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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70화 (670/726)

#670화

처용이 모든 진실을 전하고 난 후, 무록과 검성은 각각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천마신교도 이제 암영단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줄 거다.”

진실을 전한 처용이 조금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검성도 결국은 우리와 함께하겠지?”

레나가 반쯤 확신 어린 목소리로 처용에게 물었다.

모든 진실을 전해 듣고 돌아간 무록과 검성.

무록은 당연히 처용과 레나에게 협력을 약속했고.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검성은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레나는 검성이 아무리 고집스럽다고 해도, 머지않아 처용을 도우리라 생각했다.

회귀 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

처용에게 진실까지 전해 들은 이상, 방황하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검성이 바보는 아닐 테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변하는 건 없어.”

레나의 말에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검성이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

혹시라도, 검성이 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바보 같은 선택을 해도 문제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레나가 의외라는 듯 말없이 처용을 응시하자.

“진실을 전했음에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녕 검성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망설임 없이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였다.

“같은 비극을 반복할 순 없다. 절대로.”

“……그런가?”

과거의 인연에 미련을 두지 않는 처용의 단호한 모습에, 레나가 납득한 듯 답했다.

그리고.

“보아하니, 성지로 선포할 곳은 천마전인가?”

처용을 바라보며 확신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처용이 성지로 선포할 장소로 예상되는 곳은 다름 아닌 천마전.

천림맹과 격렬하게 맞붙는 세력, 천마신교의 본진이었다.

천마신교에 힘을 실어 주며 그들이 밀리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곧 활동을 시작할 전 무림맹의 세력과 암영단의 합류까지.

여러 경우를 따지고 봤을 때, 가장 최선이라 판단되는 장소였다.

“천마신교는 이종족이나 신수들에 대한 반감도 적으니까.”

처용은 그런 레나의 말에 긍정하며 답했다.

천마신교는 최초의 무림인 중 한 명이기도 한 초대 천마를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었다.

비교하자면, 가장 위대한 조상인 불카를 숭배하는 오크들과 비슷했다.

그런 천마신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신수들에게 호의적이라는 점이었다.

초대 천마의 연인이 바로 신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천마신교는 절대로 먼저 신수를 적대하는 일이 없었고 그들을 존중했다.

반면에, 무림맹에 속한 문파와 세가의 대부분은 천마신교가 추구하는 이념과 달랐다.

무공의 성취를 높이기 위해, 신수와 영물을 수색하고 그들을 사냥했으니까.

무림맹이 천림맹이 된 이후로는 그 경향이 더 심해져 있었다.

신수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십 배의 생명력을 지닌 존재였기에, 신수를 더 적극적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암영단에 속한 신수 일족 중 하나인 구미호, 소백과 소월향이 천림맹에 노려진 이유이기도 했다.

“에스라 대륙처럼 이제 길드들을 끌어올 건가?”

레나가 처용에게 질문을 이었다.

천마신교, 무록에게는 협력을 약속받았고 곧 천마전이 세 번째 성지로 지정된다.

그러면, 에스라 대륙에서처럼 지구의 세력, 길드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현재 지구와 에스라 대륙에 발생한 블랙 게이트들은 모두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상황.

무림 세계에도 충분히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동방불패 길드를 먼저 불러올 생각이다.”

처용이 레나의 질문에 답하자.

“그들이 가장 제격이겠네, 이전 시간대에서도 서로 잘 지냈으니까.”

레나가 곧장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불패 길드는 무신전의 무신들을 모시는 길드.

무림 세계의 무인들과 나름 비슷한 성향과 특징을 지닌 이들이었다.

회귀 전에도, 저항군 내에서 서로 잘 어울렸던 이들.

이 때문에 처용은 가장 먼저 동방불패 길드를 불러와 자리를 잡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세계의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하다 보면, 다른 길드와도 잘 섞이리라 판단했다.

처용은 레나의 질문에 답한 후.

“루비아.”

아직 살짝 멍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이는 루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루비아가 깊게 잠겨 있던 상념에서 깨어난 듯, 작게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묻자.

“이전 시간대에서 네가 9써클에 도달할 때, 이렇게 말했었지.”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절대적인 존재도 소멸시킬 수 있는 궁극의 마법을 발현할 단서를 잡았다고.”

회귀 전, 루비아가 9써클에 도달했을 때.

-이거라면, 그 강력한 존재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야!

악의 종주를 상대할 방법을 찾던 도중 한 말이었다.

“……맞아. 그렇게 말했었지.”

루비아가 곰곰이 생각하며 읊조리듯 긍정했다.

처용이 전해 준 기억에서.

“초월(超越) 마법, 그 단서를 잡았었어.”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을 떠올렸으니까.

기억이 났다는 루비아의 말에 처용의 눈빛이 진지해졌고.

“그걸로…… 절대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도 소멸시키는 게 가능할까?”

루비아를 향해 중요한 질문을 이었다.

“절대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

그 질문에 루비아가 의문을 표하며 되물었다.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

“소멸이나 죽음, 파멸이라는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는 존재. 그런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 봐라.”

처용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자.

“한처용…… 놈들을 봤구나.”

레나가 굳은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처용이 언급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절대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가 어떤 이들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챈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처용이 그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환의 포식자.

판데모니움 중심부에서 보살을 잡아가려 했던 존재.

우주를 유랑하는 듯한 모습의 거대한 거인.

녀석은 악의 종주가 터트린 파멸의 힘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처용은, 순환의 포식자를 직접 마주한 이후부터 계속,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을 없애 버릴 방법이 무엇인지를…….

작은 단서 하나라도 상관없었다.

그 단서를 통해 새로운 단서를 얻고 연구하다 보면 방법을 찾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루비아에게 질문한 것이었다.

그녀를 통해서 확실한 단서나 방법을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악의 종주조차도 파멸시키지 못한 존재를 없애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테니까.

“으음…… 절대로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를 소멸시킨다라…….”

루비아가 처용의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며 침음을 흘렸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주제였기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서약자, 이건 문뜩 든 생각인데.”

이야기를 듣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는 존재라면, 개념을 통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언급한 루나의 말.

“…….”

그 말에, 처용이 고개를 기울이며 잠시 생각하고는.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죽일 수 있도록 만든다? 그것도 나름 방법이야.”

이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상대가 절대로 소멸할 수 없는 존재라면?

그 존재를 소멸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방법이었다.

너무나도 강하여 죽일 수 없는 상대를 약하게 만들어 손쉽게 처치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그 방법을 어떻게 강구하느냐가 문제였지만.

“그래, 그런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어.”

처용은 가능성이나 작은 단서를 찾은 것만으로도 수확이라 생각했다.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막막한 문제였으니까.

“놈들을 상대하는 거라면, 나 역시 단서를 찾아보겠다.”

레나의 입에서 엘리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처용이 말한 이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잘 알고 있기에, 협력하기로 한 것이었다.

“난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나도.”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루비아와 루나는 의문을 드러냈다.

처용은 잠시 고민하고는.

“……징벌의 선고.”

-콰아아아!

징벌의 선고를 펼치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순환의 포식자와 프로토는-.”

순환의 포식자와 프로토라는 존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순환의 포식자는…….

판데모니움 중심부에서 마주쳤던 악의 종주.

그가 처용에게 말해 주었던 모든 정보.

무한의 순환을 관장하는 존재들과 그들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

무록과 검성에게 진실을 전하고 하루가 지났을 시점.

“나는 독마의 무덤으로 가 보지. 이거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겠어.”

중원의 서쪽, 천마신교의 본진.

천마전 앞에 도달한 레나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최악의 무림인이자 무림공적으로 공표된 악인.

독마의 무덤이자 비고에 들어설 수 있도록 무록에게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얻을 것들이 상당했기에, 나름 기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네가 준 그 녀석도 아주 알뜰하게 활용해 주지.”

레나는 처용에게 독마와 관련된 한 가지 ‘선물’을 추가로 받기까지 했다.

바로, 처용이 독마의 금술을 이용해 만든 강시(僵尸).

제 손으로 제 일족을 모두 학살한, 마지막 남은 드래곤 슬레이어, 지젤이었다.

“무슨 짓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

처용은 기대감을 드러내는 레나의 말에 답하고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이미 지구 측에는 무림 세계의 상황이 어떤지 미리 전달한 상태였다.

곧, 동방불패 길드부터 시작해, 지구와 에스라 대륙에서 구축한 세력들이 무림으로 넘어올 것이다.

지구, 에스라, 무림. 세 세력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때부터 진짜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 전에 무림에 자리 잡은 악신들의 세력, 천교의 뿌리를 뽑아야 했다.

그 일 역시 이제부터가 본적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좀 여유가 생기니까 무록을 도와주는 거 아닌가?”

레나가 그런 처용을 바라보며 묻자.

“마침, 할 일을 다 끝냈으니까.”

처용이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당장 처용이 직접 움직여서 처리해야 할 일들은 끝낸 상황.

그런 처용이 레나와 함께 천마신교에 다시 온 이유가 있었다.

-그 블랙 게이트인가 뭔가가 나타나서 곤란한가 봐.

바로 천마신교가 있는 장소 근처에 생성된 블랙 게이트 때문이었다.

심지어, 기존에 생성되어 있던 게 아닌, 불과 어제 막 발생한 게이트였다.

물론, 천마신교가 약한 세력은 아니니만큼, 그들이 자력으로 해결하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이라…….”

블랙 게이트가 생성됨과 동시에, 주변 인근이 독 늪지대로 변해 버렸다는 것.

그 독이 화경의 무인조차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 맹독의 늪지대를 뚫고 블랙 게이트를 처리할 고수들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금 천마신교는 천림맹과 각 지역에서 전쟁 중이었으니까.

블랙 게이트의 발생으로 인해, 중검천마가 곤란해하던 와중 처용을 만나러 갔던 무록이 돌아왔다.

무록은 중검천마에게서 이러한 사정을 들었고.

-성지 선포든, 독마의 무덤이든, 뭘 해도 좋으니, 저 시커먼 것 좀 처리해다오.

처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연히 처용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무엇보다도 처용은.

“안드로말리우스 정도야. 금방 처리할 수 있지.”

천마신교의 영역에 나타난 블랙 게이트가 어느 대악마의 성역과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했다.

바로, 서열 말석의 대악마, 맹독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

지금의 처용에게는 가장 손쉬운 상대라고 해도 무방한 적이었다.

“각자 재미있게 놀다 오자고.”

미소를 지은 처용의 말을 마지막으로.

-샥! 탓!

레나와 처용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처용의 발걸음은 천마전의 서남쪽, 넓은 황야가 펼쳐진 지역에 도달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치이이……!

보랏빛 기포가 부글거리며 안개를 내뿜는 늪지대가 드러났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코를 확 찌르는 맹독이 느껴졌지만.

-철퍽. 철퍽.

처용은 늪지대 위를 거침없이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의 처용에겐, 판데모니움의 열악한 환경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우우웅.

불길한 빛을 흩뿌리는 타원형의 게이트, 늪지대 중앙에 나타난 블랙 게이트 앞에 도달했다.

-우웅! 스르륵.

처용은 망설임 없이 블랙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신속하게, 이 블랙 게이트의 던전 보스인 안드로말리우스를 처리하고 나가면 끝이었다.

-우우웅. 탓.

처용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고 보랏빛이 일렁이는 흙을 발로 밟은 순간.

-스릉. 사가각!

돌연, 처용을 향해 날카로운 날붙이가 번쩍이며 쇄도했다.

“흠?”

-스르릉! 철컥!

생각보다 신속하고 예리한 기습 공격에 처용이 작은 놀라움을 드러내며 멸절을 꺼내 쥐었고.

-스릉! 차캉! 까가강!

멸절을 사선으로 두 번 휘두르며 기습 공격을 튕겨 냈다.

그러자.

-탓! 탓! 촤아아!

처용을 기습한 상대가 더 공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며 제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스륵.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발광하는 군청색의 긴 비늘 망토가 펄럭이는 모습.

예리한 빛을 빛내는 쌍검과 망토의 긴 후드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쌍검을 쥔 이가 길게 펄럭이는 비늘 로브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쿠구구!

그 정체불명의 존재에게서 강렬하고 묵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오?”

-철컥. 우우웅!

처용이 자신을 기습한 상대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 읊조리고는 멸절을 쥐며 강기를 끌어 올렸다.

그때.

“……한처용 헌터?”

쌍검을 쥔 습격자의 후드 아래에서, 처용을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이 울린 순간.

“……설마?”

처용이 그 목소리를 알아본 듯,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런 처용의 반응에.

“얌전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네.”

-후욱! 파아아-!

습격자가 자신을 휘감은 강렬한 기운을 퍼트리듯, 흩어 버리며 반가워했다.

동시에, 그의 얼굴과 몸을 가려 주던 비늘 망토가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정말 눈물 나게 반갑다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치는 이진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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