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나 혼자 10만 대군 017화
4장 대형 던전(5)
거대한 공동 안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죽은 자들의 군대와 내가 만든 그림자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림자들의 몽둥이에 머리통이 날아간 좀비의 시체가 쓰러지고, 그 뒤에 있던 듀라한의 일검에 그림자가 소멸한다.
그림자에게 창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본의 뒤로 그림자들이 한 무더기로 다가가 스켈레톤 본의 머리를 깨부숴버린다.
언데드의 괴성과 그림자의 몽둥이 소리가 교차하며 공동 안에 울려 퍼진다.
좀비보다도 명백하게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 구울이 한 그림자에게 달려들다가 오히려 많은 그림자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그에 반해 좀비를 쫓아 들어간 그림자가 좀비에게 온몸이 뜯어먹혀 산산이 분해되는 장면도 보인다.
“크레에에엑!”
달려들던 구울이 몽둥이찜질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간다.
눈앞에 띄워놓은 시스템창에서는 ‘3,500’이라는 숫자가 수시로 변하며 그래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떨 때는 한순간 3,300까지 떨어졌던 숫자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차오르고, 또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당장은 박빙이다.”
그림자는 몬스터의 시체 안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파먹고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리치는 듀라한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어쩌면 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상위의 몬스터를 소환해 내는 리치.
지금 당장이야 박빙이지만 만약 리치가 소환하는 몬스터가 점점 상위 단계로 바뀐다면 불리해지는 건 나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시스템창에 있는 그림자들의 단위가 십에서 백으로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수시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그림자들을 이끌고 리치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림자들 사이에 있던 내가 튀어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언데드들이 내 몸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지만, 그림자들이 달려들어 언데드를 막아낸다.
빠각 하고 스켈레톤의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머리가 날아간다.
괴성을 지르던 구울의 사지가 뜯겨나간다.
영역 안에 있는 그림자들을 이용해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방어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혹시라도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언데드는 영역 안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몽둥이로 후려친다.
내 주변에 있는 그림자의 형체와 내 바로 앞을 빙빙 도는 그림자의 팔과 검게 물든 몽둥이들.
앞을 가로막는 언데드들을 죄다 깨부숴버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리치와의 거리가 5m도 채 남지 않았을 때쯤, 상위 언데드인 듀라한이 내게 달려오는 것을 보며 나는 곧바로 정신을 집중해 ‘군집체’를 사용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그림자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거대한 손이 만들어졌다.
그 손은 곧바로 달려오고 있는 듀라한들을 일제히 쳐낸 뒤, 곧바로 주문을 외우고 있는 리치를 덮쳤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군집체가 풀린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일순간 시스템이 표시하는 그림자들의 숫자가 2000대로 내려간다.
[흐흐흐. 필멸자여, 고작 그런 공격으로 내 방어를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딱딱거리는 턱과 함께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순간 초조함을 느꼈다.
방어막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군집체 스킬로도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리치의 눈앞에 듀라한이 소환된다.
[제 발로 적진 한가운데 들어오다니, 역시나 어리석구나! 필멸자여.]
순간적으로 언데드들이 그림자를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숫자.
시스템창에서는 줄어드는 그림자의 숫자가 보였고, 점점 그림자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오는 언데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스킬을 쓰고 난 후의 부작용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 스킬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곧 그림자들을 거의 밀어내고 들어오는 언데드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군집체 스킬을 발동했다.
[응……!?]
다시 한번 영역 내에서 그림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그림자들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영역 내로 끼어 들어왔던 언데드들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그림자들에게 밀려 영역 밖으로 튕겨 나가고, 영역을 중심으로 그림자들이 얽히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이 서로를 타고 올라가 붙잡고 붙잡으며 형상을 만들어 낸다.
순간 머리가 슬쩍 아파오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스킬을 계속해서 운용했다.
영역을 기점으로 다리로 보이는 듯한 형상이 생겨나고, 그 주변을 따라 그림자들이 이어져 나가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서로의 팔다리를 잇고 이으며 때로는 서로를 밟고 밟으며 그림자들이 최종적으로 만들어 낸 형상은 거대한 사람, ‘거인’의 모습이었다.
딱 봐도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거인’이 공동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
곧 크게 한숨을 뱉어낸 나는 곧바로 거인을 움직여 영역과 거인을 이어주는 다리에 있는 언데드들을 손으로 쓸어내었다.
단지 그 행동 하나만으로 2,000대 중반까지 줄어들고 있는 그림자의 숫자가 다시 3,000대로 늘어난다.
새롭게 나타난 그림자들을 영역 안으로 소환해 방벽을 만들고, 곧바로 거인을 이용해 다시 한번 리치의 머리 위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야말로 집 한 채 크기는 되어 보이는 거인의 주먹이 리치의 머리 위에 꽂혔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리치 주변에 있던 바닥이 꺼지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낸다.
그와 동시에 이차적인 피해로 주변 땅들이 쩍쩍 갈라지며 언데드들이 한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린다.
하지만 그런데도,
[흐흐흐. 이번엔 좀 위험했다만 이 방어는 고작 그 정도의 공격이……!?]
리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인의 오른손이 다시 한번 리치의 머리 위에 꽂힌다.!
꽝!!!
땅이 움푹 파이며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무슨……!]
꽝!
그다음엔 곧바로 거인의 왼손이 다시 한번 내리꽂힌다.
리치 주변에 있던 땅이 완전히 꺼지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지만, 리치의 방어막은 아직도 건재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빠르게……!”
거인의 주먹이 조금 더 빨라진다.
꽝! 꽝! 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리치의 베리어.
조금 더 속도를 올린다!
“조금 더 빠르게……!”
스킬을 집중한다. 그 반동으로 머리가 아파왔지만, 아직은 참을 만했다.
꽝! 꽝! 꽝! 꽝! 꽝!
거대한 거인이 몸집에 맞지 않게 빠른 속도로 리치가 있던 바닥을 연속해서 내리친다.
이미 리치가 있던 곳은 흙먼지와 크레이터로 가득해 보이지 않았지만, 언데드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직 리치가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거인의 양손이 미친 듯이 땅을 연타한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흙먼지가 일었고, 거인이 밟고 있던 바닥에 거대한 빗금이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 그 속도를 버티지 못한 거인의 팔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한 번 찍을 때마다 군집체가 해제된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마치 게임의 이펙트처럼 연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제발 뒈져라!!!”
꽈아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내지른 거인의 마지막 주먹이 리치가 있던 바닥에 작렬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지반이 무너질 듯 흔들거리고, 그와 동시에 끔찍할 정도로 불쾌한 괴성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마침내 제 소임을 다한 거인이 무너지듯 사라지고, 남은 것은 깨질듯한 두통을 안겨다 주는 머리와 주변을 지키고 있는 그림자들뿐.
그리고 그 흙먼지 사이로, 한순간 어두운 마력이 터져 나오며 흙먼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 엄청난 풍압에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올린 나는 순간 경악했다.
설마 그렇게 맞고도 살아 있다고!?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풍압이 흘러나온 그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다행스럽게도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 마정석이 이내 힘을 잃은 듯 검은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한가득 채우고 있던 죽은 자들의 군세가 마치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아, 깜짝 놀랐네.”
조금 전 괴성과 함께 풍압이 몰아쳤을 때, 한순간이지만 정말 깜짝 놀랐다.
“아, 머리 아파.”
주변이 안전해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까 전 느꼈던 두통이 다시금 몰려오기 시작했다. 현재 단계에 맞지 않는 힘을 억지로 사용해서 그런지 두통이 무척이나 심했다.
“아으…….”
나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느새 공동 중앙에 생겨난 워프 게이트를 바라봤다.
일반 던전들과는 달리 대형 던전은 보스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클리어할 시 곧바로 던전의 입구로 내보내 주는 워프 게이트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었다.
“우선 나가기 전에 마정석부터 챙기고.”
나는 크레이터가 파인 곳으로 다가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풍압을 내뿜던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이게 ‘리치’의 마정석……. 내가 이걸 얻으려고 개고생을…….”
이 정도 두통을 감수하고 대형 던전에서 나오는 리치의 마정석을 구한 건 꽤 싸게 먹힌 거지만, 역시 당장 머리가 욱신거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가자…….”
이 대형던전의 목적이었던 ‘리치’의 마정석을 빠르게 품속으로 집어넣은 나는 워프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 * *
“……저게 D급 헌터라고?”
김우현이 워프 게이트로 빠져나가고 나서 한참 뒤, 일련의 무리가 공동의 입구에서 빠져나왔다.
“하, 야 방금 봤지? ×발, 진짜 저게 D급이라고?”
헛웃음을 터뜨린 남자가 마치 항의를 하듯 옆에 있던 여자에게 입을 열었다.
“조용히 좀 해, 관석아. 안 그래도 머리 아프니까.”
“확실히 말도 안 되는군. 나도 저렇게는 못 할 것 같은데? 파괴력이든 뭐든…….”
공동의 입구로 빠져나와 김우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정체는 바로 고구려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최소 S급 아니야?”
“아니, 또 그 정도는…….”
“내가 볼 때는 그 정도는 충분해 보이는데? 방금 못 봤어? 거인이 보스 몬스터 주먹으로 으깨 버리는 거.”
딱 봐도 160㎝도 돼 보이지 않는 소녀는 조금 전 거인을 상상했는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그 뒤에 묵묵히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윤, 영상은 전부 촬영했어?”
이윤이라고 불린 소녀는 이내 남자의 말을 듣고 앗! 하는 신음과 함께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카메라를 들어서 확인했다.
“잘 찍히고 있는데?”
“그럼 됐다. 이제부터 우리 고구려 1팀은 현 시간부로 복귀한다. 이윤, 네가 찍은 영상은 지연희 부장에게 따로 올리고, 지섭이랑 유화는 지금부터 공동 내를 수색한다.”
남자의 말에 이름을 불린 지섭과 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지섭이 움직이려다 말고 남자에게 물었다.
“근데 두철이 형, 이거 저희가 챙겨도 되는 거예요? 김우현 헌터가 권한 가지고 있는 거 아니고?”
지선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공동을 쳐다봤다.
기분 나쁜 오브제와 보기만 해도 불쾌감을 주는 병장기들이 공동 벽 한쪽에 장식되어 있었다.
“그건 맞지. 하지만 김우현 헌터가 게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던전 내부에 있는 물건들의 권한은 무효처리가 되지.”
“……그래요? 대형 던전은 생전 처음 들어오는 거라 잘 모르겠네.”
지섭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미 저만치 가 있는 유희를 따라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저기, 두철 오빠.”
그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이윤이 몸을 움직이려 하는 이두철을 멈춰 세웠다.
“왜?”
“어, 그게 말이야. 내가 이러려고 이런 게 아니거든?”
“뭐가?”
“내가 요즘 방송하고 있잖아? 고구려 전용 채널에서. 그런데 말이야 내가 최근에…….”
“딱 용건만 말해라.”
이두철이 말하자 이윤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가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화 안 낼 거지?"
”말해.”
“……지금 여기서 찍히고 있는 거, 전부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는 것 같아.”
“…….”
“미안.”
한순간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