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65화 (665/726)

#665화

보살과 유리아가 클레핀의 몸속에서 끌어낸 반투명한 형체.

악마의 형상을 한, 악령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튀어나왔고 처용의 손아귀에 잡혀 들자.

[크아아! 감히 나 강탈의 대악마를 함부로 잡다니! 죽여 버리겠다!]

악령이 분노를 내지르며 처용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내질렀다.

우악스러운 손톱이 처용을 찢어발길 기세로 나아갔지만.

-까가강!

처용의 팔과 머리를 후려친 손톱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아무런 피해조차 주지 못한 모습.

[무슨!?]

악령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스러움을 드러낼 때.

“명환부 – 악령 속박.”

-파아! 촤라라라-!

처용이 명환부를 소환해, 길게 늘어지는 새하얀 실타래를 불러내 악령울 묶었다.

[이런 하찮은 힘으로 내게 손대다니!]

-콰아아! 파아-!

악령이 분노를 내지름과 동시에 강렬한 마기를 내뿜자, 빛의 실들이 모두 어둠에 잠겨 사그라졌고.

[죽어라!]

-화아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처용 한 명에게 집중되어 쏟아졌다.

새까만 마기가 처용을 거칠게 휘감으며 완전히 뒤덮은 모습.

그대로 어둠에 묻혀 사라질 듯 보였지만.

-……슈화아아아!

처용을 뒤덮은 어둠이 크게 요동치더니, 이내 한 곳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네가, 전대 삼천마 아가레스인가 하는 그놈이냐?”

손아귀에 어둠을 모조리 빨아들인 처용이 작은 미소를 흘리며 말하자.

[뭐, 뭐냐? 네 놈은!?]

악령, 아가레스가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 주마.”

-우웅. 스르륵.

처용은 그런 아가레스에게 조금 전 마기를 흡수한 영향으로 까맣게 변한 오른손을 뻗었다.

그 손이 아가레스의 머리 앞에 도달한 순간.

“파마룡의 광휘.”

-스르륵. 콰아아아!

처용의 손아귀에 일렁이는 마기가 순식간에 새하얀 빛으로 변하며 아가레스에게 쏟아졌다.

역천의 권능으로 흡수한 마기를 빛과 파마의 힘으로 반전시킨 것이었다.

강렬하게 빛나는 빛에 샤워하듯, 파마의 힘이 아가레스를 거칠게 휘감으며 몰아치자.

[캬아-!]

-툭!

굵고 짧은 비명을 내지른 아가레스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그리고.

[아가레스. 설마…… 살아 있었던 건가?]

니알라가, 쓰러진 아가레스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소멸한 거 아니었습니까? 메피스토의 성역에, 이 녀석 머리통도 장식되어 있던데.”

처용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스와 함께 메피스토의 성역에 갔을 때, 옥좌 위에 걸려 있던 악마의 머리.

그 머리와 지금 악령의 얼굴이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크윽…… 알레인!?]

고개를 든 아가레스가 니알라를 알아본 듯, 눈을 치켜뜨고는.

[안개의 대악마! 삼천마로서 명령한다! 당장, 이 잡것을 죽여라!]

강압적인 목소리로 명령하듯 소리쳤다.

그런 아가레스의 태도에 니알라가 코웃음을 쳤고.

[닥쳐.]

-화아아!

짙게 압축된 어둠의 안개를 뻗어 바닥에 쓰러진 아가레스를 짓눌렀다.

[커어어-!]

아가레스가 무거운 프레스에 짓눌린 듯, 점점 납작해지며 비명을 흘릴 때.

“……그랬던 건가?”

아가레스와 클레핀을 번갈아 유심히 바라보던 엘리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왜 클레핀이 깨어나지 못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촤라라-!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책장을 넘기며, 알았다는 듯 읊조리는 말.

[알아낸 게 있나 보네?]

“클레핀이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가레스가 건 저주 때문이었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그런 엘리스의 말에 반응하듯, 니알라가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건 눈속임이었고 스스로가 육체를 버리는 대가로 저주 그 자체가 되었던 겁니다.”

작금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며 관찰하던 엘리스가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했다.

“클레핀의 의식을 짓누르면서, 부활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군?”

[크, 크흐흐흐…… 내가 죽으면 저 잡것도 죽는다.]

엘리스가 아가레스를 쏘아보며 말하자, 바닥에 짓눌린 아가레스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 애송이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내게 기쁨이 되겠구나!]

메피스토에게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던 전대 삼천마 아가레스.

그는 죽기 직전, 어떻게든 살아남아 메피스토에게 보복하려 했다.

해서, 육체를 버리고 저주 그 자체가 되어 클레핀에게 깃든 것이었다.

조용히 부활할 때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던 것.

“자신이 ‘강탈’한 것은 지배하는 권능인가? 성가시네.”

엘리스가 그런 아가레스를 쏘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악마와 흑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라 해도, 아가레스를 함부로 건들기가 힘들었다.

아가레스를 함부로 소멸시켰다간, 클레핀까지 위험할 수 있었으니까.

비록 메피스토에게 패배했다고 해도, 아가레스는 삼천마였던 대악마.

그의 권능을 해제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당장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라면.

“한처용.”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존재를 찾으면 되었으니까.

게다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권능을 가진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다.

“이거, 안전하게 끊어 버릴 수 있겠어.”

엘리스가 처용을 향해 아가레스와 클레핀을 연결하는 반투명한 선.

정확히 말하자면, 유령의 하반신처럼 오므라드는 형태로 변한 아가레스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하반신이 클레핀의 가슴, 심장 부분과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으음…….”

-지잉.

눈빛이 검붉게 변한 처용이 아가레스와 클레핀을 번갈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잠시, 관찰하며 생각하는 듯 보였던 처용은.

“가능한데 말이야…… 이거 빚이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확신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아가레스의 권능인 강탈을 부술 수 있다는 것.

“기꺼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도와주마.”

처용의 확신 어린 대답에, 엘리스 역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이제, 이 쓰레기 좀 분리해서 잘 포장해 주겠어?”

엘리스가 바닥에 엎어진 아가레스를 손가락질하며 말을 잇자.

[웃기지 마라! 이년은 나의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나의 전리품을-!]

아가레스가 분노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삼천마의 권능을 일개 인간이 부순다?

아무리 전성기에 비해 약해졌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 자꾸 벌레 소리가 나는데.]

-우웅. 콰아아!

니알라가 발버둥 치는 아가레스를 향해 더 무거운 마기를 내뿜으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의념기 – 태극천체일도.”

-스릉. 지이잉!

처용이 멸절을 뽑아 들고 칼날에 멸천의 신력을 불어넣으며 태극천체일도를 형성했다.

황금빛 별이 빛나는 검은 칼날이 아가레스와 클레핀 사이를 연결한 선을 겨누었고.

“끊어 내라. 파천.”

-스릉! 촤아아!

태극천체일도를 치켜올린 처용이, 칼날을 부드럽게 내리치며 파천을 발현했다.

그 결과.

-사각!

아가레스와 클레핀을 이어 주는 반투명한 선이 뚝 끊어졌다.

[멍……청한! 이제 저년은 죽는-!]

그 모습을 본 아가레스가 차가운 조소와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하아-!]

죽은 듯 클레핀이 돌연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

이내, 편하게 풀어진 얼굴로 규칙적인 숨을 내쉬었다.

전보다 편해진 듯한 모습.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아가레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읊조릴 때.

“한처용, 네 덕분에…….”

-콰직! 으드드-!

엘리스가 아가레스의 머리를 짓밟아 말을 끊어 버리고는.

“메피스토와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생겼네? 흐흐.”

입꼬리를 씨익 들어 올린 채, 아주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처용과 엘리스가 태룡전에 돌아온 지, 약 네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지금입니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엘리스가, 황룡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황룡에게서 흘러나온 은은한 신력이 엘리스 앞에 뭉쳐 들었고.

-우우웅.

이내, 내부의 모습이 비치는 타원 형태의 게이트가 열렸다.

그 순간.

-……콰콰쾅!

게이트 안쪽에서 강렬한 충격음이 들리더니.

-콰지직! 으드드-!

날카로운 칼날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왔다.

새까만 전류를 흩뿌리며 점점 빠져나온 칼날은.

-탁!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

게이트 안쪽에서 칼날을 내지른 이.

메피스토가 표정을 사납게 일그러뜨린 채, 엘리스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

게이트가 열리고 엘리스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샤네를 내질러 공격한 듯 보였다.

“소용없는 짓이야. 메피스토.”

분노한 메피스토와 눈을 마주친 엘리스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자.

[……네놈!]

-으드드!

메피스토가 오히려 그런 엘리스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샤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엘리스를 죽일 듯이 증오를 내뿜고 있었다.

엘리스는 그런 메피스토를 잠시 바라보고는.

-저벅.

자리를 비키듯,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여 보였다.

그러자.

[메피……스토?]

그녀의 뒤에 가려져 있던 이.

침구 위에 상체만 일으킨 채 메피스토를 바라보고 있는 잿빛의 악마.

클레핀이 가늘고 여린 목소리를 내며 메피스토를 부른 순간.

[……!?]

메피스토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부릅떠졌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모습.

환상은 아닌지, 의심 어린 눈빛도 섞여 있었지만.

[…….]

클레핀의 옆에서 검은 사슬에 묶여 있는 메르핀.

그녀가 메피스토와 클레핀을 번갈아 바라보며 복잡한 눈빛을 보이자, 메피스토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판단하려는 듯한 모습.

“이제 좀…… 대화를 나눌 생각이 드나?”

-저벅.

옆으로 물러섰던, 엘리스가 다시 메피스토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메피스토는 클레핀과 메르핀의 모습이 가려지자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이유가 뭐냐. 예언자.]

-스릉! 탁!

내질렀던 샤네를 뒤로 빼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메피스토가 적대 어린 행동을 멈추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사라져 버린 운명이자, 본래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다.”

엘리스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바알의 신관이 된 내가, 그의 수족이 되어 이용당하고 너희들을 도와 세상을 무너뜨려야 했었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본래 일어났어야 할 일들.

바로 회귀 전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지금은 일어나지 않을 그 일을, 엘리스가 이제 ‘사라진 운명’이라 말하자.

[……네가 보았던 미래인가.]

메피스토가 엘리스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읊조리며 말했다.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네크로노미콘을 다루는 단 하나뿐인 인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대악마에 버금가는 마기를 지닌 존재.

그리고 본인이 직접 언급한 ‘바알의 신관’이 되었을 운명이라는 말까지.

본래, 예언자인 엘리스는 바알의 신관이 되어 네크로노미콘을 하사받고 대악마들을 돕는 존재였다.

아니, 그런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여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엘리스는 메피스토의 읊조림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열한 전쟁 도중, 넌 계승자인 한처용에게 죽는다.”

메피스토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말했고.

“네가 죽는 순간, 바알이 잿빛 군도를 집어삼켜 악마들을 에너지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영역인 잿빛 군도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도 이야기했다.

“스탈크, 클레핀…… 너를 따르는 악마들과 네가 지켜야 할 모든 이들이 바알에게 잡아먹힌다.”

[……!]

예언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언’에 메피스토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단 한 명의 악마만 빼고 말이지.”

엘리스가 고개를 뒤로 돌려 누군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닌 메르핀.

[……메르핀?]

“그래.”

엘리스는 메피스토가 확인차 묻는 말에 답하고는.

“바알이 설계자에게 복종의 낙인을 찍고 ‘인피니티 하이브’를 관리하도록 명령했으니까.”

이번엔, 메르핀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 예정이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인피니티 하이브…….]

메피스토가 엘리스의 말을 곱씹으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인피니티 하이브.

예언자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바알을 도발하며 한 말.

바알이 예언자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이유의 시작점이기도 한 발언이었다.

“인피니티 하이브는…….”

그런 메피스토의 말에 답하듯 엘리스가 착잡한 목소리로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바알과 크타니드의 힘을 일부분 이어받은 고위 악마를, 무한히 만들어 내는 부화장이다.”

인피니티 하이브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그 부화장의 중심부에 묶여, 무한 생식의 모체가 된 존재가 바로…… 나다.”

마수와 악마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강력한 양산형 병기.

인피니티 하이브는 그런 괴물을 무한으로 만들어 내는 병기 생산 공장이었다.

그런 인피티니 하이브의 핵심 ‘동력’이 바로 엘리스.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이자, 바알의 신관이 될 예정이었던, 우주의 단 하나뿐인 인간이었다.

“악마들을 무한히 낳으며 영겁의 고통을 받는 운명, 이게 내가 맞이하는 최후였다.”

엘리스가 깊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마쳤다.

[……메르핀이 그런 널 해방시켰다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겨 있던 메피스토가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정확히는 인피니티 하이브를 과부하시켜 무너뜨렸지.”

그 당시, 메르핀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미안해. 레나……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메르핀은 레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을 건네고 인피니티 하이브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마지막 ‘잿빛의 야장’ 일족이 멸족하고 나 또한 소멸했다.”

[……그걸!?]

엘리스가 메피스토의 비밀 중 하나를 언급하자 메피스토의 다시금 놀람을 드러냈다.

“이게…… ‘우리’가 맞이했어야 할 최후다.”

본래 같은 편에 서서 서로를 도와야 했던 메피스토와 엘리스.

하지만, 엘리스가 제 운명을 거부한 결과, 서로가 적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갚고 싶다.”

엘리스가 복잡한 눈빛으로 메르핀을 잠시 응시하고는.

그리고.

“사실, 넌 선택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클레핀을 포기할 수 없을 테니까.”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를 향한 증오를 거둬라. 메피스토.”

[…….]

-으드드!

엘리스의 말에 메피스토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길이, 거칠게 흔들리며 고민을 자아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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