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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29화 (29/202)

# 29

나 혼자 10만 대군 029화

8장 이름(2)

“자 그럼 서윤이가 건의했다시피 길드 이름을 바꿀까 하는데, 누구 좋은 의견 있는 사람?”

그로부터 4일 후.

모든 것이 그렇듯이 1달이고 1년이고 계속해서 타오를 것 같던 괴수 남하 사건의 관심은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여론은 새로운 떡밥을 찾아 헌터업계를 들락거리고, 대형 길드는 괴수 남하 사건 때 입었던 피해를 복구하고 있는 시기.

“……아무도 없어?”

“저는 이름 같은 건 잘 못 지어서…….”

얼마 전 능력을 개화한 뒤, 곧바로 능력을 사용해 마력과다소비로 쓰러진 이은별은 병원에서 얼마간의 요양 후 멀쩡하게 퇴원했다.

며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밝아진 얼굴을 보니 아마 이은별은 스스로의 능력을 개화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얻은 듯했다.

그래 봤자 지금의 이은별은 개화한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해서 능력을 사용하면 그 직후 곧바로 마나 고갈 현상이 일어나 쓰러져 버리긴 하지만, 그건 아마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뭐라도 말해봐.”

지난번, 이은별이 능력을 개화한 뒤 찾아갔던 병문안을 기점으로, 이제 이은별에게도 말을 놓게 된 나는 편하게 이은별에게 의견을 물었다.

“음, 그럼…… ‘다크 섀도우’길드라던가?”

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김서윤의 손이 멈추었고, 덩달아 질문을 던졌던 내 입가가 굳었다.

순식간에 사무실 안에 들어찬 어색한 공기에 이은별이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다크 리전 길드?”

이은별의 다음 말에 김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팽개치더니 들고 있던 양손을 쥐었다 펴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가? 라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이은별의 표정을 보니, 장난으로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언니, 그건 좀…….”

아니나 다를까. 이은별의 중2병 돋는 네이밍 센스에 손발이 버티지 못했는지, 김서윤은 손을 오므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아, 아니! 나는 그냥 말해보라고 하길래……. 원래 나는 이름 같은 건 잘 못 지어.”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다 잘할 수 있나?”

왠지 자기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이은별의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왠지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는 이은별.

“흠흠…… 아무튼, 길드명 추천할 사람?”

내 물음에 이번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김서윤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나! 나!”

“말해봐.”

“그림자와 친구들!”

“……진심이야?”

김서윤의 말을 듣고 나는 정색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어…… 이상한가? 그럼 그냥 ‘그림자’는 어때?”

내 정색하는 표정을 봤는지 일순간 김서윤의 표정이 떨떠름해지고는 이어서 입을 열었지만.

“솔직히…….”

추천하는 길드명을 들어보니 이은별이나 김서윤의 네이밍 센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김서윤이 이은별에게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만 김서윤 본인은 자신의 네이밍 센스에 무척이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계속해서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

“탐식 그림자 스타폴!”

“그거 우리 능력 이어 붙인 거 아니니?”

“그림자 성!”

“기각.”

“zz절대지존zz!”

“농담으로 들을게,”

“그림자의 재림!”

“……이거 장난치는 거 아니다.”

내 말에 김서윤이 일순 빈정 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꿋꿋했다.

아니, 자기가 길드명 바꾸자고 해놓고 정작 내놓는 길드명들이 무슨 애들 네이밍 센스랑 비슷하다니……. 뭐, 길드명을 그렇게 만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럼 아저씨가 지어보던가!”

“흠.”

김서윤이 빈정 상한 표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바통을 내게 넘겼다.

……뭐,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딱히 이름을 잘 짓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눈앞에 있는 이 애들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길드명이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김서윤의 닦달에도 굴하지 않고 조금 생각해봤다.

“……심X?”

그와 동시에 김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이은별도 내가 꺼낸 이름을 한번 듣고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저씨, 그거 표절인 거 알지?”

“……아, 그러네.”

괜찮다고 생각해서 꺼낸 이름이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외국에서 아주 유명한 애니의 이름이었다.

“…….”

어색한 침묵.

어떻게 세 명 중 그나마 정상적인 네이밍 센스를 가진 녀석들이 단 한 명도 없을까. 게다가 솔직히 나랑 김서윤은 그렇다 쳐도, 이은별은 은근히 똑똑하게 생겨서 이런 건 잘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 그냥 인터넷 찾아볼래……?”

“……그러자.”

서로의 네이밍 센스가 확실히 지옥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김서윤이 조심스레 제안했고, 나는 곧바로 그 의견을 수용해 노트북을 켜 길드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10분도 안 돼서 포탈 검색어 ‘멋있는 길드 이름’으로 검색해 나온 이름 중 하나인 ‘씨커(구원자)’를 길드명으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얼렁뚱땅 정해진 길드명.

길드명이 정해진 뒤에도 우리는 왠지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크 섀도우.’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어색한 사무실의 분위기 속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린 이은별의 한마디를 들었지만, 나와 김서윤은 이내 이은별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슬쩍 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나는 이내 그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예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백화점에 간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김서윤의 의문 어린 물음에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법인카드…… 는 아니지만, 이번 괴수 남하 사건으로 받은 보상금이 들어 있는 카드지.”

나는 카드를 들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적어도 오늘 자정 전까지, 하고 싶은 건 전부 이걸로 해도 된다!”

“뭐?! 그럼 사고 싶은 거 다 사도 돼?”

“당연하지. 이 카드의 잔고가 다 떨어지지 않는 한 오늘 자정까지는 내가 다 쏜다!”

“그럼 혹시……!”

“그래도 마정석은 안 된다.”

“히잉.”

얼마 전 협회에서 내가 잡았던 A급 괴수의 마정석을 보내왔을 때, 그 마정석을 보며 침을 흘리던 김서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마치 굶주린 야수가 초식동물을 보는 시선이 그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나운 시선을 보내던 김서윤은 언제부터인가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마정석을 달라고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마정석은 이미 쓸 곳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 아저씨의 돈을 있는 대로 전부 써주지!”

김서윤은 금세 침울한 표정에서 돌아와 내게 입을 열었고, 이은별도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눈이 반짝거리고 있는 게 당장 어떻게 뽑아먹을까 고민하는 모습 같았다.

뭐, 이은별도 결국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은별이 때려 박은 유성이 너무 강했던 터라 A급 괴수의 시체도 제대로 남지 않아 기본적인 정산금만을 받았다고 들었으니…….

“그럼 가자!”

그렇게 길드원들의 멘탈 케어 겸, 내 휴식까지 포함한 광란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 * *

그날 밤, 10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에 길드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이 물밀듯 밀려왔다.

“……와, 진짜 더럽게 많이 썼네.”

몸에 힘을 빼고 침대에 눕자 주머니에 말려 있던 명세서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심지어 명세서 중 하나는 1m가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길었는데, 나는 그 길이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이게 총 얼마야…… 1,500만 원?”

뭐, 자세한 내역을 보니 아무래도 이 명세서는 게임과 관련된 명세서 같았다. 제일 위에는 수십만 원의 게임기 가격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는 아마 게임 패키지인 듯, 5~8만 원 사이의 패키지들이 수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명세서를 보니 아까 김서윤이 무엇인가를 잔뜩 가져오며 ‘아저씨 나 산다! 진짜로 산다!? 질러 버린다!’ 라고 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많던 짐들이 다 게임이었구나.

“이건…… 옷이고.”

다른 명세서를 보자 분명 게임 명세서보다 길이가 짧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게임보다도 비싼 가격대가 찍혀 있었다.

“진짜 옷 가격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아마 신상 의류들인 듯 가격이 하나같이 여섯 자릿수는 가볍게 넘어가는 계산서를 보며 나는 그만 웃음을 흘렸다.

이 이외에도 겁나게 비싼 레스토랑에 들렸다가 우리를 은밀히 쫓아다니던 파파라치를 김서윤이 알아차리며 그 파파라치의 목숨이 위험하게 될 뻔한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꽤 만족한 듯했다.

덤으로 나도 오랜만에 ‘구매소’가 아닌 곳에서 사치를 부리니 꽤 재미있었다.

“이 집도 이제 다음 주면 옮겨야지…….”

집 안 풍경을 바라본다.

퀴퀴한 곰팡내가 배어 있는 가구들과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는 집안. 요즘 들어 잘 때 외에는 거의 집안에 없다 보니 확실히 집이 더러워진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이 집도 끝이다.

지난 괴수 남하 사건이 끝나고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휴식을 겸해 새롭게 살 집을 구했다.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급 오피스텔.

사실 처음에는 회귀 전에 살던 곳처럼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회귀 전에도 청소 때문에 1주일에 몇 번씩 청소 도우미를 불렀던 것을 떠올리니 그냥 이편이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 샀던 짐들도 이미 그 고급 오피스텔에 전부 보내 놓았고, 사실 이곳에서 가져갈 것도 없으니 그냥 몸만 가면 된다.

“이제 딱 1주일…….”

하고 싶은 것도 했고, 내 나름의 휴식도 충분하게 즐겼다.

원래라면 괴수 남하 사건이 끝나고 곧바로 움직이려 했지만 내 나름의 변덕을 부려 1주일 정도를 느긋하게 쉬었다.

하지만 이제 꿀 같은 휴식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슬슬 할 일을 해야 했다.

“돈도 있고, 힘도 있다. 덤으로 시간까지.”

처음 이곳으로 회귀했을 때는 어땠던가? 당장 모아놓은 돈들도 없었고, 회귀 전 SSS급 헌터가 부럽지 않은 능력도 내가 능력을 얻었을 때의 초기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꾸준한 던전 탐색과 큰 사건을 끝낼 때마다 내 통장에 쌓이는 잔고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고, 내 힘도 지금에 와서는 정말 ‘티끌’뿐이지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앞으로 남은 5개월 동안,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비할 만한 충분한 여건도 갖췄다.

게다가 무엇보다 든든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이었다.

지금이야 당장 큰일이 연달아 터지는 터라 작은 일들에는 집중하지 못했지만, 분명 회귀 전 내가 보았던 것 중에는 혼자 알고 있으면 무척이나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던전의 난이도는 낮지만 엄청난 금액을 벌 수 있게 해주는 던전도 있었고, 난이도는 어느 정도 높아도 그 난이도에 비해 좋은 성능을 가진 무기를 뿌려주는 던전도 있었다.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금 같은 미래의 기억들.

이 회귀 전의 기억들을, 이제 본격적으로 써먹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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