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나 혼자 10만 대군 014화
4장 대형 던전(2)
‘사령술사의 밤.’
회귀 전, 6월 25일 의정부역 한가운데에 출현하는 대형 던전에 붙여진 정식 이름은 ‘사령술사의 밤’이었다.
대형 던전 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좀비와 스켈레톤, 그 뒤를 이어 좀비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구울들이 대거 출현하고, 그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B급 헌터 이상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 ‘듀라한’까지 출현한다.
물론 그 이외에도 던전 명에 어울리는, 되살아난 시체와 되살아난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던전 안에서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지.”
시내 곳곳을 이들 몬스터들이 점거한 가운데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고, 의정부 주변이 완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되고 나서야 한국은 대형 던전을 막을 수 있었다.
“그때는 참 암담했는데.”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던 당시의 내게 있었던 것이라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물려준 반지하 방 하나뿐이었는데, 그 재앙으로 인해 그마저도 날아가 버렸다.
마치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그때는 며칠을 멍만 때리며 지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알아낸 사실이 있었는데, 그건 의정부에 일어난 ‘대형 던전’은 원래는 이 정도까지 괴멸적인 피해를 받지 않고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태였다는 것이었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도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를 받았을까?
그 당시 그 이유를 들었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협회로부터…… 최대한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나……?”
아마도 대충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았다.
길드에서 헌터들을 투입하지 않은 이유는, 이번 ‘대형 던전’을 건수로 잡아 협회로부터 최대한 많은 이득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됐다. 당장 자기가 사는 곳 근처가 몬스터들에게 침략당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도 정치질을 하고 있던 길드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길드는 그랬다.
적어도 내가 회귀 전 보았던 3대 길드는, 그 무엇보다도 사익을 우선시하고 어떻게든 ‘협회’를 최대한 물어뜯어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움직인다.
어찌 보면 하이에나 같다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의 행태에 당장 살 집을 잃어버렸던 나는 크게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하루하루 소주나 까면서 인생을 한탄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나는 시선을 돌려 의정부역 근처에 있는 빌라의 옥상에서 의정부역 공원 근처를 바라본다.
차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고, 보도에는 여러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곳곳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보도에 가득 찬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움직여 그 안에 쓰여 있는 내용을 다시금 확인한다.
[긴급 발신]
-민락동 근처 민가에서 ‘대형 던전’ 출현 이변 발생. 예상 발생시간 6월 26일 00:00분, 반경 20km에 거주 중이신 시민분들은 전부 안전구역으로 대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울리는 스마트폰의 경고음. 아마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
“이렇게 빨랐었나?”
스마트폰에 쓰여 있는 예상 발생시간은 밤 12시. 즉, 앞으로 1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분명 내 기억에 내가 문자 메시지를 받고 정신없어 도망친 건 26일 점심 무렵이었고, 그 후 저녁에 대형 던전이 출현했다.
내 기억보다도 훨씬 빠르게 출현하는 대형 던전.
“게다가 출현 장소도 다르다.”
회귀 전, 내가 직접 본 것보다 유튜× 영상으로 하루에 수백 개씩 ‘대형 던전’ 관련 영상이 올라오는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보고 들은 적 있던 나로서는 대형 던전이 출현한 곳이 ‘의정부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도망칠 때 받았던 문자에서도 ‘의정부역’근처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아, 시민 여러분! 들어주십시오! 차량이 너무 정체되어 이 이상 가다간 제시간 안에 안전구역으로 이동하실 수 없게 됩니다!
-지금부터 차량 내에 계신 시민분들께서는 간단한 짐만 챙겨서 차량에서 나와 ‘수송 차량’이나 ‘의정부역’에 있는 지하철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빌딩 아래에서는 군복을 입은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흠…….”
확실히 이 정도의 인파라면, 제시간에 이 지역을 못 빠져나갈 정도다.
뭐, 애초에 긴급문자가 온 시간도 너무 늦었고, 쓰여 있는 예정시간도 너무 촉박했다.
회귀 전에 겪었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진행되는 전개에 솔직히 좀 어리둥절했다.
확실히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고작 C급 헌터 하나가 좀 유명세를 타고 길드를 만든 것 정도로 이렇게 달라지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민락으로 가야 하나?”
원래 목적대로라면, 의정부역에서 열리는 게이트를 확인한 뒤, 곧바로 그림자들을 풀어서 던전 안으로 밀고 들어가 던전의 보스인 ‘리치’를 죽일 생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하고 나서는 너무 늦어…….”
그래도 초반에는 저급 몬스터인 ‘좀비’와 ‘스켈레톤’ 정도다. 그 정도면 충분히 그림자를 이용해 밀고 올라갈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좀비와 스켈레톤을 먹이 삼아 그림자의 숫자를 더욱더 크게 불릴 수 있었다.
구울까지도 괜찮다. 그 위에 있는 병종 스켈레톤과 속성 좀비도 어느 정도 괜찮다.
“하지만 듀라한부터는 힘들겠지.”
한 개체가 B급 괴수와 비슷한 몬스터.
아무리 물량이 많다고 해도 B급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무더기로 대형 던전을 빠져나온다면 적어도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요점은 시간이야.”
최대한 빨리 들어가서, 빠르게 던전 안에 있는 리치를 잡아내야 했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던전 출현 장소인 의정부역과, 긴급문자로 발신된 대형 던전 출현 예정지인 민락동.
사실, 당장 출연 시간도 바뀐 마당에 출현 장소마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옳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감이 좋지 않았다.
문득 내 시선이 빌라 아래로 내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이제는 보도와 도로를 가리지 않고 난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곳에서 눈을 떼고 한참을 고민한 결과.
“……우선 남아 있어 볼까?”
나는 내 감을 믿기로 했다.
* * *
대한민국 헌터업계를 쥐고 있는 3대 길드 중 하나인 고구려.
그 본사는 강남에 위치한 20층짜리 대형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 안 15층 회의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협회 쪽에서는 뭐라던?”
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
그는 헌터업계가 시작하자마자 길드를 만들어 업계에 뛰어들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SS급헌터이자 고구려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불리는 ‘피닉스’ 이광천이었다.
“우선 원래 규정대로 대형 던전을 클리어한 길드에게 보상금과 추후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조건으로 길드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우선 협회의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흠, 예상 출현시간이 언제라고?”
“오늘 밤 12시입니다.”
이광천은 슬쩍 고개를 돌려 회의실 한편에 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40분. 만약 협회의 말이 맞다면, 이제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2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른 길드들은 아직 반응 없지?”
이광천의 물음에 그 옆에 앉아 있던 지연희 부장이 입을 열었다.
“네, 우선 3대 길드인 신천과 무천 길드는 아직 별다르게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밑에 있는 중형 길드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음, 협회를 신나게 뜯어먹을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확실히 협회가 제대로 된 교환 조건을 내걸지 않으면 딱히 가줄 이유도 없지.”
이광천은 그렇게 말하고는 푹신해 보이는 가죽 의자에 기대 편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래도, 길드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가서 도와주는 척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번 미국에서 일어난 대형 던전 사태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그러는 편이 더…….”
침묵이 계속되고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이광천의 눈이 떠졌고, 이윽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피식 웃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이광천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어차피 의정부에 대형 던전이 터진다고 우리에게 생기는 손해는 전혀 없어. 네가 말한 대로 길드 이미지가 조금 더 좋아지는가 아니면 나빠지는가의 차이다.
길드 이미지가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원들을 보내서 협회를 도울 정도는 아니야.
만약 대형던전이 열려서 의정부가 박살 나고 그 몬스터들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아마 협회도 더 급해지겠지. 그리고 그때쯤 되면 길드들도 하나씩 움직일 테고.”
“하지만…….”
“그때 움직이면 돼. 다른 길드들 기다리는 거 안 보이나? 다른 놈들은 전부 음식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광천은 가죽의자에서 몸을 떼 이윽고 책상에 양손을 얹으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적당히 기다렸다가 협회가 내거는 조건이 좋아지고, 슬슬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을 때쯤이 좋다. 그때가 기회야.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전부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기다려라. 기다리고 기다려서, 음식이 맛있게 익었을 때, 우리가 먹으러 가면 그만이야.”
이광천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 * *
“대형 던전이 열렸다.”
협회의 예고대로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대형 던전이 출현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형 던전이 출현한 지역이 ‘민락동 주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뭐…… 뭐야!?”
의정부역 옆에 있는 공원.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군인들은 그런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데 군인들의 지시를 들을 정도로 시민들은 침착하지 않았다.
질서가 무너지며 시민들이 한데 모여 뒤엉키자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이 되었다.
“아무튼, 이곳에서 기다린 것이 정답이었구만.”
나로서는 혹시 몰라 남아 있었던 것이지만, 대형 던전 출현시간은 바뀌었어도 출현 장소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협회의 예상 오류.
출현한 대형 던전에서 슬금슬금 좀비와 스켈레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시민들은 던전 안에서 빠져나오는 몬스터를 보며 더욱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림자들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좀비와 스켈레톤.
어쩌면 튜토리얼 던전에 나온 고블린보다도 쉬운 상대.
“자, 그럼.”
혼란에 빠져 있는 아래를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능력 포식을 시작해볼까?”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그림자들이 하나둘 형체를 가지고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