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725화 (725/726)

#725화

알 수 없는 이변이 발생했다.

본래라면, 시스템의 카운트다운이 ‘0’을 가리킨 순간, 무한의 순환이 시작되어야 했다.

그러나.

[-10]

[-11]

.

.

-삑. 삑…….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시스템의 시계는 0에서 멈추지 않고 마이너스를 표기하며 계속 나아갔다.

무한의 순환이 시작되지 않는 상황.

전 우주에 있어 전례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변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 드넓고 광활한 우주 공간은 주변이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와 에스라 대륙, 무림으로 보이는 각 세계와 그 주변에 떠다니는 별들.

우주 곳곳에 보이는 세계의 파편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프로토와 처용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

천천히 움직이던 우주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었다.

우주를 떠다니던 먼지와 기류, 천천히 공전, 자전하던 각 세계까지.

이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멈추었다.

마치, 우주의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

그런 멈춰 버린 우주 한가운데에서.

“하하하하!”

처용의 광소가 크게 울려 퍼졌다.

자해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입에서 피를 토해 내고 있었지만.

“표정들이 아주 볼 만한데? 하하하!”

고통 따위는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진심 어린 기쁨과 광기의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처용의 웃음소리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첫 번째 프로토가 분노와 당황을 내비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일은 지금껏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다른 프로토들 역시 당황스러움을 드러냈고.

“……!”

처용을 조용히 지켜보던 두 번째 프로토 역시, 심히 당황스러워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악의 종주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드러냈고.

-이런 미친놈이…… 진짜로 해낼 줄이야.

수라는 혀를 내두르며 읊조렸다.

모든 이들이 당황을 표하자.

“나도 참 멍청한 새끼야. 크크…… 홧김에 일을 저지른 다음에야 깨닫다니…….”

처용은 당황스러워하는 모든 이들의 반응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읊조렸다.

그리고.

“이 우주의 ‘중심’을 파괴했다고 해야 하나? 크흐흐.”

조소를 머금으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말해 주었다.

우주의 중심을 파괴했다는 처용의 말.

그 말에, 프로토들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 없는 경악을 드러냈고.

-우주의 중심…… 이럴 수가, 그렇게 된 것이었나?

이제야 알겠다는 듯, 상황을 파악한 악의 종주의 말에.

“신법재판소가 처음 파괴되었을 때를 보면, 생각보다 답은 가까이 있었던 셈이다.”

처용이 신법재판소를 언급하며 답하듯 말했다.

분노에 휩싸인 여래가 신계를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대사건.

신법재판소가 파괴되고 우주의 법칙이 최초로 무너진 사건이었다.

여래는 신들을 보호하는 절대적인 법칙을 부수기 위해, 그 법칙의 중심인 신법재판소를 파괴했다.

그 결과, 인간은 신을 공격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법칙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천칭의 조율자들을 지키는 법칙은?

그 법칙을 유지하고 발현하는 ‘중심’은 무엇인가?

이 우주에, 그 불합리한 법칙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중심이 과연 무엇인가?

우주의 중심이자 무한의 순환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나에게 주어진 권한이자, 나를 이 우주의 중심에 묶는 족쇄.”

이 우주에서 오롯이 처용에게만 주어진 권한.

스스로가 각성한 멸천의 신명보다도 우위에 있는 개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멸천의 신명을 이 우주 안에서 통제할 수 있도록, 구속하고 있던 법칙이 있었다.

처용을 이 우주에 속박하고 우주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법칙.

그 법칙은 다름 아닌.

“계승자.”

바로 ‘계승자’였다.

처용은 가진 모든 힘을 발현하여, 자신에게 깃든 계승자를.

“내가, 계승자를 ‘파괴’했다.”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계승자의 권한을 파괴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변이었다.

“네놈들은 나한테 힌트를 주지 말았어야 했어.”

처용이 프로토, 특히 가장 중앙에 있는 첫 번째 프로토를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프로토들에게 힌트를 받았다는 말.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일을 벌일 수 있었다는 외침.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선택할 시간이다. 계승자.

-계승자에게 선택을 거부할 권한은 없다.

프로토가 처용에게 선택을 강요하며 했었던 말들.

하지만, 그들은 ‘처용’에게 선택을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처용이 아닌 ‘계승자’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즉, 무한의 순환과 이 우주의 법칙에 있어 계승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처용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름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계승자가 중요하다면…….

그 계승자라는 개념이자 법칙이 사라지거나 파괴될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처용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

마음속이 깊게 요동칠 정도로 불길한 느낌이 솟구쳤다.

감히 저질렀다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느낌.

마치, 이 우주가 강렬하게 경고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떠올리지 않으려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처용은 우주가 보내는 그 불길한 경고를 기꺼워했고.

“모두 네놈들이 초래한 결과다!”

지금껏 그 누구도, 전대 어떤 계승자도 하지 못한 선택을 저질렀다.

처용이 광기 어린 미소를 내지르며 소리치자.

“이 우주의 중심을 바로잡아라.”

인상을 찌푸린 첫 번째 프로토가 양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우주로 넓게 퍼져 나갔고.

-화악.

짧은 순간 우주의 별들이 반짝였다.

첫 번째 프로토가 이변을 바로잡는가 싶었지만.

-피이……!

잠시 반짝이던 별들이 다시 빛을 잃으며 꺼졌고.

“……이런.”

그 모습을 본 첫 번째 프로토가 낭패감 어린 침음을 흘렸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는가?”

“이 우주뿐만이 아니라, 다른 우주도 영향을 받고 있다.”

다른 프로토들이 무형의 기운을 내뿜으며 처용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그때.

“……아직 늦지 않았다.”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 침착한 눈빛으로 상황을 파악한 프로토.

“계승자를…… 고쳐야 한다.”

첫 번째 프로토가 처용을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처용이 아닌, 조금 전 처용이 파괴한 계승자의 권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처용에게 깃들어 있는 계승자의 권한이.

-우웅.

희미한 빛을 내뿜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아직 계승자의 권한이, 이 우주의 중심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증거.

처용이 이 우주의 중심인 계승자를 완벽하게 파괴하지는 못한 듯 보였다.

그런 처용을 붙잡아 계승자의 권한을 고친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는 생각 안 해 봤어?”

처용은 첫 번째 프로토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내가 일부러 계승자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우웅. 스스!

신력을 몸에 둘르고 상처를 회복시키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일부러 계승자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다는 듯한 뉘앙스.

상처를 회복한 처용이 다시 한번 주변에 신력을 둘렀고.

-쿠구! 파지지!

신력을 강하게 터트리듯 진동시켰다.

그 결과.

-쿠구! 쿵!

다시 한번 우주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스스!

조금 전, 처용이 우주를 오염시키기 위해 퍼트린 파멸의 기운보다 더 짙은 기운이 넓게 퍼졌다.

“안 돼!”

그 모습을 본 첫 번째 프로토가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자.

-우주를 파괴하게 둘 수 없다.

-쿠구구!

순환의 포식자가 처용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공격할 수 없는 존재가 내리쳐 오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큭.”

처용은 순환의 포식자가 내리쳐 오는 거대한 주먹을 올려다보며 웃어 보였다.

순환의 포식자와 맞설 때마다 보였던 경각심이 사라진 듯한 모습.

“태극천체일도 – 천지멸절.”

-위이잉! 스릉!

태극천체일도를 소환한 처용이 뛰어오르며 아래에서 위로 칼날을 휘둘렀다.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돌진하며 공격을 선택한 것.

너무나도 무모한 공격처럼 보였지만.

-촤아아! 쿵!

태극천체일도가 그려 내는 황금빛 선이 순환의 포식자가 내리친 주먹을 저지했다.

-촤아! 촤아아-!

두 번째 검은 선이 그어지며 거대한 주먹을 가르며 지나갔고.

-촤아! 파아아-!

마지막, 검붉은 파멸의 선이 추가로 그어지며 우주를 반으로 가르자.

-크어어!

-쿵! 쿠궁!

순환의 포식자가 뒤로 밀려나며 괴성을 질렀다.

내리친 주먹을 시작으로 팔과 어깨, 얼굴까지 길게 자상이 그어진 모습.

-이건……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광경을 본 악의 종주가 목소리를 떨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우주에 속한 그 어떤 존재도, 순환의 포식자에게 상처를 입힌 존재는 없었으니까.

악의 종주의 읊조림에.

-이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파멸.

수라가 짙은 미소를 드러내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견고했던 법칙이…… 지금, 이 순간 무너졌을 뿐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견고하고 정교한 법칙일 뿐이다라…….

이어지는 수라의 말에 악의 종주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고.

“네놈들을 지키는 그 잘난 법칙이 고장 난 것 같은데?”

-스릉.

처용이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프로토들을 향해 칼날을 내지르며 말했다.

순환의 포식자를 공격하는 데 성공한 상황.

망가뜨린 우주의 중심, ‘계승자’를 파괴하며 파멸과 멸천의 힘을 널리 퍼트린 결과였다.

처용의 기운이 이 우주를 넓게 잠식했고 본래 발휘하고 있던 법칙들을 모두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 말인즉, 눈앞의 프로토들 역시 공격할 수 있다는 것.

“당장 멈춰라!”

-샥! 콰쾅!

첫 번째 프로토가 처용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과 태극천체일도가 충돌하며 굉음을 자아냈고.

“지금 네놈은 이 우주만이 아닌, 다른 우주까지 망치려 하고 있다!”

첫 번째 프로토가 분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이 계승자의 자격을 고의로 부수고 이 우주를 크게 망가뜨렸다.

그로 인해, 정교한 우주 곳곳이 갈라지며 틈이 생겨났고.

-스스스!

처용은 그 틈새 곳곳에 파멸과 멸천의 힘을 퍼부으며 우주를 더더욱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 우주가 무너지고 그 이후에는 근접한 다른 우주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아니, 현재 일어난 이 영향이 얼마나 더 크게 퍼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당장 멈춰라! 모든 우주를 궤멸시킬 생각이냐?”

“크흐흐, 모든 우주가 궤멸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당장 멈추라는 첫 번째 프로토의 말에, 처용이 비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만 멸망하는 건 좀 억울하니, 다 같이 ‘파멸’하는 거다! 하하하!”

이 우주만이 아닌, 그 너머, 모든 우주의 파멸.

이것이 벼랑 끝에 몰리고 몰려 버린 처용이 내린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그때.

“그만!”

-화아아!

처용과 첫 번째 프로토 사이에 두 번째 프로토가 나타나며 소리쳤다.

무형의 기운이 처용과 첫 번째 프로토를 동시에 밀어내었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싸움을 중재하듯 나선 두 번째 프로토가 처용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승자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며?”

처용이 비웃음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프로토들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계승자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게다가, 그 선택지가 무한의 순환, ‘모든 것의 소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뿐이었다.

이 때문에 처용은 스스로 선택지를 개척했고 현재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 나는 계승자가 아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처용.”

처용의 격한 반응에도, 두 번째 프로토는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계승자가 아닌, ‘처용’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 말.

그 말에, 진지한 눈빛으로 처용이 침묵했다.

그때.

“나서지 마라. 두 번째.”

-화아아!

첫 번째 프로토가 두 번째 프로토를 무형의 기운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명령을 내리는 듯한 그 말에.

“지금 그대는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알고는 있는가?”

두 번째 프로토가 인상을 찌푸리며 첫 번째 프로토에게 물었다.

그는 싸움을 중재하는 것으로 처용이 이 우주를 부수는 행위부터 말릴 생각이었지만.

“첫 번째 프로토는 나다. 물러나라 두 번째.”

첫 번째 프로토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명령했다.

“……어리석은.”

그 말에, 두 번째 프로토가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찌푸릴 때.

-파아아! 지잉!

돌연, 우주 전체에 짙고 무거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 기운이 우주를 파괴할 듯, 불길하게 일렁이는 파멸과 멸천의 기운을 저지했고 동시에.

[우주의 천칭(天秤)이-.]

-띠링. 파아아!

우주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계승자에게 ‘대화’를 요청합니다.]

처용은 돌연 나타난 시스템 창을 보며 진지한 눈빛을 빛냈다.

‘천칭, 우주의 절대적인 의지…….’

현재 사태를 중재하듯 나타난 존재.

처용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스스로를 ‘천칭(天秤)’이라 언급한 존재.

천칭은 이 우주의 의지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처용은, 이 우주 자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대화를 요청해 왔음에도.

“대화는 무슨 놈의 대화!”

적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답했다.

“아아, 날 방심시켜서 붙잡아 계승자를 고친 다음, 이 우주를 순환시키려고? 어디 한번 해 봐!”

[…….]

처용이 대화를 거부하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우득! 스스스!

자신의 심장 부근,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계승자’를 강하게 쥐며 신력을 내뿜었다.

파멸과 멸천의 신력이 계승자를 타고 다시 한번 넓게 우주로 퍼지자.

-쿠구! 쿠구구!

천칭이 펼친 기운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우주가 다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무려 우주의 절대 의지인 천칭이 나섰음에도, 처용을 쉽게 저지할 수 없는 듯한 모습.

그런 처용의 모습에 시스템 메시지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첫 번째 프로토.]

다시 시스템 창이 이어지며, 첫 번째 프로토를 부르는 천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대가 저지른 독단으로 인해, 우주에 돌이킬 수 없는 이변이 발생.]

[천칭은 그대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서두른 탓이라 판단합니다.]

책임을 묻는 듯한 천칭의 목소리에.

“더는 이 우주에 이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첫 번째 프로토가 따지듯 답했다.

그 말에 천칭이 다시 짧게 침묵했고.

[천칭은,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첫 번째 프로토를 ‘파면’합니다.]

이내, 첫 번째 프로토를 파면한다는 메시지를 이었다.

“나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규칙을 어겼을 뿐 나를 파면할 순 없-.”

첫 번째 프로토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했지만.

-우웅. 파아아!

빛이 짧게 점멸하며, 첫 번째 프로토가 그 자리에서 터지듯 사라졌다.

천칭은 첫 번째 프로토를 파면한 직후.

[천칭이 다시 한번 계승자에게 대화를 요청합니다.]

[대화 도중, 계승자를 속이거나 조율자들이 나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주의 천칭(天秤)으로서 약속합니다.]

처용을 향해 그를 속이거나 기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약속하듯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 말에 분노를 가라앉히고 진정한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천칭에게 묻자.

[천칭은, 이전보다 더한 파멸을 또 보기 위해, 계승자를 중심축으로 시간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천칭이 이 우주의 파멸을 보기 위해 시간을 돌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를 중심으로 시간을 돌린 게 너였군.”

그 말에 처용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처용을 중심으로 시간을 돌린 존재는 바로 천칭이었다.

[우주 자체의 시간을 돌리기 위해서는 방대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우주의 시간을 돌릴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계승자를 중심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 해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현재 우주의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는 천칭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순환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대들의 표현으로 고여 있는 물은 썩어 버리는 법.]

[우주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환은 필수입니다.]

어째서 무한의 순환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그런 천칭의 말에.

“……부수고 새로 만들고, 또 부수고 또 새로 만들고! 이걸 계속 반복하고!”

짧게 생각하며 침묵한 처용이 시스템 창을 강하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처용은 무한의 순환이라는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천칭은 무한의 순환이 흐르는 물이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볼 땐, 이 반복적인 방식도 ‘고여 있는 물’이나 다름없어.”

처용이 볼 땐, 멸망과 재창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무한의 순환이 고인 물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파멸과 창조가, 정녕 ‘흐르는 물’이라고 할 수 있나?”

고이고 고이다 못해 썩어 간 결과, 현재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지금 처용이 무한의 순환을 망가뜨리지 못했다고 해도, 언젠가는 무너졌을 법칙이었다.

“무한의 순환은 고여 있는 물이었기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 내 말이 틀려?”

처용이 이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천칭의 판단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한 시스템 창이 입을 열었고.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이 사태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됨.]

[계승자의 의문 제기는…… 일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처용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한 의사를 표했다.

그런 천칭의 반응에 처용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주의 천칭은…….]

다시 생각에 잠기며 침묵한 천칭이 입을 열었고.

[그럼에도, 무한의 순환을 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무한의 순환만큼은 필요하다는 말을 이었다.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고 고쳐 나가는 과정에서, 그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무한의 순환은 정교한 우주의 법칙.

그 법칙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하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런 천칭의 말에, 처용이 인상을 확 찌푸린 순간.

-파아아!

돌연, 처용의 옆에 황금빛이 점멸하고는.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쿠구구!

황금빛을 빛내는 황룡이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대리자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내가 모두를 이끌고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네.”

-파아아!

황룡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환한 빛무리들이 퍼졌고.

-내가! 내가 ‘노력의 신’이야!

근처에서 떠다니는 금빛의 빛무리 중 하나.

그 작은 빛이 점멸하며 큰 목소리를 내뿜더니.

-네놈들이 뭔데 내 노력을 허사로 만들려 해!?

-파아아!

시스템 창을 향해 한 줄기의 빛을 발사했다.

천칭을 향한 공격처럼 보이는 그 빛은, 시스템 창을 지나쳐 우주 멀리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천칭을 향해 공격을 가한 빛무리를 자세히 응시하고는.

“……이진호 헌터?”

빛무리로 보였던 사람의 형상.

그 형상이 누구인지를 눈치채며 읊조렸다.

그리고.

-도와주러 왔어. 서약자.

처용의 옆에 다가온 또 다른 황금빛의 실루엣.

루나의 모습을 한 실루엣이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이 옆으로 다가온 루나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자.

-이게 우주인가?

-우리의 세계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네, 적에게 집중하게나.

그런 처용의 곁으로 다가온 이들.

우주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루비아와 무록, 그런 둘에게 경계하라고 말하는 검성.

-우리 모두가 너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처용을 향해 믿음 어린 목소리로 힘이 되어 주겠다고 말하는 아테나.

그런 그들과 함께 나타난 성좌들, 헌터들, 다른 모든 이들까지.

“……전부?”

처용이 황룡과 함께 나타난 이들을 보며 놀라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를 흘렸다.

-이게, 우리의 의지입니다. 우주의 천칭이여.

그런 처용의 앞에 다른 이들보다도 작은 체구의 형상.

보살이 처용 앞에 서서 천칭을 향해 말했다.

[……관리자.]

현재 상황을 관찰하듯, 잠시 침묵한 천칭이 황룡을 부르자.

“천칭이여, 나는 이들의 의지를 대변하기 위해 나섰을 뿐이오.”

황룡이 진지한 목소리로 천칭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그리고.

-전에, 자네의 질문에 내가 이리 답했었지.

처용의 곁에 다가온 성좌 중 하나.

-어떤 결과가 벌어지든, 그 누구도 자네를 탓할 수 없다고 말이야.

언문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전에 처용의 고민에 답해 주었던 말을 다시 해 주었다.

어떠한 결과가 벌어진다 해도, 처용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

그 말을 다시 들은 처용은.

“감사합니다. 대왕님.”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언문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동시에.

“이 사람들의 의지를 깡그리 짓밟고 무한의 순환을 시작하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진지하게 다잡으며 읊조렸다.

“나도 네놈의 의지를 깡그리 짓밟고 모든 우주를 파멸시킬 수밖에!”

천칭을 강하게 노려본 처용이 선언하듯 말했다.

“이 우주든! 다른 우주든! 우주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든!”

무한의 순환을 계속 고집한다면.

“나의 것을 지킬 수 없다면, 차라리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

모든 것을 말 그대로 전부 파멸시켜 버릴 것을 선언했다.

“무한의 순환을 시작하는 순간, ‘파멸의 순환’도 시작된다.”

목소리를 낮추고 잠시 진정한 처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한의 순환에 대항할 수단.

멸천의 신명에 파멸을 섞어 이 우주에 퍼트린 오염.

처용은 널리 퍼진 자신의 힘 속에, 새로운 ‘법칙’을 새겨 넣었다.

무한의 순환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우주를 붕괴시키는 파멸이 시작된다.

처용이 이 자리에서 소멸한다고 해도, 그 법칙만큼은 남아 무한한 파멸을 반복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멸망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파멸.

“이것이 내가 새로 만들어 낸 법칙, 우주에 영원히 새겨질 ‘멸천의 법칙’이다.”

처용이 우주 속에 오염을 퍼트리며 새겨 넣은 ‘멸천의 법칙’이었다.

무한한 우주의 파멸을 예고하는 처용의 말에.

[천칭은…… 그대가 원하는 것이, 이러한 결말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모든 것이 파멸하면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사라지니까.]

생각에 잠기며 침묵하고 있던 천칭이 입을 열었다.

[천칭은…… 한처용에게 대화가 아닌, 새로운 거래를-.]

처용의 말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려는 듯, 많은 생각과 고민이 일렁이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새로운 ‘순환’의 체재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이내, 천칭이 처용의 말에 대한 답을 이야기했다.

대화 끝에 천칭이 내놓은 답은 바로 협상.

무한의 순환이 아닌, 새로운 우주의 순환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런 천칭의 대답에, 처용이 생각에 잠기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좋다.”

이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삼키며 답했다.

그 순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순환이 만들어지는 만큼.]

[그대 역시,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 갈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계승자의 자격’은 영원히 그대에게 고정되어 귀속됩니다.]

-화아아아!

천칭의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지며 밝은 빛이 폭발하듯 퍼졌다.

그 빛이 이 우주를, 세계를 감싸며 모두를 집어삼킬 때.

“곧 돌아가겠습니다.”

처용이 황룡과 그와 함께 나타난 이들을 향해 작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윽고.

-파아아!

천칭이 내뿜은 빛이 더 밝게 타오르며 우주 전체를 뒤덮었다.

시야를 가리며 터져 나간 빛이 다시 잠잠해지자, 황룡과 함께 나타난 모든 이들이 사라졌다.

‘……돌아갔군.’

처용은 그들이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음을 알아챘다.

정확히는 천칭이 그들을 다시 각 세계로 돌려보냈으리라 추정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 ‘협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각 세계를 바라보던 처용이 다시 앞을 응시하자.

-스스스.

눈앞에 별빛이 모이듯, 빛이 모이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용은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천칭’임을 확신했다.

시스템 창으로만 자신을 드러내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존재.

천칭의 조율자들보다도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그 거대한 존재감이, 모여드는 별빛 속에서 느껴졌다.

-화아아.

이윽고 빛이 점점 또렷해지며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자.

“보살님…… 이 아니군.”

처용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심적 동요를 가라앉혔다.

지금 천칭이 보이는 모습은 다른 이도 아닌 현재 보살의 모습이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읊조리며 노려보자.

[이 모습은 그대가 가장 거대한 감정을 품은 존재를 계산해 형상화한 모습입니다.]

천칭이 어째서 자신이 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이야기했다.

[애정, 연민, 사랑…… 그대가 가장 강하게 애틋함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내가 보살님을? 감히?”

[단순한 사랑이라기엔, 언어로 표현 못 할 정도로 복잡할 겁니다.]

부정하듯 말하는 처용의 대답에 천칭이 말을 이었다.

[가장 강한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애정에 가깝겠군요.]

“…….”

이어지는 천칭의 말에, 처용이 침묵할 때.

-삐.

근처에서 여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유리아?”

처용이 어느새 옆에 나타난 유리아를 보며 놀람을 표했다.

-삑.

유리아가 처용을 보며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고는 바로 앞, 보살의 형상을 한 천칭을 바라봤다.

[나의 시스템에서 분리되어 자아를 얻은 것을 상당히 만족해하는 것 같군요.]

-삐익.

이어지는 천칭의 말에, 유리아가 긍정하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너의 시스템?”

그 말에 처용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묻자.

[시스템 역시, 나이니까요.]

천칭이 처용의 의문에 답해 주듯 말했다.

[시스템은 태초신의 권한만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에게 깃든 전대 계승자가 나의 힘과 권한을 일부분 양도받아 만들어 낸 관리 체계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시스템의 탄생과 관련된 비밀이었다.

시스템은 단순히 태초신의 힘으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태초의 조각은 나의 파편이자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이었던 부품.]

[그중 하나는 유리아라는 독립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났기에,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태초룡, 이후에는 창세룡이 되어 차기 태초신의 자격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

[이 또한, 그대가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이기에 가능했던 일.]

[법칙을 거스르는 힘을 각성한 계승자, 전대 계승자의 계략으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우주…….]

[이 복잡한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져 유리아라는 또 하나의 ‘작은 천칭’이 태어났습니다.]

유리아에 관련된 비밀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유리아는 태초신 정도가 아닌, 더욱 드높은 존재로 격상할 자격이 있었다.

천칭이 유리아를 ‘작은 천칭’이라 칭했으니까.

[원래는 무한의 순환을 이용해, 그간 있었던 모든 변수를 지우고 오류를 수정하려 했습니다.]

본래 천칭은 무한의 순환으로 이 복잡한 변수들을 모조리 없애 버린 후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지만…… 무한의 순환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대의 말대로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미래를 계산한 천칭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처용으로 인해 무한의 순환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용의 협박을 거스를 수단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대에게 깃든 파멸이,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지요.]

천칭은 악의 종주가 세운 마지막 수단.

무한한 계승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무한의 순환으로 우주에 속한 모든 정보를 지워 버린다고 해도.

[우주의 중심, 계승자에게 계승되어 버린 정보는…… 삭제가 불가능하니까요.]

우주의 중심인 계승자만큼은, 함부로 손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칭은 이러한 변수들로 인해, 새로운 수단을 찾았고.

[지금부터 그대는 저와 함께, 새로운 순환의 규칙을 만들 겁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처용과 협상을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새로운 순환이라?”

천칭의 말에 처용이 의문과 궁금증을 표하듯 읊조리자.

[우주는 이곳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화아아!

밝은 빛을 터트리며 천칭이 말한 순간, 주변의 모습이 크게 확장되었다.

처용이 있는 우주가 점점 작아지고 주변 일대가 크게 넓어지자.

“……다른 우주!”

주변을 둘러본 처용이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크게 확장된 공간은 다름 아닌, 더 넓은 우주의 모습이었다.

처용이 사는 세계들이 모인 우주만이 아닌, 다른 우주들과 함께 어우러진 우주.

각 세계가 천체(天體)를 그리며 우주를 구성하고 그 우주들이 모여 거대한 은하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주의 진정한 비밀이자, 전체적인 모습.

‘아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조차,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처용은 장엄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와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우주의 마지막 계승자이자, ‘유일한 계승자’여.]

천칭이 그런 처용을 향해 말을 이었다.

우주의 법칙이 다시 한번 바뀌는 이상, 계승자는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처용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존재.

우주의 단 하나뿐인 ‘최후의 계승자’였다.

이제부터.

[그대와 함께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 마지막 계승자와 함께 새로운 우주의 규칙을 만들 시간이었다.

“맺어진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킨다. 분명히 말해 두지.”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보살의 모습을 한 천칭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두 번째 프로토.]

두 번째 프로토를 불렀다.

-스륵.

우주 공간이 일렁이며 천칭의 부름을 받은 두 번째 프로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에게 역할을 내리겠습니다.]

“천칭의 뜻대로.”

역할을 내리겠다는 천칭의 말에, 두 번째 프로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약속은 지킨다고 했지만…… 내가 아예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건가?”

처용이 천칭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운 우주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도와주겠다고 천칭과 거래한 상황.

약속은 약속이니, 천칭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엄청난 세월이 걸리리라 짐작되었다.

처용의 우려 어린 질문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칭은 걱정하지 말라며 답했다.

[천칭은 우주의 관리와 보수 원칙을 중요시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새로운 파트너가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야.”

처용이 천칭의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동시에.

‘곧, 돌아가겠습니다.’

이젠 작은 점이 되어 보이는 우주.

그곳에 있을 고향, 지구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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