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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27화 (27/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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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 027화

7장 A급 괴수 남하(4)

내 물음에 복면인은 답하지 않고, 그저 그림자에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복면인을 붙잡고 있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검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내 영역 안에서, 검을 쥔 손들이 소리 없이 올라와 잡혀 있는 복면인을 향해 일제히 검날을 조준한다.

“너 누구야?”

다시 한번 물음을 던졌지만 복면인은 입을 열지 않았고, 또한 나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복면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 생각과 함께 그림자들이 들고 있던 검이 일제히 복면인에게 쏘아져 나가며 복면인의 몸을 꿰뚫었다.

푸욱! 푸푹! 푹!

수십 개의 검이 복면인의 몸을 꿰뚫는다. 그와 동시에 잔해밖에 남지 않았던 공장에 다시 한번 혈향이 풍기기 시작하고, 내 눈앞에는 온몸이 칼에 꿰뚫린 그로테스크한 복면인만이 남아 있었다.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고개를 숙인 복면인.

비명을 새도 없이 절명한 복면인의 몸에서 칼을 회수하는 그림자들.

그와 동시에 복면인의 전신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며 그림자의 주변이 피로 물들었다.

끔찍하고도 잔인한 광경이지만, 이미 회귀 전에 이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장면을 여럿 봐왔던 나로서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복면인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혀 피를 흩뿌리고, 내가 복면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그 순간.

“……!?”

분명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을 거라 생각했던 복면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뒤로 빼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림자를 이용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복면인의 팔을 붙잡은 나는 곧바로 그림자들을 이용해 다시 한번 수백 개의 칼을 복면인에게 내질렀지만.

촤악!

복면인은 망설임 없이 그림자에게 잡힌 자신의 오른팔을 칼로 끊어버리고는 곧바로 내 반대쪽에 있는 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분명 온몸에 관통상과 자상을 셀 수 없이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도주를 감행하는 복면인을 보며, 나는 그만 어이없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

내게 암습을 가했던 복면인은, 잘린 팔 하나를 남기고 그대로 도망쳤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지만, 나는 이내 복면인이 잘라내고 도망간 오른팔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복면인의 잘린 팔의 손목 쪽에 문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잘린 오른 손목에 그려진 문신.

이 문신을, 나는 알고 있었다.

* * *

연천 근처의 야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어둠만이 내려앉은 산속에는 한 남자가 큰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

“허억, 허억…… 이런 썅……!”

남자의 입에서 중국어가 튀어나왔다.

“저게…… 예상 범위 A급 이내의 헌터라고……?”

홀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몸을 바라본 남자는 순간 와락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상처 부위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며 남자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온몸에 생긴 수백 개의 자상과 관통상들은 아직도 남자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었다.

“시스템에서 S급으로 올라선 내 능력이…… 제대로 치유를 하지 못할 정도라니…….”

‘오토리버스.’ 그것이 남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이름이었다.

헌터 등급이 오르지 않았을 때는 별 볼일 없었지만, 헌터 등급이 S랭크로 올라가며 남자의 능력은 웬만한 자상은 10초면 재생되고, 온몸이 박살 날 정도의 타격이라도 5분 내외로 다시 재생이 가능할 정도로 초재생능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 상처들은 왜……!”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은 분명 계속해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금 전 ‘암살’을 사주받았던 김우현에게 공격받은 몸은 20분이 지나도 완전히 치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온몸에 뚫려 있는 관통상을 보며 남자는 얼마 전 이 일을 사주한 남자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규륜, 이 개자식…….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다니!”

주작홍 길드의 인사부로 활동하고 있는 남자. 그는 분명 암살해야 할 대상인 김우현이 최대 A급의 잠재력을 가진 헌터라고 했다.

하지만 방금 본 김우현의 모습은 어떤가?

“……괴물!”

괴물이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군대를 호령하는 괴물.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A급 괴수가 어떤 식으로 김우현에게 놀아나는지 봤다.

처음에는 놀라웠고, 두 번째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마지막 괴수가 그림자로 이루어진 군대에게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남자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암습을 가하기 전 남자는 확신이 있었다. 김우현을 암살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리고 혹여라도 일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의 몸 하나는 충분히 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생각이 무척이나 우스운 오만이라는 걸 깨달았다.

김우현을 공격했을 바로 그때부터.

‘분명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김우현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같은 S급 헌터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암살당한 적이 있는 그 필살의 일격을 그저 고개를 한 번 꺾는 것으로 회피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어진 반격.

‘만약 그때 그 헌터가 방심하지 않고 나를 오체분시했다면…….’

능력을 얻은 뒤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의 공포가 슬쩍 남자의 등에 올라온 것 같았다.

그 뒤로 한참이나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몸을 움직였다.

김우현에게 당했던 상처가 아직도 몸의 거동을 불편하게 했지만, 혹시라도 그 괴물이 따라온다는 가정을 하면 잠시라도 남자는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를 추격할 시간도 없이 전부 서울 쪽으로 올라갈 테지만.’

남자는 힘겹게 산을 타면서도, 처음 이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던 ‘규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총 40개체의 A급 괴수들이 북한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갈 겁니다. 그리고 저희의 계획대로 지금 한국에 있는 A급 이상의 헌터들은 전부 연천에 집중될 겁니다. 그러니 거기서 당신들은 괴수들과 함께 내려가 헌터들에게 최대한 혼란을 주십시요, 제가 암살 대상으로 찍은 인물을 살해하는 것도 좋고, 최대한 A급 괴수가 토벌당하는 시간을 늦추시는 것도 좋습니다.’

구륜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정확히 1시간, 딱 한 시간만 협회와 헌터의 주의를 끄세요. 뭐, 그 뒤에는 이미 ‘따로’ 준비한 괴수들이 서울 한복판에 활개 치고 있을 테니.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저희의 목표는 ‘한국’을 흔드는 것, 한국의 시민들이 기존의 ‘길드’와’협회’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여우처럼 째진 눈을 가진 규륜의 미소가 떠오르자, 마치 그 기억을 지우려는 듯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분 나쁜 새끼…….’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작전을 브리핑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그 째진 미소가 무척이나 거슬리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남자는 어두운 산길을 올랐다.

* * *

“이런 젠장! 잔류 인원 없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A급 이상의 헌터들은 죄다 연천 지역에 파견 나가 있는 중이고, 각 길드에 연락을 넣고 있지만 당장 서울에는 가용할만한 헌터가 없답니다!”

“야! 그럼 당장 B급 헌터들이라도 모여서 막아! 협회 헌터들한테 다 연락 돌려!”

“이미 괴수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30㎞는 전부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도망쳤던 남자의 오른팔을 회수한 뒤 복귀한 협회 내부에서는 때아닌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분명 아까 전만 해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김우석 부장은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를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 주변에 있던 인원들도 하나같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인 작전실.

김우석 부장에게 이 상황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김우석 부장은 아무래도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지시를 내리고 있는 김우석 부장 너머로 모니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나는 지금 작전실이 왜 이런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왼쪽 상단에는 지상파 방송 로고가 박혀 있었고, 모니터에서 방송 중인 뉴스에서는…….

“저건 또 무슨…….”

A급 괴수들이 한강 한가운데에서 날뛰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본 뒤에 곧바로 밑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광진대교 부근 A급 괴수 출현!’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알던 회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아니, 단연코 이런 일은 없었다.

분명 회귀 전과는 많이 달라진 감이 있지만 결국 A급 괴수 남하 사건은 어찌어찌 괴수들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괴수들을 토벌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가 다르다. 하나하나 지적하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부분이 뒤틀어져 있었다.

완전히 달라진 미래.

“지금 당장 협회 인원들 전부 수송해! 지금 당장이다!”

“알겠습니다!”

“각 길드에서도 인원 차출해서 빨리 수송하고! 왜 하필이면 이럴 때!”

한강 한복판에 나타난 괴수들이 서서히 땅으로 걸음을 옮긴다.

시민들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도망치고, 괴수들은 온갖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한다.

김우석 부장의 얼굴이 까맣게 죽어가고, 일순간 시끄러웠던 작전소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뒤늦게 무전을 연결해놓은 스피커를 통해 헌터들이 서울로 내려갔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저게…… 뭡니까?”

이변이 일어났다.

고수부지를 넘어 도로 쪽으로 진입하려던 괴수들이 괴성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어둠이 자리했던 하늘에, 푸른 달이 떠 있었다.

노란 달도 아닌, 마치 지구 전체에 전구를 틀어 놓은 듯 네온사인만으로 가득한 지상을 비추는 푸른 달이, 떠 있었다.

상황을 중계하던 캐스터가 일순 조용해지고, 괴수들이 순간 발광하는 푸른 달을 본다.

“허…….”

그 상황에서 나는 절로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막지 못했다.

이 장면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본 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잊은 적이 없었다.

회귀 전, 대형 던전을 제때 막지 못해 산 하나가 몬스터로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또 막았다.

그리고 그런 지루한 전선이 계속되던 중, ‘푸른 달’이 떴다.

“……벌써 개화했다고?”

회귀 전, ‘이은별’을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푸른 달’이 지금 내 눈앞에 떠 있었다.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달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린다.

캐스터는 급박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카메라는 푸른빛을 내뿜는 달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것들을 보았다.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유성’을!

유성이 서서히 지상과 가까워진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급박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던 캐스터는 입을 열지 않았고, 카메라는 떨어지는 유성우를 촬영하고, 그 유성우가 땅과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괴수들은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는지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유성우는 괴수들이 있던 곳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일시적으로 카메라가 상황을 잡지 못했는지 화면이 이리저리로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먼지가 걷힌 그곳에서 찍힌 화면에는…….

“지금 지원 나갔던 헌터들, 지원 취소 요청해…….”

온몸이 푸른 오오라에 감싸여 있는 ‘이은별’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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