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나 혼자 10만 대군 015화
4장 대형 던전(3)
의정부역 앞.
몰려 있는 인파로 인해 발 디딜 틈도 없는 이곳에서 공원과 맞닿아 있는 도보에 서 있는 여자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마트폰에서는 10분 간격으로 재난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고, 줄을 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하철이나 수송 차량에 타기 위해 몰래 새치기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싸움과 여기저기서 보이는 가벼운 몸싸움까지.
‘왜 줄이 안 줄어드는 거야!?’
저 앞쪽에서 군인들이 확성기로 시민들을 통솔하고 있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짜증 나…….”
그녀는 이 상황에 슬슬 짜증과 초조함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4년제를 나와 힘들게 들어간 회사, 정직원도 아닌 인턴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급여만을 받고 매일같이 야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치근덕거리는 올해 30을 넘긴 상사와 철야는 아니지만 1주일 중 3일은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업무량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중 스마트폰을 통해 받은 재난 메시지.
“왜 나만…….”
그녀는 이 상황에 짜증과 초조함을 넘어 서글퍼지고 억울해졌다.
“뭐, 뭐야?! 저게 뭐냐고!”
그리고 그러던 도중, 그녀가 서 있는 도보 맞은편에 있는 공원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점점 옅어지며 거대한 ‘입구’가 드러났고, 그 입구 안쪽에서 ‘몬스터’가 몰려나오기 시작했을 때쯤.
“모, 몬스터다!”
“비, 비켜! 비키라고! 꺼져!”
-저…… 저게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민을 통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확성기에서도 당황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사방이 난장판이 되었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사방에서 밀고 밀린다. 마치 온몸이 압축돼버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정신없이 인파에 휩쓸린 그녀는 이리저리 치이고 난 뒤 어느 순간 인파 속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워에에에엑.”
“아……!”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좀비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의 시선 안에는 한눈 가득히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시민들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서서히 몸을 숙이는 좀비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좀비의 얼굴이 그녀의 앞에 왔을 때.
“싫어…….”
그녀는 암담함에 눈을 꽉 감았다.
‘이곳은 대형 던전 예정지가 아니었잖아!? 나는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어!’
눈을 감자 수많은 상념이 몰아쳤고, 앞으로 생길 고통이 먼저 체감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는 조금 뒤 이상함을 느꼈다.
‘아프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슬쩍 뜬 눈 사이로, 그녀는 보았다.
눈앞에 있던 좀비의 머리가,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
순간 그녀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돈이라고 말해도 믿을 것 같았던 도로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소음이 줄어 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 시민들의 뒤로부터, 사람의 형태를 한 검은 그림자들이 손에 검은 몽둥이 하나를 꼬나 쥐고, 몬스터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
그 장면을 보고 시민들이 응시하고 있는 곳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민들을 혼란 속에 빠뜨렸던 죽은 자들의 군대가 그림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검은 몽둥이에 맞은 좀비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스켈레톤은 검은 몽둥이에 맞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온몸이 부서져 나간다.
대형 던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는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들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마치 바닥 자체가 음영이 진 것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퍼져 있었는데, 그 그림자 안에서는 ‘몽둥이를 쥐고 있는 손 수십 개가 마치 가운데에 있는 남자를 호위하듯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저거 그 사람 아니야?”
“맞아. 요즘 유튜×에서 한창 잘 나가는…….”
“그림자 왕 김……우현,”
그녀는 옆에 좀비의 시체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몬스터를 처리하며 대형 던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김우현을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 * *
‘영역’ 안에 들어온 좀비가 수십 개의 몽둥이에 찜질 당해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영역 밖으로 밀려 나온다.
사방에서는 그림자들이 대형 던전에서 몰려 나오는 좀비와 스켈레톤을 때려잡고 있었다.
이미 처리한 스켈레톤과 좀비들은 내 능력의 포식 대상이 되어 점점 그림자의 숫자를 늘려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생존자를 감염시키는 ‘좀비’처럼, 그림자들은 ‘몬스터’를 죽여 ‘그림자’로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쥔 몽둥이를 만지작거리며 열려 있는 저만치에 보이는 대형 던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걱정인데.”
슬쩍 뒤를 보자 그곳에는 아직도 수많은 인파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중 몇몇은 스마트폰을 들고 나를 찍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 던전 안에 진입하면 늦는다.”
그렇게 되면 너무 시간을 오래 지체하게 된다.
아마 대형 던전이 열린 지금을 기점으로,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리치’는 자신의 군단을 마구잡이로 양성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막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버리면…….”
이곳을 막고 있는 그림자들이 사라져 다시금 의정부역이 난장판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적어도 이곳에서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나마 현장에 나와 있는 협회 쪽 헌터들이 이곳에 도착해야만 했다.
눈앞에 계속해서 몰려오는 군대를 그대로 밀고 올라갈까?
그런 생각이 한순간 들었지만,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것 참,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지만 이렇게 고민해봤자 애꿎은 시간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김우현 헌터?
“강형찬 부장님,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의정부역 앞쪽 공원에서 ‘대형 던전’이 일어났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순간 수화기 너머가 시끄러워졌다.
아마도 지금에서야 상황을 전해 들은 듯했다.
-아, 네! 지금 저희도 방금……!
“지금 빨리 민락동에 대기 중인 협회 헌터들 전부 의정부역 쪽으로 보내주세요. 그때까지는 제가 어떻게든 막고 있겠습니다.”
강형찬 부장의 말을 듣지도 않고 버튼을 눌러 끊어버린 나는, 곧이어 연락처에서 지연희 부장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울린 뒤 얼마 있지 않아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고,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머? 김우현 헌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지금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겠습니다. 고구려 길드 이미지 상승에 좋은 기회니까, 지금 의정부역 쪽으로 헌터 지원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잠깐만요, 그게 무슨……?
“제가 클리어하고 난 다음이면 다른 2개 길드랑 같이 애꿎은 이미지만 날릴걸요? 판단은 알아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잠깐만요, 김우현 헌터!?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꾸역꾸역 겹쳐 나오는 좀비와 스켈레톤을 바라봤다.
뭐, 대형 길드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도 알고 있고, 대형 길드에 있어서 이미지 실추가 어느 정도 협박이 되겠냐마는, 지연희 정도라면 이 상황도 알아서 잘 파악할 것이다.
만약 내가 던전 클리어를 하게 된다면 움직이지 않던 다른 타 길드들은 ‘재난 상황에 시민들을 돕지 않고 자기 안위만 챙기는 이익집단’이라는 타이틀이 생길 테고, 고구려 쪽이야 이곳에 헌터 몇 명만 보내도 이미지 실추는커녕 다른 길드와 대비 효과가 생겨 훨씬 큰 이득이 생기겠지.
“뭐 굳이 연락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역시 협회 쪽 헌터들보다는 고구려 길드의 헌터들이 전체적인 질이 높은 건 사실이니까.
점점 후반이 지날수록 몰려오는 웨이브가 거세질 텐데, 머릿수라도 많아야 어떻게 버텨 볼 테니까.
“자, 그럼 우선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했고.”
이제는 내 할 일을 할 차례였다.
저만치 보이는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런 나와 걸음을 맞추어 좀비들을 막고 있던 그림자들이 내가 몸을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이동한다.
언데드를 막고 있던 그림자들의 전선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서 뒤섞여 몰려오는 좀비와 스켈레톤이 바닥에서 올라온 몽둥이에 맞아 살이 터지고, 뼛조각이 날아간다.
좀비와 스켈레톤이 죽어 나갈 때마다, 그 안에 있던 마정석이 그림자에게 흡수되어 또 다른 그림자들을 만들어나간다. 마치 눈앞에 좀비들이 인간들을 물어 전염시키는 것처럼, 그림자들도 몬스터를 죽여 숫자를 늘려나갔다.
스켈레톤들은 녹슨 검을 휘두르고, 좀비들이 그림자의 온몸을 무자비하게 물어뜯지만, 그런데도 그림자들은 묵묵히 몽둥이를 들어 올려 자신들에게 내려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쯤, 나는 본능적으로 스킬이 한계치까지 닿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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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우현 칭호: ---
성별: 남
나이: 27
능력: 그림자(shadow) [3,500] [1/4]
[능력치]
[종합 평가 수준: A]
[평가 잠재력: --/--]
[스킬]
군집체
완전 동화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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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스템창. 능력 수치에는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그림자의 숫자가 3,500에서 멈춰 있었다.
“1단계 각성은 여기까지였던가?”
1단계 각성의 한계.
만약 회귀 전처럼 4단계라면 한계를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갔을 카운터는 3,500에서 멈추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1단계 만으로 충분했다.
어느새 몬스터들을 죽이며 앞으로 밀고 들어오자 대형 던전의 입구까지 닿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슬쩍 뒤를 쳐다보자 작게 보이는 시민들 뒤로 협회 제복을 입은 헌터들이 저만치 서 있는 게 보였다.
“나이스 타이밍이네.”
협회 소속의 헌터들이 도착했으니 이제부터는 몰려나오는 좀비들을 죄다 잡지 않아도 되겠지.
나도 모르게 씩 웃으며 고개를 돌린 나는 좀비와 스켈레톤이 넘쳐 흐른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는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