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화
바알과 악마들의 군세가 무림 세계에 강림하고 그에 맞서, 성좌들 또한 강림했다.
신과 악마의 군세가 서로 충돌하고 각기 세력을 따르는 이들 또한 격렬히 맞붙었다.
무림을 지키려는 이들과 무림을 파괴하려는 이들.
두 세력이 서로 충돌하며 격전을 막 시작했을 때.
‘이곳인가?’
-스르륵.
장막에 가려져 있던 무림의 중원.
루나는 그 중심지에 세워져 있던 천림맹의 거점을 향해 은밀히 이동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천림맹의 본거지,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밤의 마신인 루나에게조차도, 아주 오싹하게 느껴지는 불길함.
루나는 자신이 느끼는 그 불길한 기운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처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몇 번.
또 처용이 전해 준 미래의 기억을 통해서도 접했던 기운.
악의 종주, 조크 – 크타니드.
절대로 지상에 넘어와서는 안 될 존재가, 천교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루나가 맡은 일은 바로 그 천교의 제례를 직접적으로 망치는 것이었다.
이윽고 지하를 탐색하던 루나는.
‘……찾았다.’
불길한 기운의 근원이 느껴지는 장소를 찾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지상에서는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지하에 구비된 공동.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나열된 넓은 실험장의 중앙에는.
-쿠궁! 우우웅!
검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반파된 기둥.
둘로 나누어졌던 비프로스트의 다른 한쪽이 진동하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퍼져 나오는 근원이자 천교가 준비하는 제례의 중심축이 바로 비프로스트였다.
반으로 나뉘어 그 신물이 지닌 힘과 격이 하락했다고는 해도.
-쿠궁! 쿠구구!
그 신물에 남은 힘을 활용하여 악의 종주를 지상에 소환하려는 듯 보였다.
비프로스트를 발견한 루나가 혈기를 끌어올리려 하는 순간.
[침입자다.]
[죽여라.]
-샥! 샤샥!
돌연, 루나의 주변으로 검은 별들이 나타나 새까만 칼날을 휘둘렀다.
“혈옥 – 블러드 윙.”
-슈륵! 쏴아아-!
루나가 혈기를 모아 형성한 핏빛의 날개를 크게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핏빛의 날개와 검은 칼날이 서로 충돌하자.
-파악! 촤아아!
날개가 폭발을 일으키며 핏빛의 깃털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 폭발력에 의해 검은 별들 역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건가?”
-쏴아! 콰아아아!
루나가 즉시 밤의 마신으로 변하며 차가운 목소리를 읊조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습해 온 검은 별들.
그 뒤에 후속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다른 검은 별들과 천교의 성좌들.
[하찮은 어둠의 족속 따위가! 감히 신성한 제례의 장에 발을 들이는 것이냐!]
비프로스트의 앞에 나타나 루나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는 태상노군의 모습까지.
마치, 누군가가 이곳을 기습해 오리라 판단하고 미리 대비한 듯한 모습이었다.
빠르게 주변을 살핀 루나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을 때.
[불태워 주마!]
-화르르륵!
전신에 이글거리는 화염을 내뿜는 불도깨비, 천교의 호법신 나타와.
-차캉. 촤라라!
수십 개의 검은 칼날을 허공에 띄워 내지르는 조제군이 루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오르는 화염과 검은 칼날들이 루나를 향해 쇄도했고 루나가 이에 대비하려는 순간.
-쏴아아아!
루나의 등 뒤에서 물줄기가 솟구치더니.
“저 두 놈은 우리가 맡을게.”
물줄기 속에서 연아가 나타나 미소를 지어 보였고 뒤이어 연화 또한 나타났다.
-쏴아아! 치이-!
연아가 솟구치는 물줄기를 휘감으며 나타의 앞을 가로막았고.
“들이치는 밀물.”
-차캉! 쏴아아-!
환도에 파도를 휘감은 연화가 조제군의 검은 칼날을 모조리 쳐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찮은 년이 감이 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화륵! 콰아아!
나타나 연아를 향해 포효하며 이글거리는 화염의 숨결을 내뿜었다.
“꼴에 성좌라고 좀 뜨겁다?”
-쏴아! 촤아아!
연아는 짙은 물줄기를 전방에 내뿜으며 나타의 화염을 막아 내었다.
나름 잘 막아 내는 듯 보였지만.
-치이! 치이이-!
연아를 보호하는 물줄기가 점점 증발하며 나타의 힘에 밀리고 있었다.
나타는 천교의 전투 성좌, 심지어 본신에 가까운 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연아가 힘으로 압도하기엔 벅찬 상대.
[남김없이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화륵! 화륵! 푸화아아!
힘의 우위를 점한 나타가 미소를 지으며 화염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렸다.
이대로 밀어붙여 연아를 완전히 끝장낼 생각이었다.
나타나 화염의 힘을 계속 끌어 올리며 연아를 더욱 몰아붙이려 할 때.
[웃어?]
미소를 짓고 있는 연아를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수세에 몰리고 있음에도, 미소를 흘리는 모습.
이윽고.
“결전기–.”
미소를 짓던 연아의 입이 열리고.
“컨져링(Conjuring) 팬텀.”
새로이 얻은 강력한 힘, 얼마 전에 깨우친 결전기를 발현했다.
아니…… 사실, 연아의 결전기는 이미 발현된 상태였다.
미소를 지은 연아가 결전기를 읊조린 순간.
-스르르륵.
나타의 뒤, 연아의 물줄기가 나타의 화염에 의해 증발하며 발생한 수증기.
그 수증기 속에서.
“이히히히-.”
-후우욱.
반투명한 형상이 일렁이더니, 요사스러운 웃음소리와 동시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짓궂은 귀신처럼 장난스럽고 요사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는 소녀.
연아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한, 푸른 빛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뭣-!?]
나타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언가가 귀신처럼 나타난 상황이었다.
뒤늦게 뒤를 돌며 경계했지만.
-슈르륵. 스릉.
나타의 뒤에 나타난, 연아와 똑같은 얼굴을 한 푸른 빛의 소녀.
컨져링 팬텀이 수증기 속에서 푸른 대낫을 소환하며 나타를 향해 사선으로 내리쳤다.
그 결과.
-촤아-!
한발 늦게 대처한 나타의 오른쪽 어깨와 가슴이 대낫에 베였다.
[이까짓-!]
-화륵! 콰아아-!
나타는 이미 당한 공격을 무시하고 왼손을 우악스럽게 뻗으며 소리쳤다.
그는 천교의 전투 성좌이자 불 도깨비, 어지간한 공격에 상처를 입은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당한 공격쯤은 무시하고 감히 자신의 뒤를 노린 존재를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악스러운 나타의 손아귀가 푸른 소녀의 얼굴을 쥐려는 순간.
-파아! 스르륵…….
푸른 소녀의 형상이 반투명한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그라졌다.
동시에.
-촤아아! 쩌저저적! 쩌적!
대낫에 의해 베인 나타의 오른쪽 어깨와 가슴.
그 부분이 푸르게 갈라지며 주변이 얼어붙었다.
[크!?]
갑작스럽게 벌어지며 얼어붙은 상처에 나타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토했다.
불 도깨비인 그의 육체가 얼어붙었고 심지어 상처 부위에서 ‘차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나타가 인상을 확 찌푸리고는.
[감히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화륵! 콰아아아!
전신에서 강렬한 화염을 퍼트리며 분노를 내질렀다.
-치이! 스르륵.
벌어진 어깨에 달라붙은 얼음이 순식간에 증발함과 동시에 그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그때.
“한 번 맞았다고 그렇게 열 받으면 어째?”
-치이. 슈르륵! 촤아!
얼음이 증발하며 발생한 수증기.
그 수증기 속에서 나타난 연아가 물줄기를 뭉쳐 형성한 칼날을 내질렀다.
[죽어라!]
-화륵! 콰아아!
나타가 화염이 이글거리는 주먹을 내뻗어 연아를 후려쳤고.
-푸화-! 치이이-!
불타는 주먹에 맞은 연아가 물방울처럼 터져 나가며 수증기를 퍼트렸다.
그 순간.
“이히히히!”
또다시 들려오는 요사스러운 웃음소리.
[두 번 당할 것 같으냐!]
-휙! 화르륵!
주변에서 울려오는 웃음소리에 반응한 나타나 뒤를 휙 돌아보며 소리쳤다.
등 뒤를 두 번 기습당하는 상황만큼은 방지하려는 모습.
그러나.
-후욱. 스르륵!
뒤를 돌아본 나타의 등 뒤에 수증기가 뭉치며 푸른 소녀가 다시 나타났고.
“헤헤헷.”
-스릉. 촤아아!
시린 푸른 빛을 빛내는 대낫을 크게 휘둘러 나타의 등을 갈라내었다.
[큭! 크아아아-!]
시리도록 차가운 무언가에 등이 갈라지고 얼어붙는 감각.
그 이질적인 감각을 다시 느낀 나타가 분노를 내지르며 주변에 화염을 내뿜었다.
강렬하게 폭발하듯 터지는 나타의 화염에.
“많이 빡쳤나 보네? 히히.”
잠시 뒤로 물러난 연아가 조소를 흘리며 나타났고.
“이히히히.”
-스르륵.
그런 연아의 뒤로 푸른 소녀의 형상이 일렁이며 요사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연아가 루나에게 달려들던 나타를 성공적으로 떼어 내 전담했을 때.
[이 하등한 년이!]
“상대를 비하하는 말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건가? 검은 별의 수장.”
-차카캉!
연화와 조제군 역시 환도와 검은 칼날을 거칠게 충돌하며 격전을 잇고 있었다.
검은 별의 수장인 조제군도 전투성좌인 나타 못지않은 격의 존재.
연화가 홀로 감당해 내기엔 힘든 상대였다.
하지만.
“결전기 – 해륙풍(海陸風).”
연화가 신력과 강기를 끌어 올리며 결전기를 발현하자.
-후우! 쏴아아!
환도에 휘감긴 파도가 넘실거리며 그녀 주변에 은은한 바람이 몰아쳤다.
[네년을 갈기갈기 찢어 그 변종 앞에 던져 주마!]
-스릉. 촤자자자!
조제군이 검은 칼날 수십 개를 생성해 연화를 향해 쏘아 보냈다.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는 검은 칼날들이 연화의 주변을 포위하며 쇄도해 오자.
“두 번째 장 – 끌어오는 썰물.”
연화가 환도로 크게 원을 그리며 파도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었다.
안쪽으로 강한 인력을 만들어 내는 파도의 소용돌이가 점점 가속하며 주변에 영향을 펼치자.
-쏴아! 쏴아! 촤라랑-!
조제군이 쏘아 보낸 검은 칼날이 모두 파도 소용돌이에 휘말려 빨려갔다.
본래라면, 연화가 다루는 파도만으로는 조제군의 힘을 오롯이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휘이이-!
파도 위에 휘몰아치며 넘실거리는 파도의 위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바람.
그 파도 위에 부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파도의 힘을 더욱 강하고 무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연화의 결전기, 해륙풍(海陸風).
그녀의 결전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파도를 다루는 검술에 해풍(海風)을 휘감아 그 위력을 높이는 것.
잔잔하게 흐르는 파도처럼 유연한 움직임에는 해풍을 휘감아 더욱 유연하게.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처럼 무거운 공격에는 해풍을 휘감아 더욱 무겁고 거칠게 만든다.
파도가 지니는 특징과 장점을 더욱 부각하고 강하게 만들어 주는 해풍.
그 바람의 힘을 파도에 휘감아 더욱 위력을 높이는 것.
그것이 연화가 새로 깨우친 결전기의 능력이었다.
“다섯 번째 장–.”
연화가 와류로 끌어모은 파도와 그 안에 휘말린 조제군의 힘까지, 한 지점에 뭉치고는.
“해룡의 격노!”
-촤아! 콰아아아!
조제군을 향해 환도를 내리쳐 압축된 힘을 쏟아 내었다.
단단히 압축된 파도가 터지며 입을 크게 벌린 용머리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고.
-크롸아아! 콰자작!
조제군을 강하게 물어 재끼며 쇄도했다.
[큭!?]
-차카캉! 치이이!
검은 칼날 수십 개를 주변에 펼친 조제군이 연화의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뒤로 밀려나며 침음을 흘렸다.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천교의 가장 강한 두 성좌가 연화와 연아에게 가로막혔을 때.
“류마, 정면으로 싸우려 들지 말고 이 장소의 파괴를 우선시한다.”
루나가 자신의 그림자를 눈짓하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밤의 마신의 뜻대로!”
-스르륵.
그녀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류마의 목소리가 울렸고.
-샥! 스르륵!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찢어지며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류마를 포함한 소수의 정예 뱀파이어들.
전력으로 따지면 스피릿 팀의 상위 헌터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닌 이들.
그들이 루나의 명령을 받고 은밀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리 류마를 포함한 소수의 정예 뱀파이어들이 강하다 해도, 눈앞의 타락한 성좌들과 맞서기엔 부족한 상황.
그렇기에 정면 승부가 아닌, 이 장소의 파괴를 우선시하라 명한 것이었다.
다만, 연화와 연아가 가장 강한 성좌 둘을 상대하고 있다고 해도.
[이 신성한 장소를 침범한 저것들을 잡아 재물로 바쳐라!]
아직 태상노군을 포함한 천교의 성좌들과 검은 별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루나는 혈옥의 힘을 끌어올리며 그들 모두를 상대할 준비를 함과 동시에.
“……아라한의 인정을 받은 자가, 도움을 요청한다.”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전, 수련탑에서 소룡을 이기고 금강역사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 얻었던 권한.
바로, 수련탑의 금강역사들을 소환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다만, 루나의 말에 누가 응답할지,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루나 역시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이번에 처음 써 보는 권한이었다.
상대가 너무 많았기에, 당장 떠오른 수단을 사용해 본 것이었다.
-샥! 스르릉!
태상노군의 명령을 받은 검은 별들과 천교의 성좌들이 루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우웅! 화아아!
루나의 앞에 황금빛이 모여들며 빛이 번쩍이더니.
“절권-.”
-우드득!
그 빛 속에서 누군가가 정권을 지르며 나타났고
“붕권!”
-쿵! 콰아아아-!
주먹에서 터져 나가는 폭발적인 강기에 의해, 루나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모두 밀쳐냈다.
동시에, 황금빛이 한 번 더 번쩍이며 또 다른 이가 나타나 루나 앞에 섰다.
빛 속에서 나타난 두 명.
정갈한 도복을 입은 무인과 두건(頭巾) 아래로 평온한 눈빛이 돋보이는 무인.
루나의 말에 응답한 금강역사는 다름 아닌.
“도움이 필요한가? 밤의 길을 걷는 자여.”
수련탑의 금강역사 중 최강이라 불리는 이들, 소룡과 반야였다.
밤의 마신으로 변한 루나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소룡이 루나를 향해 작은 반가움을 담은 목소리를 내자.
“네놈들은 이제 다 끝났어.”
루나의 입에서 승리를 확신한 듯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서로 비등하던 양측의 전력이, 단 두 명의 등장으로 확 뒤집힌 순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