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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713화 (713/726)

#713화

인간 또한 성좌가 될 수 있다는 처용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

“……우리가?”

회담장에 모인 ‘인간’들이 멍하게 읊조렸고.

[진정 가능한가?]

[그저 신력을 깨우치는 것과 성운을 짊어지는 건 다르다.]

성좌들은 신중히 생각하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속으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른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낸 이가 다른 이도 아닌 처용이었기에 반신반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분위기가 더 많았다.

처용은 그런 회담장의 분위기를 한번 쭉 살피고는.

“제 눈에는 이미 ‘확실하게’ 성운의 성좌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이 둘이나 보이는데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신 어린 처용의 말에.

[확실하게 말이냐?]

아테나가 확인차 물었고.

“네, 후보가 아니라 확실하게 성좌가 될 수 있는 사람 둘.”

손을 든 처용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답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옆에 있지 않습니까?”

천천히 올라간 처용의 손이 아테나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녀의 바로 옆.

질문을 던진 아테나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고.

“이, 이번엔…… 저를 말하는 겁니까?”

아테나의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신관.

처용의 지목을 받은 제시카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당황스러운 듯,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몰려 잠시 당황을 표했지만.

“그…… 제가 신력을 각성한 건 맞지만, 거대 성운의 성좌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어째서 자신이 지목받았는지 짐작되는 부분은 있었다.

각 길드의 신관 중, 처음으로 신력을 각성한 이가 자신이었으니까.

다만, 올림포스라는 거대한 성운의 이름을 짊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성좌가 될 자격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지.”

처용은 그런 제시카에게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듯 말했다.

심지어 처용이 확신할 수 있는 아주 명확한 증거까지 있었다.

“평범한 신관이 신법의 무게를 버틸 리가 없지, 계승자인 나조차도 쉽게 짊어질 수 없는데 말이야.”

다름 아닌 전쟁 도중 아테나가 펼친 공정의 권능.

홀로 그 권능의 무게를 버티던 아테나에게 제시카가 다가와 그녀를 도왔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신관이라 해도 아테나가 견디는 신법의 무게를 맞들기란 본래 불가능했다.

평범한 신관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짓눌려 으스러졌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제시카는 아테나가 견디는 신법의 무게를 일부분 받아 내어 함께 버텼다.

처용이 전쟁 당시에 있었던 사실을 언급하자.

“그때는……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제시카가 그 당시의 감각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무의식적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처용이 제시카의 생각과 마음을 짐작하며 말하자, 제시카가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로구나.]

아테나가 제시카를 보며 놀란 듯한 심정을 내비쳤다.

신법을 짊어진 당사자로서, 신법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신법의 선택을 받은 아테나조차도 권능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신법의 선택을 받은 신조차도 버거운 권능을 함께 견뎌 준 신관.

결코, 평범한 신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정황과 증거 하나만으로도, 다른 성좌들 역시 뭔가 납득이 된다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그리고.

“확실한 한 명이 올림포스 길드장이라면…….”

“다른 한 명은 분명히-.”

사람들이 제시카가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하며 쑥덕였다.

바로 처용이 지목한 또 다른 한 명.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저로군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성자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과신하거나 자만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자 스스로가 강하게 확신하고 있기도 했지만.

“정답.”

제시카에게 말을 이은 처용이 성자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을 받은 성자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더욱 확신한 것이었다.

“둘 다, 스스로가 걷고자 하는 길, 자신만의 운명을 진작에 찾았죠?”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성자와 제시카를 바라보며 묻자.

“제가 걷는 길은 ‘동경(憧憬)’입니다.”

“저 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은 ‘교화(敎化)’입니다.”

제시카와 성자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은, 스스로가 선택한 자신만의 운명이자 나아갈 길.

“자신이 선택한 운명이자 나아갈 길, 우리는 그것을 아라한의 길이라 부르죠.”

종종 처용이 이야기하는 아라한의 길이었다.

“두 분 말고도, 라이트닝 워리어 길드장을 포함한 몇몇 후보들이 더 보이는군요.”

말을 이은 처용이 루이스를 포함한 몇몇 신관들을 응시하자.

“제가 선택한 운명은 ‘뇌명(雷鳴)’입니다.”

토르의 신관, 루이스를 시작으로.

“제가 깨우친 건 ‘광명(光明)’입니다.”

“저는 태양신님과 같은 ‘태양(太陽)’입니다.”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와 태양신 라의 신관 라진이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 각각의 성좌와 깊은 연관이 있는 길이군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정의와 공정의 여신, 아테나의 신관 제시카는 동경(憧憬).

빛의 신, 야훼의 신관인 성자는 교화(敎化).

둘은 그들의 성좌와 깊은 연관이 있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반면에.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는 광명(光明).

태양신 라의 신관인 라진은 태양(太陽).

천둥신 토르의 신관인 루이스는 뇌명(雷鳴).

이들은 그들의 성좌가 지닌 이명과 중복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기갑(機甲), 나도 우리 여신님과 연관이 깊은 운명이네.”

기계 장치의 여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녀의 신관인 커맨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각각의 차이점이 있는 건가?”

커맨더가 처용에게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묻자.

“스스로가 선택한 길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히려, 나름 ‘지름길’을 걷는다고 볼 수 있겠군요.”

성좌가 지닌 이명과 유사하거나 같은 운명을 걷는 이들.

그들은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성좌가 앞서간 길을 뒤따라 걸어서 그런 겁니까?”

“정답.”

라진이 문뜩 떠오른 생각을 묻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신관이 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초적인 자격이 있다는 셈입니다.”

처용의 말이 이어졌다.

신과 가장 뛰어난 적합성을 지닌 인간만이 신에게 선택받아 신관이 될 수 있었다.

단순히 신관이 되고 싶다고, 혹은 신이 마음에 드는 인간을 선택한다고 신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까다로운 조건과 서로의 적합성이 맞아야만, 신이 신관을 들일 수 있었다.

티타니아의 전대 신관, 아서왕의 시련을 통과하여 그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은 헌터, 올리버 프렌시브.

요정들과 높은 친화력을 지닌 그조차도 요정 여왕인 티타니아의 신관이 되지 못했다.

그만큼, 신의 신관으로 선택받는 인간은 아주 드물었다.

신과의 적합성이라는 운과 재능을 모두 지닌 타고난 인재들.

그 인재들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신관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신관이 된 것 자체가 성좌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지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신관들만이 신격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S급 헌터들만 자격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죠.”

처용이 그것은 아니라며 부정했다.

그리고.

“이진호 헌터.”

진호를 바라보며 그를 부르자.

“내가 걷는 길은 ‘노력(努力)’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진호가, 자신이 걷는 아라한의 길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이어.

“나는 투지(鬪志).”

“저는 열정(熱情)입니다.”

“제 길은 염열(炎熱)이에요.”

백호와 정훈, 현아가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스피릿 팀에 소속된 헌터들.

그들은 신의 신관이 아님에도, 스스로의 길을 깨우친 이들이었다.

게다가, 아라한의 길을 깨우친 이들은 ‘헌터’들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있었다.

“질풍(疾風), 내가 깨달은 것이오.”

정훈의 파트너이자 스피릿 팀에 소속된 이종족.

조인족인 차루스가 자신의 길을 이야기했고.

“저는 교감(交感)입니다.”

하이 엘프인 테시아도 자신만의 길을 언급했다.

“화산(火山)은 나의 길이다!”

그들과 같은 이종족이자, 오크들의 대표인 쿠루타도 긍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검술(劍術).”

“무공(武功).”

오랜 시간 스스로의 힘과 기술을 갈고 닦아 드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

무림 세계에서 신화경(神化境)에 오른 이들인 검성과 무록.

“마법(魔法).”

전설로만 전해지던 8써클을 넘어 9써클의 경지에 도달한 대마법사, 루비아.

“심해(深海).”

“해상(海上).”

선인의 수련을 받은 처용의 두 남매.

카투라의 신관인 연아와 해전무신의 신관인 연화.

“저는 기상(氣象)입니다.”

커맨더의 조카이자, 청룡의 신관인 윤아.

“……암천(暗天).”

사람들에게 예언자라는 이명으로 잘 알려진 자.

레나·엘리스 역시 스스로가 개척한 새로운 운명의 길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신격에 올라 스스로의 신명을 자각한 헌터.

“나의 신명은 멸천(滅天),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

처용이 스스로의 신명을 언급하며 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모두에게 자격과 가능성이 있다는 처용의 마지막 말.

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기대감과 열정 어린 분위기가 일렁였다.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앞서 걸어가는 자로서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려는 이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여래가 입을 열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 스스로가 무엇을 거머쥐느냐가 중요하지.]

여래의 말은 아라한의 길을 앞서 걸었던 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그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자신만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조차도 수천 년의 방황을 거치고 지금에 와서야 스스로의 길을 되찾았으니까.]

“저 역시, 원래는 ‘징벌자의 길’이 아닌 ‘수호자의 길’을 걸었었죠.”

어두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여래의 말에, 처용이 말을 이었다.

여래는 무려 수천 년 동안 ‘역천의 길’을 걸으며 방황했다.

처용은 ‘수호자의 길’을 걷다가 실패라는 종착점에 도달했었다.

앞서 아라한의 길을 걸어갔던 선인들의 방황과 실패였다.

그만큼.

[험난할 것이다. 포기하고 싶고 내가 선택한 길이 정녕 맞는지 매 순간 의심이 들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자각하는 것도, 그 길을 나아가는 것도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그만큼 험난하고 고된 등반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라한의 길에 정답은 없습니다. 아니, 아라한의 길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처용이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고.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길을 향해 나아가라. 그것이 정답(正答)이고 정론(正論)이니라.]

여래가 그런 처용의 말을 이으며 조언을 마쳤다.

아라한의 길을 걸으며 신격에 도달한 두 선인의 말에.

“정말…… 뜻깊은 조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시카가 편안한 마음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비단 제시카만이 아닌, 다른 이들 역시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가 자각한 운명의 길이 정녕 맞는 길인 것인가?

혹시,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신관이라면 성좌의 길을 따라 걷는 게 맞지 않는가?

성좌가 나아간 길을 따라 걷는다고 자신만의 길이 되는가?

나는…… 어디로,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러한 의구심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었다.

매 순간, 고민했고 고심했으며 또 생각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은 이들조차도 방황할 때, 처용과 여래가 조언을 전했다.

아라한의 길이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정립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가르침.

앞서 아라한의 길을 나아간 이들의 진심 어린 조언 덕에.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저 역시…….”

제시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더욱 정신해서, 이전보다 가까이 모시고 싶습니다. 아테나 님.”

“저 역시, 진정한 아스가르드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몇몇 이들은 성운의 성좌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다졌다.

인간 또한 성좌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허무맹랑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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