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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26화 (2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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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 026화

7장 A급 괴수 남하(3)

어둠을 휘감은 그림자들이 쓰나미처럼 폐공장 너머에 보이는 A급 괴수들에게 몰려간다. 물결치는 어둠이 괴수들을 삼키려 한다.

그 광경은 신화적인 전투의 한 장면이라기보단, 단내를 풍기는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 떼를 연상케 했다.

“총 8마리인가.”

폐공장 언저리에서부터 나타난 여덟 마리 괴수. 제각각 형태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지만, 나는 회귀 전의 경험을 통해 그 괴수들이 틀림없는 ‘A급’ 괴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가장 앞서 달려드는 놈.

사족보행을 하는 A급 늑대형 괴수 ‘아랑’이 어지간한 건물 한 채는 될 법한 거대한 덩치를 앞세우며 달려오는 그림자들을 찢어발겼다.

펑!

그림자들과 아랑이 충돌하자 천둥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날아가는 그림자들.

하지만 그림자들이 날아감과 동시에, 겁도 없이 그림자에게 달려든 아랑은 마치 어둠이 침식하듯 그림자들에게 삼켜지기 시작했다.

개미 떼. 그래, 딱 그 모양새다.

발을 타고 끝없이 기어 올라오는 그림자들.

아랑은 뒤늦게 이상함을 깨닫고 발을 구르며 다리에 붙은 그림자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그림자들은 묵묵히 늑대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아우우우우!!!”

분명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린다.

“하울링인가.”

헌터들을 일시적으로 경직되게 만드는, 자칫하면 헌터들로서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스킬.

하지만 그림자는 그렇지 않았다. 피가 흐르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는 그림자에게 포효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랑이 소름 끼치는 포효를 내질러도 그림자들은 움찔하지도 않은 채, 개미처럼 괴수의 몸을 기어오르며 물어뜯는다.

발을 넘어서 허벅지, 허벅지를 넘어서 몸통, 몸통을 넘어서 전신을.

“크아아아아아앙! 켁! 크엑! 크아악! 크엑!!!”

아랑이 폐공장 사이를 날뛰며 그림자들 떼어내기 위해 몸을 구르지만, 떨어져 나가는 그림자보다 아랑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그림자들이 훨씬 많았다.

마침내 그림자 무리에 완전히 덮여 검게 물들어버린 아랑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푹! 푸욱! 푹!

그림자가 쥐고 있던 칼이 무심하게 살을 찢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림자에 먹힌 아랑이 연신 괴성을 내뿜지만, 그림자들은 멈추지 않는다.

아랑의 전신을 감싼 그림자는 마치 포식을 하듯 탐욕스럽게 아랑의 살점을 찢어내고 피를 흩뿌렸다.

숫자의 폭력.

슬쩍 시선을 돌려 그림자들을 떨치기 위해 몸을 뒤틀고 있는 다른 A급 괴수들을 본다.

어떤 괴수는 아랑보다 더 몸짓이 컸다.

또 어떤 괴수는 아랑보다는 작지만 매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괴수는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갑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또 다른 괴수는 헌터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괴수들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저 그림자에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그림자에 묻힌 채로 발악하듯 사방을 미친개처럼 뛰어다니던 아랑의 움직임이 점차 뜸해진다.

땅에 흩뿌려지는 피가 많아지고, 아랑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소음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쿵!

A급 괴수 아랑은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림자에게 먹혀 허무하게 그 생명을 다했다.

죽어 싱싱하지 않게 된 먹잇감에는 더는 용무가 없어진 그림자들이 썰물처럼 물러 나오고, 그 자리에는 엉망진창이 되어 원형을 찾아볼 길이 없는 아랑의 시체만 남았다.

처음 그림자들에게 달려들었을 때 보였던 푸른 털은 모두 쥐어뜯긴 나머지 사라지고 없었고, 그 아래 피부는 갈기갈기 찢기고 살점도 뜯겨나가 허연 뼈만을 흉측하게 드러내고 있는 몸통.

뱃가죽은 물론이고 근육도 뜯겨나가 살색 내장이 흘러나와 더운 김을 뿜고 있으며, 압도적인 위압감을 뽐내던 얼굴은 살점이 찢기고 두개골이 부서져 질척한 피와 뇌수로 얼룩져 더 이상 위엄이고 뭐고 찾아볼 수 없는 흉물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랑을 죽이고 달려온 그림자들이 다른 괴수들에게로 달라붙으며, 상황은 괴수에게 점점 끔찍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헌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낼 수 있는 A급 괴수들이, 숫자의 폭력 앞에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몸집이 아랑보다 배는 커 보였던 괴수는 온몸이 난도질 되어 공장 전체를 붉은 피로 물들일 정도로 피를 뿌려대고 있었고, 매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괴수와 헌터들에게 치명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또 다른 괴수는 그림자들에게 잠식되어 조금 전 아랑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온몸이 딱딱한 갑각으로 되어 있는 괴수는 온몸에 그림자들이 잔뜩 들러붙어 질질 끌고 다니던 끝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그림자들에게 눌려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림자들을 먹어치웠던 한 괴수는 몸속에서부터 위장을 갈기갈기 찢어대는 그림자들에 의해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괴수가 얼마나 강한지는 전혀 상관없다. 아무리 괴수가 강하더라도, 내 그림자는 망가지건 말건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

괴수들의 생명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쥐고 있던 검을 까딱거렸다.

* * *

연천군청에 급조해서 만들어진 헌터 협회 본부에서 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김우석 부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총 20개로 나누어져 있는 모니터에서는 금방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송출되고 있었다.

신천 진영의 헌터들이 괴수들에게 당하는 장면이나, 무천 진영의 헌터들이 괴수들을 유도해 사냥하는 장면 등.

하지만 지금 김우석에게 그런 장면들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저게 D급이라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헌터, 그림자 왕 ‘김우현.’

그는 강형찬 부장의 이름을 대며 촬영용 드론을 가지고 갔고, 그 촬영용 드론에서는 보고도 믿지 못할 장면을 연속해서 송출해 주고 있었다.

A급 헌터가 최소 16명은 붙어야 안전하게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진 A급 괴수들.

놀랍게도 김우현이 찾아간 곳에서는 그 괴수들이 무려 8개체나 추가로 나타났다.

“물론 저도 그림자 왕의 영상을 많이 찾아보기는 했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김우석과 함께 김우현의 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정보부원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상에서 A급 괴수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 한 명이 만들어 낸 ‘숫자’의 폭력으로 인해서.

당장 다른 곳의 모니터만 봐도, 수백에 달하는 헌터들이 통상적으로 10개체 초반의 괴수를 잡기 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그들은 모두 최소 B급 이상의 헌터들일 것이다.

고구려 쪽 모니터는 SS급 헌터 이광천의 활약으로 헌터들의 생존률이 높은 편이지만, 오히려 시내 쪽에 자리 잡고 있던 무천 길드에서는 괴수를 유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헌터가 여럿 보였다.

“……아무튼 김우현 헌터가 잡고 있는 8개체 수까지 합하면 지금 헌터들이 상대하고 있는 A급 괴수는 총 40개체로, 저희가 예상한 수치와 일치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정보부원이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뒤적거리더니 김우석 부장에게 말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정보부원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지금부터 추가적으로 길드 조력에 들어간다. 길드 녀석들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봐.”

김우석 부장은 그제야 김우현 헌터의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다른 화면을 모니터링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각 길드에 전달해.”

이윽고 김우석 부장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김우석의 말을 정리한 정보부원들은 눈을 모니터에서 떼지 않은 채 통신 기기를 조작해 각각 담당하고 있는 길드에게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김우석 부장은 문득 이상한 화면을 봤다.

“……뭐야?”

분명 조금 전까지도 잘 나오고 있던 모니터 상단의 신호가 no signal로 바뀌어 있었다.

“이건 분명 김우현 헌터의…….”

김우석은 no signal이라고 떠 있는 화면을 보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 * *

“끝인가.”

최후의 저항이라도 하듯 펄떡거리던 괴수가 마침내 쓰러졌다.

거대한 소음과 함께 쓰러진 괴수.

폐공장 단지였던 이곳은, A급 괴수와의 전투로 인해 이제 공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미사일 폭격을 당한 도시 정도일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는 죽어 있는 괴수들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난자되어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괴수들부터 시작해, 겉으로는 아무런 외상도 없지만, 온갖 구멍에서는 피를 쏟고 죽어 있는 괴수까지.

그저 어둡고 칙칙하기만 했던 폐공장은, 이제 곳곳이 괴수의 피로 물들여져 있어 그냥 보기만 해도 절로 소름이 끼치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괴성을 지르던 괴수가 날뛰던 이곳은, 마치 어두운 밤의 묘지처럼 조용해졌다.

들리는 건 작은 모터소음을 내며 아직 하늘에 떠 있는 드론뿐.

“……다른 곳도 전투를 시작했나?”

내심 전투를 치르며 지원군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지원군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다른 곳도 이곳으로 몰려오지 않은 나머지 괴수와 싸우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쁘지 않네.”

죽은 괴수들의 시체.

나는 이 괴수 무리를 혼자 독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총 8개의 마정석을 얻을 수 있었다.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른 길들의 전투를 도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도 환영받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어찌 되었든 도움을 받는 시점부터 길드와 나는 분배권 가지고 투닥거려야 하니까.

그렇다고 분배권을 포기해 버리자니 마냥 길드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건 또 사양하고 싶다.

나는 공장에 뭉쳐 있던 그림자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3,500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가지고 있던 그림자의 군세가 서서히 일그러져 뭉그러진 형체가 된다.

그러고는 마치 그 자리에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내 그림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파각!

무엇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하늘에 떠 있었던 드론이 무엇인가에 꽂힌 채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불규칙한 모터 소리. 조금 더 드론을 관찰하다 나는 드론의 정면에 박혀 있는 게 하나의 단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깡! 콰가가가각!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드론에 꽂혀 있는 게 ‘단도’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림자들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리는 귀가 깨질듯한 쇳소리.

눈알을 굴려 오른쪽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얼굴이 있던 곳에는 형형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는 칼이 쇳소리와 함께 떨리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내 눈앞에는 그림자만큼이나 어두운 묵빛 의복을 입고, 얼굴까지 철저하게 가려 눈밖에 보이지 않는 복면인이 온몸이 그림자에게 붙잡힌 채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던 칼은 그림자들의 칼에 의해 회수하지도, 반대로 내뻗지도 못한 채 고정되었고, 그의 몸은 달라붙어 있는 그림자에게 속박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뭐 하냐?”

나는 복면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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