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나 혼자 10만 대군 032화
9장 도깨비의 밤(3)
공동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이미 들고 왔던 마정석은 지금까지 소모했던 그림자를 채우는 데 전부 사용했고, 도깨비를 상대하느라 수시로 군집체를 사용했던 머리는 몹시 지끈거렸다.
지금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
그런데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노란 도깨비를 토벌한 공동을 지나 도착한 마지막 공동.
그 공동의 한가운데, 다른 도깨비들에 비해 확연하게 더 커 보이는 도깨비가 자신의 방망이를 들고 공동한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 붉은 피부는 확실히 방금 전 처리했던 다른 도깨비들보다도 두꺼워 보였고,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는 얼굴은 일반인이라면 당장에라도 졸도할 만큼 공포감이 어려 있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존재감.
역시 다른 도깨비 때와는 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붉은 도깨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망이를 꼬나쥐고 나를 바라본다.
엄청난 위압감.
순간 몸이 떨려왔다.
하나 망설임은 없었다.
“동화!”
내 입이 열리자마자 아까 전 얻었던 팔찌에서 형형색색의 아우라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붉은 도깨비가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전류를 맞은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의 시야가 일순 점멸하고, 내 몸속에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충만한 힘이 느껴진다.
왼쪽 이마에서는 간질간질한 느낌과 함께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마치 능력의 활성화가 끝났다는 듯 도깨비의 뿔이 자리 잡았다.
순간 잃었던 시야를 되찾자. 어느새 내 눈앞까지 다가와 힘차게 몽둥이를 내려찍는 붉은 도깨비가 보였다.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똑같은 외모.
처음 이곳에 도달해 붉은 도깨비의 모습을 봤을 때, 아이템을 얻었지만 과연 준비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내려치는 방망이에 맞추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검은 손이 만들어진다.
불과 찰나의 시간에 만들어진 검은 손이, 붉은 도깨비가 휘두른 방망이를 막아낸다.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리고, 분명 조금 전이라면 도깨비의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져야 할 검은 손은, 무척이나 완벽하게 도깨비가 휘두른 방망이를 막아냈다.
순간 찌푸려진 도깨비의 인상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림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말 그대로 나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그림자들.
그런 그림자들의 왼쪽 이마에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뿔이 자라나 있었고, 원래라면 밋밋했어야 할 두 눈가에는 마치 만화에서나 보던 붉은 안광이 그림자들의 두 눈에 박혀 있었다.
꽝!
오른쪽에 새롭게 만들어진 검은 손이 순식간에 쏘아져 나가 붉은 도깨비의 명치를 사정없이 후려치자, 붉은 도깨비의 거대한 체구가 그대로 하늘을 날아 공동 한구석에 처박힌다.
원래라면 붉은 도깨비를 친 반동으로 그 형태가 무너졌어야 할 검은 손은 내 의지에 따라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 가진 것이 의문이었다면, 아이템의 능력을 사용해서 얻은 답은 확신이었다.
눈앞에서 화가 난 표정으로 일어나는 저 붉은 도깨비는 더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영역을 거점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거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발부터 시작해서 몸통, 그 몸통부터 해서 다시 얼굴까지, 붉은 도깨비와 비슷한 크기의 거인이 만들어진다.
물론 조금 전의 나라면 이 한 마리를 유지하는 데도 벅차서 다른 거인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거대한 거인의 양옆에서 다시 한번 그림자들이 모여 거대한 거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도깨비가 다시 한번 내게 달려들기 위해 몸을 날렸을 때쯤.
“지금까지 ×나 맞았으니까…… 이젠 내가 ×나게 패줘야지!!”
내 주변에는 총 3개의 거인이 만들어져 있었다.
붉은 도깨비가 제일 앞에 서 있는 거인에게 부딪힌다.
꽝 소리가 날 정도의 엄청난 돌진력. 고작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 귓가가 멍멍해질 정도의 소리가 청각을 강타했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거인은 붉은 도깨비의 돌격을 무척이나 가볍게 막아냈다.
노란 도깨비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달라진 양상.
이내 돌격을 막아낸 거인이 도깨비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곧바로 주먹을 내지른다.
“칵!”
흉신악살 같은 얼굴에 거인의 주먹이 꽂히고, 그와 동시에 날아가려던 도깨비의 거구를 그대로 다시 한번 끌어들인다.
그리고 양옆에 있던 거인들이 도깨비의 몸을 마구잡이로 구타한다.
붉은 도깨비는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고 그 우락부락한 근육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으로 거인들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거인들 한가운데에 들어가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는 붉은 도깨비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상태였다.
동화를 사용하기 이전에 만든 거인이라면 느린 속도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깎여나가는 정신력으로 인해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 동화를 사용함으로써 상승하게 되는 ‘신체 능력’과 ‘정신력’은 눈앞의 붉은 도깨비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순간 저항하는 도깨비의 몸을 거인이 찍어 누른다.
거대한 소리가 공동 안에 울리며 도깨비를 찍어 누른 땅이 마치 과자 깨지듯 부서진다.
도깨비는 최대한 거인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도깨비의 움직임도 얼마 되지 않아 멈췄다.
꽝!!
거인의 주먹이, 신체를 구속당해 무방비 상태인 도깨비의 얼굴에 꽂힌다. 도깨비의 머리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지반이 울리듯 땅이 부들거린다.
하나 거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꽝! 꽝! 꽝! 꽝! 꽝!
마치 떡을 치는 것처럼, 타이밍에 맞춰 도깨비의 머리에 주먹을 꽂아 넣는 거인들. 도깨비의 머리가 땅을 뚫고 더 깊이 들어가고, 거인의 주먹이 도깨비의 머리에 닿을 때마다 지반이 울린다.
다른 거인에게 구속당해 몸부림치던 도깨비의 몸이 서서히 부들거리는 떨림으로 바뀌고, 주변의 땅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갈라져 분명 평평한 대지였던 공동은 이미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지반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붉은 도깨비의 몸이 완전히 멈췄을 때, 거인들은 비로소 도깨비에게 향하던 폭력을 멈추었다.
군집체를 해제하자마자 거인이 엄청난 속도로 무너져 내리며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한계까지 모은 그림자로 거인 3체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의 두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붉은 도깨비가 쥐고 있던 거대한 방망이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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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깨비의 방망이]
-이곳과는 다른 세계에서 도깨비 장인이 만든 이 방망이는 무척이나 단단하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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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보다도 큰 방망이가 내 의지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내 내가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다.
손에 쥔 방망이를 한두 번 휘둘러보자, 무서운 파공음이 내 귓가에 들렸다.
“이걸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나는 도깨비방망이를 쥐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던전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 * *
“어우.”
도깨비의 밤을 클리어한 지도 5일이 지났다.
인터넷을 달구고 있던 던전 증식이 슬슬 끝물에 접어들 때쯤이었다.
“죽겠다…….”
나는 집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정확히는 도깨비의 밤을 클리어하고 집에 돌아온 그 시점부터 5일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고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으아아아, 이런 젠장.”
이유는 바로 끔찍할 정도의 근육통, 그리고 회귀 전에도 한두 번밖에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두통 때문!
분명 ‘도깨비의 염원이 모인 구슬 팔찌’는 회귀 전에 보았던 것만큼 사기적이었다.
가히 압도적일 만큼의 전반적인 신체 능력과 정신력의 향상은 지금 내 포텐으로는 낼 수 없는 힘을 내게 해주었다.
그날 붉은 도깨비를 상대로 휘두른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폭력.
“게다가 내 능력이랑은 안성맞춤이지.”
내 능력인 ‘그림자’는 사용자의 능력치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진다.
다만 무기의 경우 지금은 각성 단계가 그리 높지 않아 그림자가 그 외향만을 본뜨기 때문에 무기의 효과는 볼 수 없었는데, 이 아이템은 다르다.
순수하게 신체 능력과 정신력이 상승하는 아이템. 그리고 그 신체 능력은 내가 이 능력을 해제할 동안 고스란히 그림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것만으로 이 아이템과 내 능력의 시너지는 가히 엄청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어쩌면 원래 이 아이템을 가져가야 할 ‘독문석’보다도 말이다.
다만 걱정인 건 동화를 사용한 뒤 몰려오는 리스크였다. 독문석도 아마 이 리스크 때문에 한정적인 SSS급이라고 불렸다.
물론 이 리스크를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제 슬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각성 던전’을 클리어해 ‘그 스킬’을 얻는 순간부터 아마 나는 이 능력의 리스크를 거의 받지 않고도 아이템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능력이 나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할 때마다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겠지만.
“끄아아아……. 몸이 부서져 버리겠네.”
지금은 근육통 자체가 상당히 회복되었기 때문에 몸을 적당히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은 정말 끔찍했다.
슬쩍 몸을 다시 편한 자세로 만든 나는 이내 옆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스마트폰을 보자, 거기에는 조금 전까지 내가 보고 있었던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뉴스에서는 최근 던전 증식에 대한 이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길드가 노다지 던전을 찾아 얼마나 수익을 올렸느냐부터 시작해, 오히려 첫째 날 열린 일반 던전을 찾지 못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곳을 길드가 막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내 시선이 집중된 곳은 단 한 곳이었다.
김서윤의 등장으로 또 한 번 그 기능이 상실되어 버린 튜토리얼 던전.
길드는 또다시 튜토리얼 던전을 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뉴스에서는 이번 튜토리얼 던전에 참가하는 헌터들의 리스트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찾았다.
“……이제야 나온 건가,”
튜토리얼 던전에 참가하는 헌터 리스트의 가장 끝줄에는, 내가 회귀 전에 알고 있던 꽤 특이한 이름이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하리남.”
회귀 전에 봤던, ‘한국’에 있는 마지막 인재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