껴졌다.
신천 길드의 중국판, 아니, 오히려 주작홍의 한국판이 신천 길드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초대형 길드는 아주 썩어 빠진 길드였으니까.
게다가 아마 정식으로 중국에 입국절차를 통해 들어갔다가는 온갖 암살과 길드의 뒷공작으로 인해 이런저런 규제에 휘말릴 것 같았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아무튼, 그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긴 놈들이 바로 주작홍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랑은 제대로 된 연결점조차도 없는 ‘주작홍’인데 어째서 내가 그들의 눈에 들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이 두렵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힘을 키우는 데는 걸리적거릴 테니까.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고,
개방형 던전 ‘그림자.’
3개월 뒤면 열리는 ‘하이브’ 사태.
지금을 제외하면 2번밖에 남지 않는 기회.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나는 답을 냈다.
* * *
‘그림자’ 던전은 상당히 특이한 던전이었다.
다른 던전들처럼 구조는 일반적이었지만 던전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굉장히 특이했다,
‘그림자’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그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던전 안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형상이 잡히지 않은 형태로 존재하는 그림자는, 던전 안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몸을 ‘변이’시킨다.
헌터들과 같은 사람의 모형으로도 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어디에선가 본 다른 몬스터의 외형으로도 변할 수 있는 특이한 몬스터.
물론 그림자의 전투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이 던전 자체가 A등급을 받은 이유는 바로 그림자가 그 무엇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규칙성’ 때문이었다.
어떤 몬스터로 변할지 모르는 그림자들 때문에 ‘대처 방법’이 없는 것이 이 던전이 A급으로 판정을 받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림자가 무엇으로 변할지 모르니까.
“후…… 진짜, 찾는 거 한 번 더럽게 힘드네.”
나는 눈앞에 있는 ‘그림자’ 던전의 입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함이 몰려왔다.
결국 그날, 내가 내린 결정은 그냥 중국에 잠입해 청룡단 보다 한발 빠르게 ‘그림자’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번 결정하고 난 뒤에는 거침이 없었다.
곧바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김윤원에게 잠시 자리를 비울 것이라고 메시지를 남긴 뒤, 그때부터 웨이하이로 가는 배를 조사하고, 그 배에 몰래 타서 중국으로 들어왔다.
웨이하이에 가는 배에 몰래 타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그저 돈을 쥐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무척이나 쉽게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분명 예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밀입국하는 것은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 불가능했지만, 던전과 괴수가 출현하고 나서부터 극도로 치안이 나빠지는 통에 이런 밀입국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웨이하이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회귀 전의 기억을 되짚어 던전이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한국에서 떠난 지 2일 만에 ‘그림자’ 던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바로 능력을 끌어올렸다.
내 영역이 밝은 빛을 받고 있는 풀을 잡아먹고, 그 사이로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청룡단이 이 던전을 클리어하러 오는 건 2일 뒤였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들켜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그림자들이 점점 늘어나 던전의 입구로 행진하기 시작한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자 회귀 전에 봤던 익숙한 던전의 풍경이 보인다.
분명 푸른빛에 밝혀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내뿜는 던전. 그 초입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이 던전의 몬스터인 ‘그림자’가 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묘하게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꽤 많은 숫자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나를 상대하기 위해 그 형태를 변이시키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영역 안에서 빠져나온 내 그림자들이 이제 막 변이를 시작한 그림자들에게 달려나간다.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다 제각각의 형상을 가진 괴물로 변이해 달려드는 그림자를 상대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밀려드는 내 ‘그림자’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로 변이해 촉수를 휘두르지만, 숫자의 폭력 앞에 촉수를 휘두를 공간마저 없이 한쪽 구석에 몰려 그림자들에게 도륙당하는 몬스터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림자와 그림자의 싸움.
하지만 그 차이는 명확했다.
애초에 ‘도깨비의 밤’처럼 상성이 극악인 던전을 제외하고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숫자에서 밀리는 던전의 그림자들은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던전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동화’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도깨비의 밤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숫자의 폭력이, 이곳에서는 확실하게 그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꺼리는 ‘변이’도 그저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던전의 그림자를 처리한 내 그림자들이 던전의 통로를 꽉 채운 채로 던전을 밀고 올라간다.
분명 A급 던전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싸움조차 성립되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족족 사라지는 던전의 그림자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역시 능력과 던전의 상성 차이는 굉장히 중요했다.
던전의 그림자들을 도륙하며 빠르게 던전을 밀고 들어간다.
던전의 몬스터들이 제대로 변이를 끝내기도 전에 그림자들의 손에 잡혀 사라지고, 혹여 변이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에 밀려 죽음을 맞이한다.
그야말로 던전 한가운데 보스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고속도로를 뚫고 있는 그림자 군단.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나는 결국 ‘그림자’ 던전의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이 ‘그림자’ 던전의 보스를 볼 수 있었다.
* * *
‘그림자’ 던전의 입구.
그곳에 세 명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의 복의를 입고 머리까지 두건을 써서 두 눈만을 드러낸 그들은 그림자 던전의 입구에 도착하자 잠시 그 주변을 둘러봤다.
이윽고 그 침묵 속에서 양손에 클로를 끼고 있던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진짜 들어갈 거야? 그냥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죽이는 게 낫지 않냐?”
“아니, 그보다 규륜 그 자식은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
“……확실히 그 새끼가 조금 묘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
복면을 쓴 그들은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규륜’을 생각했다.
예전에도 알 수 없는 임무를 내렸지만, 최근 들어서 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뜬금없는 지시를 내릴 때가 있었다.
그들이 규륜을 생각하며 침묵하고 있을 때 그들의 한가운데,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봉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런 거 알아서 뭐해? 우리는 그냥 받을 것만 받으면 돼. 우리가 일일이 그런 거 신경 쓰고 일하는 것도 아니잖아.”
가운데에 선 복면인이 그렇게 말하며 그림자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던전으로 들어간다. 정보를 모으는 게 우선이야. 던전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까.”
“후…… 규륜 그 새끼,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던전에 잠입하는 게 얼마나 빡센지는 알고 입을 터는 건지 궁금하다니까?”
복면인들은 먼저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 남자를 따라 던전 안으로 들어가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몬스터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공허한 던전 뿐.
원래 이런 던전인가? 라는 생각이 복면인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런 던전일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전, 복면인들은 그곳에서 인위적인 흔적을 발견했다.
“이건…….”
“전투의 흔적 같은데.”
땅의 일부분이 비정상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땅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 근처는 마치 거대한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땅이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긁히거나 부서진 흔적이 보였다.
복면인들은 이어져 있는 던전의 통로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 * *
던전의 공동 한가운데에 일렁거리는 거대한 그림자.
방금까지 봤던 던전의 그림자와는 기본적으로 크기부터 차이가 나는 그 그림자가 이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사람의 눈처럼 변한 그림자는 곧 자신의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영역화’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그 어둠 속에서, 그림자로 만들어진 ‘몬스터’들이 걸어 나왔다.
그 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여러 가지 형상을 가진 ‘몬스터’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끝없이 올라오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보스가 보여주는 저 물량의 폭력은, 헌터가 싸울 의지를 없애고 도주를 택하게 할 정도로, 끝없이 많은 몬스터를 소환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 몬스터들의 행진은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동화.”
입을 열자 그 순간 형형색색의 오오라가 내 몸을 감싼다.
처음 동화를 사용했을 때처럼 시야가 점멸하고, 내 몸 안에 충만할 정도의 활력이 가득 찬다.
간질거리는 이마에는 어느새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뿔이 자리하고 있고, 그런 내 변화에 맞춰 그림자들이 변화한다.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고, 밋밋하기 그지없었던 눈이 있는 곳에는 붉은빛의 안광이 자리한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보여주는 그림자 군단이, 내 뜻과 함께 일제히 돌격한다.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공기 터지는 소리, 귀를 시끄럽게 할 정도의 땅이 깨지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그저 일반인들보다 조금 나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림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인간 포탄이라도 되는 양 몬스터에게 쏘아져 나가 검을 휘두른다.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그림자의 주먹질 한방에 저만치 날아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신체 능력.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공동이 쇳소리와 돌이 흩날리는 소리로 시끄러워지고, 그림자들은 땅에서 기어 나오는 몬스터를 상대로 학살극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거대한 눈이 반응할 새도 없이 날아올라 검을 휘두르는 그림자들의 공격에, 그림자 던전의 보스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거대한 눈이 죽자마자 심연같이 어두웠던 영역이 사라지고, 소환되었던 그림자가 하나둘 사라진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전투.
나는 동화를 풀었다.
“후우…….”
동화를 풀자마자 분명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가볍게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거대한 눈이 있었던 그 자리로 이동했다.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검은 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숙여 떨어져 있는 검은 돌을 주워드는 그 순간.
꽝!
내 머리 위로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앞에서 폭음이 터지고, 그와 동시에 내 뒤로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에 곧바로 몸을 오른쪽으로 구르자, 그곳에서 뾰족한 ‘가시’가 빠르게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내가 완전히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을 때, 그곳에는 세 명의 복면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