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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705화 (705/726)

#705화

처용의 힘을 간과하고 방심한 가미긴이 치명상을 입었고 뒤이어.

-촤아! 촤자자-작!

메피스토에 의해 조각조각 썰려 나가며 완전히 끝장났다.

무려 서열 4위의 대악마가 처용과 메피스토의 합공을 견디지 못하고 처치당한 상황.

그럼에도.

“나약해 빠진 것!”

바알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가미긴의 잔해를 쓰레기 보듯 바라보며 소리치고는.

-쏴아! 콰아아!

짙은 어둠의 파도를 쏟아내며, 자신에게 쇄도해 오는 백 자루의 태극천체일도를 모조리 쳐냈다.

동시에, 처용과 메피스토를 향해 손을 뻗으며 어둠을 쏟아내려는 찰나.

“안녕. 바알?”

-탁. 콰아아아!

대악마의 모습으로 변한 엘리스가 바알의 앞에 나타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엘리스의 등장에 바알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내 앞에 제 발로 나타나다니.”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집착 어린 미소를 드러냈다.

이제, 처용과 메피스토에게는 완전히 관심이 사라진 듯.

-쿠구. 콰아아!

주변에 들끓는 어둠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엘리스를 향했다.

“드디어 내 손에 쥐어지겠구나.”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품절’ 되었어.”

강렬한 집착을 드러내는 바알의 말에 엘리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조소를 흘리듯 답했다.

-쏴아아!

그런 엘리스의 말을 무시한 바알이 손을 뻗으며 어둠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때.

-콰아! 파아아!

엘리스의 앞에 그녀가 다루는 어둠이 폭발하듯 솟구쳤고.

-파아! 촤아아-!

주변에 일렁이는 바알의 어둠을 일부분 걷어 내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전보다 인간형에 가까워진 모습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

바알이 그런 안드로말리우스를 노려보며 의문을 읊조렸다.

고작 말석에 불과했던 나약한 대악마가, 자신의 어둠을 걷어 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말했잖아? 네가 한발 늦는 바람에, 내가 ‘품절’ 되었다고.”

그런 바알의 의문에 답해 주듯, 엘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이건 미친 짓이다. 미친 짓이란 말이다…….”

안드로말리우스가 바알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읊조렸다.

기세 좋게 엘리스를 지키며 나타난 모습과는 달리, 자신감이 없는 듯한 모습.

말석에 불과한 그의 입장에서, 삼천마인 바알과 맞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런 안드로말리우스의 마음은 고려해 주지 않고.

“우리 대단한 맹독의 대악마께서 보기 좋게 날 차지했거든.”

짙은 미소와 함께 안드로말리우스를 치켜세워 주는 듯 말했다.

“아니, 그 반대가 아니냐!?”

안드로말리우스가 엘리스의 말에 당황한 듯 소리쳤다.

엘리스와 성좌의 계약이 맺어지고 그녀가 신관이 된 것은 맞았다.

다만, 평범한 성좌와 신관의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

계약의 주체는 오롯이 엘리스가 쥐고 있었으며, 성좌인 안드로말리우스가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당연히.

“안드로말리우스…….”

바알 또한 그 사실을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

사실, 바알의 입장에서 사실과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나의 것을?”

오롯이 자신이 쥐어야 할 보석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우주의 유일한 인간을 다른 악마가 가졌다?

심지어, 그 악마가 가장 하찮게 생각했던 말석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네놈 따위가!?”

-쿠구구!

심기가 틀어진 바알이 분노하고도 남을 이유였다.

“이, 이……!”

바알의 분노에 안드로말리우스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공포심을 드러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문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뒤에 있는 신관.

“소중한 신관을 지켜 줄 차례야. 나만의 성좌님?”

제 성좌의 목줄을 틀어쥔 엘리스가 도망가는 것을 허용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스가 친근한 목소리로 안드로말리우스를 부르자.

“흔적도 없이 찢어 주마!”

-쿠구구. 지이잉-!

인상을 확 찌푸린 바알이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어둠의 광선을 내뿜었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스러워할 때.

“손끝을 아래로, 마기의 흐름을 밑에서 위로 집중시켜.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상상하듯-.”

-우우웅.

엘리스가 신들린 래퍼처럼 빠른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며 짙은 어둠을 내뿜었다.

그러자, 안드로말리우스에게서도 엘리스와 같은 어둠이 일렁였고.

-스르륵. 탓!

안드로말리우스의 눈빛이 점점 침착해지며 엘리스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두 다리의 간격을 벌리고 자세를 낮추며 두 손바닥을 아래로 살짝 내린 모습.

이윽고 바알이 쏘아 보낸 어둠의 광선이 지척에 다가온 순간.

“바, 반탄지장 – 암(暗)!”

-우웅. 타아앙!

안드로말리우스가 아래로 내린 두 손바닥에 마기를 응축시키며 위로 강하게 올려 쳤다.

자세만 보면, 양손으로 밥상을 잡아 뒤집어엎는 듯한 모습.

그런 안드로말리우스의 손바닥에 바알이 쏘아 낸 어둠의 광선이 작렬하자.

-콰쾅! 콰아아-!

짙은 어둠이 코팅된 안드로말리우스의 손바닥을 타고 부드럽게 휘며 하늘로 솟구쳤다.

무려, 바알이 쏘아 낸 공격을 말석의 대악마가 받아쳐 튕겨 낸 상황.

그 모습에, 바알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으아. 으으……!”

-치이이-!

안드로말리우스는 비늘이 갈라지고 부서진 두 팔을 떨며 고통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바알의 공격을 튕겨 냈어도, 그 힘을 온전히 받아치지 못해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봐, 막상 하면 잘 해내잖아? 크크.”

엘리스는 그런 안드로말리우스가 보인 성과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제, 제…… 제길!”

-후두둑. 우웅.

안드로말리우스는 비늘이 긁히고 뜯어져 상처가 난 팔을 마기로 재생시키며 침을 삼켰다.

여전히 바알이 두렵고 똑바로 마주하기 무서웠지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안드로말리우스는 작은 자신감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본래라면, 바알의 어둠을 막기는커녕, 닿는 순간 소멸했어야 정상이었다.

자신은 고작 나약한 대악마 말석에 불과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어디 한번 끝장을 보자.”

“……오냐. 어디 네놈이 가루가 되지 않고 버티는지 보자꾸나!”

호기롭게 버티는 안드로말리우스의 모습에, 바알이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내비치고는.

-콰아아!

조금 전보다도 더 강한 어둠의 파도와 광선을 쏟아 냈다.

“으아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비명을 내지르고 엘리스가 그를 도우며 바알을 막아설 때.

-우웅. 우우웅.

처용의 왼손에 잡혀 있던 대검, 샤네가 옅게 진동하더니.

-탕! 까가강!

스스로 손아귀를 튕기듯 빠져나가 날아올랐다.

이윽고 풍차처럼 회전하며 날아오른 샤네가.

-후우웅. 착!

메피스토의 앞에 떨어지며 지면에 칼날을 박았다.

스스로 제 주인에게 되돌아간 모습.

“거참, 까탈스럽네.”

처용이 아린 손아귀를 풀 듯, 샤네를 잡던 왼손을 쥐었다 펴며 손을 털었다.

-우우웅.

강제로 처용의 손을 뿌리치고 나간 샤네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멸절이 짙은 파동을 흩뿌렸고.

-스스스!

그런 멸절에 반응하듯, 샤네에서도 날카로운 잿빛의 마기가 파동처럼 흘러나왔다.

두 무구에 깃든 자아가 다시금 기 싸움을 벌일 때.

-탁. 스스스.

메피스토가 자신에게 돌아온 샤네의 검 자루를 쥐자, 잿빛의 파동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샤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한 메피스토가 처용에게 물었다.

“뭐긴, 네 까탈스러운 애인이랑 거래를 했지.”

-우우웅.

처용은 멸절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거래? 샤네하고?”

“그래, 네 부탁대로 네 주인 도와줬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야?”

의문을 드러내는 메피스토의 말에 처용이 샤네를 향해 말하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키이잉!

샤네가 다시금 거친 진동을 퍼트리며 잿빛의 마기를 흩뿌렸다.

마치, 자신이 언제 ‘부탁’했냐고 따지는 듯한 분위기.

분개하는 듯한 샤네를 향해 처용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흘렸다.

그런 처용과 샤네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한 메피스토는 처용의 말에 답하지 않고.

-샥! 스르릉!

샤네를 굳게 쥔 채 바알을 향해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본 바알이, 안드로말리우스를 몰아붙이던 어둠을 회수하여 메피스토에게 내리쳤다.

-차카캉! 콰아아!

샤네에 일렁이는 잿빛의 마기와 바알의 새까만 어둠이 서로 충돌하며 힘 싸움을 벌였다.

“바알……!”

“삼천마나 된 놈이, 기어코 인간 따위에게 도움이나 받다니.”

증오심이 일렁이는 메피스토의 모습에, 바알이 그를 비웃듯 말했다.

“네놈은 네가 가진 것들을 결코 지키지 못할 것이다.”

-후욱! 우우웅!

바알이 한 손으로 메피스토의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다른 한 손을 뒤로 뻗었다.

짙은 어둠이 일렁이는 손아귀가 우악스럽게 쥐어지자.

-쿠구! 쿠르르-!

잿빛 군도를 둘러싼 어둠이 크게 요동치며 점점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듯한 모습.

게다가.

-파지직! 파직!

바알이 끌어오는 어둠 속에서 옅게 피어나는 검붉은 전류.

파멸의 힘 또한 일렁이고 있었다.

판데모니움에서 떨어져 나간 메피스토의 성역을 수복하지 않고 파멸시키려는 듯한 모습.

“무너지는 세계 속에 파묻혀라!”

바알이 점점 밀려오는 어둠과 파멸을 보며 환희 어린 고함을 내지르자.

“이런!”

메피스토가 잿빛 군도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어둠과 파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눈앞의 바알과 잿빛 군도를 덮쳐 오는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상황.

그때.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닌가? 바알.”

-탓.

만신창이가 된 안드로말리우스 뒤에 숨어 있던 엘리스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가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왔다고 생각했어?”

“…….”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과 그 침착한 태도를 본 바알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봤다.

지금껏, 당한 것이 수두룩한 만큼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 바알의 생각이 맞는단 듯, 엘리스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끝났어.”

-우웅. 탓.

그런 엘리스의 옆으로 잿빛의 공간이 열리며 메르핀이 나타났다.

처용, 엘리스와 함께 잿빛 군도로 넘어왔음에도, 지금껏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나타난 상황.

그 이유가 있었다는 듯한 메르핀의 말과 함께.

“한처용.”

엘리스가 곧장 처용을 부르며 신호를 보냈다.

그 즉시.

-우웅. 탁.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쥐며 지면을 향해 열쇠를 꽂았다.

-우웅. 화아아!

태룡전의 열쇠에 일렁이는 황금빛이 은은한 파동을 내뿜으며 잿빛 군도 일대에 퍼져 나갔다.

동시에.

-이 분리된 세계를 격리하겠다.

황룡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고.

“후-! 다행히, 타이밍 좋게 성공적으로 잘 끝났나 보네?”

-우우웅.

메르핀이 나타난 잿빛의 공간 안에서 니알라가 나타났다.

“네년!”

니알라를 본 바알이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순간.

-우웅. 쿠궁.

바알의 뒤로 검은 게이트가 열리며 그의 손이 멈칫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강제력이 바알의 행동을 저지하는 듯한 모습.

비단 바알뿐만이 아니라.

“이게 무슨?”

-우웅. 치이이!

부패의 마기를 흩뿌리며 벨레드를 몰아붙이던 마르바스.

그의 뒤에서 열린 검은 게이트에서도 강제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크윽!?

-빨려 들어간다!

다른 악마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잿빛 군도를 습격하는 악마들.

바알이 연 검은 게이트를 타고 나타난 악마들이 모두 추방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디아블로에 이어서 메피스토까지, 어째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지?”

니알라가 바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크으으음-!”

바알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분노 어린 침음을 흘렸다.

잿빛 군도에서 자신을 강제로 추방하려는 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스템이었다.

“이 내가, 그냥 물러날 것 같으냐?”

-쿠구구!

바알은 그런 시스템의 강제력을 힘으로 짓누르며 앞으로 한 발 나아갔다.

그때.

“……!”

순간, 바알이 눈을 크게 뜨며 나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그 기고만장한…… 웃음이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저벅. 탓.

이를 아득바득 갈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러자, 바로 뒤에 있던 게이트가 바알을 빨아들였고.

-우웅. 파아아-!

이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잿빛 군도를 습격하러 온 다른 악마들 역시, 모두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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