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66화 (666/726)

#666화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복잡한 감정을 보이며 대치하는 엘리스와 메피스토.

그런 둘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메르핀과 아직 멍한 표정으로 피로를 드러내는 클레핀.

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처용의 모습이 이어졌다.

메피스토와 엘리스 사이에 몇 번의 질문과 문답이 더 오갔고.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하고 판단해 봐라.”

-우웅. 후우욱.

엘리스가 어둠 속에서 사슬에 묶인 무언가를 꺼내 게이트로 집어 던졌다.

그녀가 던진 것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며 메피스토의 앞에 떨어지자.

[크아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 전부!]

검은 사슬에 꽁꽁 묶인 반투명한 형체.

아가레스가 몸부림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아가레스?]

그런, 발밑에 놓인 아가레스를 향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는 메피스토.

[메, 메피스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메피스토의 시선에, 아가레스가 목소리를 떨었다.

메피스토는 아가레스를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듯, 강렬한 증오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정녕, 사실이었군.]

조금 전, 예언자가 한 말 중 하나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아가레스가 건 저주는 풀렸다. 그래서 클레핀이 깨어났지.

직접 머리를 베어 죽였던 아가레스는 사실 살아 있었다.

심지어 클레핀의 의지와 혼을 짓누르고 그녀의 몸속에 저주의 형태로 잠입해 있었다.

부활할 때를 꿈꾸면서…….

메피스토는 그 말을 처음에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건 틀림없는 아가레스였다.

예언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 마음대로 해라. 나와 협상을 해 준 선물이라고 치지.”

[…….]

메피스토는 엘리스의 말을 들으며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아가레스를 쏘아보고는.

-스릉. 콰직!

샤네를 내질러 아가레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아아-!]

아가레스가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격렬한 고통을 내뱉고 있었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듯한 모습.

[네놈을 편히 죽일 정도로…… 내게 쌓여 있는 증오가 그리 가볍지 않구나…….]

메피스토가 당장 아가레스를 죽일 생각으로 샤네를 내지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클레핀의 안전은 확실한 것이겠지?]

아가레스를 노려보던 메피스토가 엘리스를 바라보며 묻자.

“잘 생각해 봐라, 조크 – 크타니드조차 침범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여기다.”

엘리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마주하며 답했다.

태룡전은 악의 종주조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태초신의 성역.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 말에, 메피스토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생각을 잇듯 잠시 침묵하고는.

[……나, 증오의 대악마는 너희를 향한 증오를 잠재울 것이다.]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며 약조하듯 말했다.

[너희 또한, 반드시 약조를 지켜야 할 것이다.]

“맺어진 계약과 약조만큼은 반드시 지킨다. 이는 분명하게 말해 두지. 메피스토.”

약조를 지키라는 메피스토의 말에, 처용이 엘리스 옆으로 다가오며 확신을 담아 말했다.

메피스토는 그런 처용을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크아아!]

-질질……!

아가레스에게 샤네를 박은 채, 그를 질질 끌고 가며 뒤돌아 나아갔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우웅.

게이트가 닫히며 메피스토의 모습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끝난 것 같은데?”

처용이 게이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러게. 온갖 준비를 다 했는데 말이야…….”

엘리스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돌아오기 전…….’

잠시 생각을 잇던 처용이 엘리스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네가 바알의 계획에 희생당했기에, 전장에서 더 나타나지 않았던 건가?’

시간이 돌아오기 전, 즉 처용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묻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항상 만날 때마다 있는 힘껏 격돌하는 수호신과 학살의 마녀.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듯 보였던 그 싸움은.

-……마녀는 죽은 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마녀로 인해 더 벌어지지 않았다.

그 당시 처용은 마녀가 다른 전장에서 죽었으리라 생각하며 더 나타나지 않는 마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모습을 감춘 지 점점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마녀만 신경 쓰기엔 전황이 좋지 않았었으니까.

그런데.

‘그 인피니티 하이븐가 뭔가에 묶여 있었기에?’

방금의 대화를 듣고 쭉 생각해 본 결과, 회귀 전 마녀는 전장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바알의 계획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 바알이 날 강제로 잡아다 악마들을 무한히 낳는 모체로 만들어 버렸지.’

처용의 질문에 엘리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으로 답했다.

‘네가 전쟁 도중 마주쳤던 그 엄청난 수의 괴물들, 그것들이 인피니티 하이브에서 태어난 녀석들이다.’

‘……그래, 단순히 검은 문에서만 양산했다기엔, 그 질과 양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했어.’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회귀 전, 처용이 도달한 레벨은 무려 500레벨을 앞둔 상태, 초월(超越)의 경지였다.

그 당시 처용도, 어지간한 성좌와 대악마쯤은 간단하게 처리해 버릴 수 있을 정도.

그런 강력한 힘을 지녔던 처용이…….

적들의 ‘물량 공세’에 당했다.

심지어, 단순히 힘과 물량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마수들 하나하나가 아주 영악했고 까다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 괴물들은 처용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익숙한 싸움을 벌였었다.

과장을 조금 섞어 표현하자면, 악신들을 양산형으로 뽑아낸 병기 같은 느낌이었다.

전쟁 막바지에는 그런 괴물들이 무수히 쏟아지며 세계 전체를 뒤덮었었다.

그런 적들의 물량 공세에, 그나마 버티던 헌터들, 성좌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다.

마지막 생존자였던 처용까지.

악의 종주와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지쳐 버렸었다.

‘나를 통해서 태어난 녀석들일 테니, 평범한 괴물들일 리가 없잖아.’

‘망할…… 인정하지.’

실소를 내뱉는 엘리스의 읊조림에,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회귀 전 마주했었던 그 괴물들이 왜 그렇게 영악하고 강했는지, 단번에 납득이 되었으니까.

동시에.

‘아무리 유능해도, 인간의 가치는 도구일 뿐…….’

엘리스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 아닌, 속으로 읊조리며 침음을 삼켰다.

학살의 마녀는 다른 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지닌 존재였다.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스스로 신격에 올라 권능까지 깨우친 인간.

설마, 그런 학살의 마녀가 소모품으로 활용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 녀석도 ‘배신’당했을 줄이야.’

마녀가 바알에게 증오와 원한을 품은 이유는 강제로 이용당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더 있었다.

바알이 제 신관이었던 학살의 마녀를 가차 없이 소모품으로 활용한 것.

학살의 마녀가 바알과 악의 종주에게 바친 충성의 대가는 무한한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그녀의 입장에서, ‘배신’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간이었던 처용과 엘리스.

그런 둘이 맞은 결말은 ‘배신’으로 인한 ‘파멸’이었다.

처용은 배신을 당해 본 이의 입장으로서, 나름 엘리스의 심경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아직 마음속에 품은 사정을 전부 말한 것 같지는 않지만…….

“검성과 천마를 만나기엔, 시간이 좀 남았으니-.”

이내, 회귀 전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며 입을 열었다.

메피스토를 이번 전쟁에서 배제한다는 계획이 훌륭하게 성공한 상황.

아주 수월하게 일이 끝났기에, 시간이 조금 남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이제, 네가 나를 도와줘야겠어.”

처용은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악마들과 마기에 대해서 처용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전문가.

그런 엘리스의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으니까.

“약속한 게 있으니, 기꺼이 협조하지.”

엘리스가 그런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성역, 태룡전에 세워진 수련탑.

성지에 수련탑들이 다수 생겨난 이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 잘 찾지 않는 장소였다.

그런 그곳에서.

-콰콰쾅! 쿠콰-!

누군가가 열렬히 수련 중이라는 것을 알리듯, 오랜만에 소음과 진동이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요란스럽게 수련 중인 이들인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이게, 진짜!”

-캬아아! 크아!

거대한 물의 악령, 완전한 팬텀의 형태로 변해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으며 날뛰고 있는 연아.

그런 연아의 앞에는.

-캬아아아-!

검푸른빛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덩치의 검은 악령이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바로.

[다크니스 프로즌 팬텀]

유령형 몬스터 중 최악이자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 팬텀이었다.

연아는 자신과 비슷한 덩치와 모습을 지닌 눈앞의 악령을 향해.

“얌전히 나한테 먹혀!”

-캬아아! 촤아!

거침없는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고.

-크아아!

그런 연아에게 맞서는 팬텀 역시, 괴성을 내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물의 악령과 어둠의 악령이 서로 거칠게 날뛰며 팽팽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펼쳐진 수련탑의 결계 안에는.

“……!”

-철컥! 스르릉.

환도를 굳게 쥐고 긴장감 어린 표정을 내비치는 연화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휘이이! 휘리릭!

검녹색의 기운이 거친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존재.

5미터 크기의 반투명한 악령이 핏빛의 안광을 빛내며 연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악령 역시.

[다크니스 윈드 팬텀]

연화와 맞붙고 있는 악령처럼, 최악의 몬스터인 팬텀이었다.

연화와 연아가 태룡전으로 불려 와 각각 팬텀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유.

그 이유는 처용과 엘리스가 세운 계획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엘리스가 처용을 도와준 것이었다.

지금 연아와 연화가 맞서고 있는 강력한 두 팬텀.

그 팬텀의 중심에는.

-콰아아-!

짙고 검은 마기를 강렬하게 내뿜고 있는 식물 뿌리가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년악령삼(萬年惡靈蔘)]

[등급 : 레전더리+]

[만 년간 원한과 악념을 축적해 온 악령이 잠들어 있습니다.]

[확인 불가.]

처용이 말파스의 성역에서 털어 온 판데모니움의 영약 중 하나.

천년악령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영약이었다.

그 당시 처용은, 그저 위험한 영약을 보관하기 위해, 그것들을 임시로 봉인했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깊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였다.

처용이 영약에 대한 지식은 깊었지만, 판데모니움의 어둠을 품은 악독한 약재는 조금 예외였다.

회귀 전에도 얼마 접해 보지 못했었으니까.

만년악령삼 같은, 아주 위험한 영약들의 경우에는 회귀 전에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아니 그것들을 영약이라기보단, 살아 있는 무언가라고 보는 것에 맞았다.

만년악령삼만 해도, 무려 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을 축적한 팬텀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여차하면, 처용은 그것들을 그냥 자신이 전부 삼켜 에너지원으로 쓸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판데모니움과 어둠에 대해서만큼은 처용보다도 더 전문가인 엘리스가 있는 상황.

마침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추후 도움을 받기로 약속받기까지 했었다.

해서, 처용은 즉시 엘리스에게 필요한 일을 요청했고 작금의 상황이 펼쳐졌다.

“영약에 깃든 기운을 구체화하고 굴복시킨다라…….”

처용이 팬텀들과 사투 중인 연아와 연화를 보며 읊조렸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영약이 가진 모든 기운을 흡수할 방법이지.”

그 말에, 엘리스가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처용이 엘리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부분은 바로 판데모니움의 영약 정제.

현재 상황이 바로 영약을 정제하고 안전하게 흡수하는 과정이자 방법이었다.

처용은 이 방법을 통해, 헌터들에게 영약을 흡수시켜 그들을 더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아무리 네 혈연이라지만…… 참 성장 속도가 무섭네.”

엘리스가 연아와 연화를 보며 헛웃음 섞인 말을 이었다.

동시에, 영약을 흡수한 둘이 얼마나 강해질지 기대된다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 엘리스의 뒤에는.

[젠장, 내가 왜 널 도와야……!]

인상을 찌푸린 채,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뱉는 잿빛의 악마, 메르핀이 있었다.

“날 도와주면, 클레핀의 회복이 더 빨라진다니까?”

엘리스는 그런 메르핀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너도 납득을 했으니까. 내 계약 제안을 받아들인 거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메르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엘리스는 그런 불만 어린 메르핀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고.

“이 녀석이 도와준 덕분에, 다른 영약들도 빠르게 정제할 수 있겠어.”

아직 정제를 준비하지 않은 다른 약재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엘리스의 말에.

“이제…… 검성과 천마를 해결하는 일만 남았나.”

처용이 곧 있을 검성과 천마의 만남을 떠올리며 말했다.

기대감이 일렁이는 듯한 처용의 목소리에는 작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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