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718화 (718/726)

#718화

검은 대지의 근원 중 하나를 처리한 이들이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이 멸망해 버린 검은 세계에서 완전히 나가는 건 아니었다.

일행들이 향한 곳은 가장 먼저 정화를 끝낸 장소이자, 지구와 연결된 게이트가 있는 지점이었다.

그곳에는.

-키이잉. 지잉.

높고 두꺼운 철제 방벽과 그 위를 회전하며 사방을 감시하는 감지탑.

마치, 기계 성체로 보이는 듯한 방어 요새가 자리해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커맨더가 구축한 벙커 센터였다.

지구에 발생한 검은 문, 그곳과 연결되는 멸망해 버린 세계.

그 세계를 정화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일을 끝마친 처용과 일행들이 철제 성벽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잉.

감시 장치로 보이는 카메라가 처용과 그 뒤에 있는 카란디아와 청이, 에블린을 응시하듯 움직였고.

-지잉. 철컥. 철크럭!

성벽에 청록색 빛이 세로로 그어지더니, 좌·우로 나누어지며 문이 열렸다.

벙커 센터 안으로 일행들이 발을 들이자,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크기의 컨테이너 건축물과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들을 지나친 처용이 중앙에 보이는 반구형의 건물, 지휘 본부 안으로 들어서자.

“왔어?”

홀로그램 스크린을 바라보던 커맨더가 미소를 지으며 처용과 일행들을 반겼다.

“멀리서도 아주 선명하게 보이던데? 청이 혼자서 디파일리스크를 무력화했지?”

벙커 센터 본부에서 상황을 지켜봤던 커맨더가 청이를 바라보며 칭찬하듯 말하자.

“네, 아주 훌륭하게 컸습니다.”

처용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이가 황룡의 신관이 된 건 세계 헌터 회의가 열리고 한 달쯤 뒤였다.

황룡의 선택을 받은 청이는 처용에게 집중적으로 수련을 받았다.

청이가 제 의지로 자신 또한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처용은 그런 청이의 의지를 확인하고 스피릿 팀의 헌터들보다 더 혹독하게 가르쳤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진작 포기할 법하다고 느낄 정도.

그러나 청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태초신이 선천적 선인인 보살을 본떠 창조한 일족의 후예다운 재능.

다른 룬티르 일족의 아이들보다 더 강하게 타고난 자연의 기운.

황룡의 신관이 되어 그의 힘까지 내려받고 처용의 혹독한 훈련까지 소화했다.

그렇게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자.

청이는 이제 스피릿 팀의 원년 멤버들과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까지 성장했다.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청이의 어린 나이까지 생각하면, 앞으로의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했다.

추가로 살아남은 룬티르 일족의 아이 중, 청이처럼 자연의 힘을 타고난 아이들.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었기에, 청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빠르게 강해졌다.

현재 그 아이들은 모두 스피릿 팀에 소속되어 헌터들을 돕고 있었다.

“역시, 황룡의 선택을 받은 뛰어난 신관이야.”

“솔직히, 용님의 신관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이어지는 처용의 칭찬 어린 말에, 청이가 아쉬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를 읊조렸다.

청이가 황룡과의 완벽한 적합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황룡의 신관이 되는 것을 잠시 망설였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처용.

될 수만 있었다면, 멸천의 신을 따르는 신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관은 본인이 선택받고 싶다고 하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이 선택한다고 하여 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랬기에, 청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황룡의 신관이 되었고 그 힘으로 처용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하하, 멸천의 신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나타나기는 할까?”

처용은 그런 청이의 말에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멸천의 신명을 감당할 만한 인간이 과연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으니까.

“다른 녀석들은 자존심이 좀 상하겠어. 막내 팀이 1등으로 왔으니까.”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며 다른 곳의 상황을 살피던 커맨더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 순간.

“내가 2등이라고!?”

-촤아악!

벙커 센터의 사령실 안으로 진호가 요란스럽게 나타나며 소리쳤다.

그 뒤로, 진호와 함께 검은 대지의 근원 정화에 나섰던 성녀, 호네아와 스피릿 팀의 헌터들.

“이건 예상 밖인데?”

“설마 우리가 청이보다 늦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다른 구역의 근원을 맡았던 백호와 현아, 테시아를 포함한 스피릿 팀 소속의 이종족들도 나타났다.

벙커 센터를 중심으로 각각 네 방향으로 흩어져 가장 강한 검은 대지의 근원을 처리한다.

이번 검은 문을 공략하는 핵심 작전이었다.

약 두 달에 걸쳐 주변 일대 정화를 끝낸 후, 오늘 소수 정예들이 돌입하여 근원을 모두 처리한 것이었다.

청이와 카란디아, 에블린이 그 중요한 작전의 한 축을 맡았고 훌륭하게 해내었다.

“네가 도와준 거 아니지?”

“전 구경만 했습니다.”

진호의 물음에 처용이 솔직하게 답했다.

처용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할 겸 따라나선 것뿐이었다.

높이만 무려 100미터에 달하는 국가급 디파일리스크를 홀로 쓰러뜨린 청이.

디파일리스크가 부활하기 전에 무력화하고 근원을 처리한 카란디아.

검은 대지의 정화와 남은 디파일리스크의 거대한 잔해를 쓸어버린 에블린까지.

모두 처용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은 아이들만의 업적이었다.

“사실이야, 아주 훌륭하게 처리해주었어.”

본부에서 옵저버로 상황을 지켜보던 커맨더가 증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여신님, 근원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커맨더가 눈을 감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향해 말을 잇자.

[좋아, 이 세계를 안전하게 포장해서 격리할 수 있겠어.]

일행들이 있는 본부 내부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테라포밍(Terraforming)!]

-우웅. 화아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권능이 발현되었고 벙커 센터를 중심으로 은빛의 신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은빛의 신력이 멸망한 세계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고.

[포장 끝,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끝났어.]

은빛의 거미줄이 세계 전체를 감싸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작전의 종료를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해 격리된 세계는 차후 시간을 들여 한 번 더 정화 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 이후에 다른 세계처럼 천천히 복구하는 것이 순서였다.

모든 작전이 종료되자.

“다행이야, ‘그때’가 도래하기 전에, 마지막 검은 문도 처리할 수 있어서.”

홀로그램 상황판을 지켜보던 커맨더가 읊조리듯 말했다.

“……그렇죠.”

그 말에, 처용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진호와 청이를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커맨더의 말을 이해한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커맨더가 말한 그때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검은 세계를 정화하는 작전이 끝나고 뒷정리를 할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태룡사로 돌아왔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태룡사 또한 변한 부분이 있었다.

성지의 크기가 더욱 넓어지고 동쪽에 세워진 태룡시가 서쪽까지 이어지며 더욱 확장되었다.

신과 인간, 다양한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

심지어 최근에는 태룡시 내부에 종종 악마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은 바질리아 종족과 잿빛 도시의 악마들.

안드로말리우스와 메피스토의 권속들이었다.

모두 엘리스와 니알라를 통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고 소환된 이들이었다.

그렇게 더욱 발전하고 변화한 태룡사의 전경을.

“…….”

처용이 감회 어린 눈빛으로 넓게 바라봤다.

많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처용이 침묵하고 있을 때.

[짧은 시간 참 많이도 변했구나.]

-탓.

처용의 옆에 여래가 다가와 태룡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성지를 세울 때는 그냥 작은 산에 불과했었는데…….”

여래의 말에 처용이 과거 태룡사의 모습을 상기하며 읊조렸다.

지금의 태룡사는 처음 성지로 만들 때보다 약 다섯 배나 더 넓어져 있었다.

그저 단순한 사찰에 불과했던 장소가, 이제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거의 모든 종족이 모여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계 유일의 장소.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 작은 세상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너로구나.]

이러한 세계 유일의 성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모두 처용의 노력 덕분이었다.

여래가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지금까지 노력한 보람이 느껴지네요.”

도시 전경을 바라보던 처용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태룡사의 모습.

그것은 처용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절실히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자신이 이룬 노력의 결정체를 바라보며 웃던 처용이 돌연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눈빛을 띠었다.

아직 미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껏 힘들게 이룩한 이 모든 것들이 파멸할 위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대략…… 일주일 남았죠?”

눈빛이 가라앉은 처용이 여래를 향해 물었다.

뜬금없이 남은 시간을 묻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 그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천찰께서 말하더구나.]

여래는 처용이 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듯, 답했다.

“조크 – 크타니드…….”

처용이 파멸을 불러올 존재의 이름을 읊조렸다.

대파멸을 예고하고 사라진 악의 종주.

그가 돌아올 시기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걱정되느냐?]

악의 종주의 이름을 읊조리는 처용의 말에 여래가 걱정되냐고 묻자.

“아뇨. 할 수 있는 일은 다 준비해 놨으니까요.”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곧 다가올 파멸을 걱정하기보단, 그에 맞서려는 듯, 전의와 투지를 드러냈다.

이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다.

“지금 저희의 전력은, 이전과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처용이 말하는 이전이란, 바로 회귀 전을 뜻했다.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파멸할 운명을 맞이했었던 지구, 에스라 대륙, 무림 세계를 구해 냈고 하나로 규합시켰다.

각국 헌터들의 전력은 회귀 전보다 수준이 높아지며 더욱 상승했다.

아나샤가 이끄는 아라한 왕국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지며 아라한 제국이 되었다.

에스라 대륙의 다른 왕국들은 아라한 제국에 큰 반기 없이 협력 중이었다.

아라한 제국, 아나샤의 뒤에는 처용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제국의 여황제가 된 아나샤는 다른 왕국을 대상으로 온화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다.

과거, 권위와 힘을 내세우며 수탈을 일삼던 아스터 제국과는 전혀 상반되는 분위기였다.

각 왕국의 왕들은, 모두 아스터 제국의 잔혹한 통치를 기억하고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이 때문에, 아냐사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그녀의 정책을 환영하고 있었다.

무림 세계 역시 큰 분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성을 중심으로 다시 형성된 무림맹이 분쟁 없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었다.

본래 무림맹과 마찰이 잦았던 천마신교 역시 원만하게 협력 중이었다.

각 성운의 성좌들 역시 회귀 전보다 전력이 더욱 상승한 상태였다.

아스가르드가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토르를 중심으로 뭉치며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신계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다름 아닌.

“몇몇 신관들이 임시 성좌로 인정받았지요.”

인간이 성운의 신들에게 인정을 받아 그들의 일원이 된 사건이었다.

아직 그들의 자격이 부족하기에 ‘임시’로 자격을 얻은 것에 불과했지만, 임시로라도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외에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완전한 신력을 개화한 이들이 소수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회귀 전에 없었던 일.

따지고 보면, 이 또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처용이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이제, 자신 있게 놈을 맞이하고 우리가 이기면 됩니다.”

그간의 변화와 준비를 생각한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는 파멸의 시간에 긴장감이 일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파멸을 상대로도, 무한의 순환을 상대로도 말이죠.”

처용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투지를 불태우며 승리를 다짐했다.

이윽고 시간이 더욱 흘러, 악의 종주가 예언한 3년.

정확히 파멸을 예고했던 시간이 찾아오자.

-쿠구!

모든 세계, 이 우주 전체에 거대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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