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711화 (711/726)

#711화

세계 헌터 회의가 열리는 당일.

“……슬슬 시간이 되어 가는군요.”

헌터 라이센스를 통해 시간을 확인한 성자가, 품속에서 금빛이 일렁이는 작은 부적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몇몇 사람들도 같은 모양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부적을 쥐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우웅. 화아아!

부적을 쥔 이들이 금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이들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이전 세계 헌터 회의가 개최되었던 장소인 운룡전.

그곳에 참가 자격을 받은 이들 모두가 모여들고 있었다.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모인 사람들의 수가 두 배는 더 많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열렸던 세계 헌터 회의 당시에는, 운룡전의 절반 정도만 채웠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지구의 대표들만 참석했던 상황.

지금은 지구와 버금가는 규모의 다른 두 세계도 참여한 터라 인원수가 더더욱 많아졌다.

드넓은 운룡전에 사람들이 채워졌고.

-피이! 화아아!

하늘에서 빛의 기둥들이 쏟아짐과 동시에, 신격들이 차례대로 강림했다.

심지어 강림하는 성좌들도 전 세계 헌터 회의 때보다 많았다.

소수의 대표들만 참석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참석자의 범위를 늘렸기 때문이었다.

참석을 원하는 성좌들의 수가 많다는 것 또한 원인 중 하나였다.

각 성운의 신격들이 모두 강림하고.

-화아아! 후욱!

마지막으로 운룡전 중앙에 황룡이 나타났다.

초대받은 사람들과 신격들이 운룡전에 모이자.

“이번 회담에 참여해 주신 각 세계의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또 환영합니다.”

WHU 총장인 존 스미스가 중앙 단상에 서서 환영 인사를 전했다.

스미스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이번 세계 헌터 회의 소집은 WHU가 아닌 한처용 헌터의 요청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인사들을 불러 모은 장본인, 처용을 언급한 후 뒤로 물러났다.

-샥.

스미스가 물러서자, 처용이 바람처럼 단상에 나타나 자리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제가 여러분들을 불러 모은 이유가 궁금할 겁니다.”

눈을 뜨며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이 궁금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악의 종주가 예고한 최후의 파멸을 대비하기 위함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제시카가 그런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그녀를 포함한 소수의 몇몇 사람도 짐작했다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점점 격해지던 무림 세계의 전쟁이 갑작스럽게 끝난 이유.

악의 종주가 3년 뒤의 대파멸을 예고하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3년, 나름 긴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단단히 대비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 뒤에 찾아올 거대한 재앙을 생각하면, 그리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제시카의 경각심 어린 말에, 의문을 표하던 이들도 납득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다가올 대파멸, 지금 처용이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불러 모은 이유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처용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짜 종말은 3년 뒤가 아니라, ‘4년’ 뒤-.”

말을 이은 처용이 3년이 아닌 4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하며 잠시 말을 끊고는.

“진정한 이 우주의 파멸, ‘무한의 순환’이 찾아올 때입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무한의 순환’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 말에.

-무한의…… 뭐?

-3년이 아니라 4년 뒤? 뭐가 있는데?

-전혀 들어 본 바가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의문을 드러내며 서로 쑥덕였다.

[……무한의 순환?]

[또 다른 파멸의 예고인가?]

성좌들 역시 마찬가지.

처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모두가 의문과 궁금증 어린 분위기를 자아낼 때.

“…….”

“…….”

제시카와 커맨더를 포함한 극소수의 사람들과 그들의 성좌들.

미리 처용에게 이야기를 들은 이들만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리고.

[이럴 순 없다.]

또 다른 한 명, 무한의 순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존재.

-쿵.

빛의 신, 야훼가 주먹으로 팔걸이를 내려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무한의 순환은 우주의 비밀이었기에, 함부로 누설할 수 없었다.

그 비밀을 처용이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무한의 순환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야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함과 동시에.

[……!]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하던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변을 알아챈 듯한 모습.

그러한 야훼의 반응을 본 처용은.

“이젠 굳이 비밀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어째서 야훼가 당황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다. 뭐……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이런.]

처용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자, 야훼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야훼는 처용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며 침묵하고는.

[……무한의 순환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다.]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래서 포기하라고? 다 관두고 순순히 종말을 받아들이자고?”

처용이 날선 목소리로 반발하듯 말했다.

“내가 우주의 뜻대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붉은빛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하늘 위를 노려보는 처용의 말에, 야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아직, 상황을 잘 모르겠구나.]

생각에 잠기며 침묵하던 아테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처용이 아테나를 바라보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찰나의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

[무한의 순환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다오.]

“……제약도 사라졌겠다. 다 말해 드리지요.”

무한의 순환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아테나의 말에, 처용이 입을 열고는.

“무한의 순환은 모든 우주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입니다.”

무한의 순환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 법칙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악의 종주가 이 우주에 파멸을 불러일으키려는 이유가 그 무한의 순환을 저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악의 종주가 추구하는 진정한 목적도 이야기했다.

처용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 어린 표정이 그려졌다.

비단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던 사실이다.]

[우주의 비밀이라고 했었으니까.]

성좌들 역시, 경악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악의 종주가 대파멸을 예고한 게 3년, 그리고 그 1년 뒤에 무한의 순환이 찾아옵니다.”

처용이 대략적인 날짜까지 언급하자,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고 떨구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3년 뒤에는 악의 종주가 이 우주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다시 나타난다.

그것을 모두가 힘을 합쳐 막아 낸다고 해도, 1년 뒤에 진짜 종말이 찾아온다.

우주 멸망의 위기가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상황.

세계 헌터 회의를 소집한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예상을 웃도는 무거운 내용이었다.

모두가 심각함과 경각심 어린 반응을 보일 때.

[……무한의 순환을 저지할 방법은?]

처용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야훼가 입을 열며 물었다.

무한의 순환은 저지하고 싶다고 저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무한의 순환은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무한의 순환을 언급한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처용이었기에.

지금껏 이 우주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선사했던 처용이기에 묻는 것이었다.

혹시, 무언가 단서를 찾아냈다는 티끌만큼의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처용의 곁에는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엘리스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야훼의 물음에.

“없습니다.”

처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없다고 대답했다.

무한의 순환을 막을 마땅한 방법은 처용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방법도 없으면서 우주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냐!]

작게나마 기대했던 야훼가 실망감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자.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 봐도, 나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오니까.”

처용 역시 언성을 높이며 야훼의 말에 반박하듯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고 악의 종주가 쓰려던 수단까지-!”

강하게 말을 잇던 처용이 주먹을 쥐며 하던 말을 끊고는.

“후- 이번만큼은 모두가 제게 지혜를 좀 나눠 줬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격해지는 감정을 털어 내듯, 한숨을 내쉬고는 협조를 구하듯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불러 모으고 무한의 순환을 언급한 이유.

도저히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밝히고 머리를 맞대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아테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악의 종주가 무한의 순환을 막기 위해 이러한 행각을 벌였다고 했느냐?]

“네, 저와 판데모니움에서 싸울 때, 본인 입으로 친절하게 다 말해 주더군요.”

처용이 아테나의 물음에 답하자.

[그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한의 순환을 막으려는 것인지…… 말해 줄 수 있느냐?]

아테나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무한의 순환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태초신의 대리자인 야훼도, 처용도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악의 종주는 어떤 수단으로 무한의 순환을 저지하려는 것인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비단 처용에게 질문한 아테나만이 아닌.

[…….]

“…….”

야훼를 포함한 성좌들, 헌터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도 궁금증을 표했다.

처용이 아테나의 질문에 생각을 정리하듯 짧게 침묵하고는.

“이 우주를 파멸로 뒤덮어 깔끔하게 멸망시키고 제 손으로 새로운 무한의 순환을 만드는 겁니다.”

이내, 악의 종주가 어떤 방법으로 무한의 순환을 저지하려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이는 다름 아닌 야훼.

처용이 한 말, 악의 종주가 추구하려는 방식이 불가능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런 야훼의 말에.

“가능합니다. 이론상은…….”

처용이 고개를 젓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반박하듯 말했다.

그리고.

“제가 비슷한 방법으로 예언자를 없애려는 ‘프■■’를 막았거든요.”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서 ‘프로토’라는 말이 언급되자.

-쿵…….

하늘이 옅게 울림과 동시에, 처용의 목소리가 순간 틀어졌다.

처용이 제 목소리를 이상하게 낸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처용의 목소리를 다른 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막은 것에 가까웠다.

“아직은 제약이 좀 남았다 이건가?”

인상을 찌푸린 처용이 하늘 위를 노려보며 읊조리자.

[네 말이 순간적으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인식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무한의 순환을 관장하는 우주의 관리자를 언급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테나가 방금 일어난 이변을 언급하며 묻자, 처용이 짐작한 바를 말해 주었다.

무한의 순환이 다가오고 이에 관한 제약이 풀린 듯 보였지만, 아직 전부 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때.

[네가…… 그때 놈을 막았었다고?]

야훼가 놀라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처용에게 물었다.

무한의 순환을 관장하는 존재인 프로토는 막으려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당시 야훼는 이 우주의 최고 관리자인 태초신을 대리할 자격을 지닌 자로서 그를 추방했었다.

오롯이 야훼가 ‘태초신의 대리자’라는 유일무이한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일.

그 외에는, 그 누구도 프로토에게 손댈 수도, 그를 저지할 수도 없었다.

무한의 순환이라는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은, 생명체가 아닌 법칙과 현상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멸천의 신명은, 법칙을 무너뜨리는 자이니까요.”

처용은 그런 프로토를 저지해 냈었다.

그리고.

“제 신명이 단서가 될 수도 있겠죠.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정립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무한의 순환을 저지할 방법을 강구해 볼 생각이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도,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니, 이번만큼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모두 도와주십시오.”

다른 이들의 힘과 지혜를 빌려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처용의 말에.

[올림포스는 언제나 그랬듯, 가장 앞서서 종말을 막는 너를 도울 것이다.]

아테나가 미소를 지으며 도움을 약속했다.

그런 아테나를 시작으로.

[나 천둥의 신은, 계승자를 도울 것을 약속한다.]

토르가 처용을 도와주겠다며 약속하듯 말했고.

[무신들 역시 그대를 도울 것이다. 계승자.]

[우리 역시도-]

태무신을 포함한 다른 성좌들도 처용을 도울 것이라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남은 3년 동안, 악의 종주에게 집중할 수 있겠습니다.”

처용이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하고는.

“악의 종주에 대해 더 논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아테나를 바라봤다.

“아테나 님, 신법재판소를 펼쳐 주십시오.”

처용이 갑작스럽게 신법재판소를 요청하자, 사람들, 성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신법 재판을 시작한다.]

-후우욱! 탕!

아테나는 처용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왼손에 신법의 존엄을 소환하며 신법재판소를 펼쳤다.

황금빛의 재판장이 운룡전 위에 덧씌워지며 신법재판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생각처럼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스륵.

태양신, 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읊조렸다.

[……태양신?]

[무슨 상황이오?]

갑작스럽게 펼쳐진 신법재판소.

이와 관련이 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선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현재 상황에, 성좌들이 의문 어린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라가 짧고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의장의 권한으로, ‘순혈 의회’를 시작한다.]

-우웅. 파아아!

손아귀를 앞으로 펼치며 순혈 의장의 권한을 발동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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