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나 혼자 10만 대군 028화
8장 이름(1)
“아저씨? 저희 길드명 진짜 이거예요?”
“왜? 단순하고 좋잖아?”
“아니, 단순한 게 아니라 그냥 너무 특색이고 뭐고 하나도 없는데요?”
“어…… 그래?”
나는 무난하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길드명은 이래야 한다느니 저래야 한다느니 하는 김서윤을 보던 나는 켜져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왕! 또 해냈다!]
[‘피닉스’, 연천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
[푸른 유성우의 정체를 파헤치다!]
[이번 한강 사태를 정리한 헌터 ‘이은별’의 행적을 알아보자!]
[이은별의 소속 길드는 놀랍게도 그림자 왕의 길드!]
괴수 남하 사건이 끝난 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세상의 관심은 아직도 3일 전에 일어난 그 사건에 몰려 있었다.
주제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북에서 남하한 A급 괴수들.
그런 괴수들을 막아낸 길드들부터 시작해서, 갑작스레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 도심에 막대한 피해를 줄 뻔했던 A급 괴수, 그리고 그런 괴수를 토벌한 ‘이은별’까지.
인터넷은 아직도 괴수 남하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난리도 아니네,”
유튜X 와 포털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실시간 검색어에 남하 사건과 관련된 주제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분명 괴수 남하 사건을 촬영한 영상은 한정적일 텐데도 유튜X에서는 그 한정된 영상들을 가지고 짜깁기에 짜깁기를 반복해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지난 3일 동안 수만 개에 가까운 영상들을.
기본적인 A급 괴수의 분석 글부터 시작해서 3대 길드의 전력 차라던가, 3대 길드에서 활약한 길드원, 그리고 드론으로 찍힌 내 전투 영상도 이리저리 편집되어 유튜X를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그러고 보니까, 은별 언니는 아직도 골골거리고 있어요?”
“아마 오늘쯤이면 퇴원할 거야. 애초에 일시적인 마력 과소비로 생긴 일이었으니까,”
바로 한강 고수부지에 나타난 A급 괴수를 처리한 D급 헌터,‘이은별’이었다.
유튜X 영상 최상단에 있는 ‘이은별 능력 근접촬영!’이라는 영상을 클릭했다.
자잘한 광고가 넘어간 후, 3일 전 지상파 방송을 통해 봤었던 그 장면이 다른 구도로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개인이 찍은 듯 영상은 많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 영상 속에 담긴 이은별의 모습은 선명했다.
A급 괴수가 고수부지를 넘어 외곽 도로로 접근하는 그 순간, 이은별은 온몸에서 푸른 오오라를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푸른 달.
네온사인으로 어지럽게 밝았던 거리를 한순간에 푸른 빛으로 물들이고, A급 괴수들이 푸른 달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다.
이내 푸른 달에서 유성이 떨어져 내리고, 그 유성을 피하지 못한 A급 괴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ㅇㅍㅈㅂ: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유성을 떨궈 버리네? 뉴스 보니까 아직 D급 헌터라고 하던데, 이거 SSS급 찍어야 되는 부분 아니냐?
-앙기보띠: 근데 ㄹㅇ 저 능력은 뭐임? 지금까지 헌터 능력 중에서 진짜 저런 거 듣도 보도 못함 ㄷㄷ…….
-은별이하고싶은거다해: 아니, 존나 예쁘네요? 여신인가요? ‘1:10’ 이 부분 봐보셈, 거의 오연하게 서 있는 이은별 모습 ㅗㅜㅑ 수듄 ㄷㄷㄷ……
-지금부터실시한다: 와 ㅅㅂ…… 김우현 대체 뭐임? 이제 찾아보니까 이은별도 김우현 길드 소속인데? ㅋㅋㅋㅋㅋㅋㅋ 그 새끼 ㄹㅇ루다가 뭐 있음?
└타리에노: ??? 띠용???? 진짜임? 이은별도 그림자 왕 길드 소속임?
└지렸다: ?? 방금 소름 돋은 거 암? 그럼 지금 요즘에 유명세 터진 애들 2명 다 그림자 왕 소속이네?
└관심법: 야, 그림자 왕 무슨 관심법 있냐? 처음에 튜토던전 때 뜨고 길드 만들고 깝칠 때는 그냥 돈이나 더 받아 처먹을라고 그러네 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네???? ㄷㄷㄷㄷㄷㄷ
└방구석김씨: 솔직히 그림자 왕 무슨 현판 소설의 주인공 같지 않냐? 요즘 하는 거 보면 혼자 다 함 ㅋㅋㅋㅋㅋㅋ
-후힘들다: 아 몰라! 이은별 팬카페 없냐! 차라리 김우현 이은별 김서윤 세 명 합쳐서 그냥 길드 팬카페나 하나 만들어라. 세 명 다 일일이 가입하는 거 개 귀찮네 ㄹㅇ
영상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그 대부분이 이은별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찬양하는 듯한 논조로 댓글을 써나가고 있고, 그 와중에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도 가끔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 은별이 언니 이야기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아저씨! 길드명 바꾸자니까요?”
그렇게 노트북을 보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입을 여는 김서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뭐 애초에 길드명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결국 모임 비슷한 건데…….”
“그래도 길드명이 ‘길드’가 뭐예요!? 말할 때 헷갈리잖아요!”
“……그런가?”
“볼래요? 만약 나중에 길드가 커져서 아저씨가 기자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길드 길드의 길드장 그림자 왕 김우현 씨!’라는 말을 들으면 어떨 것 같아요?”
기자의 말투를 따라 하며 투덜거리는 김서윤.
그녀의 불만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무성의했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애초에 길드를 처음 만들고 나서부터 빨리 길드명을 작성해 달라는 협회의 요구에 이름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하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이름을 대충 짓긴 했었다.
그러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길드’라는 이름은 너무…… 무성의해 보이기는 했다.
뭐, 나로서는 말 그대로 소수 정예로 길드를 꾸려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길드명 정도는 대충 지은 거지만.
“아무튼 알았어. 우선 조만간 생각해보고 이름을 바꾸던가 할게,”
“꼭이에요? 아저씨 솔직히 길드명이 ‘길드’는 아니잖아요? 그쵸?”
“그래그래.”
묘하게 길드 이름에 집착하는 김서윤.
나는 확실히 좀 무성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김서윤의 말에 동조했다.
김서윤은 내 대답을 받아 낸 뒤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집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정적이 깃든 사무실.
한참이나 노트북으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던 나는 이내 뻐근한 목을 풀어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급한 일은 전부 끝났나……?”
회귀 후, 당장 코앞에 닥쳤던 ‘대형 던전’ 과 ‘A급 괴수 남하 사건’은 결국 내가 알던 회귀 전과는 다르긴 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 괜찮은 방향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마력을 너무 과다하게 사용해서 입원실 신세를 지고 있는 이은별도 생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성공적으로 능력을 개화했고, 남하 사건으로 인한 보상도 들어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나를 암살하려 했던 암살자의 정체.
만약 그 남자를 그대로 놓쳤다면 결국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을 테지만, 그가 절단하고 간 오른팔에는 내가 알고 있던 문양이 있었다.
“주작홍…….”
중국의 초대형 길드 중 하나인 ‘주작홍’의 문양, 그것이 복면인의 오른팔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나는 ‘주작홍’이 이 ‘괴수 남하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증거인 복면인의 오른팔은 협회에 도착한 직후,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중요한 건 누가 나를 암살하려 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이 새끼들은 회귀 전에도 그렇고, 그냥 처음부터 쓰레기네……?”
회귀 전, 주작홍 길드의 쓰레기 같은 면모를 하나부터 열까지 많이 봐온 나였다.
그 길드의 더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일일이 그 길드의 악행에 대해서 나열하는 건 힘들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신천 길드’의 중국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까?
“받은 만큼, 갚아 줘야지.”
물론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주작홍이 내 손에 무너지기까지, 단언컨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은근히 타오르는 분노를 감춘 나는 이 이후의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이다음에 일어날 큰 사건은 ‘북한’에서 터지는 ‘하이브’ 사건인가…….”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아직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뭐 다만 문제라고 하면, 북한에서 한 번 하이브가 터지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멸망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는 거지.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하이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던전들.
물론 처음부터 전 세계가 개판이 될 정도로 던전과 이변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북한에서 하이브가 출현하게 되는 그 순간이 카운트 다운의 시작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을 기점으로 그 햇수가 3년을 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하루하루 큼지막한 사건이 안 터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워진다.
노트북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적어놓은 텍스트 창을 본다.
난잡하게 쓰여 있는 텍스트를 볼 때마다 미래에서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막을 수 있어.”
회귀 전에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능력을 깨닫는 시기도 너무 늦었고, 제대로 된 동료 하나 없이 그저 혼자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발버둥 쳤다.
자기 살기에 바쁜 길드와 협회.
개미 목숨만도 못하게 죽어가는 시민들.
마비된 국가 권력, 괴수와 몬스터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밀리는 국가들.
그때의 내게는 그것들을 제대로 붙잡을 시간이 없었다.
“이제 당장 눈앞에 닥친 급한 일도 끝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진짜, 미래를 위해 본격적으로 대비할 때가 되었다.
* * *
“실패했다……라.”
“죄, 죄송합니다!”
주작홍 길드 건물 최상층에 자리한 길드장실.
그곳에 한 남자가 부복하고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남자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고, 장영은 그런 남자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없이 베이징의 전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침묵이 가득한 길드장실,
슬슬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에 괴로움을 느낀 남자는, 그때 장영의 목소리를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죄, 죄송합니다!”
“나가 봐.”
장영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복하고 있던 남자가 튕기듯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억지로 숨기며 길드장의 방문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고,
“어?”
남자는 외마디 의문만을 남긴 채, 목이 잘렸다.
소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저 남자의 목이 잘린 것만이, 남자를 ‘베었다’는 증거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왜 죽였지?”
장영의 입이 열렸다.
부하가 죽었음에도 무척이나 평온한 말투.
“그야, 어차피 죽일 것 아닙니까?”
그때 방의 오른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마치 옛날 시대에서나 입었을 것 같은 빨간 장포에 여우처럼 찢어져 있는 두 눈, 길게 찢어져 웃고 있는 입을 한 남자였다.
“괜히 밖에 나가서 나불거리는 걸 수습하는 것보다는 이 안에서 죽이는 게 훨씬 편하니까요. 잘 나간다고 해도 헌터가 아닌 사무원일 뿐이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가 없는 시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이 길어지려던 도중, 장영이 입을 열었다.
“규륜.”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그 단순한 한 마디.
하지만 그것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 장영의 말에 일순간 움직이던 몸을 멈춘 규륜.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사실 제가 예상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원래라면 서울 한복판에 떨어져야 할 괴수는 11개체였는데…….”
장영이 테라스에서 눈을 돌려 규륜을 바라보았다.
“지정 지점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괴수 8개체가 불의의 사고로 전부 죽어버렸거든요.”
“……죽었다고?”
“네! 그것도 단 한 명한테요.”
규륜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장영은 그와 반대로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단 한 명?”
“네! 요즘 그 있지 않습니까?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헌터……. 그 이름이…….”
규륜은 그렇게까지 말하더니 찢어진 눈을 슬쩍 뜨며 입을 열었다.
“김우현 헌터……였던가요?”
장영의 눈썹이 슬쩍 찌푸려졌다.
규륜은 장영의 찌푸린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장영이 보고 있는 정경을 함께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아직 남아 있는 작전은 많고, 우리의 계획을 방해한 그 헌터도 얼마 있지 않아 이곳에 올 테니, 복수할 만한 시간은 남아 있어요.”
“작전은 그렇다 치고……. 그 녀석이 중국에 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규륜의 말에 장영이 일그러뜨린 얼굴을 풀지 않은 채 질문했지만, 규륜은 장영의 모습을 슬쩍 보고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순간 규륜이 감았던 눈을 뜨며 장영에게 입을 열었다.
“그는 강해져야 하니까요.”
규륜의 찢어진 눈 사이에 숨어 있던 붉은 눈동자가 장영을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