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나 혼자 10만 대군 010화
3장 능력 각성(1)
내 능력인 ‘그림자’는 다른 헌터들이 개화하는 능력들과는 전혀 다른 능력이다.
다른 헌터들의 능력이 훈련을 반복할수록 점점 성장하는 데에 비해, 내 능력은 일반적인 훈련이나 전투로는 강해질 수 없었다.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몬스터나 괴수를 죽이고 그 몬스터나 괴수 안에 있는 마정석을 포식해 그림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내 능력이 강해지는 방법이었다.
다른 헌터들의 능력과는 성장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른 그런 내 능력 때문에 처음 능력을 개화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헌터 등급이 일정 이상 오른 뒤에는 오히려 내게 관심을 갖게 했던 능력 덕분에 꽤 긴 시간 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때 처음 깨달았던 능력의 본질적인 결함, 그것은 바로 다수에게는 강하지만, 정말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한 몬스터나 괴수에게는 내 능력은 무척이나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그 치명적인 능력의 결함 덕분에 한참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나는 정말 우연히도 내 능력을 강화할 방법을 찾았다.
“던전에 있는 아이템.”
그건 바로 특정 던전에 있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
내 능력은 ‘특정 던전’에 존재하는 ‘아이템’을 획득해서 사용함으로써 능력 자체를 한 단계 더 위로 각성시킬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각성 방법에, 나도 처음 이 방법을 알았을 때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능력이라고 해도, 던전 안에 있는 아이템으로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결국에는 어떻게 해서든 강해질 수 있기만 하면 OK였다.
“지금 각성 아이템이 있는 던전은 단 한 곳뿐인가?”
영등포역 근처에 자리 잡은 빌라의 3층.
강형찬 부장의 선의로 얻게 된 길드 사무실에서 나는 노트북을 이용해 던전을 검색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점심이 지난 지금까지 내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던전들을 검색해 봤지만, 대부분의 던전은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두운 실험실’이라…….”
날짜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 다른 던전들은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능력 각성 아이템을 드랍하는 던전이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세상에 나올 것은 알지만, 그 자세한 시기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선 하나는 출현해 있으니까 다행이네.”
C급 던전으로 평가받는 ‘어두운 실험실’은 좀비와 구울, 그리고 몬스터 키메라가 주로 나오는 곳이다.
사실 일반 헌터들에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피되는 지역이지만, 내게는 우연하게도 처음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던전이기도 했다.
“앞으로 4일 남았나.”
의정부에 대형 던전이 나타날 때까지 4일.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닌, 어찌 보면 참 애매한 시간이었다.
“우선 이은별과 계약을 끝내고 나면.”
남은 나흘 동안, 본격적으로 능력을 키워나가야 했다.
우선 제일 우선순위는 ‘어두운 실험실’을 클리어해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
그다음부터는 대형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 최대한 몬스터를 때려잡아 그림자를 비축해야 했다.
“그나저나 언제 오려나……?”
슬쩍 시간을 보자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이은별에게 받았던 전화로는 1시 30분쯤 도착할 거라고 들었는데, 그녀는 2시가 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었다.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 목록을 보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이은별이 문을 열다 만 채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죄송해요. 그…… 제가 길을 못 찾아서.”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왔다.
“아뇨 괜찮습니다. 우선 앉으세요.”
나는 입을 열며 그녀에게 책상 앞쪽에 있는 의자를 손짓했고, 그녀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내가 손짓했던 의자에 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좀 많이 휑하죠?”
“네? 아뇨, 그…….”
이 사무실에 있는 거라고는 책상 하나랑 오른쪽 구석에 놓여 있는 소파 하나밖에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이은별을 보며 나는 어제 준비했던 계약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은별은 내가 내민 계약서를 조심스레 받아 들더니 이내 계약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곧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물어왔다.
“혹시 이 1 대 9는…….”
“물론 거기에도 쓰여 있듯이 헌터와 길드의 정산금 비율이에요.”
“이건 너무…… 제게 좋은 쪽인 것 같은데, 게다가 계약금이 4억……?”
이은별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원래 길드에 들어가게 되면 길드와 헌터의 정산비율은 기본적으로 3 대 7 비율로 계약하게 된다.
그렇게 길드는 헌터의 정산금 중 일부를 먹는 대신 헌터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헌터 일을 하느라 소홀해질 수 있는 생활면을 보조해주기도 하고, 헌터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밀어준다.
그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겠지만 모든 길드가 헌터에게 그런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만 길드가 떼어먹는 정산비율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게다가 나는 돈보다는 이 미래의 SSS급 헌터에게 호감을 얻어두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네?”
“보시다시피 지금 이 길드는 불과 2일 전에 만들어진 신생 길드고, 솔직히 지금 당장은 이은별 헌터한테 별다른 혜택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르겠지만요.”
“그렇다고 해도 고작 저 같은 D급 헌터한테 계약금이 4억이라니…….”
“저는 이은별 헌터한테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그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했고요.”
확실히 D급 헌터에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을 걸 수 있는 길드는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손해뿐이니까 계약하려고 하지도 않는 거지만. 그리고 그 사실은 이은별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솔직히 나도 당장 수중에 있는 5억 중 4억을 계약금으로 정할 때까지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4억이라는 계약금으로 이은별의 짐을 덜어주고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득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보며 망설이는 그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 그게 미안하시면 계약서에 나온 계약 기간은 3년이지만 이후에도 저와 계약을 지속해 주시면 됩니다.”
내 말에 그녀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에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내 그녀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고, 그녀는 내가 준 펜으로 계약서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내 말에 그녀는 어느새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아마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었다.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찾아온, 제대로 된 헌터가 될 수 있는 기회.
……내가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능력을 개화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눈앞에 울먹거리고 있는 이은별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가 됐다.
* * *
‘NT아이언’ 사무실.
사치스러운 인테리어는 이미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사무실의 가운데에는 NT아이언의 길드장인 이천석과 그 동료들이 나란히 도열한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신나게 처맞은 다음에 꼬랑지를 내리고 소속된 헌터를 그대로 내줬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D급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게다가 어쭙잖게 신천 길드 이야기도 하다가 녹음기에 걸리고. 아니야?”
“그건…… 컥!?”
이천석이 입을 열자마자 남자는 그대로 다리를 올려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이천석이 뒤로 넘어감과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정장 포켓에 있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우리의 뒤처리는 잘한다 싶어서 놔뒀는데, 이렇게 뒷통수를 까네?”
“죄, 죄송합니다.”
엎어졌던 이천석이 다시금 남자의 앞으로 와 무릎을 꿇고는 대답했다. 남자는 이천석을 한 번 훑어보고는 이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뒤, 입을 열었다.
“걔 이름이 뭐라고? 김우현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요즘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D급 헌터 입니다. 최근에는 협회 측 던전 5개를 공략했습니다.”
이천석의 말에 남자는 이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시선을 다시 위로 들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천석아, 내가 이렇게 귀찮은 일 싫어하는 거 잘 알고 있지? 이번 일 해결하면 좀 빡세게 굴러야 할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의 말에 이천석은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고, 이내 어제 자신을 내려다보던 김우현을 생각했다.
‘흐흐흐 이 개새끼, 넌 뒤졌다.’
이천석은 슬쩍 고개를 들어 담배를 입에 물고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검색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신천 길드 소속의 A급 헌터 이천명.’
세간에는 그리 큰 조명을 받지 못한 이천명이었지만, 헌터업계의 구린 뒷면에서 이천명의 이름은 꽤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신천의 더러운 뒷면을 관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중소 길드나 헌터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파멸시키는 그의 악명은 헌터업계의 뒷면을 아는 이들에게는 꽤나 잘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A급 헌터인 그는 1 대 1의 싸움이라면 절대로 지지 않을 정도의 강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 그 새끼 행적 파악하고, 만약 그 새끼가 던전에 들어가면 그때 연락해라. 알았냐?”
“네!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연락하겠습니다!”
이천석의 대답에 피식 웃은 이천명은 이내 무릎 꿇고 있던 이천석의 뺨을 툭툭 쳐주고는 사무실 밖을 빠져나갔다.
이천석은 그가 나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되니까, 좀 들키지 않을만한 놈으로 찾아서 그 새끼한테 붙여.”
이천석의 눈빛이 복수로 타오르고 있었다.
* * *
그다음 날.
서울시 관악구 야산에 위치한 던전 입구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어두운 실험실.”
역시 헌터들이 기피하는 던전이라 그런지, 개방형 던전 근처에 항상 모여 있는 헌터들도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텅텅 비어버린 던전 입구 앞에서 나는 간단하게 몸을 풀며 생각했다.
확실히 헌터들이 기피할 만한 던전이긴 하다. 물론 C급 던전인 만큼 몬스터들이 강하진 않았지만 비주얼적인 면에서 봤을 때 좀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있다.
좀비나 구울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히 키메라는 좀비와 동물을 이것저것 덧대놓은 듯한 느낌이 나서 보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을 떨어트릴 정도였으니까.
“나는 무조건 들어가야 하지만.”
혐오스러운들 어떤가. 조금의 혐오를 참고, 내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다면 역시 좋은 거래였다.
“가볼까.”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두운 실험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