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나 혼자 10만 대군 003화
1장 숫자의 폭력(3)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헌터 협회 스크린홀.
평소라면 한가한 스크린홀의 내부는 오늘 개방되는 ‘튜토리얼 던전’으로 인해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넓은 회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시험장 입구를 비추고 있었고, 그 주변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스크린들은 튜토리얼 던전 내부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장 한쪽 구석에서 강형찬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찾지 못했다.’
4일 전, CCTV에 찍혔던 정체불명의 헌터를 찾기 위해 3일 밤낮으로 직원들과 야근을 해가며 정보를 팠지만 나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있다간 한국 지부까지도 대형 길드들에게 넘어갈 텐데…….’
강형찬은 넘쳐흐르는 고민을 안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조금씩, 길드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헌터들을 통괄하던 헌터 협회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장 ‘미국’과 ‘일본’만 해도 이미 이름만 헌터 협회로 남아 있을 뿐 이미 대형 길드에게 먹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헌터만 찾으면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강 부장?”
강형찬의 한숨이 늘어갈 무렵, 들려온 소리에 강형찬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시선을 돌렸다.
검은 정장, 뒤로 넘긴 올백 머리에 여우같이 길게 찢어진 눈, 입가에는 유들유들한 미소를 띠고 있던 그는 벽에 기대어 있던 강형찬 부장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봐?”
“이시영,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이시영이라니? 이시영 과장으로 불러줘, 얼마 전에 승진했거든! 그리고 정말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설마 전의 강유진 헌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약을 올리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묻는 이시영의 말에 순간 욱한 강형찬은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지?”
“아니, ‘강유진’ 헌터를 뺏을 생각은 없었다니까? 그냥 ‘우연히’ 제안을 해서 어쩌다 보니까 우리가 영입한 거라고?”
‘이 새끼가 진짜…….’
강형찬 부장은 누가 봐도 놀리는 기색이 가득한 이시영의 얼굴에 그대로 죽빵을 꽂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이 무너져가는 협회에 불을 붙인다는 것을 알기에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왜 그렇게 시선을 돌리고 있어 강 부장? 혹시 몰라? 자세히 보다 보면 신입 헌터 중에 괜찮은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지?”
“너는 또 불쌍한 강 부장님 괴롭히고 있니?”
계속해서 까불거리는 이시영의 말에 강형찬의 인내가 슬슬 떨어져 갈 때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어이구, 우리 고구려 길드의 인사부장님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을까?”
“오늘 우리 연화가 상금으로 한턱 쏘기로 했거든. 덕분에 짬 내서 한번 와봤지.”
붉은 캐주얼 정장을 입고 짧게 친 단발을 한 차례 흩뜨리며 걸어온 그녀는 이내 강형찬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요, 강 부장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항상 딱딱하시네요.”
그러면서 슬쩍 미소를 짓는 고구려 길드의 인사부장 지연희를 보며 강형찬은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진짜 여우 같은 년’
강형찬 부장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앞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그 웃는 얼굴 뒤에서는 수백 마리의 구렁이를 키우는 여자였다.
어찌 보면 직접적으로 헌터를 빼앗아가며 깝죽거리는 이시영보다 눈에 보이지 않게 협회의 권한들을 하나씩 빼앗아가는 그녀가 강형찬에게는 훨씬 주의해야 할 대상이었다.
“어유, 어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실까? 내가 볼 때 아무리 봐도 1등은 못할 것 같은데?”
“어머, 그러니? 아, 하긴 저기 스크린에 보이는 게 이번에 신천 길드에서 키운 그 신천후인가 뭔가 하는 애니? 딱 봐도 초반에서 나가떨어질 것같이 생겼네?”
마침 양쪽 스크린에는 ‘신천후’와 ‘이연화’가 차례대로 잡히고 있었다.
[현재 시각 4시, 튜토리얼 던전을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메인 스크린의 화면이 전환되며 튜토리얼의 시작을 알렸지만, 이시영과 지연희는 서로 악담을 주고받는 데 정신이 없어서인지 스크린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번 헌터들은 몇 단계까지 갈 것 같아?”
“이번에는 4단계까지는 가지 않을까? ‘신천후’랑 ‘이연화’가 있으니까.”
“아, 그 신천 길드랑 고구려 길드에서 키운 헌터들 말하는 거지? 확실히 전에 훈련 영상 보니 적어도 C급 헌터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던데.”
강형찬은 앞에서 들리는 스카우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4단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튜토리얼 던전은 입구부터 시작해 총 5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단계가 올라가는 방식인데, 1단계에서는 F급 헌터도 그럭저럭 상대가 가능한 ‘고블린’이 등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던전에 나오는 고블린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던전’에서 나오는 고블린이나 튜토리얼에서 나오는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단체로 움직인다.
기본이 10마리, 한 그룹에 많으면 20마리가 넘는 고블린은 초보 헌터들이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이리저리 날아오는 잡기들도 거슬리고, 무엇보다 쪽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튜토리얼 던전 같은 경우 던전 하나에 100명이 넘게 들어가긴 했지만 헌터들은 미리 이전에 그룹을 만들어두지 않은 이상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
‘애초에 클리어가 목적도 아니고.’
튜토리얼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길 원한다.
그러려면 되도록 몬스터를 많이 잡아야 하고, 튜토리얼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분명 많기는 하지만 제한이 있었다.
‘4단계인가…….’
1단계의 ‘고블린’을 지나면 2단계에는 일반 고블린보다 3배 이상 강한 고블린의 변종인 ‘홉고블린’이 등장한다.
그다음 3단계에서는 D급 괴수인 ‘크발’이 있고, 4단계에 가서는 C급 괴수인 ‘칸츠’가 있었다.
그리고 5단계에는 A급 헌터들도 레이드 하기를 꺼린다는 B급 괴수 ‘타란튤’이 있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4단계까지는 가겠어.’
신천후와 이연화의 모의 훈련 영상은 알게 모르게 유튜×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신천과 고구려에서 홍보 목적으로 뿌렸을 게 분명하지만…….
아무튼 거기에서 나왔던 신천후와 이연화의 실력은 대단했다.
게다가 길드에서 붙여준 헌터들도 있을 테니 어찌 보면 클리어 확률이 10%밖에 되지 않는 4단계를 통과할 수도 있을 거라고 강형찬 부장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던 강형찬은, 시끄러웠던 주위가 어느새 적막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쩍 주변을 보니 스카우터들이 멍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게 대체 뭐야?”
“미친…….”
심지어는 조금 전 서로 악담을 주고받고 있던 이시영과 지연희마저 입으로 탄성을 흘리며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강형찬 부장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스크린을 바라봤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저, 저건……!”
거대한 스크린 안에는 강형찬 부장이 얼마 전에 보았던 ‘그림자’들이 수십 마리나 되는 고블린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장면이 보였다.
분명 고블린의 숫자는 많았다. 딱 봐도 30마리는 넘어 보이는 숫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고블린들을 하나하나 때려죽이고 있는 그림자들은 30마리나 되는 고블린을 둘러쌀 정도로 많았다.
“끼에에에에엑!”
고블린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림자들에게 사지가 붙잡힌 고블린이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찢기며 생을 마감한다.
그림자들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미친 듯이 조잡한 무기를 휘두르던 어떤 고블린은 이내 다른 그림자에게 잡혀 맨몸으로 그림자의 주먹을 받아내다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죽었다.
다른 고블린들도 마찬가지였다. 팔이 뜯기고, 사지가 떨어져 나간다.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러도 압도적인 숫자로 고블린의 무기를 무시하며 들어온 그림자들은 이내 순식간에 모든 고블린을 죽이고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다……!’
강형찬 부장은 던전 안쪽으로 뛰어들어가는 그림자들을 보며 잘게 몸을 떨었다. 얼마 전 CCTV에서 본 영상이 강형찬 부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메인 스크린의 화면은 바뀌어 이번에는 던전의 2단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홉고블린들이 그림자들에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든다. 홉고블린이 휘두른 무기에 머리통이 날아간 그림자가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의 뒤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와 홉고블린의 몸을 잡고, 순식간에 뒤를 잡힌 홉고블린은 밀려 들어오는 그림자들의 발에 밟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모여 있던 홉고블린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뭉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홉고블린들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림자들은 이미 그들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 그 뒤 이어지는 건 무자비한 폭력
스크린의 절반을 채우는 검은 그림자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홉고블린들의 몸에 주먹과 발을 박아 넣는다.
뜨고 있는 눈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비명을 지르는 입에는 주먹을 집어넣어 내장을 헤집는 모습이 스크린에 잡혔다.
“우욱…….”
“미친, 어떻게 저런 식으로 몬스터를 죽여……?”
“미쳤군…….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혼자 싹쓸이하고 있잖아? 저게 말이 돼?”
몬스터가 사냥당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던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슬슬 말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은 멈추지 않고 몸을 움직여 3단계의 시작지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몸길이가 4M에 육박하는 설치류 괴수, 흡사 ‘악어’같이 생긴 외형의 괴수인 ‘크발’이, 달려오는 그림자들을 향해 몸을 부닥쳤다.
신입 헌터들이 두꺼운 가죽 덕분에 상당히 고전해야 하는 괴수인 만큼, 크발에게 달려가던 그림자들이 그 몸통박치기에 맞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나 다시 크발에게 달려들었다.
그림자들이 크발의 온몸에 달라붙는다. 짧은 다리, 몸통, 팔, 입. 붙잡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붙잡고 늘어진다.
그에 크발은 최대한 몸을 굴려 그림자들을 떼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 노력도 무색하게 크발의 몸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100명은 넘어 보이는 그림자들에게 잡혀 몸을 구속당했다.
온몸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조금이라도 약한 살가죽에 거침없이 손과 발을 밀어 넣는다.
크발의 눈이 그림자의 주먹에 터져나가고, 겁을 상실한 병사처럼 크발의 입안에 손과 발을 집어넣는 그림자들.
강형찬 부장은 문득 확대된 크발의 눈동자에서 ‘괴수’에게는 느껴질 리 없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4분 12초……?”
어느새 넝마가 되어 있는 크발의 시체.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던 크발의 두 눈은 이미 그림자들의 손에 사라지고 없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자들은 넝마가 된 시체에 시선도 두지 않은 채 묵묵히 튜토리얼 던전의 4단계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먹잇감을 찾아 이동하는 맹수들처럼.
그리고 4단계의 입구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림자들의 뒤에서 한 남자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