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나 혼자 10만 대군 011화
3장 능력 각성(2)
그림자들이 군단을 이루어 앞으로 나간다.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와 구울, 그중에서도 몸집이 구울의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키메라가 그림자를 막기 위해 거대한 손을 휘두르지만,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림자를 전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좀비와 구울의 사지가 찢겨 나간다.
키메라의 기형적으로 큰 팔이 떨어져 나간다.
좀비의 끝없는 체력도, 구울의 강력한 힘과 속도도, 심지어 힘과 속력, 그리고 체력까지 가지고 있는 키메라도 결국 숫자의 폭력 앞에 죽음을 맞이하며 차가운 시체 더미로 되돌아갔다.
“역시 여기는 언제와도 역겹네.”
그림자들이 헤집고 간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며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인간형이 아니라면 징그럽더라도 그렇게 역겹지는 않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어두운 연구실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죄다 인간형이었다.
그것도 멀쩡하지 않은, 어딘가가 부패해 있고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어 훨씬 역겨움을 더 유발하는 인간형 몬스터.
그 몬스터의 시체를 지나 어두운 연구실을 공략한 지 1시간 정도. 다른 일반적인 파티라면 최소 보스전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단 1시간 만에 돌파했다.
“뭐, 일반적인 헌터들하고 다른 게 당연하지만.”
그림자는 ‘헌터’ 한 명 한 명보다는 약하지만,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다.
게다가 다른 헌터들처럼 지치지도, 다치지도 않는다. 물론 그림자 개체 하나가 꽤 강한 충격을 받으면 사라지지만 D급이나 C급 던전에서 그림자를 없앨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있다면 보스 몬스터 정도겠지만.”
나는 지금 그림자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보스를 바라본다.
온몸이 비대하게 부풀어 있고, 입에서는 녹색 진액을 흩뿌리는 보스 몬스터. 놈의 양손은 비대하게 커져 있어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그림자가 허공을 날아간다.
그야말로 키메라와 구울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외양.
키메라와는 비슷한 체형이지만 온몸이 인간의 신체가 아닌 무엇인가로 바뀌어 있었고, 그 몸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얼굴은 이런저런 수술을 받았는지 골격이 완전히 뒤틀려 있어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하나의 검은 보석이 박혀 있었고, 입은 무엇인가로 꿰매져 있었다. 그 꿰매진 입 사이로 들리는 끓는 듯한 소리는 저절로 소름을 돋게 한다.
하지만 그런 보스 몬스터도, 폭력에 당해내지 못한다.
온몸에 그림자들이 달라붙고, 녹색 진액을 흩뿌리는 입안에 검은 그림자들의 팔이 들어간다. 심지어는 몸을 들이밀며 입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림자도 있고, 온몸에 매달려 몬스터의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적어도 B급 던전까지는 이런 인해전술 플레이가 무난하게 잘 먹혀들어 가는 편이라서 상관은 없지만 A급 던전, 그 위인 S급 던전까지 올라가게 되면 이런 인해전술 플레이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곳은 C, D급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들이 즐비하고, 하나하나가 꽤 강한 몬스터들이다 보니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림자의 소모도 무척이나 심한 편이다.
물론 그림자야 C급이나 D급에서 계속해서 보충하면 될 일이지만, 그래서는 강해지지도 못하고 전력만 낭비할 뿐이다.
“뭐, 이 아이템을 얻으면 달라지겠지만.”
눈앞의 보스 몬스터가 서서히 기력을 잃고 나자빠진다.
그림자들이 여전히 저항하는 보스 몬스터의 몸을 뒤덮더니 키메라의 특성상 약한 접합부 사이에 무자비하게 손을 밀어 넣는다.
“크레에에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보스 몬스터.
하지만 그림자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끝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을 지르던 보스 몬스터는 온몸이 헤집어진 채로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다.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윽.”
순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했지만, 나는 몸을 앞으로 옮겨 헤집어져 있는 시체의 머리에 다가가 눈가에 있는 검은 보석을 힘주어 빼냈다.
생각보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뽑히는 검은 보석.
뽑아낸 보석은 곧바로 내 몸에 스며들며 사라졌고, 나는 곧바로 시스템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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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우현 칭호: ---
성별: 남
나이: 27
능력: 그림자(shadow) [2480] [1/4]
[능력치]
[종합 평가 수준: A]
[평가 잠재력: --/ --]
[스킬]
군집체
완전동화
영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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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리 크게 변한 건 없지만, 능력 옆에 쓰여 있는 1/4이라는 숫자와 스킬창에 생긴 새로운 스킬 두 개가 내 능력이 각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큰 변화는 없지만, 이 어두운 연구실에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곧 일어날 대형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아?”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스템창을 끈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이천석?”
이천석, NT아이언의 길드장.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어제 이천석과 함께 구타당했던 녀석들도 상처가 말끔하게 치료된 채 피식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입니다!”
이천석은 곧 씩 미소짓더니 옆에 있던 남자에게 나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시선을 돌려 남자를 쳐다보자, 정장을 입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가 비릿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대충 무슨 상황인지 감이 왔다.
“뭐야? 처맞았다고 동네 형 데려온 거야?”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이천석과 그 패거리들.
그 와중에 이천석은 마치 ‘쟤가 날 때렸어요!’ 하면서 고자질이나 하고 있고,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너희들 대단하다.”
정말 순수하게 밑바닥이라서 놀랐다.
뭐 애초에 헌터업계가 이런 곳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사실 내가 회귀할 무렵에는 이런 일은 길드들 내에서 일상다반사로 일어날 만큼 흔했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다.
“넌 이제 뒤졌어, 이 새끼야!”
이천석이 자신의 무기로 보이는 검을 빼 들며 씩 웃었다. 그 주위의 일당도 마찬가지로 제각각 무기를 꺼내 든다.
“정보력도 참 대단하다.”
이천석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저 녀석들을 박살 낸 게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사이에 아는 사람까지 초빙해서 쫓아온 게 여러모로 대단했다.
뭐, 내가 유명하니까 상대적으로 찾기 쉬웠을 수도 있지만.
아직 나와 있는 그림자들이 이천석과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새끼가, 아직도 그런 게 통할 것 같아!?”
이천석이 힘껏 휘두른 검에 그림자가 사라진다. 그 동료들도 자신만만한 얼굴로 몰려오는 그림자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B급 헌터자격증을 도박으로 딴 건 아닌지, 이천석과 그 동료들은 침착하게 그림자의 숫자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었다.
어제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신나게 처맞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솔직히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점점 더 밀고 들어오는 그림자들의 숫자에 이천석과 그 일당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아무리 헌터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높다고 해도 물량 앞에는 장사 없다.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한 손바닥으로 열 손바닥을 막을 수 없다고.
“아직도 잘 통하는데?”
밀리고 있는 이천석 일행을 보며 나는 피식거렸다.
그 한 손바닥이 열 손바닥을 그대로 찢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힘이 아니라면, 헌터가 아무리 강하든 말든 숫자의 압박은 당해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이천석과 그 동료들 앞에 있던 그림자들이 거대한 풍압과 함께 뒤쪽으로 밀려났다.
“김우현 헌터, 역시 허명은 아니었네? 매스컴에서 어느 정도 띄워주는 이유가 있기는 하구나?”
그 말과 동시에 몰려 있던 그림자의 한 부분이 마치 폭발한 것처럼 거대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까 전 보았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근데 너무 깝죽거린 거 아니야?”
붉은 정장에 붉은 구두, 쭉 째진 눈과 입, 그리고 그가 능력 개화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붉은 마그마처럼 물들어 있는 양손.
나는 순간 놀랐다.
“이천명?”
“오? 나를 알고 있어? 요즘 헌터들 좀만 뜨면 깝치느라 여념이 없는 녀석들이랑은 좀 다르네?”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네는 이천명의 얼굴을 보며,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회귀 전, 이천명의 이름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개화한 능력 자체는 헌터업계에서 등한시된다는 ‘무투’능력이었지만 그는 개화한 능력을 이용해 던전이나 괴수를 공략하는 헌터가 아니었다.
그는 개화한 능력을 바탕으로 헌터업계의 그림자에 ‘조직’을 만들어 음지에서 헌터업계를 수차례나 뒤흔든 전적이 있었다.
회귀 전에는 이천명만 없었더라면 한국 헌터업계가 이렇게까지 될 일은 없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이천명은 그야말로 쓰레기의 상징이었다.
“근데 이상하네. 내가 헌터업계에서 활동 안 한 지 이제 3년이 좀 넘었는데, 날 알고 있는 녀석이 있다니.”
“잘 알고 있지.”
“그거 진짜 고마운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어쩌나. 미안하지만 우리 애들 길드원을 뺏어간 거로도 모자라서 신천 길드 건으로 소소하게 하나 챙겨갔다면서?”
“그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저기 있는 네 꼬봉들을 탓해야지.”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턱짓하자, 순간 움츠러드는 이천석 패거리가 눈에 보였다.
“아무튼, 유감스럽게도 각서랑 휴대폰 좀 가져가야겠다. 물론 좀 처맞기도 해야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실험실이라는 이름답게 주변은 이미 망가져 버린 옛날 장치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나는 그중 적당히 손에 맞는 쇠파이프 하나를 손에 쥐었다.
“오, 그걸로 나랑 싸우려고?”
“아니, 싸우는 건 내 그림자들이랑 해야지.”
이천명은 내 말을 듣자마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고, 이천석 근처에 있는 그림자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들이 볼링핀처럼 날아간다.
“이런 것들이랑?”
“괜찮아, 아직 많거든.”
나는 이천명의 말을 받아치며 능력을 사용해 그림자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이천명이 어느새 내 눈앞에 와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빠서, 놀아줄 시간이 없네?”
이천명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