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714화 (714/726)

#714화

1일 차, 세계 헌터 회의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는 어째서 처용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불러 모았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세계 멸망에 대한 비밀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한 대부분의 정상이 도움을 약속했다.

두 번째는, 3년 뒤에 악의 종주가 불러올 재앙에 대한 대비.

이 역시 아주 중요한 안건이었다.

처용은 그에 대한 대비 중 하나로 전쟁으로 인해 약화된 각 성운의 세력 보강을 이야기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빈 성좌들의 자리를 보충하는 것.

심지어 그 빈 자리를 재능 있는 인간들로 보충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 증거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처용의 말에 모두가 납득했다.

이렇게 두 가지 내용으로 세계 헌터 회의의 첫 번째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세계 헌터 회의는 하루만 모이고 끝나는 것이 아닌, 길면 일주일까지 이어지는 대회담이었으니까.

오늘 언급된 안건만 해도,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 나온 상황.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할지는 이후 이어질 회의에서 다룰 내용이었다.

첫 회의부터 무거운 주제들이 언급되었기 때문인지.

-우리 길드는…….

-내일 대처 방안을 논한다고 하니, 결과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작 3년, 4년 남았다라…….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표들이 태룡사 이곳저곳에 모여 추가적으로 논의 중이었다.

그들은 곧장 돌아가지 않고 세계 헌터 회의가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태룡사에 머물 생각이었으니까.

일부 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각 성운의 신계로 되돌아갔지만.

[무한의 순환이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요.]

[성운에서도 방법을 찾겠다고 했지만,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을 리가…….]

일부 신들은 태룡사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상의 사람들과 신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허락을 받은 신들이 본신 상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태룡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들은 모두 성운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가 원해서 지상에 남길 원했던 이들.

이 때문에, 신으로서의 권의를 내세우는 등의 마찰을 빚는 일은 일절 없었다.

세계 헌터 회의 첫째 날이 지나가고 두 번째 날.

[그자가 3년 뒤를 예고하며 순순히 물러났다고 하나, 일시적으로 평화가 찾아온 것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황룡이었다.

악의 종주는 3년이라는 시간 뒤에 대파멸을 일으킬 것이라며 물러났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은 시간 동안 평화가 찾아온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여전히 조각난 세계가 던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우주를 떠도는 세계의 조각들이 지구를 비롯한 세계에 달라붙어 던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그 던전을 해결해야만 했다.

게다가, 던전보다도 더 규모가 큰 문제도 있었다.

[파멸한 세계에서 흘러들어오는 부정적인 기운 또한, 해결해야 한다.]

악의 종주가 완전히 파멸시킨 세계.

완전히 죽어 검게 변해 버린 세계 또한 해결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에스라 대륙 북서부에 멸망한 세계와 연결되는 검은 문이 나타났습니다.”

멸망해 버린 그 세계 역시 아주 거대한 던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스터 교단이 만들어 내던 재앙만큼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에스라 대륙의 대표로 참석한 아나샤가 검은 문이 다시 출현했음을 알림과 동시에.

-우우웅.

들고 있던 수정구 형태의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회담장의 중앙에 거대한 스크린이 떠올랐고.

-지잉.

그 스크린 속에서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벌어진 듯한 검은 선.

검은 문이라고 잘 알려진 게이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악의 종주는 물러났다며?

-잔당들이 벌인 짓인가?

스크린 속 검은 문을 본 사람들이 의문 어린 분위기를 드러냈다.

보통 검은 문은 악의 종주에게 가담한 이들이 벌인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에스라 대륙에서 나타난 검은 문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저건 자연적으로 나타난 거다. 멸망한 세계 자체가 D급 던전의 형태로 발현한 거지.”

검은 문을 본 엘리스가 그것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짐작했다는 듯, 말했다.

에스라 대륙에 나타난 검은 문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연 것이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아스터 교단과의 전쟁 때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괴물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아나샤가 상황을 설명하자.

“단순히 입구를 틀어막기보다는 그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용이 검은 문을 바라보며 해결책을 언급했다.

“원인이라면?”

“이전처럼 저 문을 닫아 버리면 되는 건가?”

제시카와 처용을 향해 물었고 커맨더가 이전에 썼던 방법을 이야기했다.

“아뇨. 저걸 닫아 봤자 다른 곳에서 또 입구가 생길 겁니다.”

처용은 이전에 썼던 방법, 그저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 멸망한 세계를 정화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처용이 말한 해결 방법은 다름 아닌, 검은 문 자체를 해결하는 것.

바로 멸망한 세계를 정복하고 정화하는 것이었다.

-멸망한 세계 전체를 정화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그 말에, 사람들이 가능성을 계산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멸망한 세계 전체를 정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갑자기 확 커진 스케일에, 선 듯 그 규모와 가능성이 잘 가늠되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굳이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겁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그 가능성을 다시 언급했고.

“그 세계를 정화하면, 하나의 온전한 또 다른 세계가 우리의 터전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로 인해 얻는 이득을 이야기했다.

[……그렇군.]

[확장의 개념으로 보면, 기회가 될 수 있다.]

처용의 말을 이해한 몇몇 성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드넓은 규모의 S급 던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온전한 다른 하나의 세계를 얻는다라.”

“삶의 터전이 더욱 넓어져서 나쁠 건 없습니다.”

“그곳의 자원도 활용할 수 있고요.”

커맨더와 제시카 등, 다른 신관들 역시 이득이 될 부분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거대한 사냥터가 생긴 셈이네.”

“오히려 좋군.”

진호와 백호 등, 스피릿 팀의 일원들을 포함한 고레벨의 헌터들은 이를 기회라 여기며 미소를 지었다.

검은 문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엄청난 규모의 D(Death)급 던전.

그만큼 무수한 물량의 괴물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강해지는 헌터들의 특성상, 크게 성장할 기회나 다름없었다.

“검은 문에 돌입할 선발대와 그곳을 정화할 대규모 원정대를 조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시카가 검은 문을 정화할 원정대를 꾸릴 것을 이야기하자.

-좋은 기회다.

-안 그래도 성장이 슬슬 더딘데, 잘됐네.

고레벨의 헌터들이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이에 동의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제시카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림과 지구에도 검은 문이 열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 일을 방지하라면, 검은 문과 이어져 있는 세계, 멸망한 세계를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

[에스라 대륙 말고도 검은 세계가 더 나타날 것이다. 파멸을 맞이한 세계는 하나가 아니니까.]

이어지는 황룡의 말과 함께 대회담이 계속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오가는 회담의 내용은 바로 3년 뒤의 대비와 그동안 갖추어야 할 준비들이었다.

***

2일 차 회담이 끝나고 3일 차, 4일 차 회담까지 계속 이어졌다.

3년 뒤에 다가올 대파멸과 그 1년 뒤에 다가올 무한의 순환.

이에 대비한 논의가 하루아침에 끝날 리가 없었으니까.

처용은 3일 차 회담 이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두 전달했고 나름대로의 대비책 또한 알려 두었으니까.

‘당장 해야 할 건 다 했다.’

처용이 해가 점점 저물어 가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지금 처용이 생각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3년 뒤에 다시 나타날 악의 종주.

그리고 그 1년 뒤에 발생할 무한의 순환.

악의 종주가 불러오는 대파멸의 경우는 그와 맞서 싸워 이기면 해결할 수 있었다.

처절한 전투가 되겠지만, 어쨌든 이긴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러나 무한의 순환만큼은 달랐다.

이건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방법이 없다 하여 절망하고만 있을 생각 따윈 없었다.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분명 돌파구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이란 없고 절대적인 법칙 또한 없으니까.

답답함에 진지한 한숨을 내쉰 처용의 발걸음이 태룡사 하단을 향해 이어졌고 이내 태룡시에 닿았다.

그리고.

“……음?”

도시 내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지금 처용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무려 5층짜리 치킨집의 1층 로비.

“왜 안 된다는 것이냐?”

그곳에서 누군가를 향해 따지듯 말하는 작은 체구의 검은 머리 소녀가 있었다.

어린아이로 보이는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무록.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는 검성과 더불어 무림 최강자라고 불리는 이였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어린 외형 때문인지.

“죄송하지만, 신분증이나 증명서 없이는 곤란합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 보였다.

치킨집의 종업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곤란한 듯 무록을 향해 말할 때.

“이럴 때는 이사님이 주신 카드를 보여 주면 됩니다.”

처용이 무록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자.

“아 이걸 말하는 거였나? 내 살면서 이런 문화를 접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스륵.

무록이 막 생각났다는 듯, 소매에서 협회의 인장이 박힌 검은 카드를 꺼내 보였다.

협회에서 태룡사에 방문하는 귀빈들에게 지급한 카드로, 여러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증명서였다.

“……확인 감사합니다.”

무록이 꺼낸 카드와 처용을 알아본 종업원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고.

“여기 있습니다.”

-쿵.

다른 종업원은 무록이 주문한 듯 보이는 것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무록이 로비에서 주문한 것은, 다름 아닌 생맥주 등의 주류였다.

종업원들은 그녀의 겉모습이 너무 어리기에, 신분을 확인하려 한 것뿐이었다.

“고맙구나.”

-우웅. 스르륵.

무록은 종업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맥주가 든 플라스틱 통을 허공에 띄웠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사물을 기(氣)로 감싸 허공에 띄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예.

무공이라기보단 기를 이용해 염동력을 구사하는 범용 기술이었다.

기를 섬세하게 운용할 수 있는 드높은 경지의 무인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높은 경지의 힘을 고작 맥주를 옮기는 데 쓰는 기묘한 상황이었지만.

“네 맹랑한 동생 녀석이 글쎄 나보고 언니라고 부르더구나. 하하.”

“연아가 사교성이 좋긴 하죠.”

정작 당사자인 무록과 처용은 잡담을 나누며 이를 개의치 않아 했다.

처용이 무록을 따라 위층으로 이동하자.

“술을 가지고 오겠다더니, 사람도 데리고 왔네?”

“그 외모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 않았나?”

밖의 경치가 훤히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루비아와 검성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움에 답하듯 손을 흔든 처용이 같은 좌석에 동석했고.

“부러우면 네 녀석도 더 어린 모습으로 반로환동을 하거라.”

그런 처용의 옆에 무록이 앉으며 검성의 말에 답했다.

“그게 하고 싶다고 해서 말처럼 되는 줄 아는가?”

“노력하면 된다. 이 연장자의 말을 믿어 보거라. 검성.”

“헛소리. 연장자는 무슨….”

“내 나이가 백 오십이 넘어간 후로 세지는 않았지만, 네 녀석보다 여섯 살이나 많다는 것은 기억한다.”

검성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무록의 말에 답하자, 무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은은한 기 싸움 어린 목소리가 오갔고.

“편협한 녀석, 네 녀석이 저지른 만행을 용서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있느냐?”

무록이 검성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속았다고 해도, 검성은 천교를 도왔었다.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이들도 있었다.

“고작 내 사과 한마디로 끝낼 생각은 없다.”

검성은 잘못을 인정하듯, 무록의 말에 진지하게 답했다.

“아서라고 했나? 그 녀석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다.”

“호오? 아서에게 말입니까?”

이어지는 검성의 말에, 처용이 흥미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천교를 돕던 검성에게 피해를 받은 이 중 하나는 바로 요정 여왕인 티타니아.

그녀는 천교의 의뢰를 받았던 검성에게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검성은 티타니아를 직접 찾아가 사과를 전했고.

-……어휴.

티타니아는 따지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그 사과를 받아 준 대신.

-네 검술로 피해를 받았으니, 네 검술을 받아야겠어.

검성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그 대가가 바로 티타니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헌터, 올리버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

그리고 추후 나타날 티타니나의 신관을 도와줄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검성이 직접 가르쳐 주는 검술이라…… 다른 헌터들이 부러워하겠군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검성의 검술은 극의(極意)에 닿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검성에게 검술을 하사받는 이가 월드 헌터 토너먼트 3위인 아서였다.

안 그래도 강자인 아서가 더더욱 강해지는 미래가 눈에 훤히 보였다.

처용이 미래의 아서를 떠올리며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을 때.

-……!

돌연, 밖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일행들이 있는 장소는 태룡시 중앙 광장에 세워진 치킨집 5층 창가.

중앙 광장이 훤히 보이는 장소였다.

그 광장 중앙에는 무대처럼 보이는 단상이 있었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빠른 비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디제잉 장비 앞에서 흥겨운 비트를 만들어 내는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푸른 비단 도포를 입고 단정하게 묶어 내린 머리 위에 헤드폰을 쓴 신.

[흐음!]

능숙한 손길로 음악을 연주하는 그는 다름 아닌 천문이었다.

신이 지상에서 인간들이 만든 디제잉 장비를 다루는 희한한 광경.

“……하하.”

처용이 그 이질적이면서도 뭔가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듯한 광경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천문은 생전 촉한의 천재 군사이자, 최고의 재상, 최강의 지략가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후의 역사서에서 그런 천문에 대한 평가 중 이러한 말이 있었다.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문화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

그러한 역사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며 언문이 했었던 말이었다.

천문은 그가 발휘하는 특기와는 별개로 풍류와 문화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현란한 비트를 만들어 내는 천문의 무대 위에 선 여성.

“Hey DJ! come on say yeah-!”

청량하고 강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

그녀는 적무신의 신관인 초하였다.

‘태무신의 말대로라면 분명 생전에…….’

처용은 회귀 전 태무신을 통해 초하와 적무신이 어떤 관계인지, 환생 전의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먼 과거,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이, 신과 환생자가 되어 다시 만나 살아가는 광경.

처용이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신과 인간이 평화롭게 어울리는 분위기라…….”

“모두 네가 만들어 낸 성과다.”

루비아와 검성이 광장의 광경, 신과 인간, 다른 이종족들이 어우러지는 도시를 보며 말했고.

“지금 이 성지의 모습만 봐도, 네가 이 평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느니라.”

처용의 웃는 모습을 본 무록이 진지한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은한 뿌듯함이 일렁이는 처용의 미소 속에 일렁이는 감정을 읽은 듯한 목소리.

무록은 신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와 문화를 만들어 낸 처용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록에게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군요.”

처용은 그 말에 조금 더 짙어진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평화라…….”

다시 도시의 광경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평화.

그토록 바랐지만, 역설적이게도 처용에겐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다.

언제나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전장에 앞장서서 싸워온 처용이었으니까.

평화를 위해서 항상 투쟁해 왔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평화는 썩 낯설었다.

하지만.

“……좋네.”

처용은 그토록 바랐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낯설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그 기분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역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얼마 전, 언문이 했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눈으로 보는 이 모습이, 처용에게는 더 나은 미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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