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98화 (698/726)

#698화

악마들에게서 엘리스를 구해 낸 이는 다름 아닌 말석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

[내가 정녕 미쳐 버린 것이로다!]

그는 스스로가 한 행동을 마쳤다고 말하면서도.

[전부 꺼져라!]

-콰아! 촤아아!

추적해 오는 악마들을 저지하듯, 그들을 향해 독기와 마기를 흩뿌리며 소리쳤다.

누가 봐도, 명백히 악마들을 방해하고 엘리스를 돕는 모습.

그런 안드로말리우스의 행동에.

[안드로말리우스!]

[네놈이 감히 배신을!?]

-콰아! 콰아아!

대악마들이 경악과 분노를 내지르며 그를 추적했다.

“으윽, 결계의 외곽을 돌아…… 성지쟁탈전의 결계에서 나갈 순 없을 테니까…….”

엘리스가 힘겹게 고개를 들며 자신을 돕는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그런 건 진작 말하란 말이다!]

-탓! 촤아아!

안드로말리우스는 엘리스의 말에 소리치듯 답하며 발걸음을 다급히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러나.

[말석 따위가!]

[죽여 버리겠다.]

-촤악! 탓!

이내 도주하던 안드로말리우스 앞에 그와 같은 대악마. 벨리알과 포르네우스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베놈 하이브!]

-슈르르륵! 콰아아!

안드로말리우스는 즉시, 오랜 시간 축적한 맹독을 외부로 방출하는 권능.

배놈 하이브를 발동하며 사방으로 독기를 내뿜었다.

검은 독사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맹독의 벽을 형성했다.

그를 얕본 두 대악마와 휘하의 상급 악마들이 맹독의 벽에 달려들었다.

안드로말리우스는 아슬아슬하게 말석의 자리를 유지하는 대악마였으니까.

하지만.

[크윽! 독기가?]

[언제 이 정도의 힘을!]

-치이! 치이이!

안드로말리우스가 내뿜은 독기는 대악마들도 쉬이 뚫지 못할 만큼 짙었다.

다른 악마들은 손대는 것만으로도 독에 중독되며 고통 어린 비명을 토해 내도록 만들었다.

예상을 웃도는 안드로말리우스의 힘에, 악마들이 당황스러움을 드러냈지만.

[그래 봐야 말석에 불과한 놈이다. 당장 놈을 죽여라!]

-우웅! 콰아아!

어느새 안드로말리우스를 추적해 온 또 다른 대악마.

무려 15위 서열의 대악마인 엘리고스가 독기의 벽에 마기를 내뿜으며 명령하듯 말했다.

-치이! 파사사……!

엘리고스의 마기에 의해, 안드로말리우스의 독이 점점 중화되듯 사그라져갔다.

다른 악마들도 이에 가세하자, 맹독의 벽이 사그라지는 속도가 점점 가속되었다.

[젠장! 젠장!]

-우우웅!

안드로말리우스가 베놈 하이브의 힘을 더욱 끌어 올리며 경각심 어린 침음을 흘렸다.

그때.

“영광인 줄…… 알아.”

피로감 가득한 눈을 치켜뜬 엘리스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동시에.

“바알조차 갖지 못한 단 하나뿐인 인간이…… 당신을 선택한 것을.”

-우우웅.

손바닥에 마기를 모아 마법진을 그리고 자신을 휘감은 안드로말리우스의 꼬리 비늘에 손을 대었다.

“나, 태초의 그릇을 지닌 존재이자, 거대한 어둠을 품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

엘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이어짐과 동시에.

-우웅. 우웅. 지이잉.

그녀의 손바닥에 형성된 마법진을 타고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엘리스의 마기가 흘러 들어갔다.

비단, 마기만이 아닌.

-스스스.

심장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반투명한 기운, 일부 에테르도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깃들었다.

이윽고 안드로말리우스에게 손을 덴 엘리스의 오른손등에.

-치이이!

마기가 뭉치며 검은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둥근 원형의 문양 안에 그려진, 입을 벌린 독사의 모습.

판데모니움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지금 그녀가 하려는 건 다름 아닌.

“말석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에게…… 성좌 계약을 제안한다.”

성좌와 신관이 맺는 계약이었다.

다만, 평범한 성좌 계약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네게 선택권은 없어.”

엘리스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성좌가 인간을 자신의 신관으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합의하에 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성좌를 선택하고 강제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안드로말리우스가 엘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흘린 순간.

-피이이!

문양이 완성되며 엘리스가 강제로 진행한 성좌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러자.

[으어억?]

-쿠구!

안드로말리우스가 재차 의문을 드러내며 몸을 비틀었고 주변의 마기가 크게 들썩였다.

지면에 떨어진 엘리스가 안드로말리우스의 뒤로 물러나 결계의 벽에 등을 기댄 순간.

-피이! 콰아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펼친 베놈 하이브, 독기의 벽이 크게 폭발하듯 요동치며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무슨 일이!?]

[으헉!]

독기의 벽을 뚫어 내던 악마들이 그 폭발에 밀려나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무려 서열 15위의 대악마인 엘리고스조차 밀쳐 버리는 마기의 폭발.

말석의 대악마가 보일 법한 힘이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스스스.

독기의 폭발이 가라앉으며 벽 뒤의 광경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치이! 치이이!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는 검보랏빛 독기에 휘감긴 안드로말리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덩치가 조금 줄어들고 전보다 인간형에 가까워진 모습.

변화를 맞이한 디아블로와 비슷한 변화를 겪은 듯 보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쿠구구구!

안드로말리우스에게서 이전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강렬한 마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힘은?]

당사자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신의 변화를 느끼며 놀라움을 드러낼 때.

[안드로말리우스 배신의 대가는 네놈의 목숨이다.]

-쿠구구! 쏴아!

포르네우스가 독기의 폭발을 걷어 내며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돌진했다.

검은 마기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작살의 창날이 돌진해 오자.

[……베놈 티스.]

-쏴아! 차카캉!

안드로말리우스는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독기를 뭉쳐 칼날을 형성해 내리쳤다.

본래라면, 서열 말석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서열 30위인 포르네우스를 정면 승부로 이길 리 만무했다.

그러나 독기의 칼날이 포르네우스의 작살과 충돌한 순간.

[크어억!?]

-차캉! 콰아아!

놀랍게도 포르네우스가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30위의 대악마가 말석의 대악마에게 힘 싸움으로 밀려난 상황.

그 광경을 본 다른 악마들이 멈칫하며 경악을 드러냈다.

안드로말리우스도 자신의 힘이 믿기지 않은 듯, 경악 어린 표정으로 침묵했다.

“소중한 신관을…… 지켜 주리라 믿는다. 안드로말리우스.”

그 모습을 본 엘리스가 미소를 흘리며 읊조렸다.

엘리스의 기지로 인해 안드로말리우스가 변화하고 악마들을 저지했을 때.

[……뭔가 이상하군.]

-차캉! 콰아아!

파멸의 검을 휘둘러 처용의 태극천체일도를 쳐낸 악의 종주가 의문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그는 처용을 상대하고 있으면서도.

[예언?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악몽 속에서 예언이 나올 리가…….]

-쩌저적. 쩌적…….

허공 위에서 서서히 닫히고 있는 균열.

악몽과 이어지는 통로와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보호를 받는 엘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 이 정보는…….]

마치, 두 곳을 보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읽어 내고 의문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렇군.]

무언가를 알아챘다는 듯, 확신 어린 목소리를 흘림과 동시에.

[계승자-.]

처용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목소리는 소리를 내어 말한 것이 아닌.

[……시간이 되돌아갔구나.]

처용에게만 들리도록, 전음 비슷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했다.

갑작스레 악의 종주에게서 전해진 목소리에.

“…….”

처용이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처용의 반응에, 악의 종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침묵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하며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한 듯한 모습.

그리고.

[그릇에 깃든 자아가 정녕 악몽 속에서 유출된 정보가 맞다면, 저것이 시간의 중심은 아닐 터.]

먼 곳에서 성지쟁탈전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황룡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황룡은 그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반응했다.

그리고.

[진짜 시간의 중심축은 바로…… 너였구나. 계승자.]

악의 종주가 다시 처용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낸 순간.

“……!”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하던 처용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악의 종주는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것을 알아챈 것도 모자라, 그 ‘중심’이 처용이라는 사실까지 알아챘다.

표정을 굳힌 처용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듯 침묵하자.

[……성지쟁탈전의 휴전을 요청한다.]

-스릉.

악의 종주가 파멸의 검을 내리고 황룡을 노려보며 메시지를 전했다.

뜬금없이 전투를 잠시 중지하겠다는 말.

처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태극천체일도를 치켜들며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그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피이!

황룡은, 악의 종주가 제안한 휴전을 받아들인다며 짧게 점멸하는 황금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파아아! 스르륵.

처용과 악의 종주 주변으로 짙은 금빛이 일렁이며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주변의 환경과 단절된 금빛의 결계가 형성된 듯한 모습.

이윽고.

-화아!

처용의 뒤로 황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승자가 우주의 중심축이 되어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것을…… 네놈은 알고 있었을 터.]

악의 종주가 황룡을 노려보며 물었다.

[알고 있었다.]

그 물음에 황룡이 알고 있었다 대답하자.

[시간은 되돌아갔지만, 우주의 수명이 되돌아가지는 않았을 터-.]

악의 종주가 황룡을 향해 재차 물었다.

[그럼에도 나를 방해한 것인가? 이 우주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여러 복잡한 심경이 일렁이는 듯 보였다.

그중 가장 짙게 드러나는 감정은 다름 아닌.

‘경각심…….’

경각심, 처용이 이를 파악하며 속으로 읊조릴 때.

[다시 말하지만, 그대의 방법은 잘못되었다.]

황룡이 악의 종주의 말에 대답했다.

우주의 문제를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악의 종주가 말하는 구원에는 여전히 반대하는 모습.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런 황룡의 말에 악의 종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악의 종주는 우주의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왜 우주의 시간이 돌아갔는가?

그 말인즉.

[시간이 되돌아갔다 함은, 내가 성공했다는 뜻이다.]

악의 종주가 이 우주를 완전히 파멸시켰다는 것, 그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즉, 무한의 순환을 저지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악의 종주는 이 가설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실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황룡은 악의 종주가 말하는 가설에 반대하듯 말했다.

[그대는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악의 종주가 실현하려는 구원은 실패했다.

[모두가 파멸하여 우주가 끝장난 미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주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파괴되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이 황룡이 생각하는 이전 시간대의 결말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나만이 성공이라는 가능성에 도달했다. 그리고 해내었다.]

악의 종주가 황룡의 말에 반박했다.

[내가 바라던 파멸이 이루어졌단 말이다.]

[그 파멸에…… 그대의 바램은 포함되지 않지 않나?]

그런 악의 종주의 말에 황룡이 진지한 목소리로 지적하듯 말하고는.

[천칭의 조율자들이라 해도, 우주의 시간을 돌릴 순 없다. 그대도 알고 있을 터.]

가장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다.

무한의 순환을 관장하는 이들, 천칭의 조율자라 불리는 존재들.

순환의 포식자와 프로토도 우주의 시간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무한의 순환을 실현해 내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 게 아니네, 시간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

[…….]

이어지는 황룡의 말에 악의 종주가 생각에 잠기듯 침묵했다.

[내 입장은 여전하네, 파멸의 운명을 말하지만, 진정한 파멸만큼은 거스르려 하는 자여.]

[…….]

악의 종주는 황룡의 말에 생각을 정리한 듯 침묵을 끝내고는.

[……남은 시간은?]

황룡에게 남은 시간을 물었다.

뜬금없이 시간을 묻는 질문이었지만.

[……대략 ‘4년’일세.]

황룡은 악의 종주가 한 질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시간이 더욱 촉박해졌는데도, 그 알량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

4년 남았다는 황룡의 말에, 악의 종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

[그대 역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황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런가? 누구보다도 이 우주를 가장 사랑했던 존재여.]

[…….]

황룡의 마지막 말에, 악의 종주가 다시금 생각 어린 침묵에 잠기고는.

[……3년.]

이번에는 그가 ‘3년’이라는 시간을 언급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계승자, 정녕 네 뜻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3년 뒤에 네 답을 듣겠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처용을 향해 선언하듯 말을 이었다.

[그 뒤에 다가올 ‘최후의 파멸’을 저지해 보아라. 이 우주의 계승자여.]

마지막 말을 전한 악의 종주가 손을 크게 휘저어 보이자.

-파아아!

휴전이 끝난 듯, 주변에 펼쳐진 황금빛 결계가 완전히 사라지며 다시 전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동시에.

-탓! 후훅!

악의 종주가 허공으로 몸을 날리고는.

-차카캉! 스르륵!

허공 위에 깨져 있는 검은 균열, 악몽과 이어지는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