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나 혼자 10만 대군 009화
2장 길드(5)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던 이천석의 얼굴을 힘껏 후려쳤다.
“악!? 이 새끼가……!!”
얼굴을 맞자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손을 휘두르려는 이천석.
하지만 바닥에서 그림자가 올라와 이천석의 발을 붙잡았다.
“뭐야!?”
다음에 올라온 그림자는 이천석의 허리를, 그다음에 올라온 그림자는 왼팔, 그다음은 오른팔.
사치스러운 인테리어로 가득했던 사무실 안이 내 그림자로 채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천석은 그림자들을 떼어내려 했지만, 어느새 사방에서 나타난 그림자들이 이천석의 몸에 달려들어 그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이천석은 그 와중에도 그림자들을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천석의 구속을 끝마친 그림자들은 이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악! 악! 으악! 이런 씨…… 켁! 컥!”
온몸으로 그림자의 주먹세례를 받는 이천석을 뒤로하고, 나는 아까 전 헌터들이 앉아 있던 곳을 보았다.
사무실 한편에 있던 헌터들은 이천석이 그림자들에게 꼼작 못하고 붙잡히자 대비를 시작했는지 잡히지 않고 사무실 한쪽에서 농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래쪽에서 올라온 그림자가 농성하고 있던 헌터들의 다리를 붙잡자, 그들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온몸이 구속된 채 그림자들의 샌드백이 되었다.
“어우, 그래도 B급 헌터라고 맷집이 좀 질기시네?”
“이 새끼, 너 지금 이러고도 네가 멀쩡할 것 같아!?”
“좀 더 맞아야겠네.”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일방적인 폭력.
이천석은 땅바닥에 잡힌 상태로 그림자들에게 온몸을 얻어맞고 있었고, 한쪽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헌터들도 그림자에 잡혀 이천석과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
“B급 헌터라더니.”
어떻게 B급 헌터 자격증을 얻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약했다. 적어도 최소한의 저항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최소한의 저항은커녕 오히려 한쪽에서는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참, 이런 것들도 길드라고…….”
다시금 헌터업계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깨달았다.
아마 여기 말고도 이런 식으로 신규 헌터들을 등쳐먹는 길드가 얼마든지 있을 테지.
“이젠 얼굴 전체가 멍으로 얼룩졌는데, 어떻게 생각해?”
한동안 이천석과 그 일당이 맞는 걸 구경하던 나는 적당한 선에서 구타를 멈추고 이천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얼굴 곳곳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그림자의 주먹에 쓸렸는지 피가 터진 곳도 있었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몸도 저 상태가 아닐까.
“너 이 새끼……!”
“와, 그렇게 맞고 아직도 욕을 하네?”
남는 건 체면밖에 없는 건지 끝까지 기를 죽이지 않고 노려보는 이천석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한테 이렇게 하고도 네가 멀쩡할 것 같아?!”
“또 똑같은 말을 라디오처럼 반복하네?”
“내 뒤에는 신천 길드가 있다!”
이천석은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얼굴 전체가 멍들고 부어오른 상태에서 그렇게 웃으니, 진짜 못생겨 보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진짜 더럽게 멍청하구나.”
나는 녹음 중인 스마트폰을 흔들며 이천석을 바라봤다.
처음 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약점이나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 녹음기를 미리 실행시켜 놓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멍청하게 행동하는 양아치들 덕분에, 나는 한 번의 녹음으로 꽤 굵직한 약점을 잡을 수 있었다.
“불법이란 불법은 전부 저지른, 길드 이름만 바꿔서 운영하는 이 길드의 배후에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신천 길드가 이렇게 더러운 짓을 할 수 있게 계속 뒤를 봐주고 있다는 거네?”
내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자 이천석의 얼굴이 굳었다.
“이거 방송 타면 재미있겠다?”
“고작 그거 하나 방송 탄다고 3대 길드 중 하나가 무너질 것 같아!?”
“당연히 무너지지는 않겠지. 근데 너희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눈앞에 가져가자, 순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이천석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렇게 일일이 힌트를 줘야 깨달을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길드장을 해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내가 원하는 일만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면 이 녹음파일은 영원히 내 스마트폰에 잠들어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웃자, 이천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은별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김우현 헌터, 처음 그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를 보러 왔을 때만 해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인력지원을 하러 가는 것을 막았을 때는 그를 원망했고, 그 뒤 카페로 와 나를 길드에 영입하고 싶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내 상황을 듣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카페를 나갔을 때는 솔직히 그가 살짝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상황이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이은별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떠올랐으니까.
빚을 갚기 위해 헌터업계에 들어와 소위 뉴스에서 말하는 악덕 길드에 잡혀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한 채 인력사무소에서 돈을 버는 일상.
그마저도 인력사무소에서 번 돈은 거의 다 빼앗기고, 남은 돈으로 그저 하나밖에 없는 동생과 생활하기에도 빠듯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생전 모르던, TV 뉴스에서나 나오는 유명인이 고작 D급 헌터인 나를 영입하겠다고 하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 계약서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이은별은 홀린 듯 계약서를 보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천석, 자신을 이 구렁텅이로 빠트린 그야말로 증오스러운 남자였지만, 지금 그의 몰골은 무척이나 처참했다. 얼굴 전체가 부어올랐고, 심지어 두 눈은 파랗게 멍들어 팬더라고 놀려도 될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이천석의 동료들도 마찬가지.
여기서 멀쩡한 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은별을 바라보고 있는 김우현밖에 없었다.
순간 펜을 쥔 이은별의 손이 멈칫했다.
그토록 원하던 계약해지인데, 혹시 이다음에는 더 혹독한 부당계약을 맺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은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슬쩍 시선을 돌려 김우현 헌터를 보았다.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은별은, 해지 계약서에 본인의 이름을 적었다.
“네, 이걸로 계약은 끝났고, 수고하세요.”
계약서에 사인이 끝나자마자 김우현은 이은별과 함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고,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 있던 도중, 이은별은 의문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예요?”
“네?”
“저는 헌터 랭크도 D급밖에 안 되고, 괴수 토벌 경험은 많지만 던전 경험은 없어요.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도 없고요.”
이은별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솔직히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김우현 헌터랑 저는 전혀 인연도 없잖아요? 근데도 이렇게 큰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저를 영입하려 하는 게 저는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이은별은 눈빛은 어느새 의심과 불신이 섞여 있었다.
* * *
“……뭐.”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 맞을 수도 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내가 갑자기 자신을 영입하겠다고 달려들더니, 부당계약을 했던 길드를 박살 내버리고 억지로 맺었던 계약까지 해지시켜 주었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도대체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친절을 베풀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
어떻게 말하지?
당신은 4년 뒤에 SSS급 헌터인 스타 폴(Star fall)이 되니까 제가 영입하러 온 거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이은별 씨는 가능성이 보여서요. 그뿐입니다.”
나는 무슨 말을 내뱉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진부한 대사를 입에 담았다.
“네?”
순간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이은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말한 대로 이은별 씨는 헌터로서의 가능성이 보여서 영입한 겁니다.”
“그건 너무 타당성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이은별 씨를 영입하려고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인데요.”
나는 그냥 배 째라는 식으로 우기기로 했다.
어차피 어중간하게 거짓말을 해봤자 그녀에게 의심과 불신만 더 심어줄 것 같다. 그럴 바에야 그냥 마음이 시켜서 했습니다! 가 나을 수 있었다.
……나을 수 있나?
말을 하는 도중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서 있는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제 길드에 들어오시면 절대 부당계약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그녀는 계속해서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그 뒤, 전화번호를 교환한 나는 사무실 주소를 주고 내일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이은별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곧바로 끌고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은데.”
억지로 끌고 가서 계약하려 했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녀의 성격이 아마 예전에 내가 본 그 성격과 아주 다르지 않다면.
“게다가 계약서도 준비해야 하고.”
어제 NT아이언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미처 계약서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 이외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마음 같아서는 내일 이은별을 바로 길드에 영입한 뒤, 다음 타깃을 찾아 길드에 영입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늘이 6월 21일.”
내 기억이 맞는다면 6월 26일, 의정부 쪽에서 ‘대형 던전’이 출현하게 된다. 그것도 내 집 근처에서.
대형 던전. 처음 괴수와 몬스터들이 지구에 나타나고 나서부터 전 세계에 불규칙한 주기로 생기는 이 던전은, 다른 던전들과는 다르게 던전이 열리자마자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대형 던전이 나타나는 곳은 그 반경 10km 정도는 영화에서나 보던 아포칼립스쳐럼 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형 던전은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빠져나오고, 그 몬스터 웨이브를 끊으려면 던전 안쪽으로 들어가 보스를 잡아야 한다.
회귀하기 이전에는 아직 능력도 제대로 개화하지 못했던 터라 대형 던전이 집 근처에 출현하자마자 다른 민간인들과 죽도록 도망치던 기억이 있었다.
“잃어버린 능력을 좀 찾아야겠는데…….”
내 기억으로 대형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몬스터들은 헌터들이 많다고 해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저지하고 던전 안에 들어가 보스를 잡으려면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하지 않았던, 내가 회귀하면서 잃어버렸던 능력을 조금이라도 되찾아야 했다.
“내일부터 바쁘겠네.”
집에 도착한 나는 반지하 방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