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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81화 (681/726)

#681화

악의 종주가 무림 세계에 강림하기 조금 전.

“……이런!”

레나, 정확히는 엘리스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로키……!”

대악마들과 함께 전투에 나서지 않고 뒤에 가만히 서 있는 대악마.

배반의 대악마, 로키가 서 있었다.

‘천교 놈들이 벌이는 제례의 핵심은 놈들의 실험 시설이 아니라……!?’

엘리스가 먼 곳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로키를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조금 전부터 엘리스의 감각에 경종을 마구 울려오는 느낌의 불길함.

그 불길함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악의 종주가 무림에 직접 강림해 오고 있다는 전조 증상이었다.

어떻게든 저지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

물론,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한 준비도 갖추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루나, 그녀가 천교의 제례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조금 전 루나에게서 비프로스트를 발견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루나는 적들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

곧 천교의 제례를 완전히 망칠 수 있어 보였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옥황상제가 거슬렸지만, 그 또한 문제 될 건 없었다.

옥황상제에게 처용 못지않은 증오를 품고 있는 이.

-내가 책임지고 천황을 처리하겠다.

여래가 직접 나섰으니까.

오직, 옥황상제를 상대하기 위해 완벽한 준비를 갖춘 여래이니만큼, 엘리스는 그를 믿기로 했다.

학살의 마녀인 엘리스의 입장에서, 처용 못지않게 두려웠던 존재가 바로 여래였다.

그런 여래가 직접 옥황상제를 잡기 위해 나선 상황.

엘리스는 옥황상제만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처럼, 악의 종주가 지상에 강림하는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어.”

악의 종주를 지상에 강림시키기 위한 수단은 천교의 제례도, 악의 제전도, 비프로스트도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들은 모두 핵심 수단을 돕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악의 종주를 지상에 강림시키기 위한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비포르스트를 다룰 권한을 지닌 자.

전 아스가르드의 주신인 오딘에게서 주신의 권한을 강탈한 자.

다름 아닌, 로키였다.

‘회귀 전의 정보를 너무 맹신했다.’

엘리스는 어째서 자신이 로키의 수상함을 진작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파악했다.

회귀 전, 로키는 그저 성운을 배신한 많은 이들 중 한 명에 불과했었으니까.

그가 악의 종주를 위해 직접 나서는 일도, 대악마가 되는 일 또한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자인지도 몰랐다.

회귀 전과 다른 변수로 작용한, 적에 대한 정보의 부재.

이것이, 적들의 수단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패인이었다.

“제길.”

엘리스가 멀리 보이는 로키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침음을 흘렸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지만.

-우우웅. 츠츠……!

엘리스의 눈과 감각에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다.

은밀하게 로키의 도움을 받아 차원의 균열을 찢어 넘어오려는 거대한 존재.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악의 종주의 모습이, 엘리스의 눈과 감각에는 희미하게 느껴졌다.

당장 로키를 저지하고 싶었지만, 직접 움직이기엔 상황이 여의찮았다.

그때.

-콰아아!

멀지 않은 곳, 허공에서 검은 화염이 폭발하더니.

-탓! 촤악!

처용이 검은 화염을 뚫고 뛰쳐나와 엘리스 옆에 나타났다.

“네가 나타난 게 이토록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엘리스가 그런 처용을 향해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마침,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처용이 딱 나타나 주었으니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한처용. 지금-.”

“알고 있어.”

다급하게 말을 잇는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알고 있다며 답했다.

처용 역시.

“놈들이 준비하던 건 모두 페이크였고 진짜는 로키였지?”

엘리스가 막 파악한 사실을 알아차린 듯 보였다.

동시에.

-서약자, 비프로스트에 손을 대 봤는데…….

처용과 엘리스에게서, 루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루나는 방해하는 이들을 모두 밀어내고 비프로스트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프로스트를 옮기거나 부수는 것에는 실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지금 비프로스트는.

-쿠구구구!

악의 종주가 담아낸 기운, 파멸의 힘이 넘실거리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반으로 갈라진 비프로스트가 더욱 불안하게 흔들리며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당장 우리가 이걸 어찌할 방법이 없어. 서약자가 직접 오면 모를까.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비프로스트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 힘 빼지 말고 류마와 함께 물러서, 어차피 그건 놈들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처용은 루나에게 더 무리하지 말고 물러서라 말했다.

지금에 와서 처용이 직접 비프로스트에 손을 댄다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처용이 루나의 말에 답할 때.

-쿠구! 쩌저적!

거센 진동이 울림과 동시에,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정확히는 무언가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을 처용과 엘리스만이 감지했다.

다른 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이런-!”

-우우웅.

엘리스가 경각심 어린 표정을 짓고는 어둠을 끌어모으며 로키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로키에게 달려가 그를 저지해야만 했으니까.

“엘리스, 잠깐 멈춰.”

-탁.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엘리스의 어깨를 잡으며 저지했다.

“지금 저걸 보고도-!”

자신을 막는 처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엘리스가 인상을 찌푸리자.

“조금만…… 기다려라.”

처용은 로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답했다.

“……무슨 생각이냐? 한처용.”

엘리스가 처용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물었을 때.

[로오오오-! 키이이이-!]

-파지직! 콰르르릉-!

악마들과 싸우던 토르가 돌연 로키를 향해 분노를 내지르며 돌진했다.

로키가 궁니르를 들어 토르의 묠니르를 막아 내었고 짧게 대치한 순간.

-파창! 창! 콰자작!

악의 종주가 허공을 부수며 나타났다.

그는 균열을 비집고 나오며 토르를 향해 파멸의 파도를 내뿜었고.

[크아-!]

그 힘을 견디지 못한 토르가 단번에 밀려나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뒤로 밀려난 토르에게 다시 파멸의 파도가 쏟아질 때.

“태극천체일도 - 천지단절!”

-우웅! 촤아아!

태극천체일도를 소환한 처용이 토르 앞에 나타나 파멸의 파도를 반으로 갈라 내었다.

[……계승자.]

악의 종주, 조크 – 크타니드가 처용을 응시하며 다시 한번 파멸의 힘을 내뿜으려 할 때.

[시스템의 장벽을 마저 빠져나오십시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탁. 스릉.

로키가 악의 종주 앞에 서며 처용과 눈을 마주했다.

“…….”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로키를 응시하자.

[…….]

로키가 찰나의 순간 입꼬리 끝을 들썩이며 희미한 미소를 선보였다.

처용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모습.

그런 로키의 모습을 본 처용은 겉으로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처용과 로키가 서로를 응시하며 시선을 마주한 순간.

[어림없다!]

-파직! 파직! 콰르릉!

토르가 다급한 표정을 내비치며, 강렬한 벼락을 내뿜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토르 님.’

처용은 당장이라도 돌진할 듯 보이는 토르에게 전음을 보내며 그를 만류했다.

토르가 의문을 드러내며 잠시 멈칫했다.

그때.

[명중하여 멸하라. 궁니르.]

로키가 궁니르의 권능을 발현했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후우욱! 콰자자작!

아직 시스템의 균열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악의 종주의 가슴 정중앙을 꿰뚫었다.

갑작스러운 로키의 배반.

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 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그리고.

“…….”

쭉 로키를 응시하던 처용은, 놀란 기색 없이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로키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

이윽고.

[나 배반의 대악마 로키가! 위대한 존재를 ‘배반’하겠다!]

-우우웅! 콰아아-!

로키가 궁니르에 응축된 신력을 폭발시키며 창대를 비틀었다.

정확히는 궁니르의 창날 중심에 박힌 녹색의 보석.

-콰아! 푸화아아!

배반의 핵에서 검녹색의 파동이 폭발하듯 퍼지고 있었다.

그 파동이 궁니르의 창날을 따라 악의 종주에게 흘러갔고.

-쩌저적! 쩌적!

악의 종주를 감싸는 검붉은 갑주에 녹색의 균열이 일어나며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그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는 듯한 모습.

절대로 다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의 종주가 상처를 입었고 갑주가 점점 갈라지자.

-콰아아!

로키가 배반의 핵에 담아 둔 에너지를 더욱 크게 폭발시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배반의 신명은, 나의 힘으로부터 태어난 신명이다.]

-탁.

악의 종주가 태연한 목소리를 흘리며 궁니르의 창날을 왼손으로 잡았다.

치명상을 입은 듯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

[외갑을 관통한 것만큼은 칭찬해 주마, 허나 그게 고작이구나.]

-우우웅.

말을 이은 악의 종주가 창날을 잡은 손에 파멸의 힘을 끌어 올리자.

-쩌적. 파차창! 차캉!

궁니르의 창날이 순식간에 금이 가,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파멸의 검을 소환해 쥐었고.

-스릉! 촤아-!

로키를 향해 사선으로 내리쳤다.

-까가강!

궁니르의 창대가 반으로 잘려 나감과 동시에.

-촤아아아!

로키의 가슴이 크게 베어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주신의 신물인 궁니르의 창대가 있었기에, 사지가 절딴나지는 않은 모습.

하지만, 즉사하지 않았다 해도.

[커-!]

파멸의 검을 정통으로 맞은 로키가 검은 피를 토해 내며 주저앉았다.

-파사사……!

베인 가슴을 중심으로 점점 새까만 기운이 퍼지며 로키의 육체가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파멸의 권능에 제대로 당한 이상, 이제 끝이라 봐도 무방했다.

[……내 배반이 그게 고작인지는…… 두고 봐야 할 거다.]

그럼에도 로키의 눈빛에는 절망이 아닌, 독기가 일렁였고.

[비프…… 로스트.]

-스륵. 우우웅!

악의 종주에게 오른손을 뻗어, 마지막 남은 수단을 사용했다.

로키의 오른손에 들린, 창대가 잘리고 창날이 부러져 반파된 궁니르.

-우웅.

그 궁니르에 아직 박혀 있는 배반의 핵이 짧게 점멸한 순간.

-콰콰쾅!

악의 종주 뒤로 반파된 비프로스트가 나타나 땅에 틀어박혔다.

동시에.

-우웅! 콰아아아-!

비프로스트에서 녹색의 기류가 뒤석인 검붉은 기운.

저장된 파멸의 힘이 뿜어져 나와 악의 종주를 향해 파도처럼 쏟아졌다.

얼핏 보면, 악의 종주에게 힘을 전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쩌적! 쩌저적!

궁니르의 창날 끄트머리가 박힌 악의 종주의 가슴이 다시 한번 더 갈라졌다.

[스스로의 힘으로…… 파멸해라.]

로키가 비프로스트 안에 담긴 파멸의 힘.

배반의 권능으로 변질시킨 파멸을 악의 종주에게 쏟아 내며 읊조렸다.

본래 주인이 있는 힘이라도, 그 주인마저 배반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로키가 지닌 배반의 권능이었다.

지금껏 악의 종주를 따르며 조금씩, 은밀하게 준비했던 수단이었다.

그러나 로키의 마지막 수단이 성공적으로 발현했음에도.

[이게 고작인가?]

악의 종주의 입에서 태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쿠구구! 스르륵……!

검붉은 파멸의 힘이 검녹색으로 변질된 파멸의 힘을 뒤덮어 버리고 있었다.

배반된 자신의 힘을, 되찾는 듯한 모습.

준비한 모든 수단이 막히자, 로키가 허무한 듯한 한숨을 내뱉고는.

[뒤는…… 맡기……지.]

-후욱. 우우웅!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남은 배반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렸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이윽고.

[……디아블로.]

로키의 입에서 디아블로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오냐, 애송이 녀석!]

-화르륵! 쿠궁!

디아블로가 악의 종주의 오른쪽에서 나타나 차륜 도끼를 치켜들었다.

[차륜격!]

-화륵! 콰아아-!

화염이 휘감긴 도끼날이 악의 종주를 향해 쇄도하며 내리쳤고.

-스릉. 차카카캉!

악의 종주는 파멸의 검을 치켜세우며 디아블로의 도끼질을 막아 내었다.

아무리 디아블로라 해도, 악의 종주를 힘으로 압도한 순 없었다.

그러나.

-차캉! 끼기긱-!

차륜 도끼를 막아낸 파멸의 검이 뒤로 조금 밀려났다.

[하하하!]

-스릉! 콰콰쾅!

그 모습을 본 디아블로가 광소를 내뿜으며, 도끼날을 마구 내리쳤고.

-까강! 까가강! 쾅!

악의 종주는 파멸의 검을 치켜세운 채, 그 공격을 막아 버티기만 하고 있었다.

디아블로의 도끼질을 막을 때마다.

-우웅. 우우웅!

비프로스트에서 흘러나오는 검녹색의 기운, 배반한 파멸의 힘이 짙은 기운을 퍼트리고 있었다.

디아블로가 방해하자 다시 제어를 벗어나며 날뛰는 듯 보였다.

로키가 죽어 가면서도 내지른 마지막 발악이 디아블로를 돕고 있었다.

뒤에서는 악의 종주를 파멸시키려는 배반한 파멸의 힘.

앞에서는 흑염을 휘감은 디아블로의 도끼질.

악의 종주는 앞·뒤로 협공을 받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직, 차원의 균열 속에서 몸을 완전히 빼내지도 못한 상태였기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거슬린다.]

-파창! 창! 콰아아!

악의 종주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몸을 강제로 빼내기 시작하며 파멸의 파동을 내뿜었다.

-콰아! 화륵! 푸화아아!

파멸의 파동과 디아블로의 흑염이 서로 충돌하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고.

[쿨럭!]

-후욱! 파사사……!

그 폭발력에 저항하지 못한 로키가 뒤로 멀리 날아가며 검은 잿가루를 흩뿌렸다.

파멸의 힘에 당해 부서지던 육체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대로 지면에 추락하면, 모래처럼 흩어지며 터질 것만 같아 보였다.

허공 위에서 흩어지던 로키가 지면에 추락하기 직전.

[로키!]

-파지직! 탓! 콰아아!

토르가 벼락처럼 나타나 지면으로 추락하던 로키를 받아 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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