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나 혼자 10만 대군 019화
5장 유명세(2)
대형 던전 ‘사령술사의 밤’이 클리어된 지도 어느덧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김우현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오게 되었지만, 그간 올라왔던 김우현과 관련된 동영상과 그의 이야기들은 이미 인터넷상에 퍼질 대로 퍼져 모른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외에도 군집체 스킬의 영향으로 머리가 아파 앓아누웠던 2일 동안, 내게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대형 던전 공략에 참여한 대가로 협회에서 꽤 많은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강형찬 부장에게 물어보니, 아무래도 이 보상금은 ‘대형 던전’을 클리어한 것에 대한 보상금인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 한국에서의 내 인기가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튜토리얼 던전을 30분 만에 클리어한 신인 헌터 때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때는 그저 헌터업계와 인터넷에서 명성을 얻었을 뿐이었지만, 지금 내 인지도는 산골에서 사는 자연인 정도가 아니면 누구나 내 얼굴을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조금 전에도 사무실로 나오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함께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 중 한 명이 나를 알아본 덕분에, 나는 사무실이 있는 역에 도착할 때까지 시민들에게 회귀 전에 만들어두었던 사인을 해줘야 했다.
회귀하고 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간만의 피로감.
고작 40분 정도를 휘둘렸을 뿐이지만, 시민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특히 사인을 받고 말겠다는 의지로 사무실까지 쫓아온 사람들은 솔직히 좀 무서웠다.
그리고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와 새삼 내가 유명해졌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 이름을 검색어로 인터넷을 하면서, 나는 그 유명세를 실감했다.
내 팬카페가 있었다.
만들어진 날짜는 2주도 되지 않았지만, 회원수는 총 5만 명. 심지어 카페는 점심시간에도 무척이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듯 굉장히 글 리젠이 빨랐다.
심지어 카페 메인 최상단에 있는 추천글에는 ‘김우현 헌터한테 사인받았다!(인증)’이라는 글이, 추천수 100을 넘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내가 앓아누워 있는 2일 동안 나는 지금 갑자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가 되었다.
“……알려주세요.”
뭐 그렇게 피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일들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제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은별 씨를 영입한 이유는…….”
“그런 허울 좋은 대답 말고, 저는 진실이 듣고 싶어요.”
“…….”
시민들에게 시달리며 사무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은별에게 붙잡혀 추궁 아닌 추궁을 받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
사무실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 쪽에서 헌터 훈련을 받고 있어야 할 이은별이 사무실에 온 것을 시작으로, 이런 어색한 상황이 10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아,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이은별을 보며 슬쩍 시선을 돌린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길드장님이 대형 던전에서 전투하는 영상을 봤어요.”
그러던 중 이은별이 돌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고, 이은별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은 정말 강하더라구요. 솔직히 D급 헌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길드장님은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길드장님은 인터넷에서 거의 S급으로 취급받고 있어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할지도 모르죠. A급 헌터 수십이 참전해야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감수하고 클리어할 수 있는 튜토리얼 던전을 그냥 혈혈단신으로, 제대로 된 무기나 방어구도 없이 클리어하셨으니까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래서 이상해요.”
이은별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저를 영입하신 건가요? 이런 질문이 길드장님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일 수도 있어요. 제 꼴이 물에서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얘기로 들린다는 것도 잘 알아요.”
이어서 꾹 참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안면도 없는 저를 위해 다른 길드와 척을 지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D급 헌터를 무려 4억이나 되는 거금의 계약금까지 주고서 영입한 게……!”
이은별은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음…….”
나는 그런 이은별을 보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녀의 불신이 폭발한 것도 어찌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뭐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내 잘못이기도 했다. 그냥 미래에 SSS급 헌터가 될 녀석들을 미리 모아서 동료로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그냥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해서 어떻게든 다독여 볼까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불신이 가득 차 있어 이전과 같은 대답을 내놨다간 그녀에게 오히려 더 큰 불신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기로 했다.
“제가 이은별 씨를 4억의 계약금으로 걸고 영입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첫 번째 이유는 이은별 씨가 당장 가지고 있는 빚을 갚게 하려고. 그리고 두 번째는 당장 열악한 이은별 씨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역시…….”
“솔직히 4억은 D급 헌터가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은 아니죠. 9 대 1이라는 비율도 결국 여러 가지 이유를 대기는 했지만 마찬가지구요.”
나는 그렇게까지 말한 뒤 이은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축 처져 있었다. 진실을 물어봤으면서 막상 자신이 짐작하고 있던 진실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상심한 듯한 표정.
“……뭐, 결론적으로 봤을 때 4억으로 이은별 씨와 계약한 건 어찌 보면 이은별 헌터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가 맞습니다.”
“…….”
“하지만!”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이은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은별 씨의 호감을 얻고 싶었던 건 이은별 씨를 꼬시려거나 추잡한 짓거리를 하려는 게 이니라, 이은별 씨의 미래를 보고 호감을 사고 싶었던 겁니다.”
“뭐라구요……?”
나는 그런 이은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뒤로, 나는 이은별에게 약간의 거짓에 진실을 섞어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러니까, 그림자를 통해 단편적으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이은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저는 이은별 씨의 그림자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마 제 생각에 이은별 씨가 ‘능력 개화’를 하게 된다면…….”
나는 슬쩍 이은별을 바라보고는 말끝을 흐린 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이은별 씨는 저와 비슷한 정도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겁니다.”
“길드장님이랑 비슷한 정도……까지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이은별에게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사실 그래서 별건 아니지만 이은별 씨의 능력 개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제 나름대로 구상해 놓은 게 있습니다. 물론 제가 구성한 프로그램이 이은별 씨의 능력을 개화하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잠시 쉬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마 제 생각에 이은별 씨의 능력에 대한 끄트머리를 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 그렇다면 지금 당장 길드장님이 말한 프로그램이라는 걸……!”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벌써부터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드는 그녀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진정하세요. 유감스럽게도 이 프로그램은 지금 당장 실행할 수가 없거든요.”
“왜, 왜죠?!”
“당장 이은별 씨가 불안해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지만 아직 프로그램이 완성 단계는 아니거든요.”
“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에게 나는 추가로 말했다.
“그러니까 1주일, 지금부터 딱 1주일 뒤에 이은별 씨에게 제가 구상한 프로그램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한순간 그녀가 얼굴을 다시 들었다.
“그러니까 우선 그 1주일 동안은, 협회 쪽에서 헌터 기량을 올리는 데 집중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완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멘탈이 회복된 이은별은 이내 늦게라도 헌터 협회에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사무실을 떠났고, 나는 이은별이 나간 뒤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어떻게 거짓말로 꾸며서 위기를 넘기기는 했는데…….”
애초에 그냥 모아 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있었던 내게 이은별의 능력 개화를 도와줄 프로그램이 있을 리 없었다.
“하…….”
급한 불을 끄느라 우선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있는 대로 끌어와서 썼지만, 역시 후회가 되었다.
“……뭐, 이은별이 어떻게 능력을 개화했는지는 알고 있기는 한데.”
회귀 전, 이은별 본인에게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은별이 출연한 TV프로그램에서 그녀가 어떻게 능력을 개화했는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이 점점 많아지는구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당장 영입 대상인 김서윤의 정보도 찾아봐야 하고, 그 뒤에는 길드 관련 문제랑 대형 던전 보상문제에…… 이은별의 능력 개화 프로그램까지.”
……내 기억으로 A급 괴수 남하 사건은 분명 1달 정도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괴수 남하 사건이 내 예상보다 꽤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나 해야지.”
나는 곧 키보드를 두드렸다.
* * *
어두운 저녁, 서울 종로상가 쪽에 늘어서 있는 빌라촌.
80년대에 지어진 곳이라 골목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이곳에는 소위 학생들이 일진이라고 부르는 놈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 적당히 어리바리해 보이는 학생들을 잡아 돈을 뜯고는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붙잡고 삥을 뜯고 있었다.
“으, 아아아…….”
“괴, 괴물이야……. 어떻게 저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학생들에게 돈을 갈취하던 그들은, ‘괴물’과 만났다.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고, 머리에는 마치 도깨비처럼 거대한 뿔이 양쪽으로 나 있었고, 입은 마치 상어의 이빨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씨, 씨×! 오지 마!!”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소리 지르던 남자의 얼굴에 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종로의 골목길은 한동안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비명이 멈췄을 때쯤.
비명이 들렸던 어두운 골목길 끝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170㎝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한 여자. 입고 있는 교복이 그녀가 학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무척이나 평온하게, 검은 가방을 메고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