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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701화 (701/726)

#701화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짙게 깔린 공간.

“……크.”

그곳에서 고통 어린 짧은 침음이 울리며 침묵이 깨졌다.

어두운 침묵 속에서 울린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옥황상제.

“이……건?”

그가 탁한 눈동자를 조심스럽게 굴리며 의문을 읊조렸다.

손과 몸을 틀며 움직여 보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철컥.

가까스로 어깨를 틀며 아주 조금 움직이자, 단단한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몸과 붙어 있는 무언가가 마찰하며 낸 소리 같았다.

피부에 감각이 거의 없었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눈에도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았나?”

옥황상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천벌을 두르며 여래에게 돌진하는 자신과.

-우웅. 콰아아!

그런 자신을 향해 다섯 장의 역천부를 동시에 터트리던 여래의 모습이었다.

초장부터 진심 전력을 다한 듯한 공격.

압도적인 역천의 힘에 의해.

-있을 수 없는…… 일-.

옥황상제는 그 한 번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애초에, 그는 오른팔의 부상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역천을 발현한 여래에게 무려 두 개의 신물을 빼앗기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상황.

여래와 단독으로 마주한 순간부터, 이미 천황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커…… 으…….”

여래에게 패배하고 그대로 끝장날 줄 알았던 옥황상제는 놀랍게도 아직 살아 있었다.

-네 최후를 장식하는 것만큼은…… 나의 몫이 아니다.

역천에 잡아먹혀 가며 점점 의식이 흐려지던 옥황상제에게 들려온 여래의 목소리.

옥황상제가 그 목소리를 떠올린 순간.

“하……계종 따위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분노 가득한 옥황상제의 고함에 반응하듯.

-스르륵.

근처에 놓인 화로에 불이 들어오며 주변의 시야가 드러났다.

붉은 벽돌과 열려 있는 철제 여닫이문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불꽃.

주변을 밝히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기엔 대장간에서나 쓸 법한 생김새의 화로였다.

옥황상제가 탁한 빛의 눈동자를 굴리며 조금 밝아진 주변을 살필 때.

-화륵! 스르륵.

화로의 불꽃이 커지며 어두웠던 주변이 조금 더 밝아졌다.

동시에, 화로 옆에 있던 의자와 그곳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도 드러났다.

발끝부터 시작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누군가.

이윽고 화로의 불빛이 그 얼굴까지 비춘 순간.

“……!”

탁했던 눈동자를 번뜩인 옥황상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로 옆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불꽃을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닌.

“…….”

처용이었으니까.

옥황상제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발버둥 치듯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하지만, 단단한 무언가에 몸이 묶인 듯,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옥황상제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아래로 틀고 눈동자를 내리자.

“……!”

자신의 전신을 감싸듯 구속하는 철제 옥구를 보며 당황했다.

머리만 내놓은 채, 직사각형 형태의 상자 안에 갇힌 듯한 모습.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고.

“이……!”

신력을 끌어 올려 천벌을 쓰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지금 몸을 구속하는 옥구가 신력을 봉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깨어난 옥황상제가 몸부림치고 있음에도, 처용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화로만 응시했다.

그리고.

-화륵!

“……다 되었나?”

화로의 불길이 한 번 크게 퍼지는 것을 본 처용이 목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화륵. 스르륵. 탁!

불길 속에서 새빨갛게 달구어진 무언가가 튀어나와 처용의 손아귀에 잡혔다.

성인 남성의 상반신을 가릴 정도 크기의 납작하고 둥근 방패.

볼록한 앞면에는 엄니가 튀어나온 도깨비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탕탕! 탕-!

처용이 대장간에서 쓸 법한 망치를 들고 단조된 방패를 살피듯 여기저기를 두들겨 보이자.

-끄아…… 크아아……!

방패에서 고통 어린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아직 사념이 남아 있었나? 참으로 질기군.”

처용은 방패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들으며 놀랍다는 듯 읊조리고는.

-깡! 까강! 탕!

달구어진 방패를 망치로 두들기고 끌로 긁어내며 다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크아아! 으아……!

방패에선 계속해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화륵. 치이이……!

다시 한번 화로에 달군 방패를 푸른 빛이 일렁이는 물웅덩이에 담금질하자.

-꺼어…….

점점 희미해져 가는 비명을 마지막으로 더는 아무런 비명이 들리지 않았고.

-딸깍.

처용은 완성된 방패의 원형을 닦으며 마무리한 후, 뒤에 있는 선반에 올려놓았다.

“……나타?”

그 과정을 멍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옥황상제의 입에서 경악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옥황상제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조금 전까지 처용이 단조하던 원형.

선반에 걸려 옅은 붉은빛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방패를 향해 있었다.

그 방패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신력에서, 천교의 성좌인 나타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게다가 방금 방패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역시, 나타의 목소리였다.

옥황상제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방패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떨자.

“……나타밖에 안 보이나 봐?”

선반을 바라보고 있는 처용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에 옥황상제가 반사적으로 선반 위에 장식된 다른 물건들을 응시했다.

검, 방패, 견갑, 완갑, 액세서리 등…… 여러 형태로 단조된 원형들.

“이…… 이……!”

그 원형들을 바라본 옥황상제가 눈을 부릅뜨며 경악 어린 침음을 토해 냈다.

무구 원형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운은 다름 아닌 신력.

옥황상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천교 소속 성좌들의 신력이었다.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 몇 개는 아주 잘 나왔더라고.”

-딸각.

처용이 선반에 장식된 원형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넓은 접시 정도 크기의 둥글고 납작한 형태의 물건.

겉면이 외부에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손거울처럼 보이는 원형이었다.

옥황상제가 손거울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청백색 신력을 눈에 담자.

“……하, 항아?”

그 신력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본 듯, 눈동자를 거칠게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옥황상제의 읊조림에.

“월하(月下)의 여신, 네놈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다.”

-스윽.

처용이 손수건으로 거울의 겉면을 닦으며 잔혹한 현실을 말해 주었다.

나타로 방패를 만들기 바로 전에 완성했던 손거울.

이것은 천교의 성좌 중 하나이자, 옥황상제의 자녀.

월하의 여신, 항아를 재료로 만든 것이었다.

“같은 달빛을 쓰는 츠쿠요미의 신관이라면, 이걸 잘 쓸 수 있으려나?”

처용이 닦아 낸 거울을 다시 선반 위에 올리며 말했다.

무려 성좌를 갈아서 무구 원형을 만들었음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모습.

마치, 자신의 만든 눈앞의 무구들을 ‘도구’로 보는 듯한 태도였다.

“네……! 네 이노오옴!!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옥황상제가 악에 받친 듯,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내질렀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격렬한 감정이 솟구치는 듯한 괴성.

처용은 옥황상제가 내지르는 고함에 답하지 않고.

-탁.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그러자.

-키잉. 끼기긱!

철과 철이 맞물리며 움직이는 기계 장치 소리와 함께.

-쿠구구! 화아아!

옥황상제의 발 아랫부분이 열리며 새빨간 빛과 열기를 뿜어냈다.

불순물 하나 없는 쇳물이 끓어오르는 듯,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새빨간 용암.

“이…… 이건!”

옥황상제는 자신의 발아래 펼쳐진 열기와 용암, 그 주변에 보이는 장치를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마지막 한 번만 더 쓰면, 완전히 부서지겠군.”

처용이 곳곳에 금이 간 기계 장치와 용암 우물 외벽을 보며 말했다.

“물론…… 이제 ‘마지막 한 번’만 쓰면, 더 쓸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처용의 말이 이어진 순간.

-드륵. 촤라라!

옥황상제가 새빨간 용암 아래로 훅 떨어졌다.

그를 가둔 철제 옥구의 아랫부분이 용암에 닿으며 새빨갛게 달구어졌고.

-치이이!

점점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안에 갇힌 옥황상제 역시.

“크아아아아-!”

발아래부터 녹아내리는 격렬한 통증에, 목이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네놈을 어떻게 죽일지 수천만 번 생각했고 그 이상 상상했었어.”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시간이 되돌아온 이후, 옥황상제를 어떻게 죽일지 매번 고민했었다.

천교의 모든 성좌를 학살하고 하늘궁을 피의 강에 담가 버리리라 맹세했었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복수가 끝나는가?

고작 그들을 학살하여 편하게 소멸시키는 것으로, 허무한 복수를 마무리하는 게 맞는가?

고민 끝에 처용이 내린 결론은, 옥황상제를 소멸시키는 선택이 아니었다.

“네놈들에게 내릴 형벌은…… 이거다.”

-탁. 탁.

처용이 뒤에 있는 선반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성좌의 의무를 저버리고 제 욕심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이 세상을 위해 봉사할 것.”

천교의 악신들에게 내린 형벌은 다름 아닌 강제적인 봉사.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도구’이자 ‘소모품’이 되어라.”

영원히 인간들에게 활용되는 ‘도구’가 되는 것.

그것이 처용이 내리는 형벌이었다.

“멸천의 심판자로서 네놈들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 처용의 선고에.

“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내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일 것이다아아아-!!”

옥황상제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분노와 증오를 가득 담아 내질렀다.

강렬한 고통을 머금은 신이 내지르는 분노와 저주 가득한 고함에도.

“좀 약한데? 더 증오와 분노를 질러 봐.”

처용은 그런 옥황상제를 더 도발하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정제해야 할 네놈의 사념이 강하게 담기면 담길수록, 더 좋은 ‘도구’가 될 테니까.”

처용이 ‘도구’라는 말에 힘을 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히 도구가 되어 인간들에게 활용되는 운명.

벗어날 수 없는 옥황상제의 운명이자 형벌을 상기시키는 듯한 말이었다.

그런 처용의 말에.

“크아아아아-!!”

더더욱 악에 받친 옥황상제가 분노 가득한 괴성을 내질렀다.

고통을 내지르는 옥황상제가 반 정도 녹아내리자.

-치이. 스르륵. 스륵.

용암 우물 옆의 관을 따라 샛노란 쇳물이 흘러내렸고.

-치이. 치이익.

처용의 옆에 있는 네모난 단조 선반 위에 모여들었다.

단조 선반 위에 음각으로 패인 직사각형 형태의 홈에 모이는 쇳물.

마치, 무구 단조를 위한 강편이 만들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본 처용은.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저벅.

이젠 상반신만 남아 있는 옥황상제에게 다가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도구’가 되고 싶으냐? 옥황상제.”

어떤 도구로 재탄생하고 싶냐는 처용의 말에.

“캬아아아-! 크아아-!!”

옥황상제가 핏발 가득한 눈을 튀어나올 듯 부릅뜨며 강렬한 분노를 내질렀다.

처용은 자신을 향해 격렬히 분노를 내지르는 옥황상제와 끝까지 눈을 마주치며 지켜봤다.

옥황상제가 상반신을 넘어 목 부분까지 용암에 닿아 녹아내리자.

“꺼어억……!”

증오와 분노가 가득한 괴성이 점차 잦아졌다.

결국, 입까지 녹아내려 괴성과 비명이 끊어졌고.

“……!”

처용을 끝까지 노려보며 증오와 분노를 내뿜던 눈동자가 뒤집혔다.

그 눈동자마저.

-스르륵. 치이-!

모두 용암 속에 빠져들어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치이…… 탕!

단조 선반 위에서 만들어지던 강편이 완성되었다.

처용이 강편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관찰하고는.

-탕. 탕탕.

망치로 강편의 외부를 두들기며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파지직! 파지지직!

강편에서 강렬한 전류가 튀며 빛을 흩뿌렸고.

-크아! 크아아아!

조금 전까지 귀에 울리던 익숙한 비명이 울렸다.

“흐흐흐……!”

강편에서 새하얀 천벌과 비명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한 처용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고.

-탕! 까강!

망치와 끌을 쥐고 단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 헌터 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 저승만 해결하면 되려나?”

앞으로 처리해야 할 남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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