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85화 (685/726)

#685화

블랙홀이 처용과 엘리스, 바알을 포함한 대부분의 악마를 집어삼키며 사라지자.

[뭐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블랙홀과 멀리 떨어져 성좌들을 상대하고 있던 대악마 중 하나가 당황스러운 듯 소리쳤다.

말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지닌 이종족인 켄타우로스와 비슷한 모습.

곳곳에서 삐죽한 가시가 솟아난 철갑과 양손에 장창을 든 대악마.

판데모니움 서열 28위, 철의 대악마 베리스.

[전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성좌들과 싸우던 그가 뒤로 물러서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바알이 거의 모든 악마를 이끌고 예언자를 잡으러 나선 상황.

그들을 제외한 다른 악마들은 성좌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예언자를 잡는 데 성공한다면,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블랙홀이 예언자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바알을 포함한 대부분의 악마가 그 블랙홀에 휘말려 사라졌다.

베리스가 크게 당황스러워할 때.

[보기 좋게 당했구나.]

-스릉. 차카캉!

그를 상대하고 있던 성좌, 적무신이 방천극을 내지르며 조소를 흘렸다.

[이!]

-차카캉! 타닷. 달그락!

베리스가 양손의 장창을 교차하며 방천극을 막아 내고는 침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판데모니움에서 넘어온 거의 모든 악마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상황.

남은 건 베리스를 포함한 소수의 대악마들.

그들을 따르는 권속 악마들이 전부였다.

성좌들과의 전쟁 중, 전세가 갑자기 확 기울어 버린 상황이었다.

심지어, 남은 대악마는 방금 적무신의 공격을 받고 뒤로 물러난 대악마 베리스와.

[이런 제길!]

-화르륵!

검붉은 비늘이 불타오르는 늑대인간 형태의 대악마, 서열 7위인 아몬이 전부였다.

그나마 한 자릿수 서열인 아몬이 있긴 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아몬.]

[알레인……!]

같은 한 자릿수 서열의 대악마였던 니알라가 다가오자 아몬이 침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파차창! 차창!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파멸의 나락.]

차원의 틈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악의 종주가 디아블로를 향해 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콰아! 푸화아아!

검은 파멸의 폭풍이 디아블로와 악의 종주를 중심으로 휘몰아쳤고.

-화륵! 치이이-!

불타오르는 디아블로의 흑염을 모조리 꺼뜨리며 주변 일대를 크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악의 종주를 홀로 상대하며 그를 거칠게 몰아붙였던 디아블로.

디아블로는 파멸의 기운에 오래 노출된 탓에,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피부가 갈라지고 일부분이 부서지며 깨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악의 종주가 차원의 틈에서 완전히 빠져나왔고.

-콰아아아-!

파멸의 힘을 모아 내지른 일격을 피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그 결과.

[크어-!]

-치이……!

단 한 번도 불길이 꺼진 적이 없던 디아블로의 피부가 검은 폭풍을 맞아 차갑게 식어 갔고.

-쿵! 차카캉!

이내, 디아블로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며 쓰러졌다.

그가 쥐고 있던 차륜 도끼 역시, 도끼날이 부러지며 땅에 떨어졌다.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다니…….]

단 한 번의 정확한 반격으로 디아블로를 파멸시킨 악의 종주가 불편한 목소리를 읊조렸다.

비프로스트에 숨겨 둔 태초의 조각.

그 조각을 파멸의 힘으로 폭파해 무림 세계를 완전히 파멸시키는 계획.

악의 종주가 나름 공들여 준비한 계획이었다.

로키의 배신에 이어, 처용과 엘리스가 계획을 망쳐 버린 상황.

하지만.

[허나, 발버둥도 여기까지다.]

-쩌저적! 쿵!

악의 종주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보였다.

그저 손쉬운 수단 중 하나가 막혔을 뿐이었다.

이미, 지상에 온전히 강림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한 상황.

이미.

-쿠구구!

악의 종주가 지상에 완전히 강림한 순간부터, 무림 세계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파멸의 힘에, 무림 세계가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이 세계가 파괴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우웅. 지이잉!

악의 종주가 손아귀에 파멸의 힘을 강하게 응축시켜 땅 아래를 겨누었다.

이 세계에 파멸의 힘을 누적시켜 무림을 완전히 붕괴시킬 생각이었으니까.

손아귀에 뭉쳐진 파멸의 힘이 요동치며 땅을 향해 쏟아지기 직전.

[그렇게 둘 순 없다네.]

-스르륵.

옅은 금빛의 파동이 물결치듯 흐르며 땅 위를 얇게 뒤덮었다.

뒤늦게.

-지잉! 콰아아아-!

악의 종주가 쏘아 낸 파멸의 힘이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강렬한 충격파가 터지며 무림 세계 전체가 뒤흔들렸고.

-뭐, 무슨 일이야!?

-자세 잡아! 넘어지면 죽는다!

마수들, 천림교와 맞서 싸우던 헌터들이 흔들리는 땅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소리쳤다.

피아식별을 가리지 않고 요동치는 대지로 인해, 전투 중이던 모든 이들이 지면 위를 나뒹굴었다.

헌터들을 포함한 최상위 무인들만이 겨우 자세를 잡고 버티는 정도.

나머지는 사람, 마수 할 것 없이 모두 혼란에 빠지며 지면 위를 나뒹굴었다.

이윽고 거세게 흔들리던 지면이 조금 잠잠해지고.

[……쓸데없는 짓을.]

-후우우!

폭발의 여파가 걷히며 나타난 악의 종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아직, 시스템이 공증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네.]

-피이!

그런 악의 종주 앞, 하늘 위로 황금빛이 모여들며 황룡이 나타났다.

동시에.

-탓! 샤샥!

대악마와 맞서 싸우던 성좌들.

아테나와 태무신을 포함한 성좌들이 악의 종주 앞을 가로막듯 나타났다.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악의 종주가 하늘 위를 부유하는 황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발이나 오만이 아니었다.

그저 이미 답이 정해진 공식을 이야기하는 듯한, 확신 어린 목소리였다.

황룡은 그런 악의 종주의 말에.

[알고 있다네.]

그를 막으러 온 행동과는 다르게 그의 말을 긍정하며 답했다.

이곳에 강림한 성운의 성좌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악의 종주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황룡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허나, 운명의 결과를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

그것이 ‘확실한 운명’이라 할 순 없다며 부정했다.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은 없는 법이니까.]

[내가 지상에 강림한 이상, 이미 운명은 도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악의 종주는 그런 황룡의 말에 부정하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쿠구구! 파사사-!

파멸의 힘을 넓게 방출했다.

거대한 어둠의 파도를 끝도 없이 내뿜었던 바알과는 다른 거대함.

아주 불길하고 가까이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파괴될 것만 같은 폭력적인 기운.

악의 종주 앞을 가로막은 성좌들은 그 기운과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우우웅!

전투 태세를 갖추며 신력을 내뿜었다.

성좌들이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자.

[그렇다면, 어디 나를 막아 보아라.]

-콰아아아!

악의 종주가 성좌들을 향해 파멸의 해일을 내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

처용과 엘리스, 바알과 대다수의 악마를 집어삼킨 블랙홀.

그 블랙홀이 사라진 직후.

“망할…… 여기에 내 발로 다시 기어들어 올 줄이야.”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태초의 조각을 파괴한 여파로 인해 나타난 검은 게이트.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이트메어 던전, 악몽과 이어지는 게이트였다.

‘분해된 전대 우주의 잔여 정보가 담긴 쓰레기통이라…….’

처용이 최근 악몽에 대해 새로 알아낸 사실을 속으로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멸망한 차원의 조각이 떠돌다 다른 세계에 이어 붙어 발생하는 현상인 던전 게이트.

던전이 발생하는 원리였다.

하지만, 악몽은 부서진 차원의 일부라기엔 그 형태가 좀 많이 특이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집약되어 뭉쳐진 듯한 형태.

그 이유는 우주가 완전히 분해되고 남은 찌꺼기들이 쌓여 형성된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온갖 잔여 정보가 다 담겨 있는 쓰레기통이었기에, 온갖 것들이 뒤섞인 듯한 형태였던 것.

처용이 악몽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며 주변을 차분히 관찰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작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화아아!

시야가 확 밝아지며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공동이 드러났다.

그리고.

[Wel……come To…… The Night……mare?]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일그러진 메시지가 적힌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

항상 맑았던 시스템의 음성 역시, 변조음이 섞여 느릿느릿하게 끄는 목소리를 흘렸다.

‘……뭐지?’

평소와는 다른 시스템의 음성에 처용이 의문을 표하자.

[악몽이……? 곧…… 시작……됩니다.]

뒤틀린 목소리를 내는 시스템의 음성이 이어졌고.

-화아아! 파앗!

짧게 점멸하는 빛과 함께 다른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

-스르륵.

처용 옆에서 번쩍인 빛이 사라지며 침음을 흘리는 레나가 나타났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여긴?]

-스륵. 스르륵.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던 모든 악마가 공동에 나타나며 순식간에 북적였다.

그때.

[드디어.]

-후우욱!

짙은 어둠을 넘실넘실 내뿜는 대악마.

바알이 레나의 뒤에 나타나며 미소를 흘렸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바알의 모습을 본 레나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경각심을 드러냈지만.

“……소용없는 짓이야. 바알.”

빠르게 심적 동요를 가라앉히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초의 그릇은 이제 나의-!]

바알이 그런 레나의 말을 무시하고 검은 손아귀를 레나에게 뻗었다.

그 순간.

-쿵! 끼기긱-!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레나에게 뻗어 나간 바알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바알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어둠과 함께 손을 더 강하게 내뻗었지만.

-끼긱! 끼기기긱!

어둠을 휘감은 바알의 손은 레나의 눈앞 30cm 앞에 멈춰선 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주변을 거칠게 휘감은 어둠의 파도 역시, 레나에게 더 접근하지 못했다.

레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바알이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

[무슨 간악한 수를-!]

바알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며 불편한 침음을 흘렸다.

그토록 손에 쥐고 싶었던 보석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손에 쥐지 못하는 모습.

레나는 안도감 어린 실소를 흘리며 바알을 향해 비웃음을 흘리고는.

‘……한처용.’

조심스럽게 처용을 눈짓하며 복잡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엘리스가…… 사라졌다.’

이어지는 레나의 목소리에.

‘……뭐라고?’

처용이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동시에, 악몽에 들어오기 전.

-한처용.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엘리스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가짜는…… 이제 사라질 운명이라는 소리지.

가짜는 이제 사라질 시간이라고 말했던 엘리스.

그녀가 말하는 가짜란, 악몽으로 인해 만들어진 가짜 마녀의 인격, 즉 자기 자신이었다.

스스로가 사라질 시간이라 말하고 악몽에 들어와 보니, 그리 말한 당사자가 사라진 상황.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레나에게 묻자.

‘말 그대로 사라졌다고! 내 안에 있어야 할 녀석이 없어졌단 말이야!’

레나 역시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흘리며 처용의 말에 답했다.

그 말에, 처용이 잠시 침묵했고.

‘……태초의 그릇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듯,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엘리스가 사라졌다면, 그녀 안에 있는 태초의 그릇 또한 사라진 것인가?

처용이 우려를 담아 물었지만.

‘그건 그대로 있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엘리스만 쏙 빠져 버린 상태야.’

레나는 태초의 그릇은 무사하다고 답했다.

태초의 그릇 안에 담겨 그릇의 힘을 조율하고 레나를 도와주던 인격인 엘리스만 사라진 상황이었다.

처용이 레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일단, 하워드와 조커를 기다리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계획을 세우듯 레나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레나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볼 때.

“하, 한처용. 한처용.”

무언가를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처용을 불렀다.

전음을 보내는 게 아닌, 두려움을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아무래도…… 시작부터 조진 것 같다.”

경각심이 일렁이는 레나의 읊조림에, 처용 역시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응시했고.

“이런 씨발.”

이내, 표정을 확 일그러트린 처용이 욕설을 내뱉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