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73화 (673/726)

#673화

독 지대 협곡과 이어진 블랙 게이트와 안드로말리우스.

그와 관련된 일을 니알라에게 맡긴 처용은 진호와 티케를 데리고 태룡사로 귀환했다.

그러자.

“너 이 녀석! 무사할 줄 알았다!”

“그래! 너라면 악마들의 세계에서도 살아남아야지!”

스피릿 팀의 헌터들, 특히 커맨더를 포함한 그의 파티원들이 진호의 귀환을 격하게 반겨 주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인 진호가 살아 돌아온 것을 순수히 기뻐해 준 것.

그리고.

“이거 봐라? 아머드 스케일.”

귀환한 진호가 자랑하듯, 새롭게 얻은 힘을 발현하자.

-화아아! 스르륵.

군청색의 긴 비늘 망토가 나타나 펄럭이며 진호를 감쌌다.

“내 결전기는 무려 상시 패시브 스킬이라고. 하하!”

-휘이! 촤라라라-락!

진호가 새로 얻은 힘을 자랑하며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스르륵. 스륵.

휘날리는 비늘 망토가 다양한 형체로 변하며 제 모습을 바꾸었다.

망토의 비늘 일부분이 진호의 손에 휘감겨 작은 단도가 되기도 하고.

-촤라락. 촤락.

비늘 몇 개가 서로 떨어져 나와 진호 주변을 떠돌며 표창처럼 회전했다.

결전기 – 아머드 스케일(Armored Scale).

간단하게 말하자면, 진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생형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었다.

몸을 지키는 갑옷이 될 수도 있고 무기에 감싸 공격의 위력을 높일 수도 있었다.

또는 자유자재로 그 형태를 변형하여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진호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의 결전기인 비늘 망토 또한 강해진다.

망토의 겉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보랏빛 기운, 맹독의 기운이 서린 이유.

최근 두 달 동안, 독 지대 협곡에서 지내며 맹독에 대한 내성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진호의 힘이 완전히 바닥나지 않는 한, 그를 지키는 군청색의 비늘 망토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진호가 자신의 결전기를 자랑하며 판데모니움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아테나! 으허엉……!]

그와 마찬가지로 판데모니움에서 귀환한 다른 한 사람, 아니 여신.

티케가 아테나에게 안기며 세상 서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고생 많았어요. 티케.]

울먹이며 안겨드는 티케를 아테나가 따듯하게 안아 주었다.

아테나는 티케를 찾았고 그녀를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곧장 그녀를 마중 나왔다.

마침, 태룡사에 있던 헤르메스 역시 잠시 티케를 마중 나온 상황.

[……몰골이 말이 아니네.]

헤르메스가 티케의 모습을 보며 측은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티케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녀가 상당히 고생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런 서럽고 처량한 티가 팍팍 나는 티케를 아테나가 안아 주며 위로하고는.

[티케와 함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티케와 함께 돌아온 진호를 보며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예, 저 여신님 수발드느라 조금 힘들었습니다.”

진호가 아테나의 말에 옅은 한숨을 흘리며 답했다.

기절했던 티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당황스러움과 솟구치는 짜증을 마구 내뿜으며 히스테리를 부렸었으니까.

결국, 하루 이틀 이어진 현실 부정 끝에, 상황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어휴.”

그 과정에는 나름 진호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진호가 두 달 간의 고생을 떠올리며 많은 의미가 함축된 한숨을 내쉬자.

[너 때문에, 내가 무슨 고생을 한 건지……!]

티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치켜뜨며 읊조리자.

“고생은 내가 더 했거든요?”

진호가 기가 막힌다는 듯, 반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구한 날 쳐들어온 악마들 상대한 게 누군데-.”

[다쳐서 온 네 녀석을 항상 돌봐준 게 누구더라?]

판데모니움에 표류되었던 인간과 여신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말싸움을 이을 때.

“상황은 어떤가요? 헤르메스 님.”

처용은 마침 태룡사에 있던 헤르메스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자신이 무림 대륙에 있는 동안, 지구와 에스라 대륙의 상황을 물어본 것이었다.

[두 세계 모두 안정적이야. 악마 놈들을 상대로 큰 피해도 없었고.]

헤르메스는 그런 처용의 질문을 곧장 이해하며 명쾌하게 답했다.

그간 특별한 일은 딱히 없었다는 헤르메스의 대답.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 대답에 처용이 안도했다.

지구와 에스라 대륙에 큰 문제가 없다면, 차후 생각하던 계획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들은 처용은.

“무림 대륙에…….”

무림 대륙의 상황이 어떤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천교가…… 그 세계에 세력을 형성했단 말이지?]

처용의 이야기에 헤르메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고 아테나 또한 진지한 눈빛을 보였다.

[다른 성운의 주신들에게도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말하고는 올림포스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샘이니, 이제 서로에게 짜증은 내지 맙시다.”

그런 아테나를 따라 올림포스로 돌아가려는 티케를 향해 진호가 말하자.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야.]

티케가 짜증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진호를 돌아보며 답했다.

“네네, 다시는 인간 하나 구하려고 무모한 짓 하지 마십시오.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흥.]

이어지는 진호의 말에 티케가 고개를 휙 돌리고는.

-우웅. 파아아!

아테나와 함께 빛무리로 변하며 사라졌다.

“어휴.”

티케가 사라지자, 진호가 한숨을 내쉰 후.

“이제 어떻게 하게? 그 무림인가 뭔가 하는 세계로 돌아갈 거야?”

처용을 바라보며 차후 계획을 물었다.

커맨더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궁금한 듯 처용을 바라보았다.

“일단, 동방불패 길드장부터 만나야겠습니다.”

처용은 그런 진호의 질문에 답해주며, 차후 진행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무림 세계, 천마신교 쪽에 열린 블랙 게이트에 처용이 들어서고 하루가 지나자.

-스르륵.

그곳에서 열렸던 블랙 게이트가 사라졌고 주변에 일렁이던 독기 또한 말끔하게 없어졌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우우웅.

천마신교의 본당에 황금빛 게이트가 나타났다.

-저벅.

그곳에서 가장 먼저 처용이 걸어 나왔고.

-우웅, 저벅, 철컥.

다수의 사람이 처용의 뒤를 따라 나오며 게이트 속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태무신님을 모시는 신관이자, 동방불패 길드장인 하오찬이라 합니다.”

처용의 뒤를 따라 나온 헌터 중 한 명.

하오찬이 천마전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자.

“이야기는 들었소. 본 교주가 그대들을 환영하오.”

미리 천마전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천마신교의 교주.

중검천마가 하오찬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환영 인사를 전했다.

이미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

처용이 엘리스를 통해 지구와 에스라 대륙,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천마신교에 전했기 때문이었다.

지구와 에스라 대륙 역시 처용을 통해 무림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상황.

오늘은 서로의 세계를 연결하고 첫 교류를 맺는 날이었다.

지구를 대표해 온 헌터들이 중검천마를 따라 천마전 안으로 들어설 때.

-샥.

처용은 천마전의 위, 지붕 기와를 바라보며 발을 박차 그곳으로 뛰어올랐다.

천마전의 높은 지붕 기와에 처용이 나타나자.

“흐음? 하오찬이라,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이 조금 신기하구나.”

기와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어린 소녀.

무록이 뒤로 다가온 처용을 향해 작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처용이 전해 준 기억 덕분에, 하오찬을 처음 봤음에도 그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한 듯 보였다.

“이 척박한 천산을 성지로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고도 말해야겠구나.”

-스륵.

무록이 오른손을 들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쥐듯 허공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우우웅. 탓.

아무것도 없던 무록의 손아귀에 은은한 금빛의 기류가 생겨나더니,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신성한 기운이 일렁이는 금빛의 기류를 잡은 무록의 눈에는 지금.

-우웅. 스르륵. 스륵.

천마전 곳곳에 일렁이는 황금빛 기운.

아니, 천마전이 세워진 천산 전체에 넓게 퍼져 흐르는 신력이 눈에 보였다.

처용이 천마전을 성지로 선포한 순간에 생겨난 기운이었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만 해도, 기분과 정신이 맑아지는 신성한 기운.

무록이 그 기운을 느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일 때.

“검성은 아직입니까?”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검성의 행방을 물었다.

진실을 전달받은 검성은 천림맹으로 돌아간 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나도 모르겠구나. 그 미련한 도사 녀석……!”

그런 처용의 물음에, 무록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건,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

혹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가능성도 있었다.

“하아.”

처용은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스르륵.

처용의 옆에 어둠이 뭉치며 일렁이더니, 레나가 나타났다.

“많은 것을 얻었겠어.”

레나가 나타난 것을 느낀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용이 블랙 게이트를 처리하고 지구와 에스라 대륙을 오가는 동안, 그녀는 독마의 무덤에 갔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나 봐?”

이내, 레나의 표정을 본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독마의 무덤에서 많은 것을 얻었을 레나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아…… 곧 문제가 터질 것 같아.”

그런 처용의 짐작이 맞았는지, 레나의 입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림맹에서…… 바알의 흔적을 찾았어.”

레나의 입에서 바알의 이름이 언급되자, 처용과 무록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흔적은 찾았지만, 천교 놈들과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한번 알아봐야겠네.”

이어지는 레나의 말에, 처용이 직접 나서겠다는 듯 말했다.

천교가 바알과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

그 방법이 처용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

중원에 자리한 가장 거대한 전각.

천림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그곳은 천림맹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

그 전각의 가장 꼭대기 층 창문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노인.

천림맹주가 오만함과 지배욕을 숨긴 눈빛으로 무림을 내려다볼 때.

-휘이이. 샥.

그런 천림맹주의 뒤로 은은한 바람이 불더니, 검성이 나타났다.

“어인 일입니까? 검성.”

검성이 나타난 것을 느낀 천림맹주가 반가움을 드러낸 목소리로 말하자.

“천림맹주.”

검성의 입에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일렁이는 검성의 말에, 천림맹주가 고개를 돌려 검성을 바라봤다.

낮게 가라앉은 검성의 눈빛과 차분한 천림맹주의 시선이 서로 마주했고.

“내가 묻는 말에, 진지하게 답해 주시오.”

-탁.

검성이 단상 위로, 한 손에 딱 잡히는 크기의 구슬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러 색과 어둠이 뒤섞여 칙칙한 빛을 내는 구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꺼낸 구체가 무엇이냐는 검성의 질문이 울리자.

“재앙신이 빼앗아 간 것이로군요. 그걸 어떻게?”

천림맹주의 눈이 조금 커지며, 놀라움과 의문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이 날 도발하며 하나를 던져 주더이다.”

잠시 침묵한 검성이 그런 천림맹주의 의문에 답해 주고는.

“다시 묻겠습니다. 이 안에 든 것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복잡한 심경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조금 전 질문을 다시 이었다.

천림맹주는 그런 검성의 눈빛을 마주하며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검성께서 알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며 검성의 질문에 답했다.

“천벌을 받고 사그라진 이들의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천림맹주가 단상 위에 놓인 구체가 무엇인지, 사실대로 말하자.

“정녕, 천교의 신들이 내게 거짓을 전했구나.”

-우드드!

검성이 주먹을 강하게 쥐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짙은 배신감이 일렁이는 검성의 목소리에, 천림맹주가 속으로 침음을 삼키고는.

“아무리 역도들이라 해도, 어린아이들이 신의 제물로 희생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검성의 심정에 동감한다는 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교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었고 그 행위가 옳지 못함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

“허나, 그것이 정녕 비난받을 일입니까?”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다.”

이어지는 천림맹주의 물음에 검성이 당연하다는 듯, 즉답했다.

“맞습니다. 그러한 선택을 한 저 역시, 죽어서도 지옥문을 밟을 것입니다.”

천림맹주는 자신 역시 천교의 신들이 벌인 짓에 동조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한번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형님.”

진지한 목소리로 검성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역도들을 살리면, 무림이 죽습니다. 반면에 역도들을 처단하면 무림이 삽니다.”

무림의 미래를 언급하는 천림맹주의 말.

검성이 그 말에 반응하듯, 눈썹을 한번 꿈틀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갈 아이들도 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항상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무고한 이들이 희생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천림맹주의 말.

“무림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맹세했으니까요.”

천림맹주가 모든 것은 무림을 위한 일이라 말하자.

“……상제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습니다.”

검성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옥황상제와 직접 만나보겠다는 검성의 말에, 천림맹주가 불편한 심경을 숨기듯,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빠르게 제 심정을 숨기고 침착한 모습을 내보이고는.

“상제께서는 지금 다른 신들과 회담 중이십니다. 저조차도 뵙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옥황상제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회담이 끝나는 대로, 형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천림맹주.”

검성이 경고 어린 목소리로 천림맹주를 향해 말한 후.

-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천림맹주는 검성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으며 침묵하고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이내,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치켜뜨며 속으로 강하게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