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화
샥스가 붉은 인간, 아니 괴물에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새하얀 화염에 휩싸여 사그라지자.
[……무슨 일이?]
[대, 대악마께서……?]
그 모습을 본 악마들이 멍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바알의 경우처럼, 샥스가 겉으로만 당해 보이는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파사사……!
새하얀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는 샥스는, 두 번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적에게 당해,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
무엇보다도.
[이건 불가능해!]
엘리고스를 포함한 대악마들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을 내지르고 있었다.
샥스가 아무리 하위권 서열의 대악마였다고 해도, 일개 악마가 아닌 대악마였다.
절대로 일격에 처치당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진 상황.
[죽여라.]
[공격을 퍼부어라.]
경악하던 대악마들이 마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명령했고.
-우웅! 콰아아-!
주변의 악마들이 그 명령에 따라 마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퍼부었다.
검은 마기의 칼날과 폭발이 쇄도하며 붉은 괴물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집중포화를 당하는 붉은 괴물의 몸이 이리저리 비틀리며 당하는 듯 보였지만.
“공격 형태…… 마기, 악마의 기운…… 효율적 방어법 탐색.”
-슈르륵. 스륵.
찢기고 갈라진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한 괴물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처음 샥스에게 당할 때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아무는 상처.
아니, 점점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마기에 의한 공격을 받으며 점점 적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신성 방어 메트릭스, 발동.”
-지잉. 우우웅!
괴물의 안광이 점멸함과 동시에 붉은 피부 위로 새하얀 기류가 짙게 일렁였다.
그러자.
-쾅! 콰쾅! 촤아아! 까강!
악마들의 공격이 괴물의 피부를 찢지 못하고 모두 튕겨 나갔다.
빛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새하얀 방어막을 뚫지 못하는 상황.
심지어,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빛의 힘이 더욱 강해지며 더 밝게 점멸했다.
붉은 괴물이 악마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때.
-우웅.
처용은 석상을 통찰했을 때처럼, 눈에 신력을 집중하며 붉은 괴물을 응시했다.
그 괴물 역시, 회귀 전에는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었지만.
[네오(Neo) 키메라 - S■■ / ?]
[■징 : 멸망한 우주의 결전 병기.]
[■번째 우주■ 계■자가 자기 자신■ 병기로 개조…….]
[악■에 오염■어 본래 정보■ 변이■■…….]
[확인 불가.]
지금은 어느 정도 통찰이 가능했다.
드문드문 정보가 지워져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확인이 가능할 정도.
다만.
‘우주의 계승자가 자기 자신을 병기로 개조했다?’
처용은 일부가 가려져 있는 시스템 창을 보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했다.
무려 전대 우주와 계승자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문구.
통찰의 눈으로 확인한 정보를 토대로 처용이 유추해 본 결과.
‘우주의 멸망을 막지 못한 인간의 말로인가?’
아마도, 처용이 있는 우주 이전의 우주.
아마 무한의 순환으로 인해 멸망한 전대 우주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이미 멸망한 우주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악몽, 쓰레기통에 처박힌 정보는 미처 분해가 되지 않은 잔여 정보가 쌓인 장소였으니까.
극히 일부만 본 정보만으로는 전대 우주를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처용은 전대 우주의 계승자로 추정되는 인간, 아니 인간이었던 존재를 차분하게 바라봤다.
그가 살아가던 시기의 우주에 무슨 일이 발생했었는지,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건.
“대상…… 악마. 토벌 가능.”
-우웅. 촤아아!
새하얀 빛이 일렁이는 손톱으로 악마들을 찢어발기는 괴물, 네오 키메라.
그가 처용과 같은 ‘계승자’였다는 사실뿐이었다.
이 또한, 회귀 전에는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
처용이 네오 키메라를 복잡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지금 악몽 속에서 날뛰는 네오 키메라의 모습이.
미래의 자신이 맞이할 최후일 수도 있었으니까.
우주의 멸망을 막지 못한 계승자의 미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헛소리!’
처용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는.
-쩌적! 쩌저적!
지금, 균열이 일어나며 갈라지는 남은 두 석상을 바라봤다.
부서지는 석상 안에서 나오고 있는 푸른 피부와 노란 피부의 인간.
지금 날뛰고 있는 붉은 피부의 인간처럼, 입과 외눈 외엔 아무것도 없는 얼굴의 괴물.
그들 역시.
[네오(Neo) 키메라 - ■C■ / ?]
[■징 : 멸망한 우주의 결전 병기.]
[■번■ 우주■ 계승■가 ■기 자신■ 병기로 ■조…….]
.
.
모두, 멸망한 우주의 계승자들이었다.
이윽고 세 개의 석상이 모두 깨지며 네오 키메라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번째, 게임이? 시작…… 됩니다.]
변조음이 섞인 시스템의 뒤틀린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 번이라도…… 본 모든 대상이? 죽으면 게임…… 종료]
[게임을…… 시작…… 합니다.]
부끄럼쟁이를 한 번이라도 눈으로 본 이들이 모두 죽으면 게임 종료.
즉, 석상을 한 번이라도 응시한 모든 이들이.
“대상…… 악마.”
“토벌을 시작…… 한다.”
그 안에서 나타난 진짜 ‘부끄럼쟁이’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면 공격이 멈추고 게임이 끝난다.
이것이 두 번째 게임의 규칙이었다.
-우웅. 촤아아!
바알에게 부서진 석상 속에서 나타난 괴물.
붉은 네오 키메라가 주변의 악마들을 찢어발기고는.
-탓! 샤악!
발을 박차 앞으로 거칠게 돌진하며 경로상에 있는 악마들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가까이 있는 악마들을 대상으로 돌진하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 모습.
그러던 중.
-쿵!
돌진해 나가던 네오 키메라가 처용 앞에 도달하며 손톱을 치켜세웠다.
그 모습을 본 악마들은 기회라는 듯, 일제히 물러섰다.
정체불명의 괴물과 처용이 충돌하면, 악마들에게 있어 달가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처용은 붉은 네오 키메라가 눈앞으로 다가와 손톱을 치켜세웠어도.
“…….”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대상…… 열외? 후 순위로 판단.”
손톱을 치켜세우며 처용을 공격할 듯 보였던 붉은 네오 키메라가 멈칫하며 읊조리고는.
-스륵. 탓!
처용을 무시하고 근처에 있는 다른 악마에게 돌진하며 손톱을 휘둘렀다.
바로 옆에 있던 레나 역시.
“후 순위? 로…… 판단한다.”
외눈을 뒤룩거리며 짧게 관찰하고는 이내 무시하며 악마들을 공격했다.
악마들은 네오 키메라에게 공격받지 않는 처용과 레나를 보며 의문을 드러냈지만.
-촤아! 샤가각!
강력한 빛을 내뿜으며 날뛰는 네오 키메라들로 인해, 더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때.
-탓! 까가강!
푸른 네오 키메라의 앞에, 녹슨 비늘이 쇄도하며 누군가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삐쩍 마른 허수아비가 녹슨 청동 비늘이 빼곡하게 박혀 덜렁거리는 로브를 뒤집어쓴 모습.
머리로 보이는 부분에는 길고 두꺼운 한 쌍의 녹색 뿔이 드러난 대악마.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판데모니움 서열 26위, 녹쇠(綠衰)의 대악마 부네였다.
-화륵. 차카캉!
푸른 네오 키메라가 새하얀 빛이 타오르는 손톱을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같은 대악마인 샥스조차도 단 한 번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당한 일격.
-까가강! 파창! 창!
그 일격이 부네의 청동 비늘을 부수긴 했지만, 그를 완전히 갈라 버리진 못했다.
그때.
[녹슬어라. 말라붙어라.]
-우우웅.
부네가 마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권능, ‘녹쇠’를 발현하자.
-차카각! 철컥!
부서져 흩날리는 청동 비늘들이 푸른 네오 키메라의 몸에 달라붙으며 칙칙한 마기를 내뿜었다.
마치, 달라붙은 청동 비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쇳독이 네오 키메라를 감염시키는 듯한 모습.
“께게겍?- 크겍!?”
-치이이……!
푸른 네오 키메라의 피부에 검녹색의 반점이 도드라지며 괴성이 흘러나왔다.
부네의 권능, 녹쇠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피부와 몸이 조금씩 쪼그라들었고.
-파사사……!
감염된 부분이 가루처럼 부수어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부네에 의해, 네오 키메라 중 하나가 저지된 순간.
[같은 ‘참가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조절하지 않아도 되겠군.]
-스르륵.
노란 피부의 네오 키메라 앞에, 검푸른 오라를 내뿜는 또 다른 대악마가 나타났다.
머리 위로, 한 쌍의 큰 뿔이 자라난 인간형의 마른 해골.
마치, 리치가 진화하여 대악마가 된 듯한 형태.
판데모니움 서열 13위, 사음(死音)의 대악마 벨레드였다.
노란 네오 키메라의 앞을 가로막은 그의 왼손에는.
-우우웅.
마른 나무를 잘라 만든 듯한 악기, 작은 바이올린과 비슷한 형태의 신물이 들려 있었다.
-키이잉!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악기의 줄을 튕기자.
-키이잉-!
검은 파동이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크게 퍼져 나갔다.
그 파동이 가장 가까이 있던 노란 네오 키메라에게 닿았고.
-키잉! 콰아아-!
넓게 뻗어 나간 파동이 순식간에 네오 키메라를 향해 모여들며 거칠게 진동했다.
벨레드가 펼친 권능인 사음(死音), 죽음을 부르는 소리가 한 곳에 집중되어 파동을 흩뿌리자.
“크르륵!? 크엑!”
-드드드-! 쿠드득!
그곳에 갇힌 노란 네오 키메라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거칠게 진동하는 소리에 의해, 네오 키메라의 몸이 압착되며 우그러지고 있었다.
가장 처음에 나타났던 붉은 피부의 네오 키메라 역시.
[하찮은 것이 감히…….]
-쿠화아아!
바알의 어둠에 짓눌려 팔다리가 부러지고 점점 파괴되고 있었다.
상위 서열의 대악마들이 나타나 권능을 펼치며 키메라들을 저지하자.
[지금이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우웅. 촤아아-!
다른 악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었다.
키메라들을 보호하던 빛의 아우라가 흩어지며 다시금 그들이 부상을 입기 시작했다.
그때.
“분석…… 완료.”
악마들에게 공격을 받던 네오 키메라들이 일제히 읊조리더니.
-파아아!
강렬한 파동을 내뿜으며 주변의 악마들을 모두 밀쳐 냈다.
그리고 부네의 권능, 녹쇠에 공격을 받던 푸른 네오 키메라.
“세포, 유기체를 감염시켜 부식시키는 마기…… 해독을 시작한다.”
놈이 안광을 빛내며 읊조리고는.
-스르륵.
몸에 퍼지던 부네의 쇳독을 단번에 몰아내며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해독 완료. 토벌을 재개한다.”
부네의 권능이 모조리 사라진 순간.
-차캉. 콰드드득!
키메라의 손아귀에 돋아났던 날카로운 손톱들이 우그러들며 뭉치더니, 망치와 같은 형태로 변했다.
이윽고.
-우우웅! 콰콰쾅!
강렬한 빛이 타오르는 망치의 머리가 부네에게 쇄도하며 그를 후려쳤다.
[크어억!?]
-파사삭! 파창!
망치에 후려 맞은 부네가 부서진 청동 비늘을 사방에 흩뿌리며 멀리 날아갔다.
동시에.
“분석…… 완료.”
벨레드의 사음에 갇혀 고통받던 노란 네오 키메라.
-끼기긱. 파아아! 우득!
놈 역시 벨레드의 권능을 단번에 떨쳐 내며 일그러졌던 몸을 순식간에 회복했다.
[죽어라.]
벨레드가 그런 네오 키메라를 향해 다시 한번 죽음의 소리를 내뿜으며 권능을 발현하자.
“키에에에-엑!”
네오 키메라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귀를 찌는 비명을 내질렀다.
-피이이!
그 소리에서 퍼져 나간 음파가 벨레드의 사음과 뒤섞였고.
-스르륵.
이내, 서로 상쇄되며 사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붉은 피부의 키메라.
“분석 완료…… 강력한 어둠의 마기, 대응을…… 시작한다.”
-우웅! 피이이-!
강렬하게 발광하는 빛과 함께 바알의 어둠을 밀어내며 일어섰다.
부러지며 뜯겨 나간 팔다리가 다시 이어 붙고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는 모습.
다만, 바알의 어둠을 견디고 일어서긴 했어도.
“토벌…… 판단 불가. 최적의 대응을 시작…… 한다.”
상대가 바알이니만큼, 다른 키메라들처럼 곧장 반격하지는 못했다.
바알의 어둠을 버티긴 해도, 그 어둠을 뚫고 바알에게 나아가지는 못했다.
[감히 내게 대응하겠다? 어디 해보거라.]
-콰아! 화아아-!
그런 키메라의 모습이 거슬린다는 듯, 바알이 더 강한 어둠의 파도를 내리치며 소리치자.
“크에에-!”
-으드드!
붉은 네오 키메라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알의 어둠에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피이이!
키메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상대의 공격을 받으며 그 공격에 점점 익숙해지고 또 적응하며 대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쿵! 쿵! 쿠궁!
허공에서 세 개의 석상이 나타나 악마들 사이로 떨어졌다.
다름 아닌, 가장 처음에 모습을 드러냈던 땅콩 모양의 석상들이었다.
[이런!]
간파의 대악마, 엘리고스가 그 석상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너희들을 멀리 떨어져 저 석상만을 바라봐라. 당장!]
즉각 악마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석상은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는 한, 움직이지 않는다.
이 규칙을 이용해 석상의 발을 묶고 키메라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충원이…… 필요하다고 판단.”
부네를 후려쳐 날려 버린 푸른 피부의 네오 키메라가 읊조리더니.
-후욱! 콰콰쾅!
가장 가까이 있던 석상을 향해, 망치로 변형된 오른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 결과.
-쩌저적! 파창-창!
석상이 무참히 갈라지며 깨져 나갔고.
“대상…… 악마?”
-철퍽. 저벅.
주황색 피부를 지닌 네오 키메라가 몸을 일으키며 보랏빛 안광을 내뿜었다.
[석상을 깨지 못하게 저지해라! 당장!]
그 모습을 본 엘리고스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소리쳤다.
네오 키메라들의 등장으로 공동 전체에 혼란이 불어닥쳤을 때.
‘……레나. 준비해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던 처용이, 레나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클로킹 팬텀.”
-스르륵. 샤락.
레나는 클로킹 로브를 뒤집어씀과 동시에 반투명한 악령으로 변했다.
처용 역시 동화경을 발동하며 제 모습을 감추었다.
악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제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리고.
‘조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처용이 조커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자.
-스르륵. 슈륵.
레나와 처용의 발밑에 작은 블랙홀이 나타나더니, 둘을 빨아들이며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