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0만 대군-6화 (6/202)

# 6

나 혼자 10만 대군 006화

2장 길드(2)

“아마 길드를 만들게 되면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이 생길 거예요. 자금 문제도 있겠지만 다른 길드의 사소한 견제라던가.”

“…….”

“길드를 운영해 보면 알겠지만 사실 다른 길드에서 찔끔찔끔 찔러대는 게 굉장히 귀찮거든요. 물론 대형 길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형 길드에 깔려 죽겠지만.”

지연희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팔짱을 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서요?”

“저희가 그 사소한 일들을 처리해드리죠, 길드의 기본적인 자금 문제와 이런저런 길드의 사소한 견제 같은 것 말이에요.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걸 최소화하는 것은 가능하죠.”

지연희는 단발을 뒤로 젖히고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어때요?”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조건.

회귀 이전에서도 ‘길드장’으로서 길드를 운영해 본 적은 없지만, 길드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얼마나 피곤한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시비가 걸린 순간 다툼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그대로 찍어 눌러버릴 자신이 있지만 그래 봤자 진흙탕 싸움이다.

이기든 지든 사회적으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

물론 딱히 길드를 크게 만들 생각도,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어 이미지 손상 정도는 각오하고 가려 했지만, 역시 제일 좋은 건 상처를 입지 않는 거지.

“조건은 뭔데요?”

“음, 별거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 우리 고구려 길드랑 손을 잡고 있다고 어필하면 돼요.”

“고구려 아래 길드로 들어오라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그러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죠? 그러니까 그냥 고구려 길드에서 이미 침을 발라놨다, 정도면 돼요.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고요.”

확실히 고구려 길드와 엮여 있다는 소문이 나면 어지간해서는 다른 길드의 견제가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조건 자체도 나쁘지는 않다.

“조건이 너무 좋아서 수상한데요?”

내가 말하자 그녀는 키득키득 웃더니 말했다.

“김우현 헌터는 놓치기에는 아까운 인재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길드에서 못 가져가게 침이라도 발라 놓는 거죠.”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계산이 있겠지.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우선 침만 발라 놓는다는 식으로 끌어들인 다음 대형 길드와 소형 길드의 격차를 이용해 내 길드를 사회적으로 먹어치우겠다는 심산 정도인데.

고구려 길드의 부길드장까지 올라갔던 여자이니 분명 어떤 식으로든 계산이 깔려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잘 생각하셨어요.”

지연희의 미소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연희가 깔아놓은 계산이 무엇이든 간에 만약 내게 해가 되는 짓을 한다면 그대로 쳐내면 될 일이다.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라는 이름은, 내게 그리 큰 압박감을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무튼, 지금은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지연희와는 부가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부적인 길드의 지원금이라던가 고구려 길드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편의, 그 외 몇 가지 이야기.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니 택시는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지연희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

오랜만에 맥주나 사 올까.

곧바로 밖으로 나가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바탕화면에 있는 문서 파일을 클릭했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

처음 튜토리얼 던전을 끝내고 3일간, 나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 놓았다.

가독성은 그야말로 개판이지만 혹시라도 중요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보험 차원에서 써 놓은 글을 확인하며 나는 사 온 맥주를 홀짝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도 전부 쓰여 있고, 시작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어찌 보면 길드를 만드는 데서는 뜻밖의 도움을 받은 터라 우선 필요한 자금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된 것 같았다.

“이제 그럼 남은 건 앞으로 영입해야 하는 애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내가 길드를 만드는 이유. 그건 바로 회귀 이전 겪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뒤, 세계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익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길드들과 그런 길드들에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협회.

그리고 그사이에 끼어 사익을 위해 싸우게 되는 S급 이상의 헌터들.

그것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때의 상황은 개판이었다.

길드가 길드를 잡아먹고, 가뜩이나 힘을 모아야 할 헌터들이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서로 편을 가르고 싸움을 벌였다.

혹여나 멀쩡한 길드가 있어도, 다른 길드나 협회가 그 멀쩡한 길드를 싸움판으로 끌어들여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익을 먹어치우기 위해 다투었다.

“그때 생각하니까 또 답답하네.”

그렇게 서로를 물어뜯어 이미 헌터들의 숫자가 상당수 줄었을 때가 돼서야 나는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진 건 남은 헌터와 군대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던전과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괴수뿐.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 ‘악마’를 죽여 세계를 구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우습게도 인류의 멸망을 막는 건 실패했다.

“이제부터 S급 이상의 헌터나 도움이 되는 헌터들을 최대한 많이 내가 만든 길드로 모은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했던 건 적어도 3년 안에 S급 헌터나 그 이상의 헌터가 될 녀석들을 미리 길드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물론 S급 이상의 헌터의 경우엔 길드에서 최대한 특정 헌터를 밀어줌으로써 만들어지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S급 이상까지 올라오는 헌터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한국에만 3명.”

그다음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우선은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야 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드러나 몸값이 높아지는 녀석들보단,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는 녀석들을 영입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더 쉬우니까.

노트북을 닫고 손에 든 맥주를 전부 마신 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내일부터 시작해서…… 대충 5일 정도면 되려나?”

강형찬 부장과 했던 약속.

그것은 길드 창설비 지원과 협회에 등록된 헌터들의 정보를 열람하는 대가로 나는 협회에 할당된 던전을 클리어하기로 했다.

아마 5일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 *

전 세계의 헌터들을 관리하는 ‘국제헌터 협회’는 길드에 소속된 헌터의 숫자와 그 등급을 고려해 분기마다 일정한 숫자의 ‘개방형’던전을 클리어해야만 한다.

개방형 던전은 일반 던전과는 다르게 한 번 던전을 클리어해도 던전이 사라지지 않고, 던전을 클리어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몬스터가 생겨나는 형식으로 던전이 유지된다.

그리고 그 개방형 던전은 1달 주기로 던전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지 않으면 그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던전을 빠져나오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헌터를 관리하는 국제헌터 협회에서는 각 길드에 일정량의 개방형 던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형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길드의 뒷공작으로 인해 던전 분할을 총괄하는 ‘국제헌터 협회’의 바로 하위 지부인 한국 지부에서도 그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번 2분기에서 협회가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던전은 모두 5개였다.

고블린의 성채, 루안의 탑, 죽음의 늪, 탄생의 숲, 메마른 대지.

이 5개의 개방형 던전은 전부 한국에 존재하는 던전으로, ‘고블린의 성채’를 제외한 다른 던전은 모두 C랭크 판정을 받았다.

물론 난이도가 쉬운 던전이라도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쉽다는 것이지, ‘C랭크’ 던전의 경우 최소 그 등급에 맞는 헌터가 최소 8명에서 최대 16명까지 그룹을 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5개의 던전 중 유일하게 B랭크를 가지고 있는 이 ‘고블린 성채’는 고블린이라는 약한 이미지에 비해 난이도 무척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성채 안에 있는 ‘고블린 로드’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고블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던전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무식한 숫자의 트랩 때문이었다.

고블린들이 만들어놓은 트랩은 겉보기에도 엉성해 보여 금방 발견하기 마련이지만,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헌터가 트랩을 보지 못하고 밟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그 두 가지 난이도 때문에 ‘고블린 성채’는 B급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B보다 반 단계 높은 B+급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키엑! 끼엑! 끼! 키에에엑!!”

고블린들이 만들어놓은 나무 방책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무너지고, 요새 위에서 돌팔매질하던 고블린들이 그림자의 손에 잡혀 지상으로 처박힌다.

그림자들이 고블린 요새에 다가갈 때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활과 돌이 그림자의 머리를 후려치고 지나가지만, 그림자들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는 듯 요새를 향해 달려나간다.

돌팔매질하던 고블린이 그림자들에 잡혀 사지가 찢어진다. 요새 위에서 활을 쏘던 고블린은 나무를 타고 오른 그림자의 손에 잡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끝없이 나오는 고블린의 숫자에 기가 질릴 만도 했지만, 그림자들은 그저 묵묵히 빠져나오는 고블린을 죽이며 성문으로 흔들어댔다.

조악한 성채의 틈새로는 100마리도 훨씬 넘어 보이는 고블린이 요새의 문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이 부서졌고, 그 사이로 그림자들로 뭉쳐진 손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고블린을 후려쳤다.

그 순간 그림자와 고블린이 뒤엉켜 아비규환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

이연화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시선을 돌려 옆을 보자, 지연희의 명령을 받고 영상을 촬영하러 왔던 카메라맨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블린 성채’가 함락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

김우현 헌터.

튜토리얼 던전을 30분 안에 클리어하고, 그 후 나흘 동안 4개의 던전을 클리어한 남자.

그녀는 지연희 부장의 부탁으로 그의 무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라는 그럴듯한 구실과 함께 튜토리얼 던전에서부터 궁금했던 김우현 헌터를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직접 눈앞에서 봤는데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는 광경.

영상으로 몇 번을 봐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무력이, 다시금 그녀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숫자의 이점으로 헌터들을 괴롭히던 고블린들은 그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의 폭력 앞에 굴복해 새빨간 피를 흩뿌리고 있었고, 거대한 고블린의 성채는 이미 ‘거대한 손’에 의해 반파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그림자들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고블린 로드를 성채의 꼭대기에 처박아 버리는 것으로 싸움이, 아니 일방적인 폭행이 끝이 났다.

“이제 됐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으로 고블린 성채를 박살 낸 김우현이, 그때 이연화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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