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나 혼자 10만 대군 021화
6장 ‘탐식’(2)
종로 구석, 낡은 주택들 사이에 있는 오래된 양식으로 지어진 빌라의 낡은 방 안에서 김서윤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났다.
“……으! 이런 씨…….”
땀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한 차례 본 김서윤은 이내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성질을 내곤 생각에 잠겼다.
‘또 그 꿈이야……. 이 엿 같은 능력이 개화했을 때 그 꿈.’
김서윤은 꿈속에서 보았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중학교 1학년 때 갑작스레 나타난 시스템의 개화.
그리고 그 직후 곧바로 나타난 ‘능력 개화’ 현상. 그리고 능력이 개화하자마자 친했던 친구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지독한 공포와 혐오의 시선들.
제일 친했던 친구든, 별 접점이 없었던 친구든 능력을 개화해 외모가 변한 그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감정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공포와 혐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뒤섞인 싸늘한 시선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퇴를 위해 만났던 담임 선생님부터,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나가던 경비원 아저씨, 슈퍼 아줌마, 아는 동네 오빠,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서윤을 본 부모님까지, 그들 모두가 김서윤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이 능력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능력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내 김서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능력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김서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능력을 개화했던 그때부터, 김서윤은 ‘악마’로 불렸다.
“×발…… 이런 개 X 같은 꿈을 왜 계속 꾸는 거냐고……!!”
김서윤은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지갑을 집어 던졌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지갑이 한쪽 벽에 처박혀 바닥에 떨어졌다.
김서윤은 바닥에 팽개쳐진 지갑처럼 자신의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는 곧 지갑이 있던 곳에 놓여 있던 꾸깃꾸깃한 종이를 집어 들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그 새끼…….”
그녀는 오후에 하교 도중 자신을 찾아왔던 남자를 생각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헌터.
혼자서 대형 던전을 클리어한 괴물 헌터.
그림자 왕 김우현.
최근 이상하게 그녀가 가는 길목마다 기다리며 마치 일부러 짜고 치듯 김서윤에게 달려드는 쓰레기들도 짜증 났지만, 단언하건대 오늘 만났던 그 녀석이 제일 짜증 났다.
“……도대체 뭔데 훈계질이냐고……!”
김서윤은 다짜고짜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던 김우현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태연한 표정부터 시작해서, 능력을 사용한 상태에서 휘두른 팔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막아내는 그 여유로운 모습을 떠올리자 괜히 더 짜증이 났다.
곧 김서윤은 김우현이 주었던 명함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는 왠지 억울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짜증 나…….”
* * *
여의도에 있는 ‘구매소.’
다음날 바로 찾아가겠다는 생각과 달리, 김서윤을 만나고 난 후 4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구매소에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김우현 헌터님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김우현 헌터님은 이번에 협회 측에서 따로 제공하는 할인 프로모션을 받으셔서 구매소에서 구매 가능한 B급 이하의 장비를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냥 구매소에 가서 대충 물건들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구매소에 들르기 전 대형 던전의 추가 보상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협회에 갔을 때, 나는 강형찬 부장에게서 뜻밖의 호의를 받을 수 있었다.
추가 보상 이외에도 대형 던전을 별다른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없이 막아준 것에 대한 강형찬의 개인적인 보상으로 끼워 넣어준 프로모션.
종업원은 처음 구매소에 방문한 나에게 300평 남짓한 매장에서 등급별로 나누어져 있는 구역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매장 설명을 모두 끝낸 종업원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 달라는 말과 함께 카운터로 돌아갔다.
“역시 더럽게 비싸기는 하네.”
300평은 넘어 보이는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본 방어구와 무기들의 가격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도 운 좋게 받게 된 30% 할인 때문에 나쁘지는 않지.”
벽에 빽빽하게 진열된 방어구와 무기들.
방어구는 기본적인 천부터 시작해 중세 기사들이 입을 것 같은 플레이트 메일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고, 무기도 그 종류가 많았다.
“우선 내가 사야 하는 무기는 네 개.”
둔기와 검, 그리고 단검과 스태프였다.
“그리고 방어구도 하나 필요해.”
사실 방어구와 무기를 찬다고 해서 내 그림자들이 더 강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 그림자들은 오직 내 외형만을 따라 할 뿐이고, 아무리 강한 무기를 들고 있다고 한들 내 외형만을 본뜬 그림자에게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 무기는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D급 장비들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방어구의 경우는 몸을 지켜줄 장비다 보니 내 선에서 최대한 좋은 물건을 구매할 생각이었고, 이은별의 스태프도 되도록 좋은 장비를 사 줄 생각이었다.
아까 종업원이 안내해 주었던 D급 장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적당해 보이는 둔기 하나를 집어 들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오르며 아이템 정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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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파의 뿔로 제작한 몽둥이]
등급: D
쿠파의 뿔을 매개체 삼아 제작한 몽둥이이다. 전체적인 내구성이 매우 높으며 뿔을 이용해 만들었기에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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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헌터가 개화하는 시스템은 일반적인 물품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던전’과 ‘괴수’에게서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물품이 있다면 여지없이 상태창이 떴다.
나는 그 몽둥이를 집어 들고 곧바로 다음에 살 물건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쇼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애초에 무슨 장비를 구매할지 대충 생각을 하고 온 것도 있지만, 구매소의 경우 무기나 방어구를 집어 들 경우 나오는 ‘시스템’이 쇼핑 시간을 단축하는 데 꽤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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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락의 가죽으로 엮어낸 가죽 상의 & 하의]
등급: B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괴수 카락의 가죽으로 엮어 만들어 낸 가죽 상의 & 하의이다. 가죽이 두껍고 질겨 쉽게 뚫리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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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습의 결정을 박아넣은 수정 지팡이]
등급: B
위습의 결정을 박아넣은 지팡이다. 착용자의 마나 사용률을 높여주며, 몸에 지니고 있으면 체내에 마나가 쌓이는 속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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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에 사용할 무기인 D급 둔기와 단검, 장검을 전부 고른 나는 카운터에 갔다.
“프로모션을 전부 적용해서 카락 상 하의는 각각 2억 7,000만 원, 둔기와 장검, 단검은 각각 2,000만 원씩, 그리고 위습의 결정을 박아넣은 수정 지팡이는 3억으로, 총합 9억입니다!”
종업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을 꺼내 카드를 내밀었다.
어차피 이번 대형 던전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카드 안에는 20억 정도의 금액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종업원은 익숙한 듯 카드를 받아 긁으며 입을 열었다.
“구매하신 장비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장비들을 전부 배달해 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곳에 주소를 써 주세요.”
내 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접수 서류를 꺼낸 그녀는 익숙하게 내가 적어야 하는 부분을 짚으며 설명을 했고, 나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꽤 빠른 속도로 서류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내 서류 작성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카운터에 두었던 장비를 카운터 뒤쪽으로 가지고 간 뒤 돌아와서 말했다.
“우선 접수는 완료되었구요. 장비는 내일 점심쯤 적어주신 주소로 배송될 거예요. 이미 구매소에서 한 번 서류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구매한 뒤에 말씀만 하시면 이미 한 번 배송했던 곳으로 장비를 보낼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종업원의 인사를 받고는 구매소를 나왔다.
“자, 그럼 장비 구매도 끝났고.”
지난 나흘 동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전부 끝내놓았다. 종업원 구인 글도 인터넷에 올려놓은 상태이니 조만간 한 번 상황을 보면 되겠지.
“사실 지연희에게 추천받으면 좀 더 스펙 좋은 사무원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당장은 지연희와 동맹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장차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길드 내부의 일을 처리해야 할 사무원을 찾는 것만큼은 지연희에게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협회 측에 도움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럼 이제 남은 건…… 다시 김서윤을 영입하는 것뿐인가.”
확실히 지난 나흘 동안 김서윤을 어떻게 영입할지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했지만,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자료는 몇 개 찾았어도 지금 당장 김서윤을 길드로 끌어들일 만한 묘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 보면 오히려 김서윤의 트라우마가 뭔지 떠보겠답시고 김서윤의 외모를 거론한 터라, 그 바람에 영입이 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했다.
“후…… 아무튼 김서윤은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대하기가 힘들구나.”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
“그래도 영입은 해야지…….”
앞으로 5년 뒤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면 역시 지금 김서윤을 영입하지 않는 건 손해다.
어차피 지금 굳이 길드에 영입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알아서 협회 측과 함께 세계 멸망급 재앙에 맞서 싸우겠지만, 회귀 전의 협회는 김서윤을 어처구니없는 데에 활용하다가 결국 그녀를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둬서는 안 되지.”
짧은 상념을 끝내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곧바로 지연희에게 받았던 김서윤의 거주지 정보를 찾기로 했다.
“지금 시간이 3시니까…… 이번에는 그냥 집 앞에서 기다리면 되려나?”
할 말도 좀 생각해 두자.
그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에서 지연희가 보낸 문자를 찾고 있을 때였다.
“……뭐야?”
뜬금없이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010-4XX2-1XX5]
발신자 표시가 휴대폰 번호로 되어 있는 걸 봐서는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란 건데…… 나한테 전화가 올 사람이 있었나?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나는 손가락을 빠르게 터치해 통화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그 길드에 들어가면 헌터 계약금이 얼마야?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순간, 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김서윤…… 씨?”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한 번 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입을 연 순간,
-나 좀 도와줘.
김서윤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