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콰아아아! 쿠구!
다시금 솟구쳐 오는 파멸의 파도와, 그것을 저지하는 성좌들.
이전엔, 성좌들이 파멸의 파도에 거침없이 밀려나기만 했다면.
[반격할 수 있다!]
[받아쳐라!]
이젠, 어느 정도 저지하고 저항하며 나름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새로이 신법의 주인이 된 아테나가 발현한 공정의 권능 덕분이었다.
그리고.
[화염부, 토류부…….]
그런 아테나를 바로 옆에서 돕는 이.
지금껏 신법을 짊어졌던 자이자, 스스로 타락한 힘을 버린 자.
역천을 버린 여래는, 혈선에서 신선으로 되돌아왔다.
[땅은 불을 품고-.]
-스르륵. 샤락.
여래가 자연부로 선술을 형성하며 읊조리자, 자연의 속성이 그의 손짓과 말에 따라 움직였다.
다만, 그가 평소에 자연부로 발휘하는 선술, 팔괘의 진법과는 조금 달랐다.
창공처럼 푸른 신력이 모이며 형성된 자연부는 팔괘를 그리지 않고.
-스륵. 스르륵.
땅과 허공, 하늘 등 자연(自然) 속에 스며들었다.
[압축된 열기가 솟구쳐 화산을 형성하리라.]
이윽고 여래가 땅, 정확히는 악의 종주가 파괴하고 있는 그의 발아래를 손짓하자.
-피이-! 콰아아아!
지각 변동과 함께 땅이 갈라지며 용암이 솟구쳤다.
주변을 태워 버릴 듯, 용암이 크게 요동쳐 오르며 주변을 뒤덮었지만.
-치이! 파아아……!
파멸로 인해 용암의 불길이 곧장 식었고 순식간에 굳어갔다.
그때.
[터진 화산이 식으면, 그 위로 새로운 물결이 흐르고.]
여래가 식어 버린 용암 위를 손짓하며 신력을 끌어 올리자.
-치이! 쏴아아!
식어 버린 마그마 위로 수증기가 피어나더니, 온천이 터지듯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터진 화산의 분화구 위로 호수가 생성되는 듯한 모습.
그 물줄기가 수증기와 함께 솟구치며 주변에 퍼진 파멸의 파도를 뒤덮었다.
이번에도 역시.
-치이-!
물줄기가 파멸과 닿는 즉시 가루처럼 사그라지며 모조리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 물줄기가 모두 사그라지기 전.
[흐르는 물 아래에 잠자던 불길이 다시금 터져 나가니.]
-치이! 콰아아아!
파멸이 꺼뜨리고 물줄기로 인해 차가워진 화산이 다시금 폭발을 일으키며 마그마를 내뿜었다.
터져 나간 마그마가 그 위에 일렁이던 물과 닿자, 수증기 폭발을 일으키며 더 큰 폭발을 일으켰다.
이어지는 연쇄 폭발 속에.
[상극(相剋)은 앙숙(怏宿)이 아닌, 서로가 힘을 합쳐 조화(調和)를 이루리라.]
-샥!
여래가 풍운부 한 장을 폭발 속에 던지며 읊조렸다.
강렬한 화염과 수증기의 폭발 속에 바람이 불어닥쳤고.
-휘이이!
그 바람이 물과 화산의 폭발을 휘감아 난기류를 형성하며 거칠게 휘몰아쳤다.
본래라면, 서로 맞붙는 순간 서로 상쇄되며 힘을 잃는 화(火) 속성과 수(水) 속성.
그 두 가지 자연의 힘이 바람과 함께 조화(調和)를 이룬 결과.
-콰아! 쏴아아아!
서로 상쇄되지 않고 오히려 폭발의 위력과 밀도를 크게 키우며 점점 퍼져 나갔다.
휘몰아치는 난기류에 파멸 역시 휘말렸고.
-파사사사!
점점 사그라지는 난기류의 폭풍과 함께 나선으로 몰아치며 하늘 위로 흩어졌다.
화산과 수증기의 폭풍이 파멸을 길동무 삼아 사라진 듯한 광경.
[이제야…… 이제야 ‘나의 길’을 되찾았도다.]
파멸의 파도를 선술로 저지한 여래가 잔잔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랜 시간, 신법이라는 거대한 신명을 짊어지며 넓어진 여래의 격과 그릇에 새로운 힘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발현하지 못하고 역천과 신법에 억눌려 있던 그의 진짜 신명이 제 모습을 드러났다.
조화(調和).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끝에, 여래가 되찾은 자신만의 신명.
조화의 힘을 되찾은 여래가 아테나를 향해 쏟아지는 파멸을 저지하고 있었다.
지금, 무차별적으로 휘몰아치던 파멸의 일부는.
-콰아아아!
아테나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쇄도해 오고 있었다.
악의 종주를 가장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아테나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신법의 주인이 된 그녀가 발휘한 공정의 권능 덕분에, 성좌들이 어느 정도 파멸에 맞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 아테나는 지금.
-우우웅.
공정의 권능을 펼치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빠르고 묵직하게 쇄도해 오는 파멸의 파도를 온전히 피하기 힘든 상태였다.
신법재판소의 사슬이 종종 솟구치며 파멸을 저지한다고 해도, 파멸을 완벽히 막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여래는 그런 정황을 빠르게 눈치채며 아테나의 옆에 서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우웅. 스르릉!
악의 종주가 파멸의 검을 불러냈고 아테나를 향해 내리쳤다.
새까만 선이 아테나를 반으로 가를 듯한 기세로 쇄도해 오자.
[토류부, 목림부, 화염부, 광명부.]
여래가 즉시 네 종류의 자연부를 압축하고는.
[조화의 수호자.]
-쿠구구구!
아테나의 앞에 거대한 골렘을 소환했다.
나무줄기와 바위, 모래가 서로 뒤엉켜 만들어진 골렘 위로 태양처럼 타오르는 빛과 화염의 형상.
-탁! 쿠궁!
여래가 소환한 골렘이 두 손을 들어 파멸의 검이 그려 내는 검격을 잡아챘다.
세상을 갈라 버릴 듯했던, 길고 날카로운 칼날을 두 손바닥으로 잡아챈 모습.
파멸의 검이 그려 내는 검격을, 여래가 소환한 골렘이 잘 막아 낸 듯 보였지만.
-치이이!
손과 팔이 파멸에 닿으며 빠르게 부식되었고 칼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어깨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때.
-쿠워워! 콰쾅!
골렘이 오른쪽 어깨까지 내려온 파멸의 칼날을 향해 박치기를 내질렀고 발을 박차 제 몸까지 날려 돌진했다.
골렘 위로 타오르는 빛과 불길이 파멸의 칼날을 휘감으며 잠시 억제한 틈에.
-쿠구구!
그 뒤로 육중한 골렘의 덩치까지 밀어닥치자.
-스릉. 촤아! 콰아아!
파멸의 검이 내지른 검격의 궤도가 틀어지며 아테나의 옆을 길게 파헤쳤다.
아테나를 집요하게 노리던 짙은 파멸의 힘이 여래에 의해 계속 저지되는 상황.
[미숙한 네가, 그 신법의 무게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악의 종주가 여래의 보호를 받는 아테나를 노려보며 말하자.
[내가 먼저 쓰러지는 일을 결코 없을 것이다.]
아테나가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힘겨운 숨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
지금 아테나는 악의 종주를 상대하기 위해, 공정의 권능을 펼치는 상황이었다.
신법의 신명이 다른 신명에 비해 격이 높고 무거운 만큼.
-우우웅.
아테나에게 점점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다.
게다가 공정의 권능이 발현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악의 종주.
대상이 거대하고 강한 존재였기에, 그만큼 아테나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커졌다.
다른 성좌들과 함께 공세에 합세하기는커녕, 공정의 권능을 겨우 유지하는 상황.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피로감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절대로…… 쓰러질 수 없다.]
아테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아스트라페를 지지대처럼 잡으며 버텼다.
그때.
“아테나 님!”
-탓!
누군가가 아테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제시카?]
아테나가 제 옆에 다가온 자신의 신관, 제시카를 바라보며 의문 어린 목소리를 흘리자.
“돕겠습니다.”
제시카가 아테나를 향해 돕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결전기 – 미네르바.”
-스르륵. 콰아아!
결전기를 발동해 미네르바로 변신하고는 전신에 신력을 휘감고는.
-탁.
악의 종주를 향해 신법의 존엄을 겨누고 있는 아테나의 왼팔을 잡았다.
그 순간.
“……크으으읍-!?”
인상을 확 일그러트린 제시카의 입에서 고통 어린 침음이 흘러나왔다.
무릎이 절로 굽혀지며 어깨가 움츠러드는 모습.
마치, 강한 중력의 영향을 받아 점점 주저앉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아테나가 제시카의 행동을 만류하듯 말했다.
신법이 발휘하는 권능의 무게는 주신급 성좌인 아테나에게조차도 버거운 상황.
아무리 신력을 각성했다고 해도, 인간인 제시카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지, 지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으드드.
제시카가 점점 굽혀지는 무릎과 허리를 펴며 강하게 말했다.
“백지 한 장도 맞들면 낫다……!”
비록 아테나에 비해 작은 힘일지라도, 그녀를 도와 신법의 무게를 견디겠다는 의지.
게다가.
“공정의 권능을 유지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제시카는 그저 아무런 계산 없이 아테나를 돕기 위해 고통을 자처한 게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이건 아직 시험해 본 적이 없는데……!”
-파아!
공간 이동 마법으로 제시카의 앞에 나타난 루비아가, 굳은 표정으로 읊조렸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는.
-지이이잉!
아홉 개의 고리, 9써클이 거세게 진동하며 마나를 맹렬히 태우고 있었다.
“초위(超位) 마법.”
루비아가 하늘 위로 손을 뻗으며 써클에 모인 마나를 강하게 방출하자.
-쿠릉! 쿠구구구!
하늘 위로 마나가 모여 형성된 무지갯빛 구름이 뭉치며 마법진을 형성했다.
이윽고.
“엘리멘탈 새틀라이트!”
-휙!
루비아가 하늘 위로 뻗은 손을 강하게 내리며, 오랜 시간 준비했던 대마법을 발현했다.
-지이잉!
무지갯빛 구름의 마법진이 짧게 점멸하며 빛을 번쩍이고는.
-우웅. 콰아아아-!!
지상을 향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빛의 포격을 내뿜었다.
하늘 위에서 빛의 기둥이 내리친 듯한 광경.
하늘과 대기권 너머에서부터 마나를 모아 압축시켜 내리치는 대마법인 위성 포격이었다.
그 강렬한 마나의 포격이.
-콰쾅! 지이이잉-!
악의 종주 머리 위로 떨어지며 주변 일대를 불태우고 파괴했다.
아무리 루비아가 발현한 대마법이라 해도, 본래라면 악의 종주에게 통하지 않아야 했지만.
-지이잉! 콰아아-!
지면을 불태우며 파괴하는 빛의 포격이, 주변에 일렁이는 파멸의 기운을 몰아냈다.
심지어.
-치이이-!
그 중심에 서 있는 악의 종주를 새하얗게 불태우기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아테나가 유지하고 있는 공정의 권능.
격의 차이를 없애고 서로를 동등하게 만드는 공정의 권능 덕분이었다.
“이대로-!”
루비아가 위성 포격에 마나를 집중하며 강하게 읊조렸다.
무려, 메테오를 훨씬 넘어서는 위력의 대마법.
이대로 힘을 집중하여 악의 종주에게 피해를 누적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캉.
태연하게 선 채 포격을 맞던 악의 종주가 파멸의 검을 하늘 위로 치켜들자.
-샥. 콰아아!
허공에 검은 선이 그어지며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던 위성 포격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루비아가 하늘에 형성한 마법진 역시, 반으로 갈라지며 사그라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쏴아아!
날카로운 파멸의 칼날이 파도처럼 뻗어 나가 루비아에게 쇄도했다.
그때.
“검성류 – 송곳 베기!”
루비아의 앞에 나타난 검성이 검을 발검하며 강기를 쏘아 보냈다.
검성의 강기와 신력이 강하게 압축되어 한 지점에 뭉쳤고 이내, 송곳처럼 날카로운 형태를 갖추었다.
-타아앙!
검성이 쏘아 보낸 강기의 송곳이 파멸의 파도와 충돌한 순간.
“천마신공 – 혜성반타!”
-샥! 콰콰쾅!
무록이 나타나 송곳의 머리를 향해 거대한 해머를 내리쳤다.
-쾅! 쩌적!
송곳 끝이 파멸의 파도 안으로 파고들었고.
“검성류 – 폭류검(暴流劍).”
-우웅. 콰아아!
검성이 그 송곳에 깃든 강기와 신력을 폭발시켜 파멸의 파도를 저지했다.
하지만.
-쏴아아! 콰아!
쇄도해 오는 파멸의 파도는 한 줄기가 아니었다.
검성과 천마는 그중 하나를 저지했을 뿐이었다.
이어져 쏟아지는 파멸의 파도에.
-탓!
둘은 그 파멸의 파도를 저지하려 하지 않고 잠시 물러났다.
그리고.
“에실록스! 최대 크기로!”
-쿵! 쿵! 콰아앙!
20미터에 달하는 철갑 기사.
강철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 아나샤가 거대한 철갑 방패를 치켜들고 파멸의 파도에 돌진했다.
동시에.
“결전기 – 그랜드 디펜더!”
-쿠구구! 콰앙!
아나샤의 바로 옆에서 나타난 비슷한 크기의 바위 골렘.
올림포스 땅의 여신 데메테르의 신관, 스티븐이 결전기를 발동하며 이에 가세했다.
그 외에도.
“여왕님을 도와라!”
“뒤를 받쳐!”
아나샤보다 작은 크기의 철갑 기사로 변하며 가세하는 아라한 왕국의 기사들과.
“강기를 최대치로 올려!”
“이 사람들 밀리면 다 죽는다!”
진호와 백호를 포함한 스피릿 팀의 헌터들과 고레벨의 헌터들이 뒤를 받치며 합류했다.
그들이 파멸의 파도를 견디며 버틴 그 찰나의 순간.
“저지먼트 헤븐!”
-지잉. 화아아!
성자가 빛의 신력을 퍼트리며 헌터들과 철갑 기사들을 휘감았다.
동시에.
“샤이닝 트랜스폼.”
성자의 옆에 선 성녀, 호네아가 빛을 내뿜으며 나타났다.
이번엔, 어둠 한 점 없는 평소의 새하얀 모습.
“올 딜리트!”
-위이잉! 파아아-!
빛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모은 호네아가 세상의 어둠을 삭제하는 힘, 올 딜리트를 강하게 터트렸다.
호네아의 손아귀에서 터진 빛의 올 딜리트가 성자의 빛에 섞여들었고.
-치지지! 치직! 콰아아-! 콰쾅!
이내, 파멸의 파도와 마찰을 일으키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결과.
“으윽!”
“크어억!?”
“으악!”
-쿵! 쿠궁! 콰쾅!
전방에서 성벽처럼 지지하던 모든 이들.
아나샤와 철갑 기사들, 헌터들이 그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뒤로 튕겨 나가며 날아갔다.
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콰아아!
파멸의 파도는 그 기세가 줄어들기만 했을 뿐,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 힘이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며 덮쳐들 때.
“화산의 격노!!”
-화륵! 화륵! 콰아아!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에 휘감긴 오크.
쿠루타가 파멸의 파도에 정면으로 돌진하며 붉게 달아오른 대검을 후려쳤다.
“부울-! 카아아아르!”
괴성에 가까운 함성을 내지른 쿠루타가 파멸의 파도를 버텨 낸 순간.
“검성류 – 오의.”
“천마신공 – 오의.”
-탓! 샥!
뒤로 물러나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둘.
“단절!”
-차캉! 촤아아!
검성이 쿠루타의 옆에 나타나 검을 발도했고.
-피잉. 촤아아!
파멸의 파도에 얇은 선이 그어지며 크게 베어 냈다.
그 직후.
“오의 - 백귀야행!”
무록이 강기가 응축된 검을 파멸의 파도가 갈라진 부분을 향해 내던졌다.
검과 파멸의 파도가 맞닿으며 응축된 강기가 터지자.
-콰아아. 캬하하!
강기로 이루어진 검은 백귀들이 나타나 파멸의 파도를 향해 몸을 던졌다.
검성이 베어 낸 부분을 향해, 집중적으로 돌진하는 모습.
이윽고.
-파아아……!
몰아치던 파멸의 파도가 완전히 저지되었다.
신들의 전장에 헌터들을 포함한 다른 이들이 합류하자.
[너희들이 맞설 존재가 아니다!]
[목숨을 함부로 던지지 마라!]
성좌들이 헌터들과 제 신관을 향해,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오찬…….]
태무신이 자신의 옆에 나타난 신관, 하오찬을 향해 다소 지친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물러날 수 없습니다. 태무신이시여.”
하오찬은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며 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하오찬의 모습에.
-부디……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태무신의 눈이 가늘어지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젠 너무 지쳤다며, 연옥의 시련을 받지 않고 환생의 문으로 향했던 영혼.
-결코, 동생들을 전장에 내보내기만 하는 겁쟁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태무신, 강완과 의형제를 맺었던 맏형이자, 그들이 모시던 군주.
-그때는…… 너희들과 전장에 나란히 서고 싶다.
그의 목소리와 의지가 다시금 상기되었다.
그리고 환생의 문을 거쳐, 현세에 다시 마주한 그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 군주가 아닌 전사가 되어 옆에 서 있었다.
비단 하오찬뿐만 아니라.
[초하!]
“싫습니다.”
물러나라는 적무신의 말을 단칼에 거절하는 그의 신관 초하와.
[루이스…….]
“함께 전장에 서고 싶습니다. 토르 님.”
토르와 그의 신관인 루이스.
[왜 무모한 짓을!]
“여신님께서도…… 싸우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걱정을 표하는 데메테르와 몸을 일으키며 상처를 수습하는 스티븐의 모습이 보였다.
[…….]
태무신은 그런 전장의 분위기를 빠르게 확인하고는.
[……앞에 서지 말고 내 뒤에 서거라.]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후기지수들은 모두! 무신들의 뒤를 받쳐라!]
태무신이, 전장에 개입한 동방불패 길드의 헌터들을 향해 명령했다.
위험한 전장에서 물러나라는 게 아닌, 최전선의 무신들을 보조하라는 것.
그런 태무신의 명령을 시작으로.
[……루이스. 나를 보조해라.]
토르 역시 제 옆으로 다가와 전장에 가세한 신관, 루이를 향해 명령했고.
[방해하지 말고 뒤를 받쳐라!]
[가장 앞장서야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니.]
다른 성좌들 역시, 헌터들이 보이는 의지를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전장에 난입한 이들 덕분에, 성좌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
-스르륵.
악의 종주가 사방으로 내뻗는 파멸의 힘을 잠시 거두고는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악의 종주와 맞서는 모든 이들이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가 더 크고 강한 공격을 발휘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악의 종주는 공격을 퍼붓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기다렸다는 듯 읊조렸고.
-파창! 차카캉!
그런 그의 위로 허공이 갈라지며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캉! 샥!
깨진 허공 속에서 나타난 이들.
“드디어 나왔-.”
악몽 속에서 빠져나온 처용과 레나, 하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용은 악몽을 빠져나온 것에 미소를 짓다가.
“이런 썅!”
-우웅. 콰아아!
바로 코앞에 보이는 악의 종주를 보며 기겁했다.
처용이 반사적으로 강기와 신력을 끌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할 때.
[이제 도망치는 것도 끝이다. 태초의 그릇.]
악의 종주는 그런 처용을 무시하고 파멸의 힘이 휘감긴 손아귀를 뻗었다.
우악스러운 파멸의 손아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런.”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레나·엘리스였다.
처용과 다른 성좌들이 대처하기도 전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상황.
이윽고.
-탓! 콰아아!
파멸의 손아귀가 엘리스를 잡아채며 그녀를 휘감았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