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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717화 (717/726)

#717화

세계 헌터 회의가 끝난 지, 어느덧 약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길면 길다고 할 수도 있고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지구와 에스라 대륙, 무림 세계에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가 될 만한 일이란, 세계 헌터 회의가 소집될 정도로 심각한 경우를 뜻했다.

다행히, 3년의 시간이 점차 흘러가는 동안, 세계 헌터 회의가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각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살던 세계와는 다른 타 세계들이 나타나 서로 연결되는 변화가 있었기에.

[지구 – 아시아 여행 코스…….]

[아라한 왕국 북부 여행…….]

[7일의 소림사 템플스테이 체험…….]

.

.

각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향하는 관광 산업이 빠르고 활발하게 발달해 갔다.

서로 문화와 환경이 다른 세계에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각 세계의 대표 세력들이 맺는 우호 협정, 협력과는 별개로 사람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모두, 가장 먼저 각 세계 간의 교류 산업에 뛰어든 선구자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바로 지구의 사업가들이었다.

그 기업 중 하나가, 태룡사에서 건축, 식료품 등의 사업을 도맡은 JS 기업.

바로 윤아의 부친인 제석이 운영하는 기업이었다.

대기업인 JS를 주축으로 다른 기업들이 활발하게 타 세계로 사업을 확장한 결과.

각 세계에 지구의 문물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들이 구축한 교역로 덕분에, 타 세계의 문물 또한, 다른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것이 세계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최초의 시작점이었다.

높은 편의성을 자랑하는 지구의 문명 문화 산업 기술.

마법과 마나를 다루고 이용하는 문화가 형성된 에스라 대륙.

육체에 마나를 쌓아 신체를 단련하는 무림 세계의 수련법.

각 세계의 독자적인 특징을 자랑하는 문명, 문화, 기술 등이 서로 공유되었다.

이는 서로의 세계에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로 던전.

멸망한 세계의 파편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개 중에는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던전인 검은 문.

검은 문이 나타나면, 각 세계가 신속하게 연합하여 원정대를 조직해 정화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지구, 에스라 대륙, 무림 세계에 나타난 검은 문은 총 다섯 개.

가장 마지막에 발생한 검은 문은 다름 아닌 지구였다.

그 검은 문의 내부, 멸망한 세계 안은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칠흑이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피잉! 파아아-!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광원이 달처럼 떠오르며 환한 빛을 터트렸다.

그로 인해 검고 축축한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크륵!?

-케엑?

어둠 속을 어기적어기적 배회하던 새까만 괴물들이 달처럼 떠오른 광원을 올려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마치, 빛에 의해 자극을 받은 듯한 모습.

-캬아아!

-크아!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새까만 괴물들이 파도처럼 몰려들며 빛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때.

-샥!

허공 위에 떠 오른 광원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괴물들을 가로막았다.

성인 남성이라기에는 체구가 좀 작고 아직 어린 인상이 남아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년.

괴물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대도, 아직 어린 티가 묻어 있는 소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샤라락. 파지직! 파직!

샛노란 문자를 빛내는 여덟 장의 부적이 팔괘의 진법을 그리며 전류를 내뿜고 있었다.

이윽고 괴물들이 소년의 지척에 다가온 순간.

“뇌격부 - 만뢰!”

-탁! 파지직!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소년이 두 손을 합장하며 팔괘의 진법에 응축되어 있는 벼락을 터트렸다.

-콰르릉! 콰콰콰-!

샛노란 팔괘의 진법에서 무수한 벼락 줄기가 사방으로 드넓게 퍼져 나갔고.

-파사삭! 파직! 쿠콰콰-!

새까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괴물들을 불태우고 감전시키며 더 넓게 퍼져 나갔다.

강렬하게 터지는 벼락을 견디지 못한 괴물들이 잿더미로 변하며 사그라졌다.

단 한 번의 벼락에 의해 천 단위가 넘어가는 괴물들이 사그라졌지만.

-캬아아!

-크아!

흩날리는 잿가루가 걷히며 다시금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그 괴물들은 조금 전의 괴물들처럼 그저 달려들기만 하지 않았다.

거대한 해일처럼 몰아쳐 오는 괴물들이 돌연 한곳으로 뭉치더니.

-꾸르륵! 꾸륵! 캬하아아-!

높이가 100미터는 훌쩍 넘을 듯한 거대 괴수로 변화했다.

수십 개가 넘는 다리와 융털처럼 꿈틀거리는 촉수가 무수히 박힌 모습.

거미와 전갈이 합쳐진 듯한 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이빨을 들이밀며 소년을 향해 포효했다.

“디파일리스크…….”

그 모습을 본 푸른 머리의 소년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디파일리스크(DefileLisk).

검은 대지의 근원으로부터 태어난 뒤틀린 괴물이자 검은 대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괴수.

살아있는 생명체라기보단, 죽음과 파멸을 불러오는 재앙 덩어리에 가까운 존재였다.

거대한 검은 빌딩이라 봐도 무방한 크기의 괴수, 디파일리스크의 등장에.

-파지직! 파직!

푸른 머리의 소년은 그런 괴수와 싸우려는 듯, 전류를 피워 올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때.

“국가급 디파일리스크라…… 상대할 수 있겠느냐? 청이야.”

-스륵.

소년의 뒤로 처용이 나타나 디파일리스크를 여유롭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처용의 말에.

“지금 제 전력을 시험하기엔 충분합니다. 용님.”

-탁!

푸른 머리의 소년, 청이가 두 손을 합장하며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벼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그 힘이 응축된 자연부까지 만들어 다루는 소년.

그 소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처용이 에스라 대륙에서 다시 만난 인연 중 하나.

룬티르 일족의 생존자이자, 처용에게 ‘청’이라는 이름을 받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 어리고 연약했던 소년은 지금.

-파지직! 콰르릉!

단신으로 무수한 괴물들을 쓸어버리고 디파일리스크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용을 따르며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결과였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벼락의 힘을 끌어 올린 청이가 누군가를 향해 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무리하지는 말거라.]

그런 청이의 귓가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콰르릉! 촤라라-!

벼락의 힘이 크게 증폭되며 청이의 양팔에, 용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금빛의 문신이 돋아났다.

지금 청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벼락은 단순한 벼락이 아닌, 신의 힘이 깃든 벼락이었다.

청이가 파장이 맞는 신에게 선택받아 신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신이 아닌.

“감사합니다. 황룡 님.”

무려 천찰의 대신, 황룡의 신관이었다.

황룡의 도움을 받은 청이가 강렬한 벼락에 내뿜을 때.

-캬아아! 쿠구구!

디파일리스크의 앞다리와 그 앞다리에 달린 무수한 촉수가 청이를 향해 내리쳤다.

집체만 한 검은 기둥이 빠르게 떨어지는 듯한 모습.

도저히 피하기 힘들어 보였지만.

“뢰신보.”

벼락의 휩싸인 청이가 뒤로 뺀 왼발을 가볍게 구르자.

-파직. 콰르릉!

한 줄기의 벼락으로 변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쾅! 쿠콰콰!

뒤이어 디파일리스크의 앞다리가 땅에 떨어지며 지면을 크게 부수었다.

-파지직! 샥.

벼락으로 변하며 사라진 청이가 다시 나타난 곳은 디파일리스크의 몸통 위의 하늘.

“선법-.”

-탁. 콰르르릉!

두 손을 합장한 청이가 정신을 집중하자, 주변에 휘몰아치는 강렬한 벼락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쿠구구! 쿠구! 스스스-!

검은 하늘이 순식간에 환해지더니, 샛노란 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머리의 크기만 해도, 디파일리스크에 버금가는 정도.

“천룡강림.”

-탓. 후우욱!

합장하던 두 손을 뗀 청이가 지면으로 벼락을 유도하듯, 손을 아래로 내리자.

-크롸아아아-!

하늘 위에서 형성된 거대한 용의 머리가 입을 크게 벌리며 지면 아래로 쇄도했다.

이윽고.

-콰자작! 콰르르릉-!!

거대한 용의 머리가 디파일리스크의 몸통을 물어뜯으며 강렬한 뇌전을 폭발시켰다.

폭발한 용의 머리가 샛노란 뇌전 폭풍의 기둥을 형성했다.

-캬아! 케에에-!

거칠게 휘몰아치며 폭발하는 뇌전의 기둥 속에 휘말린 디파일리스크가 고통 어린 괴성을 토해 냈다.

벼락을 떨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듯 보였지만.

-캬아…… 파사사!

이내, 더 저항하지 못하고 육체 전체가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후-.”

-파지직. 탓.

강렬한 힘을 쏟아 낸 청이가 다소 지친 듯, 굵고 짧은 숨을 고르며 지면에 내려왔다.

강한 공격 한 방으로 거대한 적을 무찌른 듯 보였다.

하지만.

-스륵. 슈르륵-!

아직도 뇌전이 타오르며 이글거리는 지면 위로 검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뭉치기 시작했다.

디파일리스크는 검은 대지가 있는 한,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이었다.

청이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육체가 터졌다 해도, 빠르게 재생하는 모습.

이대로 둔다면, 청이의 공격이 허무하게도, 디파일리스크가 멀쩡하게 살아날 판이었다.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청이는 그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때.

“청, 혼자 고생 많았어.”

청이의 옆으로 아직 어린 티가 묻어 있는 백색의 소녀.

카란디아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녀 또한 청이처럼 더욱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에는 없었던 또 다른 변화.

-샤라락. 사락.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반투명한 나비 날개가 카란디아의 등 뒤에 펼쳐져 있었다.

“의욕을 잃고 잠들어라.”

카란디아가 디파일리스크를 향해 손을 뻗으며 읊조리자.

-스륵. 스르륵.

그녀의 등 뒤에 펼쳐진 나비 날개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가루가 흩날리며 뿌려졌다.

반짝반짝 무지갯빛을 빛내는 가루가 점점 살아나려는 디파일리스크에게 닿자.

-슈르륵!? 스륵?

서로 뭉치고 얽히던 검은 촉수들, 다시 살아나려던 디파일리스크의 파편들이 몸을 뒤틀었다.

카란디아가 뿌린 가루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

“으음, 가장 큰 녀석답게 저항이 심하네.”

그 모습을 본 카란디아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고는.

“후, 티타니아 님.”

요정들의 여왕인 티타니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에잇, 저 끔찍한 것!]

-화아아!

카란디아의 위로 빛나는 가루가 모이며 반투명한 티타니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시에, 카란디아가 뿌리는 무지갯빛 가루의 빛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꾸르르……!

저항하던 디파일리스크의 파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축 처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불사의 괴물인 디파일리스크조차 무력화하는 가루.

그 가루의 정체는 요정의 가루였다.

아니, 단순한 요정의 가루가 아니라, 요정 여왕인 티타니아의 힘이 깃든 가루였다.

카란다이가 티타니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이유.

그녀가 바로 요정 여왕과의 완벽한 적합성을 지닌 티타니아의 신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 차례야.”

티타니아의 도움을 받고 디파일리스크를 무력화한 카란디아가 누군가를 부르듯 말하자.

“준비는 진작에 끝났어.”

-콰드드득!

카란디아의 뒤로 나무뿌리가 자라나 갈라지며 에블린이 나타났다.

양손을 지면에 댄 채 집중하는 듯한 모습.

“팔괘목림진 - 자연포확.”

에블린이 지면에 검은 나무뿌리를 뻗으며 읊조리자.

-콰드득! 콰콰콰!

녹빛이 일렁이는 검은 나무뿌리가 에블린을 중심으로 팔괘를 그리며 자라났다.

나무줄기로 팔괘의 진법을 그려 낸 듯한 모습.

에블린이 만들어 낸 독특한 팔괘의 진법에서 크고 작은 뿌리들이 추가로 뻗어 나가 주변을 뒤덮었고.

-콰자자작! 콰작! 슈르륵-!

주변을 검게 오염시킨 기운을 흡수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꾸르르륵! 슈릅!

무력화된 디파일리스크 역시 잘게 뜯어지고 쪼개지며 나무뿌리에 잡아먹혀 갔다.

동시에.

“요정의 포용.”

-스륵.

카란디아가 잡아먹혀 가는 디파일리스크의 잔해를 향해 양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그러자.

-푸슈-욱!

흐느적거리는 검은 촉수 사이에서 1미터 정도 크기의 새까만 구슬이 튀어나왔다.

불길한 기운이 가득 응축된 듯 보이는 검은 구체.

그것은 다름 아닌 디파일리스크의 핵이었다.

-탓. 화아아!

양손으로 검은 구체를 잡아챈 카란디아가 무지갯빛을 내뿜어 구체를 감쌌다.

그 순간.

-슈르륵! 푸화악! 팟!

부들부들 떨며 바닥을 기던 촉수의 일부가 카란디아를 향해 쇄도했다.

위기를 직감하고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한 모습.

그러나 그 촉수들이 카란디아에게 닿기도 전에.

“어딜 감히!”

“접근할 수 없다.”

-화아아! 차카캉!

네이션과 호단 등, 카란디아를 지키는 불사의 기사단이 나타나 촉수들을 저지했다.

-파지직! 콰르릉!

숨을 고르던 청이 역시 즉각 벼락을 내뿜으며 촉수들을 불태웠다.

카란디아를 노리던 촉수들이 모두 저지되었고.

-슈르륵!

에블린이 소환한 검은 나무뿌리가 디파일리스크의 잔해들을 모두 먹어 치웠다.

마지막으로.

-화아아!

요정의 기운에 감싸인 검은 핵이 환하게 빛나며 카란디아에게 흡수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란디아가 지닌 고유 능력.

빛의 포용으로 디파일리스크의 핵을 포용한 것이었다.

이제 포용된 핵은 카란디아와 요정의 힘에 의해 서서히 분해되며 그녀의 힘으로 바뀔 것이다.

검은 대지의 근원인 디파일리스크가 완전히 처치되자.

-스스스……!

주변에 빼곡히 깔려 있던 불길한 기운이 옅어졌다.

검은 대지 역시, 점차 검은색이 빠지며 원래의 색깔로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우, 오늘은 이 정도만 해야겠어요. 더 먹었다간 체할 것 같아요.”

거대한 디파일리스크의 잔해를 먹어 치운 에블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오늘은 한계야.”

“여기까지만, 하고 정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카란디아와 청이도 다소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용은 확인차,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다들 고생 많았다. 이걸로 오늘 임무는 완료다.”

-짝짝.

박수를 두 번 치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듯 말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에.

“너희는 내 예상보다 더 잘 성장해 주었어.”

처용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칭찬하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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