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84화 (684/726)

#684화

조크 - 크타니드의 진짜 목적은, 그저 무림 세계에 직접 강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전, 판데모니움의 핵이 폭파되어 세계가 갈라지고 던전이 되었던 것처럼.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파멸시켜, 종말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이 무림의 중심부를 파멸시켜 판데모니움처럼 찢어 낼 생각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파멸하여 폭파된다면?

그 여파는 인접한 세계들에도 영향을 끼치는 법이었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자칫 잘못되면, 지구와 에스라 대륙의 시스템이 동시에 박살 날 거다.’

세계를 보호하는 장막, 시스템의 장벽이었다.

처용이 레나에게 전음을 보내며 말하자.

‘……태초의 그릇을 이용한다면, 놈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다.’

엘리스에게서 전음으로 대답이 들려왔다.

제아무리 악의 종주라 해도, 세계의 중심을 쉬이 파괴할 순 없었다.

시간도 제법 걸리고 기껏 회복한 힘도 많이 소모될 테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다.

-여기서 쓰기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바로 그가 지닌 태초의 조각 중 하나를 파괴하여, 태초의 힘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본래, 악의 종주가 무림 세계에 무사히 강림한 순간, 태초의 조각을 터트릴 계획이었지만.

-으드드. 우득!

그는 아직 차원의 틈새에서 완전히 나오지 못한 상태였고.

-우우우웅!

그의 근처에 박혀 검녹색의 기운을 내뿜는 기둥.

비프로스트가 악의 종주에게 변질된 파멸의 힘을 내뿜으며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 악의 종주에게 맹공격을 퍼붓는 디아블로까지.

여러모로 그가 당장 계획을 실행하기엔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발버둥이다.]

-스릉. 차카캉!

악의 종주가 파멸의 검을 휘둘러 디아블로를 단번에 밀쳐 내고는.

-차카캉!

차원의 틈새에 끼인 몸을 점점 빠르게 빼내고 있었다.

로키의 마지막 훼방이었던 비프로스트 역시.

-스스스!

점점 악의 종주에게 차츰차츰 지배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결코 좋지 못했다.

다만.

“저 에너지를 역이용할 방법이 있다.”

처용에게 정보를 공유받은 엘리스가 해결 방안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확히는.

‘반파된 비프로스트 안에 태초의 조각이 있다.’

악의 종주 뒤에 있는 반파된 기둥, 비프로스트 안에 있는 태초의 조각을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자신의 안에 있는 태초의 힘, 태초의 그릇이, 비프로스트 안에 있는 태초의 조각을 감지한 것.

‘악마 놈들도, 나한테 집착하는 저 빌어먹을 바알도 한번에 보내 버릴 수 있다.’

엘리스가 처용에게 전음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악의 계획을 역이용할 계획.

잘만 성공한다면, 이곳에 강림한 바알과 악마들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그 말에 처용이 흥미로운 미소를 보일 때.

“어쩌면, 이 기회에…….”

엘리스가 찰나의 순간,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며 읊조렸다.

하지만, 처용이 눈치채기도 전에.

‘문제는…… 우리 둘이 위험을 좀 감당해야 해.’

빠르게 표정을 지우며 현재 상황에 집중하듯 처용에게 전음을 이어 보냈다.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처용과 자신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을 잇자.

‘우리가 이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는 소리로군?’

처용이 엘리스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눈치채며 답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전력이 될 수 있는 두 사람.

그런 둘이, 무림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

처용은 엘리스의 말을 듣고 짧게 침묵하고는.

‘……상관없어. 그냥 한다.’

엘리스의 계획에 찬성했다.

‘지금 악의 종주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나만이 놈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우려를 표하는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믿음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불과 방금.

[네 복수를 가로챈 것 같아 미안하구나.]

여래에게서 들려온 대답 때문이었다.

옥황상제를 홀로 상대하러 갔던 여래가 처용에게 작은 미안함을 담아 전한 목소리.

그 목소리 안에는 미안함뿐만이 아닌, 여러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중요한 건.

[천황은…… 끝났다.]

옥황상제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처용이 그토록 증오하던 이를 여래가 처리한 것이었지만.

‘……스승님의 원한이기도 했습니다.’

처용은 옥황상제를 처리한 여래에게 눈곱만큼의 악감정 따윈 없었다.

여래 역시 옥황상제에게 강렬한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었던 이였으니까.

중요한 건, 누가 옥황상제를 처리했느냐가 아니었다.

옥황상제를 확실하게 처리했느냐? 이것이 중요했다.

여래에게서 ‘끝났다’라는 확실한 답변까지 받은 상황.

이제 옥황상제는 더 이상 처용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믿고 해야 할 일을 하거라.]

현재 상황을 전해 들은 여래가 처용을 향해 말을 이었다.

옥황상제를 처리했으니, 이제 무림을 돕기 위해 나서겠다는 것.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계승자.]

이어서 황룡의 목소리 또한 처용에게 전해졌다.

여래가 처용의 상황을 즉각 알아채고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처용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엘리스에게만 공유한 것이 아닌, 황룡을 통해 다른 신들에게도 전했다.

그 결과.

[애초에 세계를 지키는 건, 우리 성좌들의 역할이다.]

[우리를 믿거라.]

바알을 막아서고 있던 아테나를 포함한 몇몇 성좌들이 처용을 눈짓하며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 성좌들의 시선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금.”

-스스스……!

은밀하게 손아귀에 빛을 모으며 엘리스를 향해 읊조렸다.

처용이 신호를 보낸 순간.

-스륵. 탓!

엘리스가 한 줄기의 어두운 바람으로 변하며 쇄도했고.

“미안해서 어째? 조크 – 크타니드.”

-휘리릭!

디아블로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는 악의 종주.

조크 – 크타니드의 뒤에 나타나며 도발 어린 목소리로 조소를 흘렸다.

“네 계획은 끝이야.”

엘리스의 도발이 이어졌고 악의 종주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우우웅! 탓!

땅에 박힌 거대한 기둥, 비프로스트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엘리스의 곁을 맴돌았다.

[쓸데없는 짓을-.]

악의 종주가 엘리스를 향해 왼손을 뻗으며 그녀를 저지하려는 순간.

[하하하!]

-화르륵! 콰쾅!

디아블로가 악의 종주를 향해 흑염이 휘감긴 도끼를 내려찍으며 광소를 내질렀다.

그는 엘리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뭔진 모르겠지만, 그 악독한 미소가 마음에 드는구나!]

악의 종주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만큼은 눈치챈 듯 보였다.

엘리스는 그런 디아블로의 말을 무시하고는.

-우웅! 휘이이-!

탈취한 비프로스트를 들고 다시 검은 바람으로 변하며 전장을 질주해 나갔다.

그녀가 질주해 나가는 방향은 바로 바알을 포함한 악마들과 성좌들이 격돌하는 장소.

엘리스는 전장을 구경하듯, 그곳을 훅 지나가면서.

“넌 여전히 실패만 하는 머저리였어.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바알의 어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한 도발.

바알의 입장에서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라 봐도 무방했다.

당연하게도.

[크아아-!]

엘리스의 도발에 고개를 휙 돌린 바알이 고함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자신을 가로막으며 질척이는 성좌들 때문에 화가 치솟는 상황.

그런 와중에 엘리스가 코앞까지 다가와 ‘무능’을 언급하며 도발해 왔으니.

[당장 저년을 붙잡아라! 전부-!]

바알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좌들을 향해 죽일 듯이 몰아치듯 어둠의 파도가.

-콰아! 쏴아아!

성좌들을 일제히 무시하고 오롯이 엘리스를 향해 쇄도해 나갔다.

바알의 명령 어린 고함을 들은 다른 악마들 역시.

[예언자다!]

[저것부터 잡는다!]

다른 것들은 일제히 무시하고 오롯이 엘리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바알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악마의 어그로를 끈 엘리스는.

“공간 정지.”

-샥!

공간 정지를 적절히 활용하며 대악마들의 추적을 뿌리쳤다.

동시에.

‘서둘러! 1분 뒤에 터진다!’

-우우웅.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비프로스트를 눈짓하며 처용을 향해 다급한 전음을 보냈다.

엘리스가 거의 모든 악마에게 추적당하는 갑작스러운 상황.

악마들과 대치하던 성좌들과 헌터들이 그런 엘리스를 돕기 위해 나서려는 때.

[모두 물러나게나.]

황룡이 그들의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전하며 행동을 저지했다.

동시에.

-푸화아아-!

악마들에게 추적당하는 엘리스를 향해 황금빛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산에서부터 날아오는 황룡의 브레스가 정확히 엘리스에게 날아들었고.

-쏴아아!

브레스가 엘리스를 거칠게 휘감으며 지나갔다.

얼핏 황룡의 브레스에 공격을 받은 듯 보이기도 했지만.

[크으읍!]

[이런!]

엘리스를 추적하려던 대악마들만 다가오지 못하게 저지할 뿐, 그녀에게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리고 엘리스의 바로 근처에서 그녀를 따라 부유하는 반파된 기둥.

-스르륵. 콰쾅!

비프로스트에서 황금빛이 일렁이더니, 부서진 다른 한쪽이 나타나 결합되었다.

이전, 유리아에 의해 갈라졌던 비프로스트의 반쪽.

황룡이 보관하던 그 나머지 한쪽의 기둥이 나타나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

비프로스트가 다시 완전체가 된 순간.

“일치단결!”

-콰르릉! 타앗!

엘리스의 옆으로 새까만 벼락이 쇄도하며 초월자로 변한 처용이 나타났다.

처용과 레나가 서로 시선을 마주했고.

-탁!

둘이 동시에 비프로스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뒤집어라. 역천.”

처용이 비프로스트에 신력을 주입하며 역천을 발현하자.

-쩌저저적!

하나로 합쳐진 비프로스트의 중심이 찢어지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레나가 그 갈라진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장, 이리 나와.”

-우우웅.

레나의 손 위로 반투명한 기운이 일렁였다.

그 기운은 그녀가 지닌 마기나 신력이 아닌.

태초의 힘인 에테르, 태초의 그릇 속에 잠들어 있는 기운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유혹하며 유도하듯, 에테르가 살랑살랑 일렁이며 흔들리자.

-휘릭. 탓!

갈라진 비프로스트의 틈새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튀어나와 엘리스의 손에 잡혔다.

바로 악의 종주가 비프로스트 안에 심어 놓은 태초의 조각이었다.

문제는.

-위이잉! 위잉!

그 태초의 조각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거칠게 흔들리며 진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처용, 지금이다!”

-휙!

엘리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처용을 부르며 태초의 조각을 가볍게 던졌다.

태초의 조각이 정확하게 처용 앞에 도달한 순간.

“태극천체일도 - 파천!”

-스릉. 샥!

태극천체일도를 꺼내 든 처용이 파천의 권능을 발현하며 칼날을 내리쳤다.

태초의 조각에 세로로 얇은 선이 그어졌고.

-키잉! 까가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태초의 조각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이제 도망칠 수 없다!]

-콰화아아아!

황룡이 쏘아 낸 브레스, 금빛의 기운을 모조리 걷어 낸 바알이, 주변 일대를 어둠으로 휘감으며 나타났다.

바알을 따라 엘리스를 추적한 다른 악마들 역시 마찬가지.

처용과 엘리스가 악마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해 고립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함정인 걸 뻔히 알면서도 날 따라올 줄은 몰랐어. 바알.”

엘리스는 그런 바알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미소를 보였다.

대놓고 함정이라 언급하는 엘리스의 말에도.

[잔머리를 굴려도 내게서 벗어날 순 없다!]

-콰아아!

바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둠의 파도를 더 거칠게 쏟아 내며 말했다.

함정이라 말했음에도, 진심으로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

“그렇게 당해 놓고도,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는 건가?”

엘리스는 그런 바알의 태도가 이해된다는 듯, 실소를 흘리며 읊조렸다.

이윽고.

[드디어 잡았도다.]

-쏴아! 콰아아!

주변을 완전히 메꾼 어둠의 파도가 엘리스와 처용을 향해 휘몰아치며 쏟아졌다.

당장 눈앞에서, 바알의 어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처용과 엘리스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바알이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한 그때.

-쿵!

처용과 엘리스에게 쏟아지던 어둠의 파도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

-슈화아아!

돌연, 비프로스트를 향해 모조리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아아!

주변 전체에 강한 인력이 작용하며 블랙홀을 그려 내었다.

비프로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상황.

[뭣-!?]

심상치 않은 불길함을 느낀 바알이 어둠을 내뿜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스으으!

어둠을 내뿜으면 내뿜을수록, 그 어둠을 빨아들인 블랙홀이 더 커지며 인력 또한 강해졌다.

비단 바알만이 아닌.

[빠져나갈 수 없-!]

[크아!]

바알을 따라 엘리스를 추적해 온 악마들 모두가 블랙홀에 말려들었다.

당연히, 비프로스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처용과 엘리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이는 의도된 상황이었다.

-위이잉!

블랙홀 중심부에서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은 게이트.

처용과 엘리스는 그 검은 게이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작전대로 잘 풀린 듯 보였을 때.

“한처용.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엘리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처용이 의문을 표하며 되묻자.

“레나를…… 부탁한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

엘리스가 뜬금없이 또 다른 자기 자신, 레나를 부탁한다고 말했고 처용이 재차 의문을 드러냈다.

그리고…… 처용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며 인상이 일그러질 때.

“가짜는…… 이제 사라질 운명이라는 소리지.”

복잡한 미소를 지은 엘리스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슈화아아아!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며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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