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나 혼자 10만 대군 012화
3장 능력 각성(3)
그야말로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분명 그와의 거리는 2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이천명은 말 한마디 하는 사이에 내 눈앞으로 도약해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힘차게 뒤로 꺾은 주먹이 앞으로 내뻗어진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마치 주마등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천명의 주먹이 빛처럼 빠르게 날아올 때.
꽈드드드드득!!!
“뭐야?”
그림자가 내 눈앞을 막았다.
정확히는 그림자가 아닌, 바닥에서 튀어나온 무수한 그림자의 손이, 그리고 그 손에 들려 있는 검은색 ‘쇠파이프’가 이천명의 손을 막았다.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튀어나와 쇠파이프를 한 지점에 교차해 이천명의 주먹을 막아낸 그림자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와 있는 손만을 움직여 이천명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천명은 가볍게 그 자리에서 뒤로 몸을 빼는 것으로 그림자의 공격을 회피하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죽이진 않을 거라서 좀 가볍게 치기는 했는데, 그걸 막아버리네?”
쇠파이프를 든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며 이천명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고, 나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것치고는 주먹이 너무 센데?”
솔직히 조금 전 주먹은 새로운 능력으로 막지 못했다면 그대로 죽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능력으로도 막지 못할까 싶을 정도로 이천명의 주먹은 빠르고 강력했다.
‘지금의 나하고는 상성이 안 좋은데.’
어두운 실험실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검은색 보석을 얻어 새롭게 각성한 능력은 크게 요약해서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림자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을 재현한 채로 나타나는 ‘완전 동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반경 2m 안에서는 그림자들의 신체 능력이나 소환 속도가 빨라지는 ‘영역.’
물론 후자의 경우 그림자의 능력 자체가 굉장히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자들의 소환 속도가 기존의 소환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군집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영역 안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림자를 조작하는 게 가능했다.
“음, 원래는 간단하게 기절만 시키고 빠르게 폰이랑 각서만 받아갈 생각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적당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니 가볍게는 못하겠네?”
이천명이 씩 웃으며 입을 열더니 이내 다시금 몸을 왼쪽으로 뒤틀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던 주먹은, 아까와 같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나도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는데.
내 생각과 동시에 내 주변에서 그림자들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고, 이천명이 그림자들 사이로 뛰어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의 몸이 터져나가고, 이천명은 곧바로 몸을 다시 한번 튕겨 나에게로 도약하며 주먹을 휘두른다.
까득! 꽝!
휘두른 주먹이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난 검은 쇠파이프에 의해 저지당하고, 그림자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이천명의 등에 가격했다.
하지만 이천명은 그것을 무시한 채 연속으로 그 자리에 주먹을 난타했다.
까드드드드드드득! 꽝!
쇠파이프가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갔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연타를 날리던 이천명의 주먹에 내 앞을 가로막았던 쇠파이프까지 깨져 나갔다.
“좀 맞……!?”
눈앞에 보이는 나의 모습에 이천명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주먹을 내질렀지만, 그 순간 이천명의 아래에서 튀어나온 손이 그의 발을 잡는 것으로 그 주먹은 내 앞까지 닿지 못한 채 애꿎은 땅만 내리쳤다.
곧바로 그림자들이 자빠져 있는 이천명에게 쇄도해 쇠파이프로 내리친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빼는 순간, 이천명을 둘러싸고 있던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천명의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어우, 좀 맞자고 하시더니, 그새 많이 맞으셨네?”
나는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순간, 고작 5초도 안 되는 그 시간에 그림자들에게 린치당한 이천명의 몸 상태는 딱 봐도 엉망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붉은 정장은 여기저기 먼지와 오물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고, 상의는 꽤 찢어져 수선하지 않으면 입고 다니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마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올백으로 올렸던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어 있었다.
“이 새끼…….”
“어떻게 된 게 너희들은 패턴이 항상 똑같냐?”
자기보다 약할 거라고 확신해서 비웃다가, 한번 처맞고는 빡쳐서 전심전력을 다해 덤벼든다. 회귀 이전부터 봐왔던, 적어도 내가 ‘적’이라고 생각했던 몇몇 녀석들은 항상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이천명이 다시 한번 몸을 움직여 내게 쇄도한다.
아까와 똑같은 움직임. 확실히 위력이나 그 속도는 A급에 걸맞은 그것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이천명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미친듯한 연타가 그림자를 깨부수고, 이천명의 몸이 다시 한번 그림자들에게 구속된다.
“내가 똑같은 수에 당할 것 같냐!!”
아까와 똑같은 상황에 악을 쓴 이천명은 곧 조금 전처럼 그림자들을 볼링핀처럼 튕겨 보내고, 다시 내게로 쇄도했다.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뒤를 잡혔다.
몸을 뒤로 돌리자, 이미 반쯤 주먹을 휘두른 이천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올라와 이천명의 주먹을 막으려 그사이에 쇠파이프를 끼워 넣지만, 이미 탄력이 붙은 이천명의 주먹은 막지 못하는 듯 전부 깨지거나 밀려난다.
이윽고 주먹이 눈앞에까지 다가왔고, 곧 내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다.
“어?”
하지만 이천명의 주먹은 내 얼굴 앞을 지나 그대로 허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내가 그런 뻔한 수에 당할 것 같냐?”
조금 전 이천명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비웃음을 선물한 나는 내 몸을 뒤로 빼내었던 그림자 손을 바라보았다.
이천명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순간 동공이 흔들리며 입을 열었지만, 이천명의 말보다 쇠파이프가 그의 입을 치는 게 훨씬 더 빨랐다.
“……대단하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림자 사이에서 다시 나타난 이천명은 이번엔 완전 개박살이 난 상태였다.
“이 개새끼가……!”
욕설을 하는 이천명의 입에서 피가 한 줄 터져 나왔다. 거의 한계까지 빡친 듯, 머리에 피가 쏠린 게 어두운 이 방 안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천명은 앞니가 깨진 터라 그 모습이 묘하게 우스꽝스럽다.
또다시 내게 달려들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이천명.
머리가 피가 올라 있는 게 이번에는 죽기 살기로 몸을 굴릴 것 같은 느낌에 나는 그림자들을 끌어 올렸고, 이윽고 팡! 하는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천명이 내게 쇄도해 들어왔다.
아니, 나를 지나쳤다.
“……?”
이천명은, 곧바로 내가 지나왔던 문 쪽으로 도망갔다.
“아니, 뭐야?”
삽시간에 저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망간 이천명.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이천석 패거리와 멍하니 서 있는 나.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뭐, 이천명의 도주는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지만, 그렇게 빡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도망치는 건 나로서도 생각지 못한 행동이었다.
뭐, 그냥 도주했더라도 지금은 그냥 놔줬겠지만.
“그럼 이제.”
나는 시선을 돌려 이천석과 그 패거리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은 어느새 목을 움츠린 채 주변에 있는 그림자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이천명 봤지? 걔처럼 이빨 날아간다?”
그림자들이 들고 있던 검은 쇠파이프가 일제히 위로 들어 올려졌다.
“아가리 꽉 물어.”
그리고 이천석과 그 패거리의 비명이 어두운 실험실 안에 울려 퍼졌다.
* * *
“뭐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게 많아?”
어두운 실험실을 빠져나온 날 저녁, 길드 사무실에 앉은 나는 헌터 협회에서 날아온 통지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길드명도 안 정했네?”
생각해 보면 원래 절차에서는 길드 창설을 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는 식이라서 길드명을 길드 창설하기 전에 적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경우는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얻은 길드라 그런지 너무 많은 부분이 미흡했다.
“……길드 이름도 정해야 하고, 길드 내 계약서 제출에, 협회 지원 참여? 이건 또 뭐지. 길드원 인권 보장 서류, 길드 보험…… 뭐가 이렇게 많아?”
회귀 전에도 길드에는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항상 큰 사무실에 사무원들이 잔뜩 있는 길드를 보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도대체 헌터 외의 사무원을 왜 뽑는 걸까 싶었는데, 충분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원을 뽑아야 하나?”
뭐 내게 돈을 번다는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문제는, 사무원을 뽑을 시간이 없다는 거지.
그렇다고 아무나 대충 뽑아 사무원이랍시고 앉혀놓고 싶지는 않다.
“……이것도 전부 생각해봐야 하네.”
어째 일 하나를 끝내고 오니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에 슬쩍 머리가 아팠지만, 나는 우선 사무실로 날아온 통지서를 하나밖에 없는 책상 구석에 놔둔 뒤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시간도 없는데 이런 자잘한 통지서는 후에 처리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도피심리를 훌륭하게 이용한 결과였다.
나는 노트북 모니터에 떠 있는 정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윤. 나이는 올해 18살이고, 소속 길드는…… 무소속이네.”
이번에도 엿 같은 협회의 검색엔진을 어렵게 뒤적거려 찾아낸 다음 영입 후보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나이가 23살이었으니까, 나이도 맞고, 이름도 같고, 길드에 한 번도 속한 적 없다고 했으니 무소속도 맞고.”
회귀 전 내가 보아왔던 그녀와의 연관된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본 결과, 아마 지금 상황에서는 이 신상이 그녀와 가장 비슷해 보였다.
“집이 막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회귀 전, 김서윤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TV나 컴퓨터로 그녀의 과거 이야기에 대해서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SSS급 헌터 ‘탐식’ 김서윤은 과거, 사기에 당해 빚에 휘둘렸다.
뭐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찾아가서 영입해 올 수는 없지만……. 게다가 영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회귀 전의 김서윤은 그야말로 성격이 개차반이었다. 대중매체나 TV에서는 그녀가 쌍욕을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 제일 큰 사건은 그녀를 악의적으로 보도하던 신문사의 건물이 김서윤의 주먹질 한 번에 완전히 가루가 돼버린 일이었다.
그 뒤로 각종 매스컴은 더욱더 그녀를 질타했지만, 그녀는 그런 매체의 건물을 박살 내버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물론 그 후 정부에서 직접 나서며 그녀를 만류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부마저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그야말로 막가파 마이웨이. 정부와 사법당국에서는 계속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그녀를 구속하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의 힘이 공권력보다 더 강했으니까.
“…….”
문득 그때를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그녀를 제대로 영입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천장을 바라봤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