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나 혼자 10만 대군 008화
2장 길드(4)
헌터들은 처음 헌터가 될 때, 능력을 개화한다.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헌터들이 맨 처음 개화하는 능력은 ‘시스템’으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대략 볼 수 있게 된다.
그 이외에도 시스템을 개화한 탓인지 육체 능력이 일반인보다 크게 향상되고, 또 훈련을 통한 성장이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빨라진다.
그렇게 시스템의 보정 효과를 얻고 난 뒤, 헌터가 어느 특정한 능력치에 도달하게 되면 ‘능력개화’를 하게 된다.
시스템과 같이 정해져 있는 능력이 아닌, 헌터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 개화되는 것이다.
온몸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헌터가 존재하기도 하고, 나처럼 마정석을 취함으로써 또 다른 나를 복제하는 능력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훗날 SSS급 헌터가 되는 이은별처럼 하늘에서 유성우를 무한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이 개화할 수도 있다.
이처럼 헌터들의 능력개화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희비가 엇갈릴 만큼 그 중요도가 높다.
튜토리얼 1단계도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했던 헌터가 ‘능력’을 개화해 S급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능력이 개화하기 전까지는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다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능력을 개화하기라도 하면 그 헌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앙과 같아진다.
물론 헌터 본연의 실력으로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쓸만한 능력이 개화되지 않는 한, 그 헌터가 S급에 오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
정보를 찾고 난 다음 날,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헌터 인력사무소’에 들어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은별’을 찾을 수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단발에 축 처진 눈매는 금방이라도 힘을 잃을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고, 그녀의 몸에는 제대로 된 수리조차 되지 않은 방어구와 손에는 딱 봐도 낡아 보이는 창을 들고 있었다.
저게 진짜 4년 후의 SSS급 헌터이자 ‘걸어다니는 재앙’이라고 불리는 ‘스타 폴(star fall)’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이렇지 않았다.
딱 봐도 기가 세다고 느낄 정도로 강한 인상에, 자기가 원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이뤄낼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가 착각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지만, 유감스럽게도 처진 눈매를 제외하고는 내 기억 속의 이은별과 지금의 그녀는 머리카락 색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외모가 비슷했다.
“그 이은별이 헌터 인력사무소에 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는데.”
헌터 인력사무소. 말이 좋아 인력사무소지 사실 이곳은 길드에 영입되지 못한 헌터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곳이다.
근데 길드에 가입된 이은별이 헌터 인력사무소에서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새끼들, 완전 쓰레기 새끼들이네?”
어제 노트북으로 ‘NT아이언’을 검색해 보며 판단을 내린 결과, 나는 이 길드가 얼마나 뒤가 구린 길드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조금만 검색해 보면 상습적인 부정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고, 억지계약을 맺은 길드원을 마치 일회용품을 쓰다 버리다시피 하는 것 같았다.
뉴스나 시사를 뒤져보니 길드장이 길드원을 폭행하는 듯한 기사도 올라와 있고, 개량형 던전에서 가끔가다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NT아이언’이라는 회사가 언급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이름이지.”
이 회사는 계속해서 이름이 바뀌고 있었다.
처음 검색할 때 나왔던 이름은 ‘NT그룹.’ 그다음 신규헌터들을 억지로 계약하게 만들 때 썼던 화사명은 ‘아이언.’ 그 뒤에 길드원을 폭행할 때는 회사명이 ‘알룬’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NT아이언’이라는 회사명을 쓰고 있었다.
한 마디로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길드 이름만 바꿔서 세간의 시선을 돌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고 나서도 이름만 바꾼 정도면…….”
아마 대형 길드가 뒤를 봐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것도 매우 높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기, 혹시…….”
“네…… 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실례지만 이은별 씨 맞으시죠?”
내 말에 순간 그녀의 처진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가며 경계의 빛을 띠었다.
“누, 누구시죠?”
손에 맞지도 않는 창을 슬쩍 짚으며 경계 어린 태도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슬쩍 벗었다.
“혹시 저, 누군지 아시나요?”
내 물음에 그녀의 눈에 순간 경계심이 일더니 이내 나를 보며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고, 곧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 혹시, TV에서…….”
“네, 그 사람 맞습니다. 혹시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해서요.”
애초에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말을 걸고 또 설득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 얼굴을 보여줬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네? 왜 저하고…….”
“제가 할 말이 있어서요. 제안할 것도 있고요.”
내 말에 그녀는 의구심을 품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인력사무소의 문이 열리며 소리가 들려왔다.
“C급 쿠파! 근접으로 6명!”
“여기!”
“쿠파 토벌 경험 세 번!”
“쿠파, 티툰 각각 두 번씩!”
인력을 구하러 온 중소 길드 스카우터의 말에, 사무실에 앉아 있던 헌터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자기를 어필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이은별 또한 손을 들더니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했지만 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게 무슨……!”
“아마 저기 가는 것보다 제 제안을 들어보는 게 훨씬 유용할 겁니다.”
“저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요! 이거 놔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내 손에서 손목을 뺀 그녀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가 갔을 때 이미 인원은 전부 차버린 상태였다.
“…….”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 * *
“길드에 들어오라고요?”
“네.”
인력사무소 근처의 카페.
내 말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저는 여기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이미 길드에 소속돼 있거든요.”
이은별은 자조적인 눈빛으로 카페 오른쪽, 빌라에 위치해 있는 헌터 인력사무소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길드가 있는데 인력사무소에서……?”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지만 나는 짐짓 모르겠다는 듯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이은별은 내 물음에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들어봤자 좋을 것 없는 이야기예요. 어차피 해결도 안 되는 문제구요.”
그녀는 일순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을 하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어째서 요즘 제일 유명하신 분이 저를 길드에 영입하기 위해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럴 상황이 안 돼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있는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커피는 잘 마실게요. 아까 사주신다고 하셨죠? 죄송하지만 오늘 할당량을 채워야 해서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잠깐만요.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
“네?”
“길드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 말입니다. 혹시 위약금 때문입니까? 저는 이은별 씨가 타 길드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충분히 위약금을 감수하고 우리 길드로 데려올 생각이 있습니다.”
“……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입을 열었다.
“위약금 때문이 아니라면 딱히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가령 그냥 가기 싫다거나…….”
슬쩍 말을 흐리면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민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이내 다시 자리에 앉더니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고, 이내 그녀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빚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부모, 그 대신 빚더미 위에 눌러앉은 이은별과 그 동생의 이야기.
그녀는 20살이 되자마자 헌터에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돈을 벌기 위해 헌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업계에 뛰어들자마자 그녀는 악질 길드와 부정계약을 맺게 되었고, 갚으려고 했던 빚은 오히려 점점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인력사무소를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길드에서 부정계약으로 인한 빚만 청산되면…… 이제 남은 빚은 없는 겁니까?”
“아뇨, 부모님이 남겨놓은 빚이 아직 3억이나…….”
진짜 능력을 개화하기 전까지는 인생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구나.
나는 내심 고개 숙인 그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튼 우선 길드에 있는 빚만 청산되면 길드를 옮길 수 있는 거네요?”
“그건…… 그렇죠.”
그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그녀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네? 그게 무슨…….”
“아마 곧 소속 길드에서 전화가 올 겁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 * *
“어유, 요즘 핫하신 김우현 헌터님이 갑자기 찾아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하는 말은 더 당황스럽네?”
광진구 쪽에 위치한 ‘NT아이언’ 본사의 사무실.
그곳에서 자신을 사장이라 밝힌 남자는 이내 언짢은 듯한 시선으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은별 헌터의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하는 거죠?”
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사무실 오른편에서 나를 바라보며 피식거리는 헌터가 4명. 인테리어는 사치스럽다 못해 아주 돈이 펑펑 터질 것처럼 쓴 것인지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졌고, 사무실 중앙에 자리한 책상 위에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NT아이언 길드장 이천석]
“네, 제가 알아보니까 이은별 씨와 했던 계약은 기존 협회법의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셨던데요? 마정석 정산비율이 8 대 2인 것만 봐도 너무한 것 같은데…… 그 이외에 괴수 시체 정산 비율도 이상하고.”
“푸하하하하핫.”
내 말에 이천석은 갑작스레 박장대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나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저기요, 김우현 헌터. 요즘 신인 중에서 잘 나가는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많~이 부족하신 것 같은데?”
이천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서랍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나에게 보여줬다.
B급 헌터자격증이었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잘 나가는지는 알겠는데, 잘났다고 막~ 여기 쑤시고 저기 쑤시고 다녀서야 되겠어요? 그러다가 언제 한번 훅 가요? 네?”
비아냥거리는 이천석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금 여기에 있는 헌터들, 다 당신보다 등급이 훨씬 높아요. 네? 다 B급 헌터들이라구요. 그렇게 깝치고 다니다가 다시 밖을 못 볼 수도 있어요?”
이천석이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헌터들을 가리키며 겁을 준다.
“하…….”
그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삼류 양아치들이 대사를 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길드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어서 정상적으로 절차를 밟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은 이천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길드가 아니라 그냥 깡패들 모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놈들은 지금으로부터 5년 후, 세계의 멸망이 올 때까지 도움이라고는 단 하나도 되지 않을 놈들이다.
“아가리 꽉 다무세요.”
“뭐라고?”
내가 웃으며 말하자. 이제는 얼굴이 험악하게 변한 이천석이 나를 바라봤다.
“아가리 꽉 다물라구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능력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