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화
처용이 잿빛 군도에 도달하기 조금 전.
본래, 아무 일도 없이 평소와 같은 분위기였던 그곳은 지금.
-크아아!
-캬아!
두 파벌로 나뉜 악마들이 서로에게 적의를 내뿜으며 거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돌연, 갑작스럽게 나타난 짙은 어둠의 구름이 잿빛 군도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었고.
-모조리 죽여라!
바알의 분노 어린 목소리와 함께, 그를 따르는 악마들이 잿빛 군도를 공격했다.
당연히, 잿빛 군도를 지키는 악마들, 메피스토를 섬기는 권속 악마들이 이에 대항했다.
“모조리 짓뭉개 버리겠다!”
-쿵! 콰쾅!
거대한 덩치와 두꺼운 팔로 잿빛 군도에 쳐들어오는 악마들을 후려치는 악마들.
메피스토의 권속 악마, 스탈크를 포함한 스틸 데몬을 주축으로 한 악마들이 분투 중이었다.
그런 그들에 맞서.
“거대한 어둠을 따라라!”
“모조리 집어삼켜라!”
-우웅. 타앗!
잿빛 군도 외곽에서 열린 게이트,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다른 성역의 악마들.
바알을 따르는 휘하 대악마들의 권속들이 잿빛 군도의 악마들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탓! 콰쾅!
스탈크가 두 팔을 비대하게 부풀려 주변의 악마들을 휩쓸고는.
“……주군.”
조금 떨어진 곳, 잿빛 군도로 통하는 관문 외곽을 바라보며 걱정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그곳에는 지금.
-콰아아아!
강렬한 어둠과 날카로운 잿빛의 마기가 서로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메피스토……!”
메피스토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내비치는 바알.
“…….”
-스릉.
그런 바알에게 샤네를 겨누며 맞서고 있는 메피스토.
두 삼천마가, 서로를 노려보며 맹렬히 격돌하고 있었다.
“이유만큼은 들어 봐야겠다. 도대체 왜 배신한 것이냐?”
-쿠구! 콰아아!
바알이 메피스토에게 어둠의 파도를 쏘아 보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껏 악의 종주와 자신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메피스토였다.
매사에 진지한 태도를 보였던 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배신한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짐작되는 바가 없었고 아는 바도 없었다.
그런 바알의 의문 어린 물음에, 메피스토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죽는 순간, 바알이 잿빛 군도를 집어삼켜 악마들을 에너지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언자가 찾아와 자신에게 말해 주었던 예언.
아니,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여 사라져 버린 미래.
전쟁 도중, 자신이 죽으면 벌어질 일들.
-스탈크, 클레핀…… 너를 따르는 악마들과 네가 지켜야 할 모든 이들이 바알에게 잡아먹힌다.
엘리스가 말했었던 사라진 미래에서 바알이 저질렀던 짓들이었다.
정확히는 악의 종주를 계속 따를 경우.
-이게…… ‘우리’가 맞이했어야 할 최후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파멸을 맞이한다.
엘리스가 알려 준 최후에 대해 떠올린 메피스토는.
“……예언자와 거래를 했다. 바알.”
-스릉. 촤아아!
다가오는 어둠의 파도를 샤네로 갈라내며 사실을 이야기했다.
메피스토가 예언자를 언급하자.
“그년과 무슨 거래를 했단 말이냐!?”
-쿠구구!
나름 침착한 모습을 보이던 바알이 심기가 확 틀어진 듯 분노를 내질렀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네 연인을 살려 놓기라도 했단 말이냐?”
바알이 메피스토의 연인, 클레핀을 언급하며 말했다.
메피스토가 지닌 사정에 대해서는.
-새로운 삼천마 메피스토는…….
나베리우스를 통해 대략 알아본 적이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하나의 검을 제련하며 증오를 쌓아 온 악마.
대악마가 되어 나타난 그는 짙은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키며 아가레스의 영토를 휩쓸었다.
종국에는 아가레스의 모든 영토를 집어삼키고 그를 소멸시켜 삼천마의 권좌에 앉았다.
메피스토가 이러한 짓들을 벌인 이유는 단 하나.
-모두 나의 것이다!
아가레스가 ‘강탈’해 간 제 연인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다만, 메피스토가 아게레스를 죽이고 새로운 삼천마가 되었어도 제 연인을 구하지는 못했다.
아가레스의 마지막 발악으로 인해 발현된 저주.
그 저주에 걸린 연인이 깨어나지 못했으니까.
판데모니움의 그 어떤 대악마도 아가레스의 저주를 해결하지 못했다.
심지어, 악의 종주조차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가 저주를 파멸시킬 순 있었지만, 연약한 클레핀이 파멸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신.
-나를 돕는다면, 추후 네 연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악의 종주는 메피스토에게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메피스토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악의 종주를 따른 것이었다.
바알은 악의 종주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저주를, 예언자가 해결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맞다.”
메피스토는 바알의 말에 긍정하듯 짧게 답했다.
예언자, 엘리스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연인을 구해 줬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말에.
“고작 그 이유로 그분의 대의를 저버린 것이냐!”
바알이 강렬한 어둠과 분노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었다!”
“우리라고? 내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라는 말이 통용될까?”
이어지는 바알의 말에, 메피스토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삼천마의 세력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삼천마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악마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삼천마라는 존재 자체가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자 상징이었다.
하지만, 삼천마가 사라진다면?
남아 있는 세력은 다른 악마들의 세력에 잡아먹힐 뿐이었다.
이 또한.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갚고 싶다.
그러한 미래를 보고 겪은 당사자, 엘리스가 직접 전해 준 사실이었다.
“내가 소멸하면, 네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벌일까? 바알.”
메피스토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자.
“고작…… 인간 따위에게 홀릴 정도로 가벼운 놈이었구나!”
-쿠구구!
바알이 강렬하게 들끓는 어둠의 파도를 크게 일으키며 분노를 내질렀다.
“그리도 잃는 것이 두렵다면, 잃을 것이 없도록 만들어 주마.”
“어림없는 소리!”
-스릉. 촤아아!
메피스토가 바알의 분노 어린 어둠의 파도를 샤네로 베어 내며 소리쳤다.
그때.
“부패하라.”
-치이. 푸화아아!
바알의 어둠과는 다른, 탁한 녹빛이 일렁이는 시커먼 마기가 메피스토를 향해 쇄도했다.
-스릉. 탓!
메피스토가 다가오는 마기의 기류를 샤네로 베어 내며 있던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치이이-! 치익……!
탁한 녹빛의 마기가 닿은 땅과 그 주변 공기가 뭉그러지며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르바스.”
메피스토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대악마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머리 위에 난 뿔과 비슷한 크기의 엄니가 입 사이로 튀어나온 모습.
곳곳이 찢어지고 썩어 흘러내리는 피부.
마치, 부패한 멧돼지의 머리뼈를 뒤집어쓴 시체처럼 보이는 대악마.
판데모니움 서열 5위, 부패(腐敗)의 대악마 마르바스였다.
바알을 따르는 한 자릿수 서열의 악마 중 하나.
“썩어 문드러져라.”
마르바스가 메피스토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다시 부패의 권능을 발현하려 할 때.
“나를 상대로 한눈을 파는 것인가?”
-지잉. 우우웅!
악기의 현을 튀기는 소리와 함께, 진동 소리가 울렸고.
-키잉! 콰아아!
짙게 물결치며 흔들리는 검은 파동이 마르바스를 휩쓸었다.
“감히……!”
-치이! 파아아!
마르마스가 부패의 권능을 펼쳐 자신을 뒤덮은 마기의 파동을 단번에 걷어 냈다.
그가 읊조리며 노려보는 곳에는.
“방해는 용납할 수 없다.”
바이올린 형태의 신물을 들고 있는 리치 형태의 대악마.
판데모니움 서열 13위, 사음의 대악마 벨레드가 서 있었다.
“한 자릿수 서열에도 들지 못한 버러지가…….”
-치이! 촤아아!
마르바스가 벨레드를 향해 부패의 마기를 쏘아 보내며 말했고.
“그 잘날 서열이 오늘부로 바뀔지 모르겠군.”
-키잉. 파아아!
벨레드 역시, 사음의 권능을 펼치며 마르마스에게 맞섰다.
메피스토를 방해하려던 마르바스를 벨레드가 저지했을 때.
“크흐흐, 이런 걸 숨기고 있었나?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탓.
작은 체구의 악마 하나가 바알 옆으로 다가오며 음침한 목소리를 흘렸다.
“가미긴……!”
그 모습을 본 메피스토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바알 옆에 나타난 악마의 이름을 읊조렸다.
허리가 굽고 빼빼 마른 체구의 노인 같은 대악마.
판데모니움 서열 4위, 사령(死靈)의 대악마 가미긴이었다.
무려 4위, 5위의 대악마.
삼천마를 제외하면,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바알을 도와 잿빛 군도를 습격해 온 상황.
게다가.
“메피스토에게 원한이 많아 보이는데, 나를 돕지 않겠나? 강탈의 대악마여.”
가미긴이 잿빛 군도 내부에 찾아낸, 강력한 사령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물건.
잘려 나간 아가레스의 머리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소멸한 아가레스를 향해 말하는 듯한 모습.
-우우웅.
가미긴에게서 흘러나오는 칙칙한 자줏빛 마기가 아가레스의 머리로 흘러 들어가자.
“크아아아!”
-지잉.
텅 빈 아가레스의 머리뼈 눈구덩이에 안광이 번뜩이며 괴성이 울렸다.
동시에.
-슈화아아!
머리뼈에서 마기가 흘러나와 반투명한 형체의 유령처럼 보이는 아가레스가 나타났다.
“이런!”
메피스토가 아가레스의 사념을 조종하려는 가미긴을 보며 침음을 흘리고는.
“저들을 증오해라. 샤네.”
-우웅! 차카카캉! 차캉!
마기로 수백 자루의 사냐를 만들어 내며 가미긴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잿빛 마기를 머금은 수백 샤네의 칼날이 쇄도하자.
-쿠구! 콰화아아!
어둠의 파도가 크게 솟구치며 샤네와 함께 돌진하는 메피스토에게 내리쳤다.
-스릉. 촤아아!
메피스토가 샤네로 바알이 쏘아 보낸 어둠의 파도를 갈라낸 순간.
“감히 나를 벤 검, 그것을 강탈하겠노라!”
반투명한 형체의 아가레스가 메피스토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끼기긱!
메피스토가 쥔 검, 샤네가 삐걱거리는 소리는 내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영향을 받으며 이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
이변을 눈치챈 메피스토가 마기를 끌어 올리며 대처하려는 순간.
-콰아아! 쏴아!
바알이 짙은 어둠을 끌어 올려, 메피스토를 향해 내리쳤다.
-스릉! 촤아아-!
메피스토는 즉시 샤네를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며 파도를 갈라내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이변 탓인지, 칼날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고.
-촤아아! 까가강!
이내, 샤네가 어둠의 파도를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하고 메피스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튕겨 나갔다.
공격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영향으로 메피스토 역시 침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고.
“네놈이 가진 모든 것들을 삼켜 주마!”
-지잉! 콰아아아-!
기회를 잡은 바알이 메피스토를 향해 어둠의 광선을 쏘아 보냈다.
그때.
“암류태극검 – 나선환류검.”
-스릉. 콰화아아!
처용이 나타나 바알의 공격을 태극에 가둬 하늘 위로 튕겨 보냈다.
갑작스러운 처용의 등장에 모든 악마가 경악과 의문을 내비쳤다.
처용은 전장에 개입한 즉시 주변을 빠르게 살폈고.
-탁.
이내, 왼손으로 지면에 박힌 샤네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그 순간.
-피이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하며 시간이 멈춘 듯, 일제히 멈추었다.
정확히는 사고가 가속되며, 심상 세계가 펼쳐진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스스스.
처용의 앞에 허공을 부유하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낡고 해진 하얀 드레스를 유령처럼 휘날리는 여인.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에 잿빛 눈동자 안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불꽃.
그 검은 불꽃에서 흘러내린 듯 보이는 검은 눈물 자국까지.
“……샤네?”
처용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을 알아본 듯 말했다.
그러자.
“허락도 없이 날 잡다니…….”
-스스! 촤아아!
유령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여인, 실체화하여 모습을 드러낸 샤네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닿는 것만으로도 베일 듯한 날카로운 마기가 처용을 향해 쇄도했다.
샤네에 깃들어 있는 자아가, 자신을 쥔 처용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때.
-쿠구구!
돌연, 처용이 오른손에 쥔 멸절에서 강렬한 신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크아아아!”
검붉은 갑옷과 치우 가면을 쓴 골렘이 나타나 샤네를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그 포효 속에 일렁이는 신력과 강기의 파동이 샤네를 향해 퍼져 나갔고.
-까가강! 까강!
샤네가 처용을 향해 쏘아 보낸 날카로운 잿빛 마기와 충돌하여 서로 상쇄되었다.
-쿠구! 쿠구구!
각 두 신물에 깃든 자아가 서로를 노려보며 기 싸움을 하듯 거친 기운을 내뿜을 때.
“……거기까지.”
처용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싸움을 만류하듯 입을 열고는.
“샤네, 네 주인을 구하고 싶다면, 내게 협력해라.”
샤네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절해도 상관없다. 네 주인을 구할지 말지는 네 선택이니까.”
“…….”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샤네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인도 아닌 다른 이가 자신을 다루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한 번뿐이다.”
굳게 닫혔던 샤네의 입이 열리며 한 번뿐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현명하네, 한 번이면 된다.”
그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였고.
-스르륵.
심상 세계가 사라지듯, 잿빛으로 멈춰 있는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용은 샤네가 펼친 심상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즉시.
“쳐부숴라. 파천.”
-파지직! 파아아!
샤네를 감싸며 그녀를 방해하고 있는 강탈의 권능을 단번에 파괴해 몰아내었다.
그리고.
“의념기 – 태극천체일도.”
-우웅. 지이잉!
처용이 태극천체일도를 발현하자.
-스스스!
협력을 약속받은 샤네에서도 멸천의 신력이 일렁였다.
“증오를 내뿜어라. 태극천체일도.”
-스릉!
처용이 태극천체일도와 사네의 칼날을 세우며 읊조렸다.
그에 반응하듯, 샤네가 옅은 마기의 파동을 흩뿌렸고.
-차카카-캉!
허공에 모여 뭉쳐 들며 수백 자루의 태극천체일도가 형성되었다.
“극 이이어술 – 천체극섬.”
처용이 왼손에 쥔 사네를 가볍게 치켜들며 지시하듯 읊조린 순간.
-키잉. 샤아악! 촤아!
수백 자루의 태극천체일도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지며 쇄도해 나갔다.
그 칼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크아악!
-으헉!?
잿빛 군도를 습격해 온 악마들.
샤네가 ‘적’이라고 판단한 악마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처용이 태극천체일도에 샤네의 권능을 섞어 발현한 결과였다.
“나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우우웅!
아가레스가 처용의 손에 들린 샤네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다시 한번 강탈의 권능을 발현하려 했다.
“소용없어.”
-파아아!
처용은 샤네에 일렁이는 멸천의 신력을 터트려 단번에 저지하고는.
“일치단결.”
-파지직! 샥!
수라와의 일체화를 발동하며 한 줄기 검은 벼락으로 변해 쇄도했다.
눈을 깜빡인 순간 사라진 처용이 아가레스와 가미긴 앞에 다시 나타났고.
“이 녀석이 네놈한테 악감정이 좀 많더라고?”
-스릉! 콰아아!
샤네를 사선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가미긴은 처용이 접근한 것을 본 즉시 뒤로 물러났지만.
“네, 네놈이 감히 나를!?”
아가레스는 바로 물러나지 못했다.
“크흐흐. 나를 위해 방패가 되어다오. 몰락한 삼천마여.”
가미긴이 사령의 권능으로 강제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처용의 공격을 오롯이 받게 만들고 자신은 안전하게 피할 생각이었으니까.
이윽고.
-촤아아! 콰쾅!
처용이 내리친 샤네가 아가레스의 상반신을 후려치듯 내려 베었다.
하지만.
“크아아아-!”
아가레스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기만 할 뿐, 소멸하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사령의 권능에 묶인 악마는 가미긴이 소멸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으니까.
가미긴은 아가레스를 방패로 세우고 뒤로 물러나 처용을 노릴 생각이었지만.
“넌 실수하는 거다. 가미긴.”
처용은 그런 가미긴의 생각을 알아채며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그 순간.
-우웅! 콰아아!
샤네의 칼날에 일렁이는 신력이 황금빛으로 변하며 크게 타올랐다.
다름 아닌, 파마의 신력.
심지어.
“뒤집어라. 역천.”
-우우웅!
마검(魔劍), 샤네가 내뿜는 짙은 마기 역시 파마의 신력으로 전환되어 더 크게 솟구쳤다.
파마의 신력은 마를 쳐부수는 천적의 힘.
가미긴의 사령으로 부활한 아가레스의 입장에서는 포식자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크아아아-!”
-파사사……!
반투명한 아가레스의 형상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고.
“태극천체일도 – 천지멸절.”
-스릉. 촤아아!
처용이 오른손에 쥔 태극천체일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자.
-촤아! 파아아……!
아가레스가 반으로 쩍 갈라지며 모래처럼 사그라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크어억!?”
뒤로 물러나 방심하고 있던 가미긴까지 베어 냈다.
오른쪽 어깨와 팔이 깔끔하게 절단된 모습.
“샤네로 마기와 상반되는 힘을!?”
당황한 가미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읊조리며 다급하게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그때.
“어딜 도망가느냐?”
-우웅. 스르릉!
그런 가미긴의 앞에 마기를 잿빛 마기를 모아 형성한 대검을 쥔 메피스토가 나타났다.
증오가 담겨 검게 타오르는 메피스토의 눈과 마주친 가미긴이 경악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촤아! 촤자작!
메피스토가 휘두른 검격에 육체가 산산이 조각나며 지면에 흩뿌려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